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공간을 활용한 일제의 황국신민 만들기
-조선총독부 편찬 4년제 초등학교『國史地理』교과서를 중심으로-
Making Empire subjects of the Japanese empire utilizing time and space
-A study focusing on ‘history geography’ textbooks for a four-year-course elementary school children publish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본 연구는 조선총독부가 4년제 초등학교의 조선아동에게 국사와 지리과목을 통합하여 초등학교용 사회교과서로 편찬한『國史地理 上卷』(1938), 『國史地理 下卷』(1938)을 심층 분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일제가 조선의 아동을 어떻게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만들려고 했는지를 파악할 것이 ...
본 연구는 조선총독부가 4년제 초등학교의 조선아동에게 국사와 지리과목을 통합하여 초등학교용 사회교과서로 편찬한『國史地理 上卷』(1938), 『國史地理 下卷』(1938)을 심층 분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일제가 조선의 아동을 어떻게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만들려고 했는지를 파악할 것이다. 최근 일본의 우익들은 대만의 경우 총독부 건물이 지금도 보존되어 중화민국 총통부청사로 사용되고 있으나, 한국은 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고 자주 대만과 비교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그들은 대만은 반일 감정이 심하지 않으나 한국만 유독 반일감정이 심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묻고는 한다. 이와 같은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학생들이 불행히도 많지 않다. 이런 주장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대답은 무엇일까? 3.1운동 이후의 사건 처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일제가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3.1운동을 경찰과 헌병 그리고 군대를 동원하여 강제 진압한 것에 대해 국제적인 여론이 악화되었다. 그래서 당시 原 敬(하라 다카시)내각은 악화된 국제여론을 진정시키려고 1919년 8월 20일 칙령을 발포하여 조선총독과 대만총독에 대해 문관총독 취임이 가능하도록 개정하였다. 대만의 경우는 실제로 8대 田 健治郎(덴 겐지로) 이후 군인이 아닌 9명의 문관을 1936년 9월 2일까지 총독으로 임명시켰으나 조선총독은 문관이 아닌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해군대장을 임명시켰다. 이처럼 일제는 조선과 대만을 다른 관점에서 취급하고 있었다. 즉 대만은 50년간 통치를 받았어도 조선처럼 황국신민화와 무단통치가 아니고 문관통치 체재를 유지했기에 한국에 비해 반일감정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모른 체 대만이 한국에 비해 반일감정이 적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본 연구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반복되는 한일 간 갈등의 근원은 과거사에 대한 상반된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국은 일본의 침략과 지배역사에 대한 명확한 사죄와 청산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반복되는 사죄 요구 및 전후 보상처리 문제의 필요성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한일 양국의 상반된 역사인식의 차이는 과거 일제의 역사교육에 그 원인이 있다. 따라서 일제가 조선아동에게 가르쳤던『國史地理』교과서는 그들의 역사인식에 대한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으로 사료된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교과서는 일제가 조선아동을 어떠한 인간으로 만들고자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생생한 자료이다. 4년제 아동에게 가르쳤던『國史地理』는 단순히 역사와 지리를 통합한 과목이 아니다.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지리를 복합적으로 교육시켜 장차 조선아동을 충량한 신민으로 육성하려는 의도를 나타낸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國史地理』교과서 연구의 활성에 이바지함으로써 식민지 교육 연구에 한국이 주도권을 잡고 연구하는 토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기대효과
이번 연구를 통해서 연구자들이『國史地理』교과서에 많은 관심을 갖기를 기대한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만주의 교과서와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 본 연구는 『國史地理』교과서가 6년제 조선아동이 배우는 초등학교의 국사교과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다. 즉『國 ...
