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휴의 <<제왕운기>>는 <<삼국유사>>와 더불어 단군신화를 최초로 싣고 있는 저술로 유명하다. 하지만 곰[웅녀]와 환웅이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삼국유사>> 전승이 (환인 또는 환웅의) 손녀와 단수신이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제왕운기>>전승보다 더 가치를 ...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삼국유사>>와 더불어 단군신화를 최초로 싣고 있는 저술로 유명하다. 하지만 곰[웅녀]와 환웅이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삼국유사>> 전승이 (환인 또는 환웅의) 손녀와 단수신이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제왕운기>>전승보다 더 가치를 인정받아서인지 모르지만 <<제왕운기>>는 <<삼국유사>>의 유명세에 밀려 그다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사실 삼국에 관한 분량이 <<삼국유사>>에 비해 <<제왕운기>>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둘의 단순 비교는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제왕운기>>가 담고 있는 내용은 그 분량에 비한다면 보다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틀 위에 세워진 고대사체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정립할 수 있는 단초를 <<제왕운기>>는 제시하고 있다. <<제왕운기>>에는 단군의 고조선을 이은 나라로 여러 개를 독특한 나라이름을 들고 있는데 신라를 시라, 고구려를 고례 등으로 부르고 있다. 특히 궁예가 세운 나라를 ‘후고려’로 통칭하고 있는 것은 주목된다. <<삼국사기>>가 고구려, 마진(태봉), 고려로 부른 것을, <<삼국유사>>는 고려 또는 전고려, 후고려, 본조(고려)로 불렀다면 <<제왕운기>>는 고구려, 후고려, 본조(고려)로 표기했는데 이 표기 방법은 조선시대까지 가장 널리 불린 나라이름이었다. 궁예의 고려를 후고려가 아닌 후고구려로 부르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제왕운기>>는 일반적인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근거한 기원전 37년이 아니라 기원전 108년으로 잡고 있다. 또한 발해의 건국연대를 일반적인 698년으로 보고 발해의 멸망연대도 일반적인 926년이 아니라 925년으로 잡고 있다. <<제왕운기>>가 충렬왕에게 진헌된 것을 고려할 때 이승휴의 고구려의 건국연대나 발해의 건국멸망에 대한 다른 해석이 근거에 기반하고 있으며 일정부분 당시대의 지식인에게 공유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제왕운기>>의 위와 같은 연대비정이 한국사의 전개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규명해 보고자 한다. 국호와 건국멸망연대는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제왕운기>>에서는 고조선에서 본조[고려]에 이르는 역사계승의식을 강조하는데 종횡으로 엮어져 있음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기대효과
고구려의 국호변경 문제는 논란이 뜨겁다. 고구려가 고려로 평양천도를 전후하여 고려로 나라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고구려가 아닌 고구려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 주몽, 궁예, 왕건의 세 고려를 구분한 방식대로 전고려, 후고려, 고려로 부를 ...
고구려의 국호변경 문제는 논란이 뜨겁다. 고구려가 고려로 평양천도를 전후하여 고려로 나라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고구려가 아닌 고구려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 주몽, 궁예, 왕건의 세 고려를 구분한 방식대로 전고려, 후고려, 고려로 부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구분해 부르더라도 고려라고 했을 때 혹시 이 고려가 주몽의 고려인지 궁예의 고려인지 의심을 갖게 되는 건 매한가지다. 그런데 이승휴의 <<제왕운기>> 국호 명칭인 고구려, 후고려, 고려란 명칭을 따른다면 혼란이 없다. 그러면서 궁예의 ‘후고려’란 국호를 통해 이전에 고구려가 고려로 나라이름을 바꾸었거나 고려란 나라이름을 자주 병칭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주고 있다. 또한 ‘후고려’ ‘고려’란 국호는 궁예와 왕건이 단절뿐만 아니라 일부 계승했다는 측면도 보여준다. 한 나라의 건국연대는 객관적인 요소보다 주관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나라 국민구성원의 역사인식이 중요하다. <<제왕운기>>에서 고구려의 건국을 기원전 108년, 발해의 건국을 684년으로 본 점등을 유념한다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연대와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준다. 또한 한 나라의 멸망연대도 그 나라를 계승한 나라와의 연관 속에서 재검토할 여지가 남아있다. 가령 대한제국의 멸망을 1910년으로 보고 있지만 한일병합조약이 무효란 견해도 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제국의 계승성을 고려한다면 대한제국의 멸망도 1919년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연구요약
고구려의 단군에 대한 이해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 이어졌고 후삼국의 궁예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에 계승되었다. <<삼국유사>> 왕력은 ‘고려’란 항목을 두고 주몽이 단군의 아들이라고 하였고 궁예의 나라를 ‘후고려’라 하였고 왕건의 나라를 고려라고 하였다. 고려란 ...
