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 과제를 통해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을 기대할 수 있다.
첫째, 향후 조선전기 왕실외척 ‘가문’의 존재양상(인적 네트워크, 정치적 성향,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대해 연구의 폭을 확대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본 연구과제는 조선전기의 ...
본 연구 과제를 통해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을 기대할 수 있다.
첫째, 향후 조선전기 왕실외척 ‘가문’의 존재양상(인적 네트워크, 정치적 성향,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대해 연구의 폭을 확대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본 연구과제는 조선전기의 유력한 외척가문과 인물들의 개별 연구가 축적되는 출발이 될 수 있으며, 개별 연구들의 종합적인 검토가 이루어질 경우 조선후기 또는 한국사의 다른 시대의 왕실외척과의 비교 연구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또한 왕실외척 가문의 계보, 혼맥과 학맥, 인적 구성, 관력과 혈연권력, 문화ㆍ경제적 여건, 가학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조선시대 양반사회를 움직인 ‘실질적 변수’의 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국왕과 신하를 매개하는 중간자적 지위에서 국왕을 보좌하는 세력으로 존재했던 ‘외척’은, 조선의 지배계층을 이해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연구주제라고 생각한다.
둘째, 조선시대의 민감한 정치문제인 ‘척신정치’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앞 시기의 특정 외척가문이나 인물에게서 불거져 나온 문제들은 그것이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일수록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신수근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조선전기의 인물 연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시기별로 신수근에 대한 평가의 문제들을 검토하고 그것의 정치적 의미들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조선전ㆍ후기에 걸쳐 그와 관련된 정치적 상황 및 사건들, 예컨대 신비복위소와 추복논의, 사림과 훈구 및 노론과 소론의 대립, 辛巳獄事, 庚申處分, 君臣義理, 五晦筵敎 등을 새로운 연구 시각에서 통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셋째, 그동안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단경왕후의 복위ㆍ추복논의 과정에서의 ‘地位’ 규정문제가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신씨는 왕비로 책봉되기 전에 폐출되었다가 죽었기 때문에, 엄격히 신씨에 대한 논의는 ‘追崇’과 관련된 것이어야지 복위나 추복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와 후대의 일반적인 인식은, 신씨가 중종이 즉위하는 날에 法駕를 타고 경복궁 내전으로 들어가 궁인들의 하례를 받은 것에서, 이미 중종의 정처로서 坤位에 있었던 것으로 마땅히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즉 중종의 즉위 때 이미 왕비가 된 것이었고, 책봉이 되지 못했으므로 결과적으로 폐비가 되었다는 인식이었다. 따라서 전후의 신씨의 복위 또는 추복논의들이 ‘책봉’이나 ‘추숭’의 개념에서 전개되지 못했던 이유가 이 연구를 통해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조선의 왕실외척 연구는 왕후를 대상으로 한 인물사 연구와 상호 보완적 측면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왕비의 궁중 내 위상이 원자의 생산이나 왕실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넘어, 친정 가문의 권력적 요소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왕비 개인의 삶만을 독립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충분치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왕실외척을 둘러싼 당대 정치상황이 충분히 검토된 연구토대 위에서 왕후의 인물사 연구도 좀 더 진전된 형태를 띨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섯째, 왕실외척 가문과 인물들에 관한 연구가 축적됨으로써 일반 대중들과 교육현장에서 나타나는 이에 대한 관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조선시대의 왕후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서들이 과도할 정도로 쏟아지고 있고, 대중 매체의 사극 제작도 매우 활발하다. 따라서 고증의 불철저와 그에 따른 오류, 역사의식의 결여 및 사실에 대한 왜곡 등의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연구자들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다 깊이 공유함으로써 연구기반을 마련하고, 적극적인 연구를 통해 성과를 축적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한다. 본 연구과제는 그 과정의 일환이며, 이러한 연구결과물들이 쌓일 때 앞의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방향을 찾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