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기 건주위 사행로의 재구성
-<건주기정도기>를 중심으로 The reconstruction of Foreign Envoys‘ road to Jianzhou-wei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from the Anaysis of Jianzhougichengtuji
이 연구의 목적은 임진왜란기에 조선과 건주위를 왕래했던 신충일의 사행로를 분석하여 양자의 교통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성격을 밝히기 위해 신충일이 사행 이후 작성한 建州紀程圖記를 면밀히 분석하여 사행로를 복원하고, 이를 지도화할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조 ...
이 연구의 목적은 임진왜란기에 조선과 건주위를 왕래했던 신충일의 사행로를 분석하여 양자의 교통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성격을 밝히기 위해 신충일이 사행 이후 작성한 建州紀程圖記를 면밀히 분석하여 사행로를 복원하고, 이를 지도화할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조선과 건주위의 교통로를 복원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고구려의 교통로와 연계되는 점을 ‘시간적’·‘공간적’으로 종합하여 파악하고자 한다. 건주위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제 여진 세력 보다 명과 조선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았다. 명과 조선은 이들에 대한 정보수집에 관심을 기울여 상당한 기록을 남겼다. 이를 기반으로 건주위의 정치체제, 사회구조, 풍속 등에 대한 연구 성과는 상당히 많다. 반면 이들의 거주 지역 혹은 어떠한 교통로를 이용하여 조선에 왕래하였는지에 대한 규명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현재의 연구자들도 건주위의 정확한 위치 등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선과 건주위의 교통로에 정확한 기준점이 되는 자료가 있다. 바로 임진왜란기인 1595년 12월부터 1596년 1월까지 신충일이 퍼알라(佛阿拉 ; Fe Ala)에 방문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한 건주기정도기이다. 이것은 누르하치의 興起 시기에 대한 외부인의 기록이기에 많은 학자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신충일의 사행로에 대한 분석은 그리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약 200년 동안 건주위의 중심지가 환인, 신빈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만포에서 신빈까지의 정확한 교통로를 찾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교통로를 기준으로 이전의 기록들을 재구성하여 조선의 만포, 초산, 벽동 등 압록강 중류에서 건주위로 가는 길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세종, 세조, 성종대의 총 4차에 걸친 건주위 정벌 경로와 심하 전투, 및 고려말 이성계의 동녕위 정벌 루트 등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압록강 이북 지역에 대한 공간의 재구성이 가능하다. 또한, 고구려가 427년에 평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지금의 환인과 집안 지역이 그 중심지였다. 환인, 집안 도읍기의 고구려 방어체제와 조선·건주위의 교통로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건주기정도기에서도 이러한 점이 일부 확인된다. 이처럼 건주기정도기를 통해 조선과 건주위의 교통로를 파악하는 것은 비단 조선시대에 국한되는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조선시대사의 외연을 시간적·공간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신청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하여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누르하치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 교통로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조선시대 대외관계사에서 시행되지 않은 방법으로, 건주기정도기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 이외의 공간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대효과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관련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첫째, 조선시대 공간에 대한 연구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다. 건주위를 비롯한 여진인의 활동지역은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곳이 고조선과 고구려, 발 ...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관련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첫째, 조선시대 공간에 대한 연구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다. 건주위를 비롯한 여진인의 활동지역은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곳이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주무대이고,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거점 지역이었음을 상기하면 우리 역사와의 친연성은 더욱 긴밀하다. 지금까지의 조선시대 연구에서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조선의 국경선으로 인식하여 그 이북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비록 이곳은 조선의 영토도 아니고 조선인이 거주하지 않았지만, 우리 역사와의 관련성을 고려하면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조선과 건주위의 교통로를 파악하는 것은 단순히 여진 지역에 대한 역사·지리를 파악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및 한국사의 공간에 대한 연구로 외연을 확대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이 시기 조선과 건주위의 정확한 교통로를 파악하는 것은 그 이전의 교통로에 대한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다. 둘째, 조선시대와 한국 고대사를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건주기정도기는 사료적 특수성으로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고대사에서도 이용되고 있다. 특히, 현재 고구려 초기의 중심지인 집안과 환인을 중심으로 한 교통로인 南道와 北道에 대해 여러 학설이 있다. 이것은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논쟁중이다. 만일 본 연구를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조선과 건주위가 이용했던 교통로와 고구려 초기의 교통로가 어떠한 유사성과 차이점을 가지는 지에 대해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여러 학설로 나누어진 고구려 초기의 교통로를 밝히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즉, 본 연구에서 확인한 내용을 조선뿐만 아니라 고구려 연구자까지 통시대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요약
본 연구의 내용을 크게 두 가지로 설정하였다. 먼저, 건주기정도기가 작성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산군 이후부터 간헐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조선과 건주위의 관계는 누르하치의 등장으로 달라졌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원병을 보내겠다고 하 ...