고구려의 단군에 대한 이해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 이어졌고 후삼국의 궁예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에 계승되었다. <<삼국유사>> 왕력은 ‘고려’란 항목을 두고 주몽이 단군의 아들이라고 하였고 궁예의 나라를 ‘후고려’라 하였고 왕건의 나라를 고려라고 하였다. 고려란 나라이름을 매개로 단군-주몽-궁예-왕건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제왕운기>>는 고조선의 멸망을 고구려의 멸망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제왕운기>> 백제기에서 이승휴는 백제가 변한 땅에 나라를 세웠다고 하면서 그 때가 중국 한나라 성제 홍가 3년[기원전 18년]이라고 하면서 고구려가 나라를 세운지 19년이라고 하였다. 기원전 18년에서 19년 전이면 고구려의 건국은 기원전 37년이 된다.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연대와 일치하고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연대이다. <<삼국사기>>는 신라의 건국을 기원전 57년, 고구려의 건국을 기원전 37년, 백제의 건국을 기원전 18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삼국의 건국 순서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순이었다. 따라서 고구려의 건국연대는 신라의 건국연대인 기원전 57년보다 더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 <<제왕운기>>의 고구려 건국연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왕운기>>의 해당 부분을 고구려가 나라를 세운 지 90년 전이라고 판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건국은 기원전 108년이 된다. 기원전 108년은 고조선이 망한 해이기도 해서 매우 주목된다 문제는 제왕운기 백제기의 해당 부분이 덧칠해져 있다는 점이다. 보통 이 부분을 19년으로 인쇄하고 번역하면서 <<삼국사기>> 기년에 따라 고구려 건국 19년째인 기원전 37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지만 九十을 덧칠하여 十九로 만들었기 때문에 고구려 건국 90년째인 기원전 108년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덧칠한 사람이 이승휴 자신일 수도 있지만 발해의 건국연대도 일반적인 통설과 다른 연대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의 다른 누군가가 십구로 덧칠했을 가능성이 높다. 보는 이에 따라서 십구를 덧칠하여 구십으로 고쳤다고 볼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덧칠한 부분의 필획을 자세히 살펴보면 十九를 九十으로 덧칠한 것이 아니라 九十을 十九로 덧칠했음을 알 수 있다. 十九의 十을 九로 덧칠한 형태가 아니라 九十의 十을 九로 덧칠했음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십구로 되어 있을 경우 이 연대는 <<삼국사기>>와 같은 연대이기 때문에 함부로 이를 무시하고 구십으로 고쳤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구십으로 되어있어서 <<삼국사기>>와 같은 연대로 맞추기 위해 십구로 고쳤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승휴는 처음에 ‘려지구십’이라고 적었을까? 구십이란 숫자는 특별히 이승휴가 실수했다기보다는 지금은 전하지 않는 어떤 전승에 고구려의 건국이 기원 전 108년이었다고 기록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108년이 고구려의 실제 건국연대가 아니더라도 고구려의 건국을 굳이 고조선의 멸망연대인 108년에 맞추었다는 것은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는 흔히 견훤이 세운 백제를 후백제, 궁예가 세운 고구려를 후고구려라고 하여 신라와 함께 후삼국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궁예가 세운 나라를 후고구려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 불려 진 나라이름이다. 왜냐하면 궁예가 세운 나라가 고려이기 때문이다. 김부식은 고려[주몽]를 고구려를 고치고, 궁예가 세운 고려란 나라를 삭제하여 김부식의 고려[왕건]란 나라이전에 고려란 나라이름이 있다는 걸 숨기고 싶었고, <<제왕운기>>도 고구려라고 하여 <<삼국사기>>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삼국사기>>에서 숨긴 궁예의 고려를 <<제왕운기>>는 ‘후고려’란 이름으로 살려내었다. 고구려의 멸망을 668년이라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지만 668년 당시 고구려 사람들 일부는 고구려가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당기간 여러 곳에서 고구려란 나라 이름으로 부흥운동을 계속했을 것이다. 그 부흥운동의 일부가 발해 건국에 참여했을 것임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일반적으로 알려진 698년 발해의 건국이전 발해 건국의 주도세력이 예전에 684년 어떤 형태로 국가를 내세웠다면 발해의 건국연대를 684년으로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왕운기>>는 발해의 멸망연대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926년이 아닌 925년으로 보고 있다. 926년은 <<요사>>등 중국 기록에 의한 것인데 한국 측 기록인 <<제왕운기>>나 <<고려사>>등에서는 925년으로 보고 있다.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한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니고 발해가 고려에 귀부한 것을 중요시 한 것이다. 즉 고조선 – 고구려 – 발해 – 후고려 – 고려로 이어지는 역사계승의식의 강조라고 볼 수 있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제왕운기>>는 고구려 건국연대, 발해의 건국연대와 멸망연대를 일반적인 통설과 달리 보았다. 발해의 멸망연대는 일반적으로 <<요사>>에 근거해 926년으로 보고 있지만 <<제왕운기>>와 <<고려사>> 등 우리 측 기록은 925년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의 건국은 기원전 37년 ...
