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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 건국신화의 주역과 고대서사시
The leading role of Tamla Myth and ancient Epic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우수논문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7S1A5A2A02067981
선정년도 2017 년
연구기간 1 년 (2017년 11월 01일 ~ 2018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허남춘
연구수행기관 제주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창세서사시와 신앙서사시를 다루면서 제주의 원시적 서사시의 다음 순서인 고대 영웅서사시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탐라국 건국신화>를 다루고자 한다. 어쩌면 여러 번 다룬 주제여서 진부하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 해명되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 건국의 주체는 누구이며, 그들은 청동기 혹은 철기문명을 소지하고 있었나. 외부에서 이주한 세력인가, 아니면 원주민이었던가. 그들이 만든 고대국가 ‘탐라국’은 고구려나 신라와 같은 고대국가와 같은 반열인가, 아니면 뒤처진 고대국가였던가. 왜 한국사에서는 탐라사를 다루지 않는가, 이런 문제를 해명하고자 한다.

    제주에도 청동기와 철기문명이 존재하였던 것은 당연하다. 물론 외부에서 들여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고대국가 건국의 주역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들은 땅에서 솟아난 탄생 모티프를 지니고, 하늘에서 하강한 유목 도래인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를 제주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보고자 한다. 그런데 제주에도 신화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인 ‘창세서사시’가 있다. 이 서사시를 가져온 세력과 선주민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명료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탐라국에 대한 기록은 또 어떻게 변화하였던가. 역사 속에 기록되기도 하고, 문집 속에 기록되기도 하다가 후대에는 김종직의 <탁라가>로 남고, 박봉혁의 <朝鮮歌>라는 가사작품으로도 남는다. 조선조는 명료하게 탐라국을 인지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탐라국에 대한 인식이 미미하다. 이런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어 탐라국의 실체를 바로세우고자 한다. 물론 구비전승되는 무속서사시를 적극 활용하여 탐라국 고대서사시를 규명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첫째, 탐라국의 실체를 밝혀 지역의 주체적 인식에 기여한다. 사실 한국사 속에 탐라국 인식이 미미하다. 또한 그 출현시기도 고대국가보다 뒤진 3-4세기로 보고 있다. 구비전승을 통해 보면 그 주체는 육지와는 변별되는 존재로서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대단한 해양문화를 구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측면을 명료히 역사교과서에 담기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역사 쪽에서 못한 일을 문학 쪽에서 감당하고자 한다.

    둘째, 지방화시대에 맞춰 제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밝히는 데 일정 정도 기여하고자 한다. 대륙문화를 받아들인 측면도 있지만 해양문화를 받아들여 독자화한 측면을 주목하고, 특히 ‘땅에서 솟아난 영웅의 탄생’ 모티프가 갖는 의의를 명료히 하고자 한다. 이 작업은 신화의 가장 최초의 모습을 복원하는 작업이면서 원시적 세계관을 규명하는 업적이 될 것이다.

    셋째, 창세서사시의 제주적 독자성을 밝혀 창세서사시의 지형도를 새롭게 구축하는 일이다. 한국의 신화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다소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데 그것은 제주를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주의 신화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의 문제를 뛰어넘고, 제주의 창세신화에서부터 땅에서 솟아난 신화소를 세상에 알려, 제주가 세계 신화의 수도가 되도록 하는데 앞장서야 하고, 이 논문은 그 출발점이다.
  • 연구요약
  • 고대 건국서사시를 가진 집단의 등장은 창세서사시를 가진 집단의 퇴진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보면 기존의 종교 집단이 밀려나고, 새로운 고대국가 지배자가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집단은 창세서사시를 신봉하던 집단이었는데, 새로운 정치 집단은 기존 창세서사시를 배척하거나 탄압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건국신화를 만들어 자신의 신성성을 구축하였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건국 주역은 하늘에서 내려온 집단과는 구별되는 ‘땅에서 솟아난 집단’임을 표방하는 토착 세력이고, 땅에서 솟아난 신화는 탐라국의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측면을 의미한다.

    제주에는 수렵민과 관련된 서사시가 남아 있어 오래 된 신앙서사시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농경을 위주로 하는 이주민의 등장을 보여주는 서사시도 많다. 그러니 수렵에서 농경으로의 진전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수렵민과 농경민의 갈등과 화해는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가 된다. 갈등 혹은 화해의 내용이 당신본풀이에 풍부하게 전승되고 있다. 그러니 수렵을 위주로 하는 토착집단에 이주민이 들어와 합치고 고대국가를 열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으되, 그 주도권은 토착세력이 지니고 있었다고 보면 될 것이고, 이 이주민 세력에 의해 ‘천지왕본풀이’ 같은 창세서사시가 뒤늦게 정착하게 된 것으로 보려 한다.

    기록에 의존하여 건국신화를 밝히는 일이 제주에서는 어떤가. 한국의 고대 건국신화는 다양한 문헌을 활용하면서, 역사 고고학의 연구 성과를 보완하면서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그러나 제주의 경우 기록이 빈약한 대신 구비전승이 풍부하다. 그래서 탐라국 건국신화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여타의 구비전승을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땅에서 솟아난 모티프’가 ‘하늘에서 하강한 모티프’로 바뀌는 과정을 주목하면서 기록의 변모양상도 함께 고찰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 서

    제주의 옛 이름은 탐라다. 고대국가 탐라국이 천년 지탱하다가 망하고, 12세기에 군현으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13세기엔 탐라란 이름도 잃고 제주현이 되었다. ‘바다 건너 땅’이라는 타자의 이름이다. 지금도 ‘한국사’ 속에 탐라국은 없다. 문화재청은 고대국가의 중심지였던 신라, 가야, 백제의 문화권 조사를 실시해 그 고고학적 발굴을 마쳤는데 탐라는 아직도 계획조차 없다. 이 모두 우리의 과실이다.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남에게도 무시당하고 있다.
    탐라국 역사의 망각과 민족국가의 횡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록과 고고학 자료에 구비전승 자료를 덧보태 탐라국의 실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아직도 역사 고고학계는 탐라전기(AD. 200-500)를 위계화 초기사회로 보고 탐라후기를 국주지배 사회로 본다. 최근 AD 1세기-200년을 수장층의 등장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아직도 탐라국 건국시기에 대해 주저한다. 국주지배 사회에 가서야 비로소 고대국가 ‘탐라국’이 등장한다고 하는 사학계의 주장이다. 고질적인 사학계의 실증주의 폐단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기억은 석비(石碑)와 구비(口碑)로 이루어져 있다. 돌에 새기다 종이에 기록하는 것이 역사 추정의 근거가 되고 난 이후 구비는 그 신뢰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그러나 기록이 결핍한 탐라의 역사는 구비로 접근해야 하고 사제집단에 의해 신성하게 관리되어 온 구비전승의 신뢰성을 인정해야 옳다. ‘탐라’를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고대국가와 대등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탐라국 건국신화>를 보면 한반도의 건국신화와 유사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선주민과 이주민 남녀가 결합하여 시조가 되었고, 오곡종자 등 농사를 지으며 고대국가의 기반을 만들었던 점은 고구려계 신화와 비슷하고, 주인공 혹은 배우자가 바다를 건너 배를 타고 표착하는 점은 신라와 가야의 신화와 비슷하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 건국신화 대부분의 주인공은 하늘에서 하강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탐라건국신화의 주인공은 땅에서 솟아난다. 하늘에서 왔다는 것은 하늘의 권위를 빌어 땅의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건국신화의 보편적 문맥이다. 그런데 땅에서 솟아났다는 것은 한반도의 지배층과는 다른 독자적인 집단이 탐라국을 건국하였다는 의미다. 땅에서 솟아난 내력은 기록된 건국신화에는 유일하지만, 제주의 구비전승 속에서는 허다하게 발견된다. 땅에서 솟아난 의미는 이 구비전승을 살펴야 밝혀진다. 이 구비전승이 바로 당신 본풀이다. 이들이 지닌 권위는 하늘을 근간으로 하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본풀이를 살피면 이들의 권위가 해상능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탐라국 건국 집단의 대단한 해상능력과 탐라국의 위엄을 찾아 밝혀야 한다.
    본풀이는 신들의 서사를 갖추면서 노래불리는 것이기에 서사시라 한다. 고대국가 건국 이전의 것을 원시서사시라 하고, 고대국가 건국 시기의 영웅들의 서사를 고대서사시라 한다. 원시서사시에는 신앙서사시와 창세서사시가 있는데 수렵과 연관된 신을 섬기는 신앙이 구석기에서 신석기시대까지 이어지고, 원시시대에서 고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창세서사시가 나타났다. 그 뒤 고대 영웅서사시가 나타나는데 여성영웅서사시가 먼저 있었고 나중에 남성영웅서사시가 생겨났다. 본고는 원시서사시에서 고대서사시를 두루 살피면서 고대국가 건국서사시를 언급하고 건국서사시에서 건국신화가 정착되는 과정도 살피고자 한다. 건국서사시의 발원이라 했던 <송당계 당본풀이> 이외에 <서귀본향당본풀이>를 비롯한 <한라산계 당본풀이>를 덧보태 근원을 보완하고자 한다. 창세서사시가 육지에서 온 것이라 했는데 탐라의 원형질을 제시하고, 신앙서사시와 창세서사시가 한 묶음이었던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탐라국 역사는 구비전승을 통해 더욱 보완하여야 한다.


