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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유학자의 지리지 저술과 세계관: 여재촬요와 총쇄록을 중심으로
Writing Geography book and World View of Confucian in Enlightenment Period : Focusing on YEOJAECHALYO and CHONGSHALOK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6S1A5A2A01026767
선정년도 2016 년
연구기간 2 년 (2016년 07월 01일 ~ 2018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임은진
연구수행기관 국립공주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여재촬요’와 ‘총쇄록’에 대한 것으로, 이 책의 저자이자 지방관이었던 오횡묵의 지리학자적인 면모와 당시 지식인들이 갖고 있었던 세계관과 지식인상을 밝혀내고, 여재촬요 집필 동기, 여재촬요 출판 과정, 여재촬요의 내용 구성, 여재촬요의 개화기시대의 영향력, 여재촬요가 교과서로 선정된 과정 등 여재촬요 전반에 대한 것을 심층 분석하여 급변하는 개화기 시대의 교육 환경, 지리 교육의 특성 대한 것을 밝혀내어 그 의의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함.

  • 기대효과
  • 오횡묵이 저술한 ‘여재촬요’과 ‘총쇄록’에 대한 연구는 개화기 시대 지식인의 세계관과 사회 문화에 대한 것 뿐 만아니라, 지리학자 오횡묵으로 그를 재조명하여 계속적인 후속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것임.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국가교육행정기관인 학부가 1895년에서 1905년 사이에 총 7권의 지리교과서를 출판하였는데, 이 중 개인이 단독 저술한 책은 여재촬요와 사민필지 두 권임. 사민필지는 미국인 선교사 Hulbert가 저술한 것이고, 조선인이 개인이 단독 저술한 지리교과서는 여재촬요 하나 뿐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함. 이에 대한 저술 동기, 교과서 선정과정, 내용 구성, 출판 과정 등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는 개화기 시대 교육에 대한 구체적 사례 연구로 의의가 있음.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오횡묵이 저술한 여재촬요과 총쇄록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개화기 시대 지식인들의 세계관과 지리교과서로 사용된 여재촬요의 특징을 밝혀내기 위하여, 먼저 지방 행정관이자 유학자인 오횡묵(吳宖默)의 지리학적인 면모를 연구하기 위해, 여행 및 생각과 시문(詩文)은 물론, 관청에서 중요하게 집행되었던 일 등을 일기체로 엮은 『정선총쇄록(旌善叢鎖錄)』ㆍ『자인총쇄록(慈仁叢鎖錄)』ㆍ『함안총쇄록(咸安叢鎖錄)』ㆍ『고성총쇄록(固城叢鎖錄)』ㆍ『지도총쇄록(智島叢鎖錄)』에 대한 내용을 분석을 하고, 이 중 여재촬요와 관련된 내용을 추출해냄. 또한 지리교과서로 사용된 여재촬요는 癸巳年(1893년)에 10권 10책의 필사본으로 여재촬요를 발간하였고, 뒤에 5책으로 축약되고, 5책은 다시 학부에서 1986년에 1책으로 축소하여 지리과용 도서로 발간하였음. 현재 여재촬요는 10권, 8권, 5권, 1권 등 다양한 권형이 있는데 그 크기와 서지 내용이 모두 상이하므로 각 권형 별로 체제 및 내용을 비교 분석함. 여재촬요가 그동안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한문으로 저술 된 이유도 크기 때문에 주요 부분은 한문학자와 함께 완역을 실시하여 내용 분석과 체제 분석을 하고 개화기 시기 지리교과서와 비교 분석하여 그 특징과 의의를 찾아내고자 함.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여재촬요’와 ‘총쇄록’에 대한 것으로, 이 책의 저자이자 지방관이었던 오횡묵의 지리학자적인 면모와 당시 지식인들이 갖고 있었던 세계관과 지식인상을 밝혀내고, 여재촬요 집필 동기, 여재촬요 출판 과정, 여재촬요의 내용 구성, 여재촬요의 개화기시대의 영향력, 여재촬요가 교과서로 선정된 과정 등 여재촬요 전반에 대한 것을 심층 분석하여 급변하는 개화기 시대의 교육 환경, 지리 교육의 특성 대한 것을 밝혀내어 그 의의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함.