이번 연구를 통해서 연구자들이『國史地理』교과서에 많은 관심을 갖기를 기대한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만주의 교과서와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 본 연구는 『國史地理』교과서가 6년제 조선아동이 배우는 초등학교의 국사교과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다. 즉『國史地理』교과서가 당시의 아동을 皇國臣民으로 만들기 위해 편찬된 교과서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또한 일제는 식민지조선의 4년제 초등학교 아동에게 강력한 황국신민화 하기 위한 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1938년 이후 국사교육에 있어서는 식민지조선이 오히려 일본을 앞서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본 연구를 통해 확인시켜 줄 것이다. 일제는『國史地理』교과서를 기존의 딱딱한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와 경체로 바꾸어 아동에게 친밀감을 주었다. 이는 당시 역사교육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풍의 역사교과서인『國史地理』를 그대로 수용하여 편찬한『新しい歴史教科書』의 문체와 비교 연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이다. 본 연구 결과는 일제강점기『國史地理』교과서 연구의 하나의 모델이 되어 식민지교육 연구자들에게 기초 자료로 제공될 것이다. 본 연구가 식민지 교과서 연구를 하는데 후학들의 연구에 디딤돌이 되어 학생들이 일제강점의 실상을 피상적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인식시켜 현재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시켜 나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1)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4년제 초등학교에서 사용된 조선총독부 편찬 교과서 2권을 중점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장차 연구의 범위를 확대하여 6년제 초등학교와 4년제 초등학교 교과서의 차이를 비교 연구하여 식민지 교과서 비교 연구에 그게 기여할 것이다. (2) 본 연구의 성과는 연구자들이 보다 쉽게 자료에 접근 할 수 있도록 기초 자료로 제공할 것이다. 식민지 교과서연구의 주도권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데 본 연구가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3) 일제강점기의 1차 자료는 대부분 일본어로 기술되어 있어 일본어가 서투른 연구자에게는 접근이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연구 성과의 발표와 게재 논문을 한글로 작성하여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해당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학제간의 활발한 연구가 활성화 대기를 기대하고 다른 분야에도 일조 할 수 있을 것이다. (4) 본 연구의 성과를 학부 수업에서 활용하여 근현대 역사에 무관심한 학생들에게 삽화나 사진을 인용하여 일제의 식민지 역사를 올바로 이해시키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요약
본 연구는『國史地理 上,下卷』(1938)의 교과서 내용을 분석하여 일제가 조선의 아동을 어떻게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만들려고 했는지 밝히는데 있다. 힘의 논리에 의해서 역사를 조정한 대표적인 경우가 일제의 역사왜곡이다. 잘못된 역사는 그대로 국민에게 전달되어 올바른 판단 ...
본 연구는『國史地理 上,下卷』(1938)의 교과서 내용을 분석하여 일제가 조선의 아동을 어떻게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만들려고 했는지 밝히는데 있다. 힘의 논리에 의해서 역사를 조정한 대표적인 경우가 일제의 역사왜곡이다. 잘못된 역사는 그대로 국민에게 전달되어 올바른 판단에 역기능으로 작용하게 한다. 아직도 한일간 역사인식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일본 우익들의 입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금이야말로 21세기의 脫亞論을’ 이라는 구호에서 130년전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탈아론>이 재등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國史地理 上卷』(1938)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병사를 보냈습니다.’라는 지도의 표제로 알 수 있듯이 ‘出兵’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패전 이후에도 ‘侵入’을 ‘出兵’으로 표기한 교과서는 다름 아닌 중학교 우익 교과서인『新しい歴史教科書』(2002)이다. 또한『國史地理 上卷』의 국명과 지명은 과거의 국명과 지명이 아니고 현재의 국명인 ‘滿洲’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新しい歴史教科書』에서는 과거의 국명인 ‘明’으로 표기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차이는『國史地理』 교과서가 從(시간)과 橫(공간)을 통합하려는 목적이었기에 시간(역사)은 과거이지만 공간(지리)은 현재로 표기하였던 것이다. 즉 시선은 ‘明’이 아니라 현재의 ‘滿洲’로 고정시키려는 일제의 의도라 할 수 있다.