    2. 창세와 땅에서 솟아난 신

    수렵신을 대상으로 하는 당(堂) 신화로 유명한 것이 제주의 <서귀본향당본풀이>다. 아주 오래 된 인간의 생업 행위가 수렵과 채취였고 그런 흔적을 동굴벽화와 같은 조형물에서 확인할 수 있고 동물 숭배의 신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냥하는 동물은 인간의 먹이가 되어 주기 때문에 소중하고 숭배의 대상이 된다. 사냥하는 행위와 사냥을 관장하는 신에 대한 서사가 가장 오래 된 신앙서사시인데, <서귀본향당본풀이>가 그런 전형적인 예가 된다. 바람웃도란 신은 바람과 사냥과의 관계를 알게 해 주고, 뿡개질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여 사냥하는 태초의 행위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수렵신을 대상으로 하는 신앙서사시 뒤에는 좀더 근원적인 관심사가 반영된 서사시가 나타난다.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사람과 만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사람들과 동식물은 어떻게 어울리며 살았을까 등등의 의문을 담는 서사를 요구했다. 세상이 생겨난 내력, 인류의 기원, 인간 사회 형성 등을 해명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사냥이 잘 되게 하던 주술을 하던 무당이 천지만물의 형성에 관한 의문을 풀어주고 운행에 관여한다고 하면서 권능을 확대해 원시서사시의 새로운 유형이 생겨나는 변화가 세계 어디서나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서사시에 등장하는 문화영웅은 영웅서사시의 주인공으로 이어진다. 창세서사시는 원시에서 고대로의 이행기 서사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동일, 「제주도 본풀이 변이의 문학사적 이해」, 『제주도 신화 본풀이의 위상과 과제』, 실천민속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2015, 3쪽.
    는 견해를 청취하면서 신앙서사시와 창세서사시의 관계, 창세서사시와 영웅서사시의 관계를 우선 살피고자 한다.

    1) 신앙서사시와 창세서사시

    육지의 창세서사시와 제주의 창세서사시가 유사한 점을 들어 이것이 육지에서 제주로 들어오게 되었음은 이미 밝혀진 바이다. 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도서출판 길벗, 1994, 17-20쪽.
    거기에는 ‘천지개벽, 인세차지경쟁, 일월조정’이란 신화소가 공통으로 들어 있음이 주목되었다. 창세의 주체가 거인신(巨人神)에서 천부지모(天父地母)형 인간영웅으로 바뀌는 점도 비슷하다. 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49쪽, 80쪽; 박종성, 『한국 창세서사시 연구』, 태학사, 1999, 339쪽.
    육지에서는 미륵과 석가가 주인공이었는데 천천히 ‘제석본풀이’ 이야기와 섞인다. 제주에서는 대별왕과 소별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 이전에는 ‘거저’ ‘유운거저’ ‘활선생 거저’가 등장한다. 반고씨가 한 손에 해 둘, 한 손에 달 둘을 받아 들어 띄워 낮에는 더워 죽고 밤에는 추워 죽는 상황에서 ‘유운거저’를 불러다 활로 쏘아 하나씩 떨어트렸다고 한다.(김병효, 초감제, 661-665쪽) 반고씨 앞 이마에 눈동자 둘, 뒷 이마에 둘이 되니 한 하늘에 해 둘 달 둘이어서 낮에는 더워 죽고 밤에는 추워 죽게 되자 ‘활 선생 거저님’이 해와 달 하나씩을 떨어트렸다.(강태욱, 초감제, 657-661쪽) 대별왕은 활 선생 거저님을 불러다 백 근 활에 천 근 화살을 써서 두 해와 달을 조정하였다.(이무생, 천지왕본풀이, 236쪽) 반고씨의 앞 이마에 두 눈, 뒷 이마에 두 눈이 있었는데 부딪혀 해 둘 달 둘이 되었다. 낮에는 더워서 밤에는 추워서 살기 힘들게 되었고, 이때 대별왕과 소별왕이 솟아나 대별왕은 뒤 해 하나 소별왕이 뒤 달 하나를 쏘아 새 별을 만들었다.(고창학, 초감제, 655-657쪽)
    해와 달이 둘인 상황에서 ‘거저’라는 거인을 불러 활로 쏘아 하나씩 떨어뜨리는 설정이다. 인세차지경쟁에는 저승차지 대별왕, 이승차지 소별왕이라고 간략히 서술한 것도 있고 꽃피우기 경쟁으로 인세차지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육지 천지개벽과 차별적인 점도 발견된다. 첫째 천상계의 개입이 없고, 둘째 창세의 주인공이 땅에서 솟아난다고 하고, 셋째 남성 거대신의 창세가 실은 여성 거대신인 설문대할망의 후속형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창세의 주인공이 <탐라국 건국신화> 주인공처럼 땅에서 솟아난다고 하고 있다. 반고씨가 솟아난다고 하고 심지어는 고창학본 <초감제>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민속원, 1991, 655-657쪽.
    에서는 대별왕과 소별왕도 ‘솟아난다’고 하고 이어 ‘星主 聖人도 솟아난다’고 한다. 설문대할망과 같은 여성 거대신의 창세가 주류를 차지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무가 본풀이 ‘초감제’에서는 서서히 도수문장 같은 남성 거대신으로 바뀐다.

    설문대할망은 하늘과 땅을 두 개로 쪼개어 놓고, 한 손으로는 하늘을 떠받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짓누르며 힘차게 일어섰다. 그러자 맞붙었던 하늘과 땅 덩어리가 금세 두 쪽으로 벌어지면서 하늘의 머리는 자방위(子方位)로, 땅의 머리는 축방위(丑方位)로 제각기 트였다. 진성기, 󰡔신화와 전설󰡕(증보 제21판), 제주민속연구소, 2005, 28쪽.


    도수문장이  손으로
    하늘을 치받고
    또  손으로 지하를 짓눌러
    하늘 머린
    건술 건방 방으로 도업고
    땅의 머린
    축방으로 욜립네다.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655쪽.


    설문대할망 이야기의 스팩트럼은 매우 넓다. 창세의 이야기에서부터 우스개 이야기까지 신화, 전설, 민담을 두루 포괄하고 있다. 대부분에게 알려진 창세 이야기는 흙을 퍼담아 한라산을 만들고 그 흙을 운반할 때 앞치마가 새서 360여 개의 오름도 함께 만들어졌다는 지형 창조 신화다. 그리고 흔한 것은 설문대할망이 무엇인가를 만들다가 실패한 사연인데 증거물을 동반한 전설이다. 할망이 음부로 고기와 짐승을 사냥했던 이야기는 우스갯소리로 민담에 속한다. 그런데 지형 창조의 이야기보다 더 근원적인 신화가 바로 앞에 제시한 하늘과 땅을 분리시켜 창세한 이야기다. 무속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 대중 속에서 유통되었던 것인데, 후에는 <초감제> 속에 들어가 무속 서사시가 되었다. 설문대할망은 한라산의 산신으로도 그려지고 바닷가 항해를 하던 사람들의 안전을 돕는 해신으로도 그려지고 있다. 창세서사시가 신앙서사시로 확장된 예라 하겠다. 제주에는 신앙서사시가 창세서사시를 함축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 예를 <초감제>와 <서귀본향당본풀이>를 통해 규명하려 한다.

    「베포도업침」
    개벽시 시절, 천과이(天開)는 (子)고 지벽(地闢)에는 축(丑會)야 인이(人開) 인이(寅會) 도업(都業)야, 하늘 머리 려 올 때 상갑년(上甲子年) 갑월 갑일 갑시(甲子時)예 하늘 땅 새(間) 떡징찌 이 나옵데다. (…중략…) 상경 게믄 도업 제일릅긴, 요 하늘엔 하늘로 청이슬 땅으론 흑이슬 중왕 황이슬 려 합수뒐 때 천지인왕 도업으로 제이르자. [樂舞] 인왕도업 제이르니, 하늘에 동으론 청구름 서으로 벡구름 낭그론 적구름 북으론 흑구름 중왕 황구름 뜨고 올 때에 수성게믄 도업 제이르자. 요 하늘엔 천왕은 목을 들러, 지왕은 갤 치와, 인왕 촐릴 칠 때, 갑을동방 늬엄 들러 먼동 금동이 터 올 때 동성게믄 도업으로 제이르자. [樂舞] 동성게믄 도업니, 요하늘엔 헤가 저 나며 벨이 자 나옵데다. (…중략…) 선오성별 도업  때 선오성별 도업으로 제이르자. (…중략…) 낮의 일광 ᄒᆞ나 셍기고 밤의 월광 ᄒᆞ나 셍겨, 낮의 ᄌᆞᆽ아 죽던 벡성 밤의 곳아 죽던 벡성 살기 펜ᄒᆞᆯ 때 월일광(月日光) 도업으로 제이르자.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도서출판 각, 2007, 39〜40쪽.


    1. 상경게문 도업 (천지가 떡징처럼 벌어짐. 삼경에 새날이 열리듯 開門)
    2. 천지인왕 도업 (청이슬, 황이슬, 흑이슬이 合水)
    3. 수성게문 도업 (청, 백, 적, 흑, 황 5색 구름이 떠 옴)
    4. 동성게문 도업 (천왕닭, 지왕닭, 인왕닭이 울어 세상이 밝아짐)
    5. 선오성별 도업 (샛별, 견우성, 직녀성, 노인성, 북두칠성 5성이 생겨남)
    6. 월일광 도업 (해 둘, 달 둘인 변괴를 해결)

    창세는 하늘과 땅이 열린 후 하늘과 땅의 물이 합쳐져 만물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어 닭이 울어 세상이 밝아진다. 다음으로 하늘에 별이 먼저 출현하고 이어 해와 달이 출현하는데, 해 둘 달 둘이 생겨나 문제가 야기되고 대별왕과 소별왕이 이 난국을 해결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천지개벽과 도업을 그리는 데 있어, 육지에는 없고 제주에는 있는 화소가 눈에 띈다. 바로 닭이 울어 세상이 밝아진다는 ‘동성개문’ 화소다.

    천지혼합으로 제일입니다.
    엇떠한 것이 천지혼합입니까.
    하날과 땅이 맛붓튼 것이 혼합이요
    혼합한 후에 개벽이 제일입니다
    엇떠한 것이 개벽이뇨
    하날과 땅이 각각 갈나서 개벽입니다.
    ……
    동방으로는 이염을 드르고
    서방으로는 촐리를 치고
    남북방으로는 나래를 들으고
    천지개벽이 되엿습니다. (박봉춘본, 초감제) 赤松至誠‧秋葉隆, 『朝鮮巫俗の硏究』(上) , 朝鮮總督府, 1937.