    연구 결과, 총쇄록에 나오는 여재촬요 관련 내용은 함안총쇄록, 고성초쇄록, 에 집중되어 있으며 15건 이상 나오고 있음. 함안총쇄록 1892년 7월 23일에 여재촬요의 서문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시작으로, 지도군 총쇄록 1986년 7월 9일에 영협에서 여재촬요 40여건을 가지고 왔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1892년 7월전에 여재촬요가 마무리 되었고, 그 이후 5년 이상 여재촬요 제작 및 출판에 노력한 것으로 파악됨. 여재촬요은 10권, 8권, 5권, 1권 등의 체제로 이루어 졌는데, 총쇄록과 여재촬요등을 비교 분석한 결과 가장 먼저 5책 본을 완성한 후 이를 바탕으로 편찬한 1책의 목판본을 만들고, 5책 본을 확장한 8책 본의 필사본을 집필하고, 8책본을 확장하여 10책 본의 필사본을 제작했다고 판단됨. 또한 《한성순보》 및 《한성주보》 해제에 의하면 오횡묵은 1886년 4월 16일 박문국 주사로 임명되었으며, 1887년 4월까지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오횡묵은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 들어오는 근대적인 지식과 지리 지식을 확장했을 것으로 보이며, 또한 여재촬요 수록된 천문과학지도와 세계지도는 박문국에서 발행한 《한성순보》,《한성주보》와 유사한 내용이 많으며, 세계 각국에 대한 것은 박문국에서 1886년에 발행한 『만국정표』본문과 유사한 것이 많음.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국가교육행정기관인 학부가 1895년에서 1905년 사이에 총 7권의 지리교과서를 출판하였는데, 이 중 개인이 단독 저술한 책은 여재촬요와 사민필지 두 권임. 사민필지는 미국인 선교사 Hulbert가 저술한 것이고, 조선인이 개인이 단독 저술한 지리교과서는 여재촬요라고 할 수 있음. 연구 결과 교과서로 사용된 여재촬요는 1893년 판각한 것을 학부에서 교과용 도서로 선정한 것으로 판단됨. 오횡묵은 이미 지리학자적인 식견을 가지고 다양한 문헌을 수집하였고, 답사를 다니면서 지리정보를 오랫동안 수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음. 오횡묵의 여재촬요 집필 동기에 대해 여재촬요 서문과 총쇄록을 분석한 결과, 동국여지승람이 오래되어 정보도 변했고, 양이 많아 가지고 다니기도 불편하여 새로운 지리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 책을 집필한 것으로 보이며, 19세기말 제국주의가 팽배해지고 세계 여러 나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국내 지식인들의 세계에 대한 지리 지식을 확대하고, 천원지방 사상에서 벋어나 천문과 지구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강대국이 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이고,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조선말 혼란기의 지식인의 면모가 그가 집필한 모든 책 곳곳에 배어 있음.

  • 영문
  • This study is about 'Yeojaechalyo' and the 'Chongcelok'. The author and local administration, Oh hyoeng-muk, explains the worldview and intellectual profile of the intellectuals at that time,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find out the characteristics of education environment and geography education in the rapidly changing age of enlightenment by analyzing in-depth the overall contents of 'Yeojaechalyo's writing motive, publishing process, content composition, influence of the age of enlightenment, and selected as a textbook.
    According to the research, the contents of 'Yeojaechalyo' , which is published in the general archives, are concentrated in the ‘Haman Chongcelok’, ‘Goseong Chongcelok’, and more than 15 cases are reported. Starting with the completion of the preface of ‘Yeojaechalyo’ on July 23, 1892, it was understood that Yeojaechalyo was completed before July 9, 1892, and that 'Yeojaechalyo' was produced and published for more than five years.

    After comparing 10 volumes, 8 volumes, 5 volumes, and 1 volume, 'Yeojaechalyo' was judged to be the first to complete a five-book version, then one-volume summary, then expand the five-book version to write an eight-volume copy, expand the eight-volume copy, and produce a 10-volume copy.