『國史地理』가 마치 국사독본처럼 국어교과서의 지문 형태를 모방한 이야기풍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와 같이 조선총독부에서 4년제 초등학교 조선아동에게 가르쳤던 이야기풍의 역사교과서인『國史地理』를 그대로 수용하여 편찬한 교과서가 놀랍게도 대표적인 우익 중학교 교과서인『新しい歴史教科書』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6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문제가 되는 역사교과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일제강점기 교과서 연구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일제는 4년제 초등학교에서 국사와 지리과목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중일전쟁(1937)이 발발하자 조선의 아동을 미래의 전쟁 자원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4년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황국신민으로서의 정신적인 무장이 필요했다. 1년과정(4학년)만으로 국사와 지리를 다 배울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아래, 국사와 지리과목을 통합한『國史地理』를 편찬하여 4학년에서 1년 동안 가르치게 하였다. 편찬 형식은 국사 70%, 지리 30%의 비율로 구성하였다. 본문의 문체는 언문일체의 숭경체로 설명은 구체적으로 하였다. 삽화나 사진, 지도에 의한 직관적 경향에 중점을 두었다. 縱의 계열인 국가의 역사적 발전과 橫의 계열인 지리적인 현상에 의해서 만들어 내는 빛나는 황국 일본의 웅자함을 파악하게 하게 하고자 지리에서 역사를 회고하고 역사에서 현재의 지리적 사정을 파악하게 했다. 『國史地理 上卷』제1과「大日本帝國」에서는 국사의 어려운 인명이나 사건 등을 피하고 쉽게 천황, 황국신민 등을 키워드로 바로 현재의 대일본제국의 넓은 영토를 가르치게 하고 있다. 22과「大み代のさかえ(천황통치시대의 번영)(三)」에서는 만주국 탄생의 역사적인 기술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중일전쟁이 시작된 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황에게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강건한 신체의 황국신민이 되어서 천황 곁에서 죽을 수만 있다면 행복하다는『만요슈(萬葉集)』의 가사처럼 굳은 각오를 다짐하면서 마무리하고 있다. 『國史地理 下卷』의 부록으로 수록된 지도에서 國防圖를 실어서 육해공군의 배치와 수역을 지도위에서 자세히 가르치고 있다. 사단, 사단사령부, 軍港, 要港, 비행단 사령부, 제1 해군구역, 제2 해군구역, 제3 해군구역으로 지명과 함께 알 수 있게 했다. 이와 같은 국방지도는 군대에서나 사용한 지도를 조선의 초등학교 4학년 아동이 배운『國史地理』교과서에 들어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제가 자국의 일본아동보다 더욱 철저하게 황민화 교육을 실시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와 같이 일제가 조선아동을 황국신민으로 만들고자 했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고 사명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일제는 강점초기부터 ‘시세와 민도’라는 명분을 내세워 조선아동이 다니는 보통학교의 수업을 3,4년 단축하여 교육시켰다. 3.1운동에 따른 후속조치로 일제는 기존의 보통학교 4년제를 명목상으로 2년 연장하여 일본아동과 동일한 6년제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실제적으로 ...
일제는 강점초기부터 ‘시세와 민도’라는 명분을 내세워 조선아동이 다니는 보통학교의 수업을 3,4년 단축하여 교육시켰다. 3.1운동에 따른 후속조치로 일제는 기존의 보통학교 4년제를 명목상으로 2년 연장하여 일본아동과 동일한 6년제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실제적으로는 새로 인가한 학교의 대부분은 4년제 학교였다. 또 일제는 소위 ‘내지연장주의’를 내세우며 보통학교 증설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예산 핑계로 계획 달성이 어렵게 되자, 1920년 초부터 새로 신설된 학교는 6년제 보통학교가 아닌 4년제 보통학교만 인가되었다. 4년제 보통학교 교과서는 편찬하지 않고 기존의 6년제 보통학교의 4학년까지 과정을 그대로 채용하여 사용했다. 일제의 15년 전쟁의 시작인 1931년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일제는 비록 4년으로 2년이 단축되었지만 아동들에게 동화교육을 완성시키기 위해 4년제 보통학교 교과서를 최초로 편찬하였다. 1933년 수신서, 국어독본, 조선어독본 등의 주요 과목 위주로 편찬하였다. 그러나 1,2학년용 4년제 교과서는 편찬하지 않고 기존의 6년제 보통학교 교과서 1,2학년용을 그대로 사용하고 3, 4학년용만 새롭게 편찬하여 사용하였다. 또다시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이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리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일제는 조선아동을 전쟁의 협력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역사와 지리과목을 4년제 보통학교에서도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왜냐하면 역사와 지리교과서는 6년제 보통학교의 5, 6학년과정에서만 배우기 때문에 4년제 보통학교에서는 역사와 지리교과서를 편찬할 필요가 없었고 교과과목에도 편재하지 않았다. 1년 동안에 두 과목을 교수하기 위해 일제는 역사와 지리과목을 한 과목으로 통합하여 역사지리 교과서를 4학년 1, 2학기에 가르쳤다. 이처럼 역사과목과 지리과목을 통합하여 역사지리 교과서를 편찬한 경우는 당시 조선에서만 유일하게 실시된 경우의 하나였다. 일제가 농어촌 학생들이 대부분인 4년제 학교까지 큰 관심을 둔 데에는 현재의 중일전쟁의 상황을 염두하고 철저히 황국신민화의 필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4년제 아동에게 가르쳤던『國史地理』는 단순히 역사와 지리를 통합한 과목이 아니다.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지리를 복합적으로 교육시켜 장차 조선아동을 忠良한 皇國臣民으로 育成하기위한 敎科書라고 할 수 있다.