    동방으론 머릴들러
    서방으론 촐릴들러
    남방으론 활길들러
    동성게문 욜립네다 (김병효본, 초감제)

    동방으로 머리들어
    서방으로 훌어들어
    남방으로 활길들어
    동서게문 열입니다 (김두원본, 초감제)

    동의 머린 서의 촐리
    서의 먼린 동의 촐리
    천팔복이 건술건방
    제동방이
    수성개문 욜립네다 (고창학본, 초감제)

    동서남북으로 머리와 꼬리와 날개를 형상화하고 닭이 우는 상황을 공통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늘과 땅이 갈라진 후 “동방으로 잇몸을 들어내고, 서방으로 꼬리를 흔들고, 남북방으로 날개를 들어 꼬끼오 닭이 울 때” 천지가 개벽되었다고 한다. 하루의 첫 새벽이기도 하고 태초의 첫 새벽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는 장면은 제주에 유일하다. 우리는 여기서 <서귀본향당본풀이>를 주목하게 된다.

    천앙은 목을 꺾으고 천왕닭은 목을 꺽고
    지앙은 갤 벌기고 지왕닭은 날개를 벌리고
    계명 소리가 나고 鷄鳴(開明) 닭 소리가 나고
    시상이 아집네다 세상이 밝아집니다. (진성기, 서귀본향, 박생옥본) 진성기, 위의 책, 497쪽.


    천왕은 목을 들러 천왕닭은 목을 들어
    지왕은 갤 치와 지왕닭은 날개를 치고
    인왕 촐릴 칠 때 인왕닭은 꼬리를 칠 때
    갑을동방 늬엄들러 먼동 금동이 터올때 甲乙東方 잇몸 들어 먼동이 트고 밝아올 때
    동성게문이 도업으로 제이르자 東星開門 도업으로 제이르자. (현용준, 초감제, 안사인본)

    진성기의 ‘서귀본향2’(김흥본)을 보면 서귀본향한집이 한라산에 오다 어둡고 껌껌하니 구상나무 가지를 꺾어 절벽에 끼워두자 “천하 닭이 되어 동성개문(東城開門) 열려 내려서니” 아침이 밝아왔다고 한다. 앞의 東星開門 도업과 한자는 다르지만 동성개문의 사유가 초감제와 당본풀이에 공유되고 있다. <초감제>에서 천지혼합이 되어 있을 때, 하늘과 땅이 떡징처럼 벌어지고 하늘과 땅의 이슬이 합수되어 만물이 생긴다. 이어서 천‧지‧인의 닭이 울어 세상이 밝아졌다는 ‘베포도업침’의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과 <서귀본향>의 세상이 밝아지는 장면이 거의 유사하다. 그러므로 <서귀본향당본풀이> 계열의 신화 속에는 천지개벽의 사유가 남아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허남춘, 『설문대할망과 제주신화』, 민속원, 2017, 316-321쪽.

    애초 수렵과 연관된 신을 섬기는 신앙서사시 속에서 창세서사시가 성장하였던 것인지 아니면 신앙서사시가 다음 시기의 창세서사시의 영향을 받아 변모한 것인지 지금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육지 창세서사시를 받아들인 제주에서 독자적인 제주 창세서사시를 발전시켜 나간 점은 인정된다. 신앙서사시를 받드는 집단과 창세서사시를 받드는 집단을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창세서사시는 외부에서 들여온 것이고 그 주체는 이주민인데, 육지의 이주민과 수렵신을 신봉하는 선주민은 크게 갈등하지 않고 서서히 접점을 마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앙서사시를 받드는 집단과 창세서사시를 받드는 집단이 달랐다는 것은 신앙서사시가 제주 고유의 신화적 요소로 구성됨에 반해, 창세서사시는 육지에서 전해진 신화적 특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창세서사시의 대표인 <천지왕본풀이>는 함경도의 <창세가>와 동질적인 것이었고, <천지왕본풀이>를 비롯한 일반신본풀이 12편 중 8편 정도가 육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두 집단이 크게 갈등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주한 집단이 주도권을 가지면서도, 앞의 집단이 지닌 신앙서사시를 파괴하지 않고 공존시킨 점을 들 수 있다.

    그것은 다음 시기에도 마찬가지다. 원시에서 고대로의 이행기에 나타나는 창세서사시에는 고대 영웅서사시적 면모도 함께 갖추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본격적인 고대국가 <탐라국> 건설을 주도한 집단은 선주민이다. 창세서사시와는 다른 ‘땅에서 솟아난’ 선주민이었다. 이 건국서사시의 주역을 주목하고자 한다.

    2) 창세서사시와 영웅서사시

    제주도의 <초감제>와 <천지왕본풀이>에서 창세의 이야기를 보면 누가 창세를 주재했는지 명확하지 않고, 그저 하늘과 땅이 한 데 합쳐져 있는 천지혼합의 상태였다가 개벽의 때를 만나 하늘과 땅이 시루떡의 층층이 벌어지듯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 천지개벽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모습이다. 그런데 도수문장이 한 손으로 하늘을 들어올리고 한 손으로 땅을 밀어내어 분리가 이루어졌다는 이본을 볼 수도 있다. 창세를 주재한 신이 도수문장과 같은 거구(巨軀)였다고 하는데, 이는 설문대할망이 한 손으로 하늘을 들어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 땅을 밀어내 천지가 분리되었다는 창세신화와 유사하다. 설문대할망이 흙을 퍼담아 한라산과 오름을 만들었다는 지형형성 창세 신화가 제주 전역에 두루 전승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설문대할망의 창세신화가 먼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거대신의 흔적이 사라지고 좀더 합리적인 서술로 바뀌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런 예를 일본의 신화에서도 보게 된다.
    <일본서기>에서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이전은 혼돈의 상태였는데, 그 가운데 맑고 밝은(淸明) 기운은 길게 드리워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重濁) 기운은 침전하여 땅이 되었다고 한다. 신이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하늘과 땅이 분리되었다고 했다. 8세기의 역사책이 하늘과 땅의 분리를 추상화하여 그려내고 있다. 유구의 경우도 그런 변화가 드러나고 있다. ‘아만추’나 ‘아마미쿄’가 양팔로 하늘을 밀어올려 천지가 열렸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데, 제주도처럼 하늘을 들어올린 이야기 뒤에, 하늘로부터 흙을 가져와 섬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덧보태져 있다. 그런데 거대신의 흔적은 사라지고 변모하여, 음양과 청탁의 구분 및 분리에 의해 천지가 생성되었다고 했다. 󰡔중산세감󰡕,1650 ; 󰡔蔡鐸本 中山世譜󰡕, 1701.


    무릇 만물이 생겨나기 전 태초를 태극시라 하는데, 천지혼합 하여 음양과 청탁이 나누어지지 않았었다. 이것이 스스로 나뉘어져서 둘이 되었는데 맑은 것은 올라가 양이 되고, 탁한 것은 내려가 음이 되니, 이로부터 천지의 위치가 정해졌다. (夫未生之初, 名曰太極時, 乃混混沌沌, 無有陰陽淸濁之辨. 旣而自分兩儀, 淸者升以爲陽, 濁者降以爲陰, 自是, 天地位定)

    혼돈의 상태, 즉 천지혼합의 상태였다가 서서히 자연스럽게 천지가 분리되었다는 점에서 제주도의 <초감제>와 같다. 그보다 앞선 시기에는 분리의 주체인 거대신이 있다. 유구의 아마미쿄는 섬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늘에 올라가 사람의 종자를 받아가서 섬에 사람을 창조하기도 하였다. 태초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탐라국 건국신화>를 연상하게 한다.

    耽羅縣 在全羅道南海中 其古記云 太初無人物三神人從地聳出…我是日本國使也吾王生此三女云 西海中嶽降神子三人將欲開國而無配匹 於是命臣侍三女以來 󰡔高麗史󰡕 卷58, 志 卷第11 地理2.


    瀛州 太初 無人物也 忽有三神人 從地湧出鎭山北麓 有穴曰毛興…瑞色蔥朧有中絶岳 降神三人 將欲開國而無配匹 於是 命臣侍三女以來 󰡔瀛洲誌󰡕, 󰡔耽羅文獻集󰡕, 제주도교육위원회, 1976, 2쪽. 현용준, 「三姓神話 硏究」, 󰡔탐라문화󰡕 2호,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83 재인용.


    <탐라국 건국신화>가 실린 고서(古書)들은 대부분 세 신인이 솟아나기 전, “태초에 사람이 없었다.”는 사정을 분명히 한다. “유럽과 북미의 창조신화는 최초의 인간이 식물처럼 대지로부터 솟아올랐다고 상상한다.” 카렌 암스트롱, 이다희 역, 󰡔신화의 역사󰡕, 문학동네, 2011, 51쪽.
    최초의 인간이 씨앗처럼 땅속에서 생애를 시작한다는 말이다. 말리노프스키도 일찍이 남서 태평양 신화 조사를 하면서, 최초의 인간은 땅속에 있었으며 때가 되면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땅 위로 출현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인간을 만든 주체 신격이 없으니, 이는 온전한 창세신화에서 다소 멀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태초의 상황에서 인간이 출현한 표현은 창세신화의 범주에서 논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주도 당신들의 대부분 땅에서 솟아난다. <탐라국 건국신화>의 사유는 창세서사시가 지닌 일부의 모습과 유사한데, 다음의 예는 태초에 인간이 탄생하는 창세의 이야기에 훨씬 더 가깝다.

    以吾가 들으니 …“천지가 시작될 때에는 본시 인간이 없었다. 곧 인간은 조화에 의하여 생겨난 것으로 대개 천지의 기운이 이것을 낳게 하는 것이다.”하였다. 또한 득종의 선대의 사적이 이러한 것을 보고나서 신인의 출생이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星主高氏傳󰡕; 󰡔국역 동문선󰡕, 민족문화추진회, 1982, 112쪽 (天地之始 固未嘗先有人也 則人固有化而生者矣 盖天地氣生之也 又觀得宗先世如此而後 有以知神人之生 異於人也.)