<<제왕운기>>는 고구려 건국연대, 발해의 건국연대와 멸망연대를 일반적인 통설과 달리 보았다. 발해의 멸망연대는 일반적으로 <<요사>>에 근거해 926년으로 보고 있지만 <<제왕운기>>와 <<고려사>> 등 우리 측 기록은 925년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의 건국은 기원전 37년뿐만 아니라 기원전 107년, 발해의 건국은 698년이 아닌 684년으로 보았다. <<제왕운기>> 본문 7언시에서는 고구려의 건국을 기원전 37년으로 보았지만 <<제왕운기>> 백제기의 각주에서는 고구려 건국을 기원전 107년으로 보았다. 이 글은 바로 기워넌 107년에 주목한 글이다. 고구려 건국 기원전 107년은 고조선이 멸망한 기원전 108년과 1년 차이다. 고조선 멸망 후 고구려가 바로 이어서 건국했음을 알 수 있다. 고조선 멸망을 기원전 107년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 경우 고조선의 멸망연대와 고구려의 멸망연대가 같게 된다. 발해의 경우 668년 고구려 멸망과 20년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제왕운기>>는 기존의 고구려 건국과 발해의 건국 연대를 앞당겨 앞 나라인 고조선과 고구려와의 계승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제왕운기>>는 국호의 계승성도 강조하였다. 궁예의 고려를 ‘후고구려’가 아닌 ‘후고려’라고 함으로써 궁예의 후고려에 앞서 ‘전고려’가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렇다고 고구려를 ‘전고려’라 부르지 않았지만 고구려가 고려로 나라이름을 바꾸었고, 고구려가 바꾼 나라이름 고려를 궁예가 사용했고, 왕건이 사용했음을 알려주었다.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 마진[태봉] - 고려로 이어지는 나라이름을 고구려 – 후고려 – 고려로 함으로서 ‘고려’란 국호가 면면히 계승되었음을 강조하였다.
영문
Unlike the general belief, the term <<Jewang-ungi>> was different from the general belief in the founding age of the Koguryeo regime and and the founding age and the fall age of the Balhaeui regime. The age of the Fall of Balhaeui generally refers ...
Unlike the general belief, the term <<Jewang-ungi>> was different from the general belief in the founding age of the Koguryeo regime and and the founding age and the fall age of the Balhaeui regime. The age of the Fall of Balhaeui generally refers to the year 926 based on << Yosha >>. The records of our side, such as <<Jewang-ungi>> and <<Koryeosa>>, are regarded as 925. <<Jewang-ungi>> saw the founding of Koguryeo not only in 37 BC, but also in 107 BC. The founding of Balhae was not 688 but 684. This is the article of the year 107 BC. The founding of Koguryeo in 107 BC is one year from 108 BC, when Gojoseon was destroyed. After the fall of Gojoseon, it can be seen that Koguryeo was founded immediately. In the case of the founding of Balhae, it is only 20 years difference from the fall of Koguryeo in 668. The succession of Gojoseon, Koguryeo and Balhae was emphasized. Koryo of Gung-yeui was called later Koryo. Koguryo changed the name of the country to Koryo. It was called former Koryo. Wang Geon also referred to the name of the country. It can be seen that the name of the country was succeeded.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제왕운기>>는 고구려 건국연대, 발해의 건국연대와 멸망연대를 일반적인 통설과 달리 보았다. 고구려의 건국은 기원전 37년뿐만 아니라 기원전 107년, 발해의 건국은 698년이 아닌 684년으로 보았다. <<제왕운기>> 본문 7언시에서는 고구려의 건국을 기원전 37년으로 ...