영문
Since the beginning of the monopoly, the Japanese embarked on the name of 'cadence and degree of civilization' to train elementary school classes that Korean children attend for 3 or 4 years and education. 3.1 The follow-up measures by the exercise, t ...
Since the beginning of the monopoly, the Japanese embarked on the name of 'cadence and degree of civilization' to train elementary school classes that Korean children attend for 3 or 4 years and education. 3.1 The follow-up measures by the exercise, the Emperor decided to extend the elementary school four-year system of persistent nominally for two years and to implement the same six-year system as Japanese children. fact, most of the newly approved schools were four - year schools. In addition, the Japanese Embassy raised the so - called 'inland extensionism' and promoted the primary school multiplication design. However, as the Japanese empire can not secure yuan counseling, it will be difficult to achieve the plan, the newly established school from the beginning of 1920 was approved only for the 4 - year regular school instead of the 6 - year regular school. When the Manchurian Incident in 1931, the beginning of the war of 15 years, began to emerge, the Japanese emperor first compiled the four-year primary school textbook in order to complete the assimilation education for the Korean children. However, do not compile the 4 year 1st and 2nd year school books, compiled them for the 3rd and 4th year only, using the 6 year old primary school textbooks for the 1st and 2nd grade years without compilation used. When the war between the middle and the Sri Lanka erupted again in 1937, Korea became a militarily important geographical position in the bridgehead of the continental advancement. The Japanese emperor demanded the necessity to teach the history and geography subjects even at the 4th grade primary school in order to bring the Korean children to the cooperators of the war. Because it is not necessary to compile history and geographical textbook at the elementary school at the 4 year system by learning history and geography text books at the 5th and 6th grade courses of the 6th grade elementary school, It was not. In order to teach two subjects in one year, the Japanese embassy integrated teaching history and geography subjects into one subject and taught the history book of the history of geography in the 4th grade 1st and 2nd semesters. In this way, when integrating historical subjects and geography subjects, compiling the history textbook of national history, it was one of the cases that was implemented only in those days in Korea. It is probably because the Japanese emperor recognized agriculture and fishing village 's greatest interest in most four - year schools because of the need to thoroughly empower the Empire' s subjectivity, keeping in mind the current situation of the war in China. In the end, "history Geography" taught to four-year school children simply has no subject which integrates history and geography. It can be said that it is a school textbook for nurturing Chosun Children into faithful Empire subjects in future by combining past history and current geography.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본 연구는 조선총독부가 4년제 초등학교의 조선아동에게 국사와 지리과목을 통합하여 초등학교용 사회교과서로 편찬한『國史地理 上卷』과『國史地理 下卷』을 심층 분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일제가 농어촌의 조선아동에게까지 어떻게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만들고자 했는지 그 실제를 고 ...
