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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仝의 「月蝕詩」에 대한 한국 문인들의 수용 양상과 의미
A Study on the Korean Literary's Acceptance Aspects and Its Meanings of 「Poem on Lunar Eclipse」 by Lu Tong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6S1A5B5A07921266
선정년도 2016 년
연구기간 1 년 (2016년 09월 01일 ~ 2017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이국진
연구수행기관 고려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당나라 시인 盧仝(796?~835)의 「月蝕詩」를 한국 문인들이 수용한 양상과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盧仝의 시는 詭寄하고 怪異하다고 평가되는데, 1673자의 장편 가행체 「月食詩」는 그 중에서도 대표 작품이다. 「月食詩」는 盧仝이 당 헌종 원화 5년(810) 11월 14일 밤에 월식을 보고, 그 현상에 비유해서 당시 逆黨들의 부조리한 정치 현실을 諷諭한 작품이다. 이후 韓愈가 이 시에 큰 감발을 받아서 「效玉川子月蝕詩」를 지은 뒤로 작품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리하여 역대로 중국과 한국의 많은 문인들이 盧仝의 「月食詩」에 큰 관심을 보이며, 작품에 대해 활발히 비평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모의하였다. 특히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주요 표현기법의 활용·전체 작품의 적극적인 모의·내용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해석 등, 盧仝의 「月食詩」를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하였다. 요컨대 한국 한시사에서 盧仝의 「月食詩」는 문학적 차원에서부터 정치적 의식과 인식론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 학계에서 盧仝의 「月食詩」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없었다. 중문학계에서는 盧仝의 시가에 나타난 자연묘사 양상에 대한 고찰이 있었고, 한국 한문학계에서는 일식과 월식을 소재로 한 한국 한시의 양상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盧仝의 「月食詩」가 제한적으로 검토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국 학계에 盧仝의 「月食詩」가 지닌 내용과 형식적 특징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한국 문인들이 盧仝의 「月食詩」를 수용한 양상과 의미를 종합적으로 분석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가 지향하는 연구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盧仝의 한시에 대한 중국 문인들의 비평 양상을 개관하고, 「月食詩」의 전체 구성, 내용과 형식적 특징, 미적 특질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둘째, 盧仝의 「月食詩」에 대한 한국 문인들의 비평 양상을 개관하고, 문학적 차원에서 표현기법과 상상력을 활용하는 양상을 고찰할 것이다.
    셋째, 盧仝의 「月食詩」에 담긴 내용과 주제에 주목하여, 작품에 대한 모의나 해석을 통해 왕권 옹호의 매개적 장치로 활용하는 양상을 고찰할 것이다.
    넷째, 조선후기에 서학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높아진 자연과학의 인식 수준을 바탕으로, 盧仝의 「月食詩」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하는 양상을 고찰할 것이다.
    다섯 째, 이와 같이 한국 한시사에서 盧仝의 「月食詩」에 대해 다양한 수용 양상이 나타나는 의미를 종합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 기대효과
  • 본 연구 과제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학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본 연구는 장편이면서 내용이 난해한 盧仝의 「月食詩」를 한국 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그 작품의 전모와 문학적 특징을 체계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인들이 盧仝의 「月食詩」를 문학적 차원에서 수용하고 변용하는 양상과 의미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왕권 옹호 차원에서 일월식에 대한 중세적 災異觀이 분명했던 시기에 한국 문인들에게 盧仝의 「月食詩」가 정치적 매개체로 작용하는 방식과 의미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서구의 과학 문명이 유입되는 조선 후기에 盧仝의 「月食詩」를 자연과학적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양상과 그 의미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다섯 째, 중국 한시를 수용하고 변용하는 한국 문인들의 창작 역량과 그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섯 째, 연구 국가의 경계가 확장되는 시대적 상황에서 한시 연구의 외연을 넓히고 한시 연구 성과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盧仝(796?~835)의 「月蝕詩」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한국 문인들이 이 작품을 수용한 다양한 양상과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盧仝의 시풍에 대한 중국 문인들의 평가와 「月食詩」의 작품 구조 및 미적 특질에 대한 분석 정리

    盧仝의 시풍은 그 형식과 표현기법이 詭寄하고 怪異하면서도 내용에 조리가 있고 주제의식에 깊이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1673자의 장편 가행체 「月食詩」는 盧仝의 시풍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서 당대와 후대 문인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된 작품이다.
    盧仝이 지은 「月食詩」의 내용적 특성은 묘사, 의론, 서정의 강렬한 표현과 조화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月食詩」의 형식적 특성은 한 구절의 길이가 고르지 않고, 산문과 시가의 구식이 섞여 있으며, 문어와 구어도 함께 쓰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렇게 자유분방한 형식과 달리 내용 전개는 정연한 5단락 체계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를 통해 내용·형식·표현력이 예술적 조화를 이뤄 詭異險怪한 풍격을 발산하고, 여기에 당대 정치 현실을 과감히 비판하는 강렬한 주제 의식을 담아내었던 것이다.

