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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8.15전후 38도선 이북지역 일본인의 귀환 활동과 식민지 기억
Japanese settlers's Repatriation Activities and Colonial Memories in the north of the 38th parallel of the Korean Peninsula before and after 8.15, 1945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6-S1A5A2A01-2016S1A5A2A01023212
선정년도 2016 년
연구기간 3 년 (2016년 11월 01일 ~ 2019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변은진
연구수행기관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1945년 8.15 전후에 38도선 이북지역에서 본국으로 돌아간 일본인 귀환자의 귀환활동과 식민지 경험 및 기억에 대해 실증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오늘날까지 ‘피해자 인식’에 함몰되어 남아있는 그들의 ‘공적 기억’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인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재조명하고 근현대 한일관계를 성찰적으로 검토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 일국사적 역사인식의 한계 극복: 시․공의 단절을 전제로 한 일국사적 역사인식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일제강점기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지배-피지배 관계로 단선화된 일제강점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함으로써 양적․질적으로 풍부하게 역사를 서술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으로 작용한다. • 타자의 시선을 통해 본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지평 확장: 식민지 조선과 관련을 맺고 활동했던 ‘제국’ 일본인의 다양한 모습에 관한 연구는 한국근현대사를 외부에서 내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입지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한국근현대사의 내면을 성찰적으로 재조명함과 동시에 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확장한다는 면에서 본 연구의 학문적 의의가 있다. • 한․일 상호이해와 평화공존의 토대 마련: 한․일 간의 역사분쟁은 정치적․외교적 갈등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역사분쟁은 기본적으로 학문적 역량과도 상응하는 문제이다. 본 연구의 성과는 외교적⋅정책적 대안과 함께 향후 평화공존을 위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학문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될 것이다.
  • 연구요약
  • 1946년 말까지 사실상 억류 상태에 놓였던 38도선 이북지역 거류 일본인의 ‘탈출’ 경험과 그해 2월에 공식 송환선으로 ‘계획 송환’된 38도선 이남지역 거류 일본인의 ‘온화한’ 체험은 질적으로 달랐다. 뿐만 아니라 같은 관료군 내에서도 고급정보를 다루던 상층집단과 그렇지 않았던 하층집단, 공직자나 대자본가와 중소자영업자, 노동자나 농민 등 평범한 일반인은 귀환 시기, 귀환 조건, 귀환 시 재산 반출 정도 등이 달랐다. 또한 이에 따라 패전 후 귀환자들의 일본사회 정착 양상도 다르게 나타났다. 따라서 재조일본인의 귀환 실태를 규명할 때는 먼저 이들의 식민지 체험과 기억 패턴을 규정하는 지역차ㆍ직업차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연구는 일단 그 동안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38도선 이북지역을 대상으로, 지역별․직업별 출신 배경과 경력 등을 고려하면서 세화회 등 단체에 대해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기존 연구에서 본격적으로 분석되지 않은 분야에 우선 주목하면서 단계별(연차별)로 연구를 추진한다. 1년차에는 먼저 38도선 이북지역에서 귀환자단체를 주도했던 주요 간부들의 과거 경력과 활동상의 특성 등을 비교 분석하고[38도선 이북 귀환자단체 간부진의 경력과 활동 비교], 2년차에는 구체적인 귀환활동의 사례를 함흥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귀환활동 사례 연구 - 함흥일본인위원회를 중심으로], 3년차에는 이들의 귀환 경험 속에서 나타난 식민지 기억의 표상을 주로 귀국 후 조직된 귀환자단체 발간 기관지『동화』등을 통해 검토할 것이다[귀환 경험을 통해 본 식민지 기억의 표상].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년차 연구 결과인 [8.15 직후 38도선 이북의 일본인 귀환단체 및 간부진 현황](한일관계사연구 60집 게재)은 1945년 일제패망 직후 38도선 이북지역 재조일본인의 귀환단체와 이를 주도했던 간부진의 전체적인 현황을 정리한 연구이다. 전후 일본사회에서 ‘공적 기억’으로 자리 잡은 피해자 일변도 인식의 배경이 된 38이북 일본인 귀환자들의 ‘고난의 탈출’ 체험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총 68개의 일본인 귀환단체(평안남북도 29개, 함경남북도 27개, 황해・강원도 12개) 현황을 파악하고, 총 286명의 간부진 명단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이 간부들의 일제강점기 경력과 주요 활동분야를 조사하여 이를 기초로 분류해보았다. 그 결과 귀환단체 간부진의 다수는 경제인과 관직 종사자에 집중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과거 ‘식민자 사회’의 상층을 구성했던 집단이 일본인의 귀환활동을 주도했던 것이다. 관리가 중심이 된 초기의 귀환활동이 한계에 봉착하자 점차 교육자 등 민간의 유지들로 간부진이 교체되어갔다. 미군정이 점령한 38이남과 정세가 달랐던 38이북에서는 ‘소련-북조선-일본인’ 3자 간의 상호 소통과 조율이 필요했고, 이러한 측면에서 귀환단체 간부진의 일제강점기 경력은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인 교섭력과 통합력이 중요했다.
    2년차 연구 결과인 [8.15 직후 함흥지역 일본인 귀환단체의 조직과 활동](일본공간 25호 게재)은 8.15 직후 38도선 이북 일본인의 귀환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함흥지역의 귀환단체, 특히 함흥일본인위원회의 조직과 활동을 살펴본 것이다. 함흥에서 처음 조직된 귀환단체인 ‘함흥일본인세화회’는 구성이나 조직 형태면에서 식민지 조선의 사회관계를 그대로 반영하였다. 이러한 ‘국가주의적’ 성격으로는 38도선 이북의 달라진 정세에 대응할 수가 없었기에, 1945년 12월 3일 세화회는 ‘함흥일본인위원회’로 전면 개조되었다. 그리고 일제패망 이전에 조선인과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이소가야 스에지나 마츠무라 기시오 같은 인물이 전면에 나서서 귀환단체를 주도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들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조선 및 소련 측 관계기관과 소통과 협력에 주력하였다. 이를 통해 귀환 전까지 재류일본인과 피난민의 생활난 해결을 위한 각종 구제활동, 집단피난민의 대량 소개(疏開) 과정에서 발생한 ‘부평 문제’ 등의 일정한 해결, ‘북선전재자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집단탈출’ 방식의 귀환 추진 등의 당면과제를 풀어나갔다. 그 결과 공식 인양 발표 전인 1946년 3~6월 사이에 함경남북도의 일본인과 피난민 다수가 귀환할 수 있었다. 이러한 비합법적인 탈출은 조선 및 소련 측 관계당국의 ‘암묵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이 시기 함흥일본인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된 ‘집단탈출’은 사실상 ‘반(半)합법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다. 한편 이들은 산업기반 건설과 재건 없이는 조선인 동지들이 새로운 조국을 안정적이고 총체적으로 건설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일본인 기술자 잔류’ 문제를 각종 지원을 받아내는 협상카드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는 조선인과 일본인 양측에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던 것이다.
    3년차 연구 주제는 '귀환 경험을 통해 본 식민지 기억의 표상'인데, 잡지 󰡔동화󰡕 등을 중심으로 과거 식민지 조선 및 귀환과정과 관련된 경험이나 기억의 단상들을 추출하여, 그 내용들을 양적·질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로 ‘피해자 인식’에 함몰되어 있는 그들의 ‘공적 기억’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연구논문 작성을 위한 자료 조사와 분석을 진행 중이다.
  • 영문
  • [Status and Characteristics of Organization and its executives for Repatriation of the Japanese in the North of the 38th Parallel after 8・15]
    This article is a summary of the current status of the organization and its executives for repatriation of Japanese settlers in the north of the 38th parallel after the collapse of Japan in 1945. This process is summarized, a total of 68 organizations for Repatriation of the Japanese(29 organizations in North and South Pyongan Province, 27 organizations in North and South Hamgyong, 12 organizations in Hwanghae and Gangwon Province) and a total of 286 staff members. And I investigated the career of these executives and their major activities and classified them on the basis of their experiences. As a result, many of these executives were concentrated in the businessmen and the public employees. In other words, it can be seen that the group that formed the upper class of the 'colonial society' in the past led the activities for repatriation of the Japanese. As soon as the early return activities centered on management were hit by the limitations, gradually, the executive staffs were replaced by the community leaders of civil society such as educators. In the north of the 38th parallel, which was very different from that of the south of the 38th parallel occupied by the US Military, it was necessary to communicate and coordinate between Soviet Army - North Korean – Japanese. In this respect, the executives' career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was an important variable. The real bargaining power and solidarity were important.