    정이오가 고득종의 청에 의해 <성주고씨전>을 지었는데, ‘지중용출’(地中湧出)이란 특별한 탄생에 대해 위에서처럼 천지의 시작과 천지의 기운과 인간의 출현을 언급하고 있다. 탐라국 건국의 주역인 고양부의 탄생담을 창세신화의 신비한 분위기와 맞닿게 서술하고 있어, 창세신화가 후대의 건국신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건국신화의 주인공이 땅에서 솟아났다고 하는 사연이 창세신화에 영향을 주고 있어 이채롭다.

    동방으로 청의동ᄌᆞ 반고씨가 솟아나니 … 대밸왕 솟아나고 소밸왕이 솟아나고 … 노ᄌᆞ님은 어머님 배속에서 일은요ᄃᆞᆸ해 사난 배울 일도 다 배우고 생길 일도 다 생기고 ᄒᆞ연 금시상에 솟아난 보난에 성주성인(星主聖人) 솟아나고 (고창학본, 656-657쪽)

    반고씨가 해음엇이 솟아진다 … 천왕씨가 열두양반 솟아지고 … 단군님이 단군날로 솟아지연 … 고량부(高良夫) 삼성왕(三姓王)이 무운굴(毛興穴)로 솟아지연 (강태욱본, 657-659쪽)

    태고라 천황씨 시절에는 반고씨가 이미 낳난 … 노ᄌᆞ님 촛나라 회양땅 큰어른으로 솟아정 안씨부인 배를 빌어 … (김병효본, 662-663쪽)

    을축 삼월 열사흘날 모흥굴로 ᄌᆞ시에 고이왕이 솟아나고 축시에 양이생이 솟아났수다 인시에 부이민이 솟아났수다. (신연봉본, 665쪽)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371쪽, 656-665쪽.


    영평 팔년 을축(乙丑) 삼월 열사을날 ᄌᆞ시 생천 고의왕, 축시 셍천 양의왕, 인시 셍천 부의왕 고량부(高良夫) 삼성(三姓)이 모은골로 솟아나 도업(都邑)ᄒᆞ던 국이외다.(초감제, 47쪽)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47쪽, 552-553쪽, 650쪽.


    고창학본에서는 제주 통치자인 성주(星主)처럼 반고와 대별왕과 소별왕 노자가 솟아낫다고 했다. 표현이 솟아났다고 하지만, 대별왕과 소별왕은 천상계에서 내려온 천지왕과 지상계의 총맹부인의 아들이니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존재이면서 천상계과 연관이 있고, 노자의 출생도 어머니의 뱃속에서 78년을 살다 나왔다고 하였으니 땅에서 솟아난 것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런데도 모두 솟아났다고 하니 그 관형적인 표현에 주목할 만하다. 강태욱본에서는 반고, 천왕씨, 단군, 고량부 삼성 모두가 땅에서 솟아났다고 했다. 중국의 창세신만이 아니라 성인인 천황씨, 그리고 우리나라 첫 왕국의 건국주인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서 솟았다고 하여 고량부 삼신인의 탄생담에 동화된 문맥이다. 김병효본은 위와 다르게 반고가 이미 태어났다고 했고, 노자도 솟았다고는 했지만 안씨 부인의 배를 빌어 태어났다고 했다. 신연봉본에서는 고량부가 땅에서 솟았는데 고위왕(高爲王) 양위신(良爲臣) 부위민(夫爲民)이라 하여 고량부가 군신민의 서차를 지닌 채 솟아났다고 한 점이 이색적이다. 안사인본은 우리가 잘 아는 문맥으로, 고량부 삼신인이 땅에서 솟아난 내력이다.

    아방국은 웃손당 어멍국은 셋손당 알손당은 소로소천국 금백주. 아들애기 예레ᄃᆞᆸ ᄄᆞᆯ애기 쑤무요ᄃᆞᆸ 손지 방상 일은 요ᄃᆞᆸ 질소싱 삼백일은 요ᄃᆞᆸ. 제주 천하 알에 그디가 블히공이란 ᄆᆞᆫ 이 당 알로 솟아났수다. (괴뇌깃당, 371쪽)

    가온딧도 소천국 알손당 고부니ᄆᆞ를 솟아나시고, 강남천제국(江南天子國) 벡몰레왓(白沙田)디서 솟아나신 백줏도마누라. (궤눼깃당, 552-553쪽)

    할로영주삼신산 상상고고리 섯어께 을축(乙丑) 삼월 열사을날(13일) 유시(酉時) 아옵성제(9형제) 솟아나니, 아옵성제 각기 각분(各分)ᄒᆞᆯ 때, 큰성님은 정이(旌義) 수산(水山) … 아옵차 섹달리(穡達里) 제석천왕하로산, 각 ᄆᆞ을에 분거뒈였는디, (상창하르방당, 650쪽)

    첫 번째는 진성기 채록이고 두 번째는 현용준 채록인데 당 이름 표기는 다르지만 같은 당이다. 궤네깃당본풀이는 송당계 신화인데 한라산 북쪽의 대표적인 당(堂) 신화이다. 한라산 남쪽은 한라산계 신화라 하는데, ‘상창하르방당본풀이’처럼 대체로 아홉 형제가 한라산에서 솟아난 신화다. 이처럼 제주의 대표적인 신은 땅에서 솟아난 내력을 지닌다. <탐라국 건국신화>는 영웅신화이고 그 원형은 제주도 당본풀이에 두루 퍼져 있는 영웅서사시다. 그 영웅들의 땅에서 솟아나는 내력이 고대서사시인데 그 주역들이 앞 시대의 창세서사시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살펴보겠다. 고대 건국서사시를 가진 집단의 등장은 창세서사시를 가진 집단의 퇴진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조동일 교수는 “창세서사시와 영웅서사시가 대등하게 전승되는 곳의 경우는, 종교적 지도자의 영향력을 밀어내고 정치적 지배자가 다른 데서 등장해서 국가 창건의 과업을 수행했다. 제주도에서는 창세서사시를 받드는 집단의 주도권을 앗아간 다른 세력이 탐라국을 건국하면서 영웅서사시를 만들어냈던 것으로 보인다.” 조동일, 『세계문학사의 전개』, 지식산업사, 2002, 41쪽.
    고 했다.   역사의 당연한 흐름처럼 기존의 종교 집단이 밀려나고, 새로운 고대국가 지배자가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집단은 창세서사시를 신봉하던 집단이었는데, 새로운 정치 집단은 기존 창세서사시를 배척하거나 탄압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건국신화를 만들어 자신의 신성성을 구축하였다는 말이다. 제주에 남겨진 창세서사시를 통해 배척과 탄압을 받지 않은 내력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치집단의 교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창세서사시’ 시대에는 이주민이 위세가 대단해 위축되었던 선주민이 자기 쪽의 사고형태를 통일헌법으로 삼아 양쪽을 합칠 수 있게 성장했다.” 조동일, 「탐라국 건국서사시를 찾아서」, 『제주도연구』19집, 제주학회, 2001, 100쪽.
    는 말 속에 새로운 통치자의 등장을 수긍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건국 주역은 하늘에서 내려온 집단과는 구별되는 ‘땅에서 솟아난 집단’임을 표방하는 토착 세력이고, 땅에서 솟아난 신화는 탐라국의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측면을 의미한다.
    건국 주역은 토착 세력이라고 보는데, 강력한 이주자의 흔적이 있어 이들이 건국 주역이라는 견해도 있다. 고대 탐라에 고구려계 출자집단 본토민 가운데 부여·고구려 계통 사람들이 제주에 이주해 온 흔적이 있다. 당 용삭 초(661-663년)에 유리도라(儒李都羅)가 사신을 보내 입조하였고, 후에(723년) 달미루(達未婁)가 당에 조공하였다고 전한다. 달미루는 스스로 북부여 후예라고 하고,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망시키자 남은 사람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산다고 했다.(達未婁自言北夫餘之裔 高麗滅其國 遺人渡那河 因居之(『新唐書』 卷 220, 東夷傳, 儋羅) 달미루의 일은 훨씬 뒤의 일이지만, 고구려가 부여를 멸망케 한 것은 기원전후의 사정이었다고 보아 마땅하다.
    이 입도한 것을 토대로 그들이 건국 주역이라고 본 박종성 교수의 견해도 있다. “이 집단은 창세서사시를 가져와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고대서사시로의 변천을 시도했고, 그 양상이 부여·고구려계통의 신화로 인정되는 ‘제석본풀이’형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탐라의 시조전승에 “고씨와 부씨로 구체화하고 乙那라고 하는 부여·고구려계통의 호칭을 결합시켰다.” 박종성, 『한국 창세서사시 연구』, 태학사, 1999, 336-337쪽.
    고 하여, 창세서사시를 가져온 집단을 부여·고구려계로 보고 기존의 신화에 고씨와 부씨의 호칭을 결합한 것도 이 집단의 소행으로 보았다. 그런데 탐라국 건국서사시에 성씨가 결합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일 것이고, 창세서사시를 담당했던 세력과 건국서사시를 내세운 집단은 서로 달랐을 것이 자명하다. 그 이유는 ‘땅에서 솟아난’ 탐라의 고유한 신화소 때문이고 이런 화소는 전 세계에서 제주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느 쪽을 보더라도 탐라국 역사를 본토의 역사에 종속시켜 이해하는 것은 부당” 조동일, 「탐라국 건국서사시를 찾아서」, 117쪽. 다른 글에서도 “창세서사시와 영웅서사시 사이에도 많은 차이점이 있어 새로운 집단이 등장해서 서사시를 혁신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동아시아 구비서사시의 양상과 변천』, 문학과지성사, 1997, 56쪽)
    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창세서사시는 영웅서사시에 앞서고, 탐라국 형성 이전에 이주민 세력이 이 ‘창세서사시’를 가져와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물론 창세서사시는 원시 혹은 원시에서 고대로의 이행기 서사시이고, “해와 달을 조절해 천체의 이변을 해결하고 농사가 잘되게 한 것을 뜻하므로 수렵민과 다른 농경민이 등장하면서 서사시가 달라졌다.” 조동일, 「탐라국 건국서사시를 찾아서」, 97쪽.
    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주민 세력에 눌려 위축되었던 토착세력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건국서사시를 창도하였다고 본다. 토착세력이 이주민 세력에 눌려 있다가 주도권을 잡게 된 근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토착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건국하였다는 것은 땅에서 솟아난 영웅의 탄생담이 탐라국 건국신화의 핵심이기 때문이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한반도의 건국신화와 다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이주민은 부여고구려계일 수도 있다. 이주민은 철기문명을 가지고 도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고대국가 건설의 주역이라는 근거는 없다. 제주의 원시고대서사시를 시대 순으로 나열하면, 신앙서사시-창세서사시-건국서사시인데, 신앙서사시 집단이 건국서사시 집단과 연결된다. 당 신화와 건국신화가 서로 연결되고 영향관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당 신화와 건국신화의 교섭과 선후관계는 파악이 쉽지 않지만, <서귀본향당본풀이>나 <궤네깃당본풀이> 등은 건국신화에 앞선 것으로 파악된다.