    2) 盧仝의 「月食詩」에 대한 한국 문인들의 수용 양상 분석 정리
    (1)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수준과 문학적인 활용 양상

    우리나라에서 盧仝의 「月食詩」에 대한 관심과 수용 양상은 고려 후기부터 나타난다. 이후 조선 전기부터는 그 수용 양상이 더욱 보편화되었으며, 조선 중기에 이르러 盧仝의 「月食詩」에 대한 이해력이 크게 심화된다. 이는 柳夢寅이 盧仝의 「月食詩」 구절에 대한 의문점과 이해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작품, 金萬重이 盧仝의 「月食詩」에 대한 풍격과 내용적 특징을 세밀하게 고증한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은 양상은 한국에서도 盧仝의 「月食詩」가 난해하고 詭異險怪한 작품으로 여겨졌으며, 문학적 차원에서 표현기법과 주제의식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에 대한 관심과 이해력이 높아졌던 것이다.

    (2) 왕권 옹호의 정치적 매개 작품으로서의 활용 양상

    盧仝이 월식을 재앙으로 여기고, 「月食詩」를 통해 逆黨들의 부조리한 정치 현실을 諷諭한 데에는 중세적 災異觀이 바탕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盧仝의 「月食詩」는 신하로서의 바른 도리를 일깨우고, 국가와 왕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강조하는 주제와 내용으로 인해 고려 후기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盧仝의 「月食詩」에 대한 정치적 인식은 확산되었다. 조선 전기 방외인 문사였던 鄭希良이 盧仝의 「月食詩」를 재연하여 조정의 권신들에 대한 비분강개함을 표출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閔齊仁(1493∼1549)은 「讀盧仝月蝕詩」에서 盧仝이 <春秋>의 直筆 정신을 이었다며 간신과 역당들을 물리치고자 하는 주제의식에 큰 공감과 찬사를 보내었다. 그리고 朴泰淳(1653~1704)은 「擬盧同月蝕詩」에서 盧仝의 「月食詩」를 상세히 모의하면서도 짐짓 온건하고 유연한 어조로 신하된 도리와 왕권의 옹호를 강조하였다.