    [Activities of Organization for Repatriation of the Japanese in Hamheung after 8・15]
    This article is a summary of Organizations for Repatriation of the Japanese in Hamheung, especially Hamheung Japanese Committee, in order to understand the activities for repatriation of Japanese settlers in the north of the 38th parallel after the collapse of Japan in 1945. 'Hamheung Japanese Sewakai', which was organized for the first time in Hamheung, reflected the social relations of the colonial Korea in its composition. This nationalistic nature was unable to correspond to the changing situation in the north of the 38th parallel, and on December 3, 1945, Hamheung Japanese Sewakai was completely renovated into the 'Hamheung Japanese Committee'. In addition, Isogaya-Sueji and Matsumura-Gisio who had formed a friendly relationship with Korean people before the collapse of Japan, made a new moment of Hamheung Japanese Committee activities. Based on mutual trust, they focused on communication and cooperation with related organizations of Joseon and the Soviet Union. Through these efforts, it is possible to solve various problems such as various relief activities for residence of Japanese and refugees before returning to Japan, efforts to solve problems of Grouop refugees such as 'bupyeong problem', and the return of ‘Group escape’ method. As a result, a large number of Japanese and refugees from Hamkyung Province could return to Japan between March and June 1946, before the announcement of official Repatriation. This illegal escape was possible because of the 'implicit' and 'active' support of the Joseon and Soviet authorities. Therefore, the 'Group escape' by the Hamheung Japanese Committee at this time was semi-legal in fact. On the other hand, they have used the problem of ‘remaining of Japanese engineers’ as a negotiation card to receive various supports under the judgment that it is impossible for Korean comrades to construct a new Joseon without industrial-based reconstruction. This is a win-win for both Koreans and Japanes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1945년 8.15 전후에 38도선 이북지역에서 본국으로 돌아간 일본인 귀환자의 귀환활동과 식민지 경험 및 기억에 대해 실증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오늘날까지 ‘피해자 인식’에 함몰되어 남아있는 그들의 ‘공적 기억’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인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재조명하고 근현대 한일관계를 성찰적으로 검토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1년차에는 38도선 이북지역에서 세화회 등 귀환자단체를 주도했던 주요 간부들의 과거 경력과 활동상의 특성을 비교 분석하고, 2년차에는 구체적인 귀환활동의 사례를 함흥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3년차에는 이들의 귀환 경험 속에서 나타난 식민지 기억의 표상을 주로 귀국 후 조직된 귀환자단체의 기관지 󰡔동화󰡕 등을 통해 분석하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결과의 학문적·사회적 기여도