    제주에는 수렵민과 관련된 서사시가 남아 있어 오래 된 신앙서사시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농경을 위주로 하는 이주민의 등장을 보여주는 서사시도 많다. 그러니 수렵에서 농경으로의 진전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수렵민과 농경민의 갈등과 화해는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가 된다. 갈등 혹은 화해의 내용이 당신본풀이에 풍부하게 전승되고 있다. 그러니 수렵을 위주로 하는 토착집단에 이주민이 들어와 합치고 고대국가를 열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으되, 그 주도권은 토착세력이 지니고 있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수렵을 하던 토착집단에 농경을 위주로 하는 이주 집단이 결합하는 양상은 <탐라국 건국신화>의 핵심이다.


    3. 고대서사시 속의 탐라국의 실체

    탐라현(耽羅縣)은 전라도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 그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도 생물도 없었는데 3명의 신인(神人)이 땅으로부터 솟아 나왔는데〔이 현의 주산(主山)인 한라산 북쪽 기슭에 모흥(毛興)이라는 굴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그 때의 것이라고 한다〕 맏이는 양을나(良乙那), 둘째는 고을나(高乙那), 셋째는 부을나(夫乙那)라고 하였다. 이 세 사람은 먼 황무지에 사냥을 하여 그 가죽을 입고 그 고기를 먹고 살았는데 하루는 자색 봉니(封泥)로 봉인을 한 나무 상자가 물에 떠 와서 동쪽 바닷가에 와 닿은 것을 보고 곧 가서 열어 보았더니 상자 속에는 돌함과 붉은 띠에 자색 옷을 입은 사자(使者)가 따라 와있었다. 돌함을 여니 그 안에서 푸른 옷을 입은 세 명의 처녀와 각종 망아지와 송아지 및 오곡(五穀) 종자가 나왔다. 그 사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본의 사신인데 우리나라 왕이 이 세 딸을 낳고 말하기를 ‘서해 가운데 있는 산에 신자(神子) 3명이 탄강하여 장차 나라를 이룩하고자 하나 배필(配匹)이 없다’고 하면서 나에게 명령하여 이 3명의 딸을 모시고 가게 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들은 마땅히 이 3명으로 배필을 삼고 나라를 이룩하기를 바랍니다.”하고 말을 마치자마자 그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가 버렸다. 3명은 나이에 따라서 세 처녀에게 장가들고 샘물 맛이 좋고 땅이 건 곳을 택하여 활을 쏘아 땅을 점치고 살았는데 양을나(良乙那)가 사는 곳을 일도, 고을나(高乙那)가 사는 곳을 이도, 부을나(夫乙那)가 사는 곳을 삼도라고 하였다. 이 때 처음으로 오곡을 심어서 농사를 짓고 망아지와 송아지를 길러서 목축을 하여 날이 갈수록 부유해 가고 인구가 늘어 갔다. (<고려사> 지리지)

    태초에 고·양·부 3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나 사냥을 하면서 지냈는데 바다 멀리서 배가 떠왔다. 일본국(혹은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였는데 맞이하여 각각 배필로 삼고 활을 쏘아 거주지를 정하고, 1도와 2도와 3도에 나누어 살게 되었다. 세 공주는 오곡종자와 송아지와 망아지를 가지고 와서 농사를 짓게 되었고 나라 살림이 나날이 불어나 살기 좋은 땅이 되었다.
    세 신인이 고·양·부 세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해서 ‘삼성신화’라고도 불린다. 이런 탄생담은 종래의 한국 건국신화와는 사뭇 다르다. 한국의 건국 영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천상계의 권위를 빌려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사유가 담겨 있다. 북방의 사정이 이러하다면 남방의 탐라국은 독자적인 문화를 보인다. 탐라의 건국 영웅은 땅에서 솟아나는데, 이는 대지가 만물을 산출한다는 사유의 반영이다. 식물들처럼 인간도 땅에서 솟아났다고 하는 사유는 전 인류의 원초적 사유였는데 제주에 두드러지게 남아 있다. 다른 나라 신화에는 드문 화소가 제주에 집중적으로 전한다. 제주의 당본풀이에 등장하는 신들의 대부분은 땅에서 솟아나고 일부 신들은 바다를 건너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허남춘, 「제주의 신화」, 『제주학개론』,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 2017, 210-211쪽.
    이 당본풀이가 시련을 견디고 투쟁에서 승리하는 고대 영웅서사시의 모습을 보여 준다.
    고대 영웅서사시 중 궤네깃당본풀이 또는 같은 계열의 송당본풀이는 탐라국 건국신화의 근원적 신화에 해당된다. 송당본풀이의 소로소천국이 땅에서 솟아나듯이 삼성신화의 삼신인도 땅에서 솟아났다. 송당본풀이가 ‘웃송당’ ‘셋송당’ ‘알송당’의 상․중․하당의 세 신당이 공존하듯이, 건국신화에서는 고을라․양을라․부을라의 삼신인이 등장한다. 송당본풀이의 여신 백주또가 무쇠철갑에 실려 제주에 표착하고 있듯이 건국신화의 삼여신도 목함과 석함에 담겨 제주에 표착하고 있다. 송당본풀이의 남신이 사냥을 위주로 하고 여신(백주또)는 남신으로 하여금 농사를 새로이 시작하게 하듯이, 건국신화에서 남신들은 사냥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데 삼여신은 오곡종자를 가져와 농사를 시작한다. 송당본풀이의 남신(문곡성, 소로소천국의 아들)이 제주도 전체를 지배하는 신격이 되듯이 건국신화의 삼신인이 탐라국을 건국하여 제주 전체를 지배하는 신격이 된다. 조동일, 󰡔동아시아 구비서사시의 양상과 변천󰡕, 문학과지성사, 1997, 89쪽.

    활을 쏘아 거주지를 정하고, 1도와 2도와 3도에 나누어 살게 되었다고 했는데, 1도 2도 3도는 지금 제주시에 남아 있는 지명일 수 있고 혹은 제주목과 대정과 정의 세 곳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활을 쏘아 살 곳을 정하는 화소는 서귀포 쪽 고대 영웅서사시에 산견된다.

    큰 성님은 과양당 셋성님은 정의(旌義) 서낭당. 말잣아시(末弟) 대정(大靜) 광정당, 싀성제(三兄弟) 뒙네다. (다음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김통정을 제압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이젠 싀성제(三 兄弟)가 활을 쏘와 ᄎᆞ지ᄒᆞᆯ 땅을 갈르는디, 큰 성님은 활을 쏘난 정의 대정 새에 져 정의 대정 ᄀᆞᆸ 갈르고, 셋성님 쏜 활은 모관(牧內) 정의 ᄀᆞᆸ 갈르고, 맛잣아신 모관 대정 새엘 쏘아 모관 대정 ᄀᆞᆸ을 갈라, 큰성님은 모관 과양당에 좌정ᄒᆞ고, 셋성님은 정의 서낭당 좌정ᄒᆞ고, 말잣아신 대정 광정당 좌정허여 모관 정의 대정 ᄎᆞ지ᄒᆞᆸ데다.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개정판), 각, 2007, 658~659면. ‘광정당’.


    <광정당본풀이>는 신의 계보상으로는 송당계, 서사유형상으로는 한라산계에 속하는 자료로, 산남에서 전승되는 자료로는 유일한 송당계 본풀이다. 화살을 쏘아 분거하였다는 점에서는 삼성신화와 비견된다고 하겠다. ‘광정당본풀이’에서는 건국신화에서 고을나, 양을라, 부을라 3형제가 활을 쏘아서 경계를 구분했듯이 3형제가 각기 활을 쏘아서 정의와 대정과 목안(牧內)의 경계를 가른다. 그래서 큰 형님은 목안 광양당에 좌정하고, 둘째는 정의 서낭당에 좌정하고, 셋째는 대정 광정당에 좌정하여 각기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을 차지한다. 한라산계 당본풀이에서 형제가 바둑으로 형과 동생의 순서를 정한 후에, 형과 동생이 활을 쏘아 분거하였다는 것도 상통한다. 탐라국 건국신화의 원형이 남제주군 지역에 여럿 남아 있는 셈이다.
    고씨 문중 기록인 <長興高氏家乘>에 의하면 고을라가 사는 곳은 1도인데 한라산 북쪽일도리라 했고, 양을라가 사는 곳은 2도인데 한라산 우익의 남쪽 산방리라 했고, 부을라가 사는 곳은 3도인데 한라산 좌익의 남쪽 토산리라 했다. 이런 영주지계 자료를 얻어 본 이형상은 고씨세계를 인용한다고 하면서 거의 비슷한 언급을 하고 있다. 高氏世系錄曰 三人射矢卜地 高所居曰 第一徒 漢拏山北 一徒里 良所居曰 第二徒 漢拏山右翼之南 山房里 夫所居曰 第三徒 漢拏山左翼之南 土山里 (『南宦博物』, 誌蹟條)
    1도 2도 3도가 각각 제주 대정 정의 세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구비전승 된 고대서사시와 부합한다.