    (3) 자연과학에 입각한 비판적인 분석과 해석

    조선 후기에 서학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서양의 일월식론을 수용한 학자들은 災異觀에서 벗어나 과학적 사고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 중에서 徐命膺(1716~1787)은 자신이 지은 「月蝕詩」에서 盧仝의 「月蝕詩」와 韓愈의 「效玉川子月蝕詩」에 황탄하고 불경스러운 말이 많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李學逵(1770~1835)는 「讀盧玉川月蝕詩戲效其體」에서 盧仝의 「月食詩」를 극렬하게 비판했다. 李學逵는 盧仝의 「月食詩」를 중세적 災異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연과학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이었다.
    이처럼 徐命膺과 李學逵는 盧仝의 「月食詩」를 문학적 차원에서 공감하지 않고, 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기존의 한시사에서는 보이지 않던 특이한 현상이었다. 또한 사상사적으로도 조선후기 서학의 유입과 자연과학적 인식 양상과 관련해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당나라 시인 노동(盧仝)은 한유(韓愈)와 가도(賈島) 등과 각별한 교분을 가졌던 한맹시파(韓孟詩派)의 중요한 한 사람이다. 노동의 대표작인 「월식시(月蝕詩)」는 1677자의 장편으로서 당나라 헌종 원화 5년(810) 11월 14일 밤에 월식을 보고, 그 현상에 비유해서 당시 국정을 농단하던 환관들과 무능한 신하들을 풍유한 작품이다.
    노동의 「월식시」는 월식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간절한 서정의 투영, 천체의 생물화와 의인화를 통한 사실감 전달, 구체적인 의론 전개를 통한 선명한 논지 전달 양상이 돋보인다. 아울러 장편 가행체의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을 적극 활용하여, 서사와 묘사․서정과 의론의 표현 과정에서 파격과 독창성을 발휘하면서도 상호 조화를 이뤄 작품성을 높이고 개성을 구현하였다. 그리하여 노동의 「월식시」는 시어가 험괴(險怪)하고 시상이 기발하며 시상의 전개 방식이 종횡무진하면서도 강렬한 주제의식을 발산함으로써 역대 문인들로부터 ‘기굴험괴(崎崛險怪)’, ‘궤기괴이(詭奇怪異)’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로 인해 노동의 「월식시」는 중국은 물론 한국의 문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고려시대 주요 문인들은 노동의 「월식시」가 지닌 주제와 표현방식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깊이 감상하고 작품에 인용했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노동의 「월식시」를 적극적으로 모의하는 양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 정희량(鄭希良)과 민제인(閔齊仁)은 자신의 정치의식과 신념을 노동의 「월식시」를 모의함으로써 우회적이지만 강렬하게 표출했다. 또한 박태순(朴泰淳)은 월과(月課)라는 창작 동기에 따라 노동의 「월식시」가 지닌 작품구조와 표현기법을 충실히 모의하는 가운데 변화와 개성을 추구하여 시재(詩才)를 과시했다.
    그에 비해서 조선 후기의 서명응(徐命膺)과 이학규(李學逵)는 서학(西學)의 영향과 실학적 학풍을 바탕으로 노동의 「월식시」를 비평하고 모의했다. 이를 통해 철저하게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작품의 허무맹랑함을 평가절하하고, 나아가서 중세적 재이관(災異觀)까지 비판하였으며, 자신의 천문지식으로 월식의 원리를 다시 설명했다. 이는 조선 후기 문인들이 자연과학적 인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기존의 문학적 표현이나 정치적 상징성을 인식하는 관점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겼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중세 봉건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월식이 왕의 권위와 직결된 현상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자연과학적 인식 수준이 높은 조선 후기 문인들이라도 월식을 둘러싼 정치적 상징성을 무시하고 구식례(救蝕禮)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서명응과 이학규가 노동의 「월식시」를 비평하고 모의하는 양상은 더욱 주목을 끈다. 요컨대 서명응과 이학규는 월식에 대한 변화된 가치관을 왕의 권위를 저촉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동의 「월식시」를 문학적 매개로 활용했던 것이다.
  • 영문
  • The poem, ‘A Poet on a Lunar Eclipse(月蝕詩)’ created by a poet during the Tang Dynasty, ‘Lu-Tong(盧仝)’ is a long poem consisting of 1,677 characters. ‘A Poet on a Lunar Eclipse’ written by ‘Lu-Tong’ was a poem which was written for criticizing the eunuchs who used to manipulated the government affairs and the incompetent retainers at that time while having likened the situation to a Lunar Eclipse which was seen to him at night on November 14, 810. ‘A Poem on a Lunar Eclipse’ written by ‘Lu-Tong’ stands out in the aspects of the expression of realism through the organification and personification of the celestial bodies and the vivid expression of arguments through the development of specific arguments as well as the elaborate description of a lunar eclipse and the projection of earnest lyricism into a poem. Thus, the poem released a strong sense of subject while the narrations, descriptions, lyricism and arguments are harmonized. In addition, since the expressions of poetic concepts and the use of poetic words are free and brilliant, the poem has attracted a lot of attentions from the literary people in the oriental history.
    Accordingly, ‘A Poet on a Lunar Eclipse’ by ‘Lu-Tong’ has influenced a lot in Korea as well as in China. Especially, during the Chosun dynasty in the Korean Peninsula, many scholars started to imitate the poet by ‘Lu-Tong’ aggressively. Among such scholars, Mr. Hee-ryang Jung and Mr. Ja-in Mihn tried to express their political awareness and beliefs while referring to ‘A Poet on a Lunar Eclipse’ by ‘Lu-Tong’. In addition, Mr. Tae-soon Park seeked for some changes and creative expressions while having faithfully followed the structure and expression methods of the poet by ‘Lu-Tong’.