    ▶ 일국사적 역사인식의 한계 극복
    시․공의 단절을 전제로 한 일국사적 역사인식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일제강점기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것이다. 또한 조선을 지배한 실체적 집단인 재조일본인을 귀환 전부터 후까지 폭넓게 추적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긴 호흡 속에서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향후 타이완⋅만주국 등 타 지역 귀환 일본인과 비교한다면, ‘식민지 조선’이라는 위치와 본질을 또 다른 기준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지배-피지배 관계로 단선화된 일제강점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하고 한-일 양 민족이 복잡다단하게 얽히며 빚어낸 다양한 식민지의 사회상을 복원함으로써 양적․질적으로 보다 풍부하게 역사를 서술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다.

    ▶ 타자의 시선을 통해 본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지평 확장
    본 연구는 타자인 일본인의 시선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를 새롭게 구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식민지 조선과 관련을 맺고 활동했던 ‘제국’ 일본인의 다양한 모습에 관한 연구는 한국근현대사를 외부에서 내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입지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한국근현대사의 내면을 성찰적으로 재조명함과 동시에 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확장한다는 면에서 본 연구의 학문적 의의가 있다.

    ▶ 한․일 상호이해와 평화공존의 토대 마련
    한․일 간의 역사분쟁은 정치적․외교적 갈등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응방안 역시 직접적⋅단기적인 정책 수립의 관점에서 모색되어온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사분쟁은 기본적으로 학문적 역량과 상응하는 문제이다. 본 연구의 성과는 외교적⋅정책적 대안과 함께 향후 평화공존을 위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학문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될 것이다. 아울러 이는 장기적으로 학문적⋅문화적 차원에서 양 국민의 교류 활성화와 우호 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다.

    2) 인력양성 방안 및 교육과의 연계 활용 방안

    -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귀환과 식민지 경험․기억에 관한 연구는 한국근현대사 연구는 물론 지배정책의 비교 연구, 한일관계 관련 연구인력 양성과 전문성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한 본 연구에서는 관련 자료 조사와 엑셀프로그램을 활용한 정보의 집대성, 일본어 자료의 번역과 관련 인물에 대한 인터뷰 조사 등을 병행하기 위해, 일본어 번역․통역 및 엑셀프로그램에 모두 능통한 연구보조원을 활용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후속 연구인력은 근현대 한일관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질 높은 연구 방법과 작업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재조일본인, 귀환, 귀환자단체, 38도선 이북, 세화회, 함흥일본인위원회, 이소가야 스에지, 식민지 기억,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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