    1) 해양능력과 고대문명 수용

    송당계 신화에서 소로소천국이 사냥을 하여 생업을 꾸려나갔는데, 자녀들이 많아지자 백주또가 농경을 권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성신에 의해 농경이 시작된 것으로 그려지는데 탐라건국신화에서도 그렇다. 제주의 고․양․부 3신인은 사냥을 하면서 지내다가, 3여신과 혼인하여 농경문화를 정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송당본풀이와 건국신화는 함께 남성신의 수렵문화에서 여성신의 농경문화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두 문화의 결합은 큰 힘을 발휘하게 하였고, 고대국가의 건설에까지 미치게 된다.
    탐라국 건국신화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여신의 도래(渡來)이다. 여신들은 오곡종자를 가지고 들어온다. 철기문화․직조문화․농경문화는 고대문명과 연관된 것이고, 이것들은 고대국가 형성에 긴요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철기와 비단과 오곡을 가지고 새로운 땅으로 가 그곳에서 새로운 문명을 일구어 낸 이야기가 고대 건국신화의 주류를 이룬다. 제주의 건국신화도 이런 반열에 든다고 하겠다. 제주 건국신화에서는 3여신이 오곡종자 외에 송아지․망아지를 가지고 들어왔다고 한다. 소와 말 역시 농경에 필요한 동력이었다. 고대국가는 어느 한쪽의 능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고 상당 기간의 길항 과정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국신화의 맥락 속에는 수렵 채취에서 농경과 목축으로 경제체제가 변화되었던 점이 드러나지만, “본도가 완전히 지배적인 생계양식으로서 농경과 목축에 의존한 바 없었다.” 진영일, 『고대 중세 제주역사 탐색』,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2008, 317쪽.
    는 견해도 있다. 중요한 기술적 전환은 쉽게 정착되는 것이 아니고 시일을 요구한다는 지적에 동조한다. 인간의 경제적 발전은 채취와 사냥에서 농경과 목축으로 이행되어 가는데, 이렇게 진행되면 사냥과 농사를 병용하는 단계가 등장하고, 이때 제주도에서는 <궤네깃당본풀이>라고 하는 특별한 본풀이를 구현하고 돼지고기를 먹는 특별한 의례를 거행 김헌선, 「중국 윈난성 소수민족의 신화세계」, 『남방실크로드 신화여행』, 아시아, 2017, 75-76쪽.
    한다고 했다. 이후 가축을 키우는 시대로 전환하게 되어 ‘가축과 돼지의 제의’가 발생한다고 했다. 제주는 이후에도 ‘수렵-농경’이 병존하였고 두 문화의 갈등은 미식파(米食派)와 육식파(肉食派) 신의 갈등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신이 사냥을 위주로 하면서도 여신의 육식에 대해 비판하고 별거를 주장하여 결국 남녀신이 따로 좌정하게 되고, 남신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미식(米食)의 여신을 첩으로 들어앉힌다. 제주도 일렛당 계열의 본풀이는 이런 모순을 보여주는데, 핵심은 육식과 미식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고, 어느 한 편의 승리로 귀결되니 않았다는 점이다.
    제주에는 당신본풀이가 많이 남아 있는데, 부부신이 좌정하여 있는 경우 남신이 토착신이라면 여신은 도래신이다. 여신이 본향당의 주인인 경우도 많은데 바다를 건너온 여신이 많다. 바다를 건너온 여신도 제 땅에서 솟아났다고 했다. <송당본풀이> 백주또의 경우 강남천자국 금모래밭에서 솟아난 후 바다를 건너 제주에 왔다. 혹은 <칠머리당본풀이>처럼 남신인 도원수지방감찰관이 강남천자국에서 솟아난 후 제주에 들어온 경우도 있다. 토착신과 도래신은 각각 선주민과 이주민으로 변별되는 존재인데, 두 부류 모두 땅에서 솟아난 것으로 되어 있다. 도래신의 내력에 변이가 생긴 것이다. 이주민이 자기네 시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 신화를 가지고 와서, 선주민은 자기네 시조는 땅에서 솟아났다고 하는 반론을 제기했으며, 이주민이 자기네 선조도 땅에서 솟아났다고 하는 데 동의하자 양쪽의 결합이 이루어져 탐라국을 건국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최상의 추론이다. (조동일,「탐라국 건국서사시를 찾아서」, 117-118쪽.) 조동일 교수는 이 논문을 발표하고 필자는 이 논문에 대해 토론을 맡은 적이 있다. 그때 필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논문집에 실려 있다. ‘논문-토론문-질의에 대대한 답변’이 함께 실린 예는 흔치 않다. 토론문도 6페이지고 답변도 4페이지다. 필자는 2001년 이 논문의 답변에 대한 나름의 재답변을 구상한 바 있다. 이제 그 묵은 숙제를 하는 셈이다.
    서로 출생의 방식에 대해 갈등하지 않고 주도권을 쥔 상대의 방식을 인정해 주면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그 대신 바다를 건너온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새로운 국가의 동력으로 삼았다. 1대는 토착신과 도래신이고 이질적인 존재였지만, 다음 세대인 아들 대(문곡성이나 궤네깃도처럼)에 이르러 정체성도 강화하고 해양능력도 자기화하는 데 이른다. 궤네깃도의 신적 성취는 바로 해양능력에서 비롯된다.

    억만대벵을 내여주시니 싸옴레 나간다. … 벡만군를 데동허여 조선국(朝鮮國)을 나온다. …… 방광오름 가 방광을 싀번 쳐서 벡만군(百萬軍士)를 허터두고, “벡만군는 본국으로 돌아가라.”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개정판), 도서출판 각, 2007, 557-559쪽.


    억만대병 억만군를 내여줬다. 굴량을 일천석 추고 일천벵마 삼천군벵을 거느리고 제주를 입도했다. 진성기,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 민속원, 1991, 413-414쪽. ‘손당본향’(이상문 구연)


    강남천자국에 난리가 나서 궤네깃도가 억만 군사를 받아 난리를 평정한다. 그리고 백만 군사를 대동하여 조선국 제주로 돌아온다. 궤네깃도는 제주도를 차지한 후 백만 군사를 돌려보낸다. ‘백만 군사’란 규모가 과장되긴 하였겠지만 엄청난 탐라국의 해상능력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래 인용문에서도 문곡성은 억만 군사를 받아 강남천자국에서 난리를 평정하고 일천 병마와 삼천 군병을 거느리고 다시 제주도로 돌아온다. 앞의 ‘백만 군사’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일천 병마 삼천 군병’도 고대국가를 형성하는 데는 손색이 없는 해상능력이라 하겠다. 그래서 조동일 교수는 ‘탐라국 건국서사시’가 재래의 수렵민과 외래의 농경민이 결합되어 생산력을 발전시킨 토대 위에서 안으로 정치적인 통합을 이룩하고 밖으로 주권을 지키는 영웅이 해상활동을 통해 힘을 키워 작지만 당당한 나라를 세운 위업을 나타냈다고 하면서, 탐라국이 백제․신라․일본․중국 등과 외교관계를 가지고 왕래하면서, 상대방에 비해 모자라지 않는 정치적 역량, 군사력, 항해능력 등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조동일, 「탐라국 건국서사시를 찾아서」, 102-104쪽.
    고 했다.
    제주도 본풀이를 보면 고려 건국신화와 유사한 <군웅본풀이>도 있는데, 서해용왕과의 싸움에서 당한 동해용왕의 아들이 왕장군에게 도움을 청하자 활로 서해용왕을 물리치고 용왕의 딸을 아냐로 맞아 세 아들을 두는데, 이들이 각각 강남 천자군웅, 일본 효자군웅, 조선 역신군웅이 된다고 했다. 바다에서 용맹을 떨치고 중국과 일본과 조선의 바다를 지배하는 신격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제주 당신들의 경우 땅에서 솟아난 신 이외에는 주로 바다를 건너오는데, 그 출자처가 서울과 육지도 있지만 대부분 강남천자국이다. 애초 탐라국 건국을 도운 세력은 이주민이되 한반도 본토 출신이었을 것으로 보지만, 새로운 문물을 가져오거나 새로운 당신으로 좌정하는 영웅들이 바다를 건너온다. 영등신의 출자처도 강남천자국이다. 강남은 중국 양자강 남쪽이고, 천자국은 중국의 천자가 거처하는 크고 문물이 번성한 땅이란 의미일 것이다. 제주에서 축출되어 바다를 건넜던 영웅들도 강남천자국을 경유하여 다시 제주로 돌아온다. 이런 서사의 본질은 탐라국이 애초 해양능력 한참 뒤의 일이긴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성종 8년(1477년) 기록에 의하면, 두독야지(頭禿也只; 한라산 이칭, 제주도 사람) 사람들이 강기슭에 의지하여 집을 지었는데, 의복은 왜인과 같으나 언어는 왜 말이 아니고, 漢語도 아니고, 선체는 왜인의 배보다 더욱 견실하고 빠르기는 이보다 지나치는데, 항상 고기를 낚고 미역을 따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고 했다.(船體視倭尤堅實而迅疾則過之) 제주의 항해술을 짐작할 만하다.
    을 갖추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2) 기록화와 변이

    고대국가의 형성기의 고고학적 증거도 탐라국의 면모를 추정할 수 있게 한다. 1928년 산지항 축조공사시 발견된 오수전은 BC 118년부터 주조되어 사용되었던 화폐이며 왕망 때 잠시 사용과 주조가 금지되었다가 후한 이후 다시 주조되었고, 오수전이 왕망전과 함께 출토되기 때문에 그 연대가 기원후 1세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청규, 『제주도 고고학연구』, 학연문화사, 1995, 194-195쪽.
    이 오수전은 중국과 상당한 왕래와 교역을 뜻한다. 중국과 일본의 중계무역을 추정할 수도 있다. 고대 탐라국 역사기술을 동아시아 또는 동지나 해양문화권으로 잡는 것이 타당하다. 함께 발견된 화천, 대천오십, 화포의 주조 시기도 기원후 1세기에 한정된다. 탐라초기 물자교류는 중국과 삼한과 주호(탐라)와 왜를 잇는 동북아 교역을 의미한다. 김경주, 「고고학으로 본 탐라-2000년대 발굴조사 성과를 중심으로」,『섬·흙·기억의 고리』, 국립제주박물관, 2009.