본 연구의 내용을 크게 두 가지로 설정하였다. 먼저, 건주기정도기가 작성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산군 이후부터 간헐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조선과 건주위의 관계는 누르하치의 등장으로 달라졌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원병을 보내겠다고 하였고, 1595년(선조 28) 4월과 7월에도 조선인을 쇄환한다며 통교하고자 했지만 조선은 모두 거절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위원 채삼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신충일이 건주위에 파견된 것이다. 조선은 임진왜란 중에도 북방의 누르하치에게 신경 쓸 수밖에 없었으므로, 새로운 정보를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선행 연구에서 주목하지 않았지만, 조선은 주변국/세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책으로 간행하던 전통이 있었다. 바로 신숙주의 海東諸國記와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童淸禮의 西北諸蕃記가 바로 그것이다. 신충일이 건주기정도기를 자세하게 작성한 배경에 이러한 점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즉, 건주기정도기는 조선의 대건주위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작성되었음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신충일이 왕래한 교통로를 추적하여 재구성하고 우리 역사와의 관계성을 밝힐 것이다. 신충일은 1596년(선조 29) 12월 22일 만포에서 압록강을 건너 28일 퍼알라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건주기정도기에 기재하였다. 여기에 기재된 지명을 현재의 위치와 비교하여 분석한 후, 만주국에서 발행한 1:100,000 지도와 현지의 중국지도, 구글지도 등을 참고하여 하루 분량씩 지도에 표기하여 신충일의 사행로를 복원하겠다. 또한, 사행로에 위치한 고구려의 유적을 지도에 표기하겠다. 이 작업을 통해 사행로 뿐만 아니라 그 주변 공간에서 보이는 지명 및 우리 역사와의 관련성, 건주위의 세력 분포 등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누르하치의 관계 및 조선의 대외교통로를 연구하는 데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이 연구는 임진왜란기에 조선과 건주여진을 왕래했던 신충일의 교통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성격을 밝히기 위해 申忠一이 퍼알라(佛阿拉 ; Fe Ala) 성에 다녀온 후 작성한 建州紀程圖記를 면밀히 분석하여 왕래로를 복원하고, 이를 지도화할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교통로 ...
이 연구는 임진왜란기에 조선과 건주여진을 왕래했던 신충일의 교통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성격을 밝히기 위해 申忠一이 퍼알라(佛阿拉 ; Fe Ala) 성에 다녀온 후 작성한 建州紀程圖記를 면밀히 분석하여 왕래로를 복원하고, 이를 지도화할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교통로뿐만 아니라 그 주변 공간에서 보이는 지명 및 우리 역사와의 관련성, 건주여진의 세력 분포 등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고구려의 교통로와 연계되는 점을 ‘시간적’·‘공간적’으로 종합하여 파악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누르하치의 관계 및 조선의 대외교통로를 연구하는 데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영문
The aim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raveling routes taken by Shin Chung il(申忠一) to travel between Joseon(朝鮮) and JianzhouJurchen(建州女眞) during the time of Imjinwaeran(壬辰倭亂). To do so, we closely examined Jianzhougichengtuji(建州紀程圖記) that Shin Chung ...
The aim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raveling routes taken by Shin Chung il(申忠一) to travel between Joseon(朝鮮) and JianzhouJurchen(建州女眞) during the time of Imjinwaeran(壬辰倭亂). To do so, we closely examined Jianzhougichengtuji(建州紀程圖記) that Shin Chung il wrote after his visit to FeAla(佛阿拉), to reconstruct his traveling route and plot the route on the map. This would help to identify not only his traveling route but also the name of the surrounding areas, their relationship to Korean history, as well as how political influence of JianzhouJurchen was dispersed in the area. Further, we attempt to elucidate how the route is linked to transport routes of Goguryeo(高句麗) both in temporal and spatial aspects. This effort is expected to provide guidance to understan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Nurhachi(努爾哈赤) during the time of Imjinwaeran and to studying transport routes of Joseon beyond its border.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이 연구는 임진왜란기에 조선과 건주여진을 왕래했던 신충일의 교통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성격을 밝히기 위해 申忠一이 퍼알라(佛阿拉 ; Fe Ala) 성에 다녀온 후 작성한 建州紀程圖記를 면밀히 분석하여 왕래로를 복원하고, 이를 지도화할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교통로 ...
이 연구는 임진왜란기에 조선과 건주여진을 왕래했던 신충일의 교통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성격을 밝히기 위해 申忠一이 퍼알라(佛阿拉 ; Fe Ala) 성에 다녀온 후 작성한 建州紀程圖記를 면밀히 분석하여 왕래로를 복원하고, 이를 지도화할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교통로뿐만 아니라 그 주변 공간에서 보이는 지명 및 우리 역사와의 관련성, 건주여진의 세력 분포 등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고구려의 교통로와 연계되는 점을 ‘시간적’·‘공간적’으로 종합하여 파악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누르하치의 관계 및 조선의 대외교통로를 연구하는 데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신충일이 왕래한 도를 밝히는 것은 단순히 임진왜란 당시의 교통로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약 200년 동안 건주여진의 중심지가 환인, 신빈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만포에서 신빈까지의 정확한 교통로를 찾는다는 의미가 있다. 신충일이 왕래한 도로 ...
신충일이 왕래한 도를 밝히는 것은 단순히 임진왜란 당시의 교통로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약 200년 동안 건주여진의 중심지가 환인, 신빈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만포에서 신빈까지의 정확한 교통로를 찾는다는 의미가 있다. 신충일이 왕래한 도로를 기준으로 이전의 기록들을 재구성하여 조선의 만포, 초산, 벽동 등 압록강 중류에서 건주여진으로 가는 길을 밝힐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세종, 세조, 성종대의 총 4차에 걸친 건주여진 정벌 경로 등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목할 점은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毋丘儉紀功碑, 망파령관애, 패왕조산성, 전수호산성, 白旗城, 퍼알라성 모두 고구려대에 이용하였던 유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로가 고구려의 교통로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일부 유적은 조선 중기까지 연용되었던 사실도 알 수 있다. 특히, 현재 여러 의견으로 나누어진 4세기 고구려의 남도‧북도를 비롯한 교통로를 밝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 지역에 대한 통시적 연구의 일단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단지 임진왜란 당시의 이동로뿐만 아니라 고구려부터 현재까지 압록강 이북 지역에 대한 공간의 재구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