본 연구는 조선총독부가 4년제 초등학교의 조선아동에게 국사와 지리과목을 통합하여 초등학교용 사회교과서로 편찬한『國史地理 上卷』과『國史地理 下卷』을 심층 분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일제가 농어촌의 조선아동에게까지 어떻게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만들고자 했는지 그 실제를 고찰하였다. 『國史地理』의 편찬 형식은 국사 70%, 지리 30%의 비율로 구성하였다. 본문의 문체는 언문일체의 숭경체로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삽화나 사진, 지도에 의한 직관적 경향에 중점을 두었다. 縱의 계열인 역사적 발전과 橫의 계열인 지리적인 현상을 인식시키고 있다. 그리고 컬러사진과 삽화를 넣어서 아동에게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國史地理 上卷』에서는 국사의 어려운 인명이나 사건 등을 대신하여, 쉽게 천황, 황국신민 등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현재 일제가 식민지로 확보한 넓은 영토를 지켜나가라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만주국 탄생의 배경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중일전쟁이 시작된 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황에게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강건한 신체의 황국신민이 되어서 천황 곁에서 죽을 수만 있다면 행복하다는 만요슈(萬葉集)』의 가사처럼 굳은 각오를 다짐하면서 마무리하고 있다. 『國史地理 下卷』에서는 주로 근현대사에 집중으로 배치하여 현재의 전쟁상황을 아동들에게 인식시키고 있다. 명치천황과 소화천황의 영토확장을 강조하기위하여 많은 분량을 삽입했다. 생생한 현장감을 조선아동에게 심어주기 위하여 불과 일년전의 중일전쟁 당시 소화천황이 군복을 입고 전투지휘관회의를 주재하는 사진까지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일제는 부록으로 국방지도를 실어서 현재의 육해공군의 배치와 수역을 가르치고 있다. 사단, 사단사령부, 軍港, 要港, 비행단사령부, 제1해군구역, 제2해군구역, 제3해군구역으로 구체적인 위치를 숙지하게 하여 일본군대의 용맹함과 자긍심을 불러일으켜서 장차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육성하기 위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군대에서나 사용한 국방지도를 조선의 농어촌 초등학교 4학년 아동이 배운『國史地理』교과서에 삽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제가 자국의 일본아동보다 더욱 철저하게 황민화 교육을 실시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4년제 보통학교에 편찬한 국사지리 통합교과서 國史地理의 내용을 고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일제가 조선아동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황민신민 만들기를 했는가를 확인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일제의 우민 ...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4년제 보통학교에 편찬한 국사지리 통합교과서 國史地理의 내용을 고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일제가 조선아동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황민신민 만들기를 했는가를 확인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일제의 우민화와 동화교육의 실상을 모르는 세대들에게 일제의 실체를 인식시키는데 필요한 교육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작금에 일본에서 역사를 왜곡하여 주장하는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론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될 것이다. (1) 이번 연구에서는 4년제 보통학교에서 사용한 조선총독부 편찬 國史地理를 중심으로 하였다. 그러나 장차 연구의 범위를 확대하여 6년제 보통학교용 국사교과서와 지리교과서, 일본에서 일본아동이 심상소학교에서 배우는 문부성편찬 국사교과서와 비교 연구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조선아동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일제가 동화교육을 실시했는가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2) 본 연구의 성과는 강점기 연구자들에게 자료를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초 자료로 제공할 것이다. 또한 <일제강점기 교과서 연구> 의 중추적인 역할로서 피식민자인 한국이 연구의 중심이 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3) 본 연구의 성과는 텍스트가 대부분 일본어로 기술되어 있어 연구의 접근이 어려웠던 각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해당 자료를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여, 학제간의 연구 활동이 왕성하게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 본 연구의 성과는 학부 수업 현장에서 활용하여 일제의 동화와 차별교육의 실제를 올바로 이해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일제가 조선인을 차별하고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하고자 했는가를 인식시킬 것이다. 또한 후속세대 연구자를 양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교과서 식민지 교육에 대한 연구가 주로 포괄적인 정책중심의 연구였다면 본 연구와 같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식민지관계의 많은 자료가 조선총독부와 당시 교육관계 자료와 신문 잡지들 대부분이 일본어로 되어있기에 한국학을 연구하는데 용이하지 못했다. 장차 한글로 쓴 논문이나 교과서의 번역을 통하여 많은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일제강점기의 1차 자료 텍스트인 國史地理 교과서를 통해서 어떻게 조선아동을 일본인으로 동화시켜 황국신민으로 육성했는지의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였다. 작금의 한일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는 식민지지배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사과는 없고 오히려 식민지지배의 정당화와 근대화에 일조했다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왜곡된 주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본 연구가 미약하나마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특히 최근 대학이 취업교육으로 전락하면서 일제의 식민지교육의 실상이나 현재의 한일관계 관련 시사에 무관심한 학생들이 점차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을 통해서『國史地理』교과서를 보여주고 삽화의 내용을 설명해주면서 의미를 스스로 깨닫게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일제의 황국신민 만들기의 실체를 이해시키는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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