    Also, according to the release of ‘Hansung Sunbo’ and ‘Hanseong Zubo’, Oh hyoeng-muk was appointed as Parkmoonkook on April 16, 1886 and served until April 1887. During this period, it is expected to expand its knowledge of modern knowledge and geography from China and Japan. Also, there are many similar contents of the astronomical science map and world map published by Parkmoonkook, similar to that of 'Hanseong soonbo', and 'Hanseong jubo', Information about the world is similar to the text of 'MankokJeongpyo' published in 1886 by Park Mun-guk.

    In addition, the nation's first modern state education administration institution, the Ministry of Education, published a total of seven geography textbooks between 1895 and 1905, two of which were written exclusively by individuals, 'Yeojaechalyo' and 'Saminpilji'. The journal was written by American missionary Hulbert, and the geography textbook written exclusively by Koreans is 'Yeojaechalyo'. According to the study, 'Yeojaechalyo' which was used as a textbook, is believed to have been selected as a textbook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in 1893. Oh hyoeng-muk has already collected various literature with geographer's knowledge and has collected geographical information for a long time.

    In order to find out why Ohnangmuk was writing Yeojyeomyo, analysis an introduction to the book and 'Chongcelok', the information of 'DongkukYeojisuengnam' has changed for a long time, and the volume of the book is too large to carry, as imperialism prevailed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the exchange of countries around the world became active, intellectuals believed that they needed to expand their knowledge of the world, and to expand their scientific awareness of astronomy and the earth, otherwise they believed that they could not become a power.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여재촬요’와 ‘총쇄록’에 대한 것으로, 이 책의 저자이자 지방관이었던 오횡묵의 지리학자적인 면모와 당시 지식인들이 갖고 있었던 세계관과 지식인상을 밝혀내고, 여재촬요 집필 동기, 여재촬요 출판 과정, 여재촬요의 내용 구성, 여재촬요의 개화기시대의 영향력, 여재촬요가 교과서로 선정된 과정 등 여재촬요 전반에 대한 것을 심층 분석하여 급변하는 개화기 시대의 교육 환경, 지리 교육의 특성 대한 것을 밝혀내어 그 의의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함.
    1년차 연구에서 여재촬요와 총쇄록 체제 및 내용 분석을 여재촬요의 특징을 밝혀내고, 지방 행정관이자 유학자인 오횡묵(吳宖默)의 지리학적인 면모를 연구하기 위해, 여행 및 생각과 시문(詩文)은 물론, 관청에서 중요하게 집행되었던 일 등을 일기체로 엮은 『정선총쇄록(旌善叢鎖錄)』ㆍ『자인총쇄록(慈仁叢鎖錄)』ㆍ『함안총쇄록(咸安叢鎖錄)』ㆍ『고성총쇄록(固城叢鎖錄)』ㆍ『지도총쇄록(智島叢鎖錄)』에 대한 내용을 기초 분석을 하고, 이 중 여재촬요와 관련된 내용을 추출했음.
    2년차 연구에서는 이러한 기초 연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오횡묵의 지리지 저술 의도와 세계관을 밝혀내고, 여재촬요 집필 동기, 여재촬요 출판 과정, 여재촬요의 내용 구성, 여재촬요가 교과서로 선정된 과정 등 여재촬요 전반에 대한 것을 심층 분석하여 급변하는 개화기 시대의 교육 환경, 지리 교육의 특성 대한 것을 밝혀내어 그 의의를 찾고자 하였음.