<<제왕운기>>는 고구려 건국연대, 발해의 건국연대와 멸망연대를 일반적인 통설과 달리 보았다. 고구려의 건국은 기원전 37년뿐만 아니라 기원전 107년, 발해의 건국은 698년이 아닌 684년으로 보았다. <<제왕운기>> 본문 7언시에서는 고구려의 건국을 기원전 37년으로 보았지만 <<제왕운기>> 백제기의 각주에서는 고구려 건국을 기원전 107년으로 보았다. 이 글은 바로 기워넌 107년에 주목한 글이다. 고구려 건국 기원전 107년은 고조선이 멸망한 기원전 108년과 1년 차이다. 고조선 멸망 후 고구려가 바로 이어서 건국했음을 알 수 있다. 고조선 멸망을 기원전 107년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 경우 고조선의 멸망연대와 고구려의 멸망연대가 같게 된다. 발해의 경우 668년 고구려 멸망과 20년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제왕운기>>는 기존의 고구려 건국과 발해의 건국 연대를 앞당겨 앞 나라인 고조선과 고구려와의 계승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제왕운기>>는 국호의 계승성도 강조하였다. 궁예의 고려를 ‘후고구려’가 아닌 ‘후고려’라고 함으로써 궁예의 후고려에 앞서 ‘전고려’가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렇다고 고구려를 ‘전고려’라 부르지 않았지만 고구려가 고려로 나라이름을 바꾸었고, 고구려가 바꾼 나라이름 고려를 궁예가 사용했고, 왕건이 사용했음을 알려주었다.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 마진[태봉] - 고려로 이어지는 나라이름을 고구려 – 후고려 – 고려로 함으로서 ‘고려’란 국호가 면면히 계승되었음을 강조하였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고구려의 국호변경 문제는 논란이 뜨겁다. 고구려가 평양천도를 전후하여 고려로 나라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통칭해서 부를 땐 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 주몽, 궁예, 왕건의 세 고려를 구분한 방식대로 전고려, 후고려, 고려 ...
고구려의 국호변경 문제는 논란이 뜨겁다. 고구려가 평양천도를 전후하여 고려로 나라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통칭해서 부를 땐 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 주몽, 궁예, 왕건의 세 고려를 구분한 방식대로 전고려, 후고려, 고려로 부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구분해 부르더라도 고려라고 했을 때 혹시 이 고려가 주몽의 고려인지 궁예의 고려인지 의심을 갖게 되는 건 매한가지다. 그래서 건국자의 이름을 붙여 주몽고려, 궁예고려, 왕건고려로 부르자는 시도도 있었다. 그런데 이승휴의 <<제왕운기>> 국호 명칭인 고구려, 후고려, 고려란 명칭을 따른다면 혼란이 없다. 그러면서 궁예의 ‘후고려’란 국호를 통해 이전에 고구려가 고려로 나라이름을 바꾸었거나, 적어도 고구려란 나라이름보다 고려란 나라이름을 더 많이 썼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주고 있다. 또한 ‘후고려’ ‘고려’란 국호는 궁예와 왕건을 단절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일부 계승했다는 측면도 보여준다. 한 나라의 건국연대는 객관적인 요소보다 주관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나라 국민구성원의 역사인식이 중요하다. <<제왕운기>>에서 고구려의 건국을 통설인 기원전 37년이 아닌 기원전 107년, 발해의 건국을 통설인 698년이 아닌 684년으로 본 점 등을 유념한다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연대와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현재 대한민국의 소위 건국연대에 대해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1919년과 대한민국수립의 1948년이 맞서고 있다.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면 연속성을 중시하여 1919년을 택할 것이지만, 남북통일 이후에도 1919년이 남북의 합의를 이끈 건국연대가 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북쪽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건국절’이라 하지 말고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이라고 그 의미를 강조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남북의 합일점을 찾기 위해선 대한이란 이름이 시작된 대한제국까지 긴 건국의 과정에 포함시켜 논의해볼만한 일이다. 또한 한 나라의 멸망연대도 그 나라를 계승한 나라와의 연관 속에서 재검토할 여지가 남아있다. 가령 대한제국의 멸망을 1910년으로 보고 있지만 한일병합조약이 무효란 견해도 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제국의 계승성을 고려한다면 대한제국의 멸망도 1919년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멸망과 건국연대는 우리 전역사의 또 다른 체계를 세우는데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역사는 고조전(기원전 2333~기원전 107) - 고구려(기원전 107 ~ 668) - 발해(기원전 678 <<삼국유사>> 기이, 말갈발해 ~ 925, 신라 기원전 57~918) - 고려(918~1392) - 조선(1392~1897) - 대한제국(1897~1919 대한제국의 멸망이 1910년인가 1919년인가의 문제도 논의가 필요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상당수 사람은 조선독립이 아닌 대한독립을 외쳤고, 그 대한은 대한민국의 대한보다는 대한제국의 대한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3.1운동이 성공하여 나라를 되찾았다면 되찾은 나라의 나라이름은 대한제국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의 대한제국은 군주제가 아닌 입헌군주제 의 나라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1919년 나라를 되찾았을 때 그들은 1910년 대한제국의 대한제국의 멸망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 - 대한민국임시정부(1919~1948) - 대한민국(1948~)으로 끊임없이 계속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