    On the other hand, Mr. Myeong-eung Seo and Mr. Hak-gyu Lee during late Chosun Dynasty used to criticize ‘A Poet on a Lunar Eclipse’ by ‘Lu-Tong’ from the aspect of astronomy based on their understandings of Western Learning and academic tradition of practical science. Therefore, they used to devaluate the poet by reason of the absurdness. This shows well that there were a big change in the points of view of the literary people during late Chosun Dynasty who appreciated the existing literary expressions and political symbolism since their level of acknowledgement of natural science had been enhanced.
    However, during Chosun Dynasty, a solar eclipse or a lunar one was always considered as the phenomena related to the King’s Authority. Therefore, many literary people during late Chosun Dynasy might have to be troubled between their scientific awareness of a solar eclipse or a lunar one and their political ideologies. Under such situations, Mr. Myeong-eung Seo and Mr. Hak-gyu Lee could express their changed values aggressively within the limited scope by using the literary work, ‘A Poet on a Lunar Eclipse’ by Lu-Tong as a mediu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당나라 시인 盧仝(796?~835)은 韓愈와 賈島 등과 각별한 교분을 가졌던 韓孟詩派의 중요한 한 사람이다. 盧仝의 대표작인 「月蝕詩」는 1677자의 장편으로서 당나라 헌종 원화 5년(810) 11월 14일 밤에 월식을 보고, 그 현상에 비유해서 당시 국정을 농단하던 환관들과 무능한 신하들을 諷諭한 작품이다.
    盧仝의 「月蝕詩」는 월식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간절한 서정의 투영, 天體의 생물화와 의인화를 통한 사실감 전달, 구체적인 議論 전개를 통한 선명한 논지 전달 양상이 돋보인다. 아울러 장편 가행체의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을 적극 활용하여, 서사와 묘사․서정과 의론의 표현 과정에서 파격과 독창성을 발휘하면서도 상호 조화를 이뤄 작품성을 높이고 개성을 구현하였다. 그리하여 盧仝의 「月蝕詩」는 시어가 險怪하고 시상이 기발하며 시상의 전개 방식이 종횡무진하면서도 강렬한 주제의식을 발산함으로써 역대 문인들로부터 ‘崎崛險怪’, ‘詭奇怪異’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로 인해 盧仝의 「月蝕詩」는 중국은 물론 한국의 문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고려시대 주요 문인들은 盧仝의 「月蝕詩」가 지닌 주제와 표현방식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깊이 감상하고 작품에 인용했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盧仝의 「月蝕詩」를 적극적으로 모의하는 양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 鄭希良과 閔齊仁은 자신의 정치의식과 신념을 盧仝의 「月蝕詩」를 모의함으로써 우회적이지만 강렬하게 표출했다. 또한 朴泰淳은 月課라는 창작 동기에 따라 盧仝의 「月蝕詩」가 지닌 작품구조와 표현기법을 충실히 모의하는 가운데 변화와 개성을 추구하여 詩才를 과시했다.
    그에 비해서 조선 후기의 徐命膺과 李學逵는 西學의 영향과 실학적 학풍을 바탕으로 盧仝의 「月蝕詩」를 비평하고 모의했다. 이를 통해 철저하게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작품의 허무맹랑함을 평가절하하고, 나아가서 중세적 災異觀까지 비판하였으며, 자신의 천문지식으로 월식의 원리를 다시 설명했다. 이는 조선 후기 문인들이 자연과학적 인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기존의 문학적 표현이나 정치적 상징성을 인식하는 관점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겼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중세 봉건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월식이 왕의 권위와 직결된 현상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자연과학적 인식 수준이 높은 조선 후기 문인들이라도 월식을 둘러싼 정치적 상징성을 무시하고 救蝕禮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徐命膺과 李學逵가 盧仝의 「月蝕詩」를 비평하고 모의하는 양상은 더욱 주목을 끈다. 요컨대 徐命膺과 李學逵는 월식에 대한 변화된 가치관을 왕의 권위를 저촉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盧仝의 「月蝕詩」를 문학적 매개로 활용했던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첫째, 본 연구는 장편이면서 내용이 난해한 盧仝의 「月食詩」를 한국 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그 작품의 전모와 문학적 특징을 체계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인들이 盧仝의 「月食詩」를 문학적 차원에서 수용하고 변용하는 양상과 의미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 문인들에게 盧仝의 「月食詩」가 정치적 매개체로 작용하는 방식과 의미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서구의 과학 문명이 유입되는 조선 후기에 盧仝의 「月食詩」를 자연과학적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양상과 그 의미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다섯 째, 중국 한시를 수용하고 변용하는 한국 문인들의 창작 역량과 그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섯 째, 연구 국가의 경계가 확장되는 시대적 상황에서 한시 연구의 외연을 넓히고 한시 연구 성과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盧仝의 「月蝕詩」, 月蝕, 鄭希良, 閔齊仁, 朴泰淳, 徐命膺, 李學逵.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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