    연구 결과, 총쇄록에 나오는 여재촬요 관련 내용은 함안총쇄록, 고성초쇄록, 에 집중되어 있으며 15건 이상 나오고 있음. 함안총쇄록 1892년 7월 23일 여재촬요의 서문이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시작되어, 지도군 총쇄록 1986년 7월 9일 영협에서 여재촬요 40여건을 가지고 왔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1892년 7월전에 여재촬요가 마무리 되었고, 그 이후 5년 이상 여재촬요 제작 및 출판에 노력한 것으로 파악됨. 여재촬요은 10권, 8권, 5권, 1권 등의 체제로 이루어 졌는데, 총쇄록과 여재촬요등을 비교 분석한 결과 가장 먼저 5책 본을 완성한 후 이를 바탕으로 편찬한 1책의 목판본을 만들고, 5책 본을 확장한 8책 본의 필사본을 집필하고, 8책본을 확장하여 10책 본의 필사본을 제작했다고 판단됨. 또한 《한성순보》 및 《한성주보》 해제에 의하면 오횡묵은 1886년 4월 16일 박문국 주사로 임명되었으며, 1887년 4월까지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오횡묵은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 들어오는 근대적인 지식과 지리 지식을 확장했을 것으로 보이며, 또한 여재촬요 수록된 천문과학지도와 세계지도는 박문국에서 발행한 《한성순보》,《한성주보》와 유사한 내용이 많으며, 세계 각국에 대한 것은 박문국에서 1886년에 발행한 『만국정표』본문과 유사한 것이 많음.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국가교육행정기관인 학부가 1895년에서 1905년 사이에 총 7권의 지리교과서를 출판하였는데, 이 중 개인이 단독 저술한 책은 여재촬요와 사민필지 두 권임. 사민필지는 미국인 선교사 Hulbert가 저술한 것이고, 조선인이 개인이 단독 저술한 지리교과서는 여재촬요라고 할 수 있음. 연구 결과 교과서로 사용된 여재촬요는 1893년 판각한 것을 학부에서 교과용 도서로 선정한 것으로 판단됨. 오횡묵은 이미 지리학자적인 식견을 가지고 다양한 문헌을 수집하였고, 답사를 다니면서 지리정보를 오랫동안 수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음. 오횡묵의 여재촬요 집필 동기에 대해 여재촬요 서문과 총쇄록을 분석한 결과, 동국여지승람이 오래되어 정보도 변했고, 양이 많아 가지고 다니기도 불편하여 새로운 지리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 책을 집필한 것으로 보이며, 19세기말 제국주의가 팽배해지고 세계 여러 나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국내 지식인들의 세계에 대한 지리 지식을 확대하고, 천원지방 사상에서 벋어나 천문과 지구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강대국이 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이고,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조선말 혼란기의 지식인의 면모가 그가 집필한 모든 책 곳곳에 배어 있음.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여재촬요의 저자 오횡묵은 조선말 고위 공무원(지방관)이며 유학자임. 지금까지 오횡묵에 대해서는 행정가와 문인의 관점으로 연구가 이루었지만, 그가 저술한 총쇄록과 여재촬요에 대한 본 연구는 개화기 시대 지식인의 세계관과 사회 문화에 대한 것 뿐 만아니라, 지리학자 오횡묵으로 그를 재조명하여 계속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틀이 될 것임.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국가교육행정기관인 학부가 일제의 의해 통감부가 설치되기 전까지인 1895년에서 1905년 사이에 소학만국지지, 조선지지, 여재촬요, 지구약론, 사민필지, 대한지지, 중등만국지지 총 7권의 지리교과서를 출판하였다. 개화기 교육이나 교과서등에 대한 그동안 많은 연구들이 개화기 전체나 구한말과 같은 시기적으로 거시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본 연구는 오횡묵이라는 인물과 그의 저서를 심도있게 분석함으로써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접근을 통하여 개화기 시대 교육을 투영함으로 이 당시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제공할 것임.지금까지 조선후기 지리서에 대해서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이중환만 주로 다루었다면, 본 연구 결과 오횡묵이 지리학자로 성공적인 재조명이 이루어 졌기 때문에 대학 교재 뿐만 아니라 중등학교 교과서에 소개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지리학과 지리교육뿐만 아니라 개화기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이론적 기틀이 될 것으로 판단됨.
  • 색인어
  • 여재촬요, 함안총쇄록, 고성총쇄록, 지도총쇄록, 오횡묵, 한성순보, 한성주보, 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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