    이 교류의 주역을 주호(州胡)로 보고 주호국이 1세기 때에 중국과 교류했음을 강조하지만 주호를 계승하는 탐라국의 실체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고 <삼국사기>의 5세기 기록으로 건너뛴다. 장창은, 「고대 탐라국 연구의 쟁점과 이해 방향」, 『탐라문화』 제57호,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 2018, 94쪽.
    기원전후 한 시기에 한대(漢代) 유물이 출토되어, 직접적인 교역과정으로 추정하지만 단정 짓기 어렵다고 고민한다. 김경주, 「탐라전기 취락구조와 사회상」, 『탐라문화』 제57호, 72쪽.
    오수전 교역이 기원 후 1세기인데, 제주 산지항은 비공식적 부정기적 항구였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고 하면서,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볼 때 문화 낙차현상이 심하다고 결론짓고 선주호(先州胡) 집단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3세기 후반 주호에서 5세기 중엽 주호국, 즉 소국을 거쳐 5세기 말에 탐라국이 형성된다고 했다. 전경수, 『탐라·제주의 문화인류학』, 민속원, 2010, 76-78쪽.

    3세기 전후 새로운 주거형식과 전업 생산체제, 철기 부장묘, 거점 취락조성, 대규모 토목공사를 들어 급격한 문화변동이 진행되었다는 의미이고, 이는 상위계층(수장층)의 등장을 의미하는 획기적 사건으로 바라보는데, 조심스럽게 탐라국의 출현을 타진하는 바이다. 김경주, 위의 논문, 45쪽. 기원전 1세기 이후 동아시아 교역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상위계층이 있다고 하여, ‘상위계층’은 언급한 바 있으나, 다음 논지에는 “3세기쯤에는 적어도 탐라사회의 최고 수장층이 출현”했다고 한다.(김경주, 「고고유물을 통해 본 탐라의 대외교역」, 『탐라사의 재해석』, 제주발전연구원, 2013, 158쪽) 왜 1세기 수장층의 출현을 주저하는지 의문이다.
    아직도 역사 고고학계는 탐라전기(AD. 200-500)를 위계화 초기사회로 보고 탐라후기(AD 500 이후)를 국주지배 사회로 본다. 국주사회가 바로 고대국가 탐라국을 의미하는 것 같다. 최근 AD 1세기-200년을 수장층의 등장으로 보려는 움직임 강창화, 「제주도 고고학 30년, 발굴조사와 그 성과」, 『제주고고』 창간호, 제주고고학연구소, 2014.
    이 있지만 아직도 탐라국 건국시기에 대해 주저한다.

    영평 팔년 을축(乙丑) 삼월 열사을날 ᄌᆞ시 생천 고의왕, 축시 셍천 양의왕, 인시 셍천 부의왕 고량부(高良夫) 삼성(三姓)이 모은골로 솟아나 도업(都邑)ᄒᆞ던 국이외다.(초감제, 47쪽)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47쪽.


    할로영주삼신산 상상고고리 섯어께 을축(乙丑) 삼월 열사을날(13일) 유시(酉時) 아옵성제(9형제) 솟아나니, 아옵성제 각기 각분(各分)ᄒᆞᆯ 때, 큰성님은 정이(旌義) 수산(水山) … 아옵차 섹달리(穡達里) 제석천왕하로산, 각 ᄆᆞ을에 분거뒈였는디, (상창하르방당, 650쪽)

    蓋三姓之出 正堂九韓之時 後漢明帝永平八年 (編禮抄)

    地志曰 三姓之出 正堂九韓之時 擇里志曰 後漢明帝永平八年 … 疑其時歟. (耽羅紀年)

    앞의 둘은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삼신인이 땅에서 솟아나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인용한 바 있다. 고량부 삼신인이 한나라 영평 8년에 솟아났다고 하고, 뒤에서는 영평 8년은 없는데 3월 13일 솟아난 내력만 반복했다. 뒤의 둘은 향토 문헌에서 언급한 것인데, 영평 8년을 언급하고 있다. 역시 본풀이(신화) 속에 탐라국은 1세기에 탄생하였다. 심방들이 영평 8년(AD 65년) 고·양·부 3신인이 솟아나 나라를 세웠다고 했다. 우리는 신화를 통해 한반도의 고대국가와 대등한 시기에 탄생한 탐라국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 허남춘, 『제주도 본풀이와 주변신화』,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2011, 202-204쪽. 신라나 백제도 1세기 고대국가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고대국가의 체제를 정비한 것은 훨씬 뒤인 4세기 즈음이다. 신라의 경우 4세기 후반 내물왕 대에 진한 소국들을 정벌하고 통합한 시기를 주목한다. 탐라도 1세기 소국으로 개국하여 4-5세기에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1세기 경 이주민의 고대문명을 만나면서 토착세력의 권력이 점화되었고 이때 탐라국이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구비전승되던 고대 건국서사시는 고려 말 조선 초에 가문의 족보에 실리고 이어 <고려사>나 <지리지> 등에 정착하게 된다. 가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분식되기도 하고 일부 기사는 첨삭되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서사시와 탐라국 건국신화에는 일정 정도 거리가 생겼다.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구비서사시에 전승되는 영웅의 일대기가 매우 축소되거나 왜곡된다. 지금 남아 있는 일반신본풀이를 보면 부모의 1대가 서술되고 난 뒤에 주인공 2대의 일대기가 서술되고 있다. 그것은 당신본풀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송당본풀이>에서도 1대 소천국과 백주또의 자식인 2대 문곡성 혹은 궤네깃도의 활약이 고대서사시의 전모를 차지한다. 그런데 탐라국 건국신화에는 1대로 축소되어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은 갖은 고난을 겪고 투쟁에서 승리하여 고대 영웅서사시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데, 건국신화에는 그런 영웅적 면모가 소거되어 있다. 3형제가 분거하는 이야기도 혼인 후 분거로 바뀌어 있다. 이런 변모는 ‘광양당제의 유교화 과정에서 달라진 것으로 이해’ 김헌선, 「대만 포롱족·제주도·궁고도의 서사시와 신화 비교」, 『탐라문화』 제36호,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2010, 25쪽.
    된다. 광양당은 제주시에 있는 당(堂)인데 광양당 전설에 이르기를 “한라산신(漢拏山神)의 아우가 나서부터 성스러운 덕이 있었고 죽어서는 신이 되었다. 고려(高麗) 때에 송(宋) 나라 호종단(胡宗旦)이 와서 이 땅을 압양(壓禳)하고 배를 타고 돌아가는데, 그 신이 매로 변화하여 돛대 머리에 날아오르더니, 이윽고 북풍이 크게 불어 호종단의 배를 쳐부숨으로써 호종단은 끝내 비양도(飛揚島) 바위 사이에서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조정에서 그 신의 신령함을 포창하여 식읍(食邑)을 주고 광양왕(廣壤王)을 봉하고 나서 해마다 향(香)과 폐백을 내려 제사하였고, 본조(本朝)에서는 본읍(本邑)으로 하여금 제사지내게 했다.”고 한다.
    조선 초 15세기 전후에 전승된 바에 의하면, 옛 일을 추모하면서 악기를 연주하며 굿을 한다고 했다. 성주는 이미 죽고 왕자도 끊어졌는데 / 신인의 사당 또한 황폐하여 처량하네. / 새해 되면 부로들이 옛 일을 추모하여 / 퉁소와 북들로 광양당에서 연주한다네. (星主已亡王子絶。神人祠廟亦荒凉。歲時父老猶追遠。簫鼓爭陳廣壤堂) 김종직이 1465년 제주 사람 김극수를 만나, 탐라에 대해 들은 내용을 탁라가(乇羅歌) 14수로 적었다.
    제주시의 광양당과, 대정 광정당, 정의 서낭당은 중요한 당이었고, 광양당은 근처 삼신인의 탄생처인 삼성혈(모흥혈)과 관련을 맺고 있는 듯하다. 삼신인의 사묘는 쇄락해지고 그 대신 광양당에서 굿으로 추모하는 상황이라 보인다. 광양당 의례가 무속의례에서 유교의례로 바뀌면서 본래 영웅서사가 소거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송당본풀이> 같은 고대서사시에서는 남녀신의 식성 갈등이 매우 중요한 화소를 이루는데, 건국신화에서는 갈등은 없고 화합만 강조된다. 세화본향당의 <금상님본>에는 남신이 땅에서 솟아난 후 상감님과 갈등을 겪고 바다를 건너 제주에 온다. 그리고 배필을 만나 혼인한다. 천자님과 갈등을 겪지만 부부가 다른 생업에 종사하다가 결국 화합한다. 남신은 육식을 하고 여신은 미식을 하는데, 식성 갈등을 여자 쪽에서 이해하여 화합이 이루어진다.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576-581쪽.
    갈등과 화합이 하나의 서사인 점이 고대서사시의 특성이다. <서귀본향당본풀이>에는 남녀신의 식성갈등은 없지만 바람운과 지산국, 그리고 고산국과의 생업갈등이 나타난다. 바람운 등이 사냥을 생업으로 한다면 고산국은 농사지을 수 있는 곳에 좌정하여 처첩갈등과 함께 생업 대결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데 갈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살 곳을 정한 후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타협도 이루어진 셈이다. 건국신화는 기록화 과정에서 영웅서사를 잃고 말았다. 상극과 상생이 교합되어야 신화적 진실이 만들어지는데, 상생만 남기고 상극을 없애 신화적 긴장을 저버렸다.
    셋째, 땅에서 솟아나 바다를 왕래하고 강남천자국을 평정하던 남성 영웅은 이제 하늘(천상계)에서 하강한 이야기인 듯 착시를 주기도 한다. 제주와 달리 한반도 고대국가 건국주의 등장은 대부분 하늘에서 내려온다. 부족연맹을 이루고 있던 기존 세력을 진압하여 왕권을 공고히 하려면 하늘의 권위가 필요했다. 그래서 단군신화부터 건국 주인공은 하늘에서 출자(出自)한다. <고려사>에 기록된 탐라국 건국신화는 3신인이 땅에서 솟아났다고 서술한 뒤에, ‘西海中嶽 降神子三人’(고려사계) ‘中有絶嶽 降神子三人’(영주지계)이라 하였듯이 산악에 신이 하강한 사유를 담고 있다. 중세 국가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제주신화도 땅에서 솟아난 것에서부터 서서히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변천하는 증거다. 중세 지배자 고려의 신화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격의 틀을 모방하고 그 권위를 빌려오는 형식을 취하면서 신화의 후반부가 천강(天降)의 모티프를 드러낸다. 이 모든 것이 기록화 과정의 변이라 하겠다. 지금 남겨진 탐라국 건국신화는 영웅서사시로서의 본질을 많이 잃어버렸다. 본래 건국서사시가 지닌 영웅서사를 회복하게 위해서는 구비전승되는 영웅서사시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 영문
  • A hero of Tamla founding Myth and the ancient Epic
    Heo, Nam-Choon (Jeju National Univ.,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Korean history is indifferent to the ancient country, Tamla. There is little research on the substance of the Tamla country. Historians believe that the construction of an ancient Tamla was only possible after the 4th or 5th century. This is because the record on Tamla is insignificant. The memory of the world is composed with the stone monument and the oral tradition. The stone monument has become a way to record on paper, and our historical perception mostly relies on records. But in the case of Tamla, we must put a lot of emphasis on all the oral tradition. This paper reveals Tamla's identity through an old oral tradition.
    Before the ancient epic, there was a Genesis epic and a Faith epic. In the Faith epic, the story of hunter gatherer and the story of creation comes together. The Genesis epic describes the principle of the formation of the universe, and the story of a hero rising from the ground overlaps. Then, both the creative and the heroic elements appear in the ancient epic. Therefore, I examined the primitive and ancient epic in a variety of instruments. Ancient countries were formed by the combination of immigrants and the people of the prehistoric world, and the group of prehistoric people took the lead. The epic shows the time when power was replaced. The country of Tamla was built under the leadership of the prehistoric people. This group was connected to the group that led the Faith epic.
    The Tamla Nation has built the foundation of an ancient country by accommodating ancient civilizations based on its maritime capacity. The hero embraced ancient civilizations by joining forces that crossed the sea. The hero used his maritime power to strengthen the ancient state system. The story of a hero returning from the sea remains rich in Jeju Island. The status of the country increased trading with neighboring countries. However, this kind of identity of Tamla was distorted in the process of recording. We will not acknowledge the substance of Tamna. Many people do not even acknowledge the history of establishing a country in AD.1 Century. W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identity of the Tamla as it was identified through many ancient hero epic. This paper has strengthened the argument that Oral history should be considered more important than record. Jeju is unfortunate for its poor record, but it is fortunate that it has a lot of oral tradition.
    We must understand our history as a plurality, not a monolithic one. Such a task has begun to emerge anew. Under these circumstances, we need to shed light on the identity of Tamla history. This paper explains the identity of the ancient Tamla, which had its own history and cultur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탐라국은 역사상 고대국가였는데 한국사는 이에 대해 무관심하다. 탐라국의 실체에 대한 연구도 미미하다. 고대국가 건설도 4-5세기 이후에나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한다. 기록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억은 석비(石碑)와 구비(口碑)다. 석비는 종이에 기록하는 방식이 되고 우리의 역사 인식은 대부분 기록에 의존한다. 그러나 탐라의 경우에는 구비전승을 중시해야 한다. 본고는 오래된 구비 – 무가의 본풀이를 통해 탐라의 정체성을 규명하려 한다.
    고대서사시 이전에는 창세서사시와 신앙서사시가 있었다. 신앙서사시에는 사냥하던 시절의 수렵신에 대한 이야기와 창세의 이야기가 겹쳐 있다. 창세서사시에는 우주 형성원리가 차례로 서술되고 땅에서 솟아난 영웅의 이야기가 겹쳐 있다. 그 후 고대 영웅서사시에는 창세적 요소와 영웅적 요소가 함께 나타난다. 그래서 원시·고대서사시를 두루 계기적으로 살폈다. 고대국가는 이주민과 선주민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땅에서 솟아난 선주민 집단이 주도권을 가졌다. 권력이 교체된 시점을 서사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선주민 주도 하에 탐라국이 건설되었다. 이 집단은 신앙서사시를 주도한 집단과 연결된다.
    탐라국은 해양능력 바탕 하에 고대문명을 수용하며 고대국가의 기반을 다졌다. 바다를 건너온 세력과 결합하며 고대문명을 수용하고, 주변국을 오가는 해양능력을 발휘하면서 고대국가 체제를 강화시켜 나갔다. 바다를 오가며 큰 공을 세우고 탐라국으로 귀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본풀이로 풍부하게 남아 있다. 주변 국가와 교역하면서 탐라국의 위상이 높아 갔다. 그런데 이런 탐라국의 정체성이 기록화 과정에서 변질된다. 구비전승에서 전하는 탐라국의 본질을 기록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1세기 건국에 대한 전승도 부정된다. 숱한 고대 영웅서사시를 통해 확인한 탐라국의 정체성을 주목해야 한다. 본고는 석비보다 구비의 역사를 중시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명확히 했다. 제주는 기록이 빈약한 것이 불운이지만, 구비전승이 풍부한 것이 행운이다.
    우리 역사를 단일체가 아닌 다원체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새로운 과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이즈음, 탐라 역사의 독자성을 다시 조명해야 한다. 본고는 무가 본풀이를 통해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지녔던 고대 탐라국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고대국가는 선주민과 이주민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대부분의 신화를 통해 살피면 강력한 청동기 혹은 철기문명을 가진 이주민이 선주민을 지배하고 나라를 세운다. 그 신화들은 대부분 천강신화다. 그런데 제주는 땅에서 솟아난 주인공이 나라를 세운다. 탐라국 건국신화가 다른 고대국가의 신화와 대등한 구조를 지니고 보편성도 지니지만 독자성을 더욱 드러낸다. 하지만 기록화 과정에서 지나치게 보편성에 견인된 바가 있어 고대 영웅서사시를 바탕으로 그 본래적 의미를 재구해야 하는 과제도 있음을 밝혔다. 탐라국 건국신화는 탐라국이 망한 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구비 영웅서사시를 통해 탐라국에 대한 인식을 버리지 않았다. 탐라국은 12세기 군현으로 전락하고, 13세기 탐라에서 제주로 바뀐 뒤에도 자기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해방 직전까지 제주 사람들의 정체성은 자기 마을 ‘조천리’ ‘함덕리’ 외에 제주도가 전부였다. 근대 국가로 편입된 뒤에 그들은 대한민국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1,000년 동안 탐라국은 잊혀졌지만, 그래도 조선의 지식인 속에서는 인정된 면도 있다.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에는 탐라(耽羅)가 들어 있다. 우리나라 21개의 도읍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로 탐라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조는 탐라국을 고대국가로 인정하고 그 도읍지의 역사를 회고하는 시 43수를 남겼다. 단군, 기자, 위만 조선을 시작으로 우리 역사의 긴 흐름 속에 있었던 도읍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드물게도 감문(甘文) 우산(于山) 탐라(耽羅)를 넣어 역사의 뒤안길에 있는 것까지 찾아 평가했다.
    <지리지>의 “읍(邑)의 이름을 ‘탐라(耽羅)’라고 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탐라를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면이 있다. 유득공은 조선조 역사 속에 담긴 여러 국가를 인정하면서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 역사를 단일체가 아닌 다원체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등장한 지금의 시기에 적극 평가해야 할 전례를 남겼다.” 는 찬사를 받는다. 단일민족의 순수성과 우월성 주장이 근대 민족주의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21세기에 더욱 경청해야 할 화두라고 하겠다.
    조선조의 여러 한시나 가사 작품에도 탐라국의 실체를 인정하는 사대부의 역사관을 읽을 수 있다. 중세 봉건시대에도 탐라국의 역사가 인정되고, 조선조의 역사 이전에는 다양한 역사와 고대 중세 국가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역사를 다원체로 여겼는데 정작 근대국가 대한민국은 지역사를 돌볼 줄 모르고 아직도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적 사고에 머무르고 있다. 이제 분권화시대를 맞아 지역의 언어와 문화와 역사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사 속에 탐라사가 서술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마땅하다. 1세기에서 13세기까지 탐라에 대한 언급은 거의 미미하다가 몽골 침탈과 ‘삼별초의 난’에 이르러 비로소 탐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밑도 끝도 없는 역사 서술 태도다. 탐라국의 실체를 인정하고 한국사에 담아야 한다.
    제주는 기록이 빈약하지만 구비전승이 풍부하여 그것을 통해 탐라국의 정체성과 이후 제주사를 고구할 수도 있다. 기록이 빈약한 것이 불운이지만, 구비전승이 풍부한 것은 행운이다. 이 구비전승을 통해 제주의 정체성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생과 화합을 강조하고, 갈등을 뛰어넘어 화해하고, 선악의 질서를 뛰어넘어 순환의 질서를 환기시키고, 호오의 감정을 뛰어넘어 공생하고 공존하는 문화가 제주의 본풀이에 있다. 인간과 자연과 우주가 하나의 운명체로 결합되어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제주의 본풀이에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보편성을 상기시키기도 하여, 인간이 소중하게 지니던 원시·고대의 문명을 재구할 수도 있다. 파탄 난 근대문명을 치유할 해답이 제주의 본풀이 속에 있을 것이다.
    우선 탐라국 건국신화로부터 고대 영웅서사시에 이르는 광대한 신화의 세계를 바탕으로 제주가 정체성을 확인하고 깨어나길 기대한다. 원시·고대 서사시의 세계관 속으로 여행하며 제주가 해양능력과 고대문명을 갖추고 당당하게 고대국가를 건설했던 구비 역사를 되찾길 기대한다.
  • 색인어
  • 탐라국, 건국신화, 고대서사시, 창세서사시, 신앙서사시, 천지개벽, 영웅서사시, 지중용출(地中湧出), 선주민과 이주민, 삼신인(三神人), 해양능력, 고대문명, 기록화, 독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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