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에 나타난 기장의 지명 연구
A study of Gijang place name in Old Maps
본 연구는 기존의 지명 연구가 문헌 자료 중심으로 연구되어 정확한 지명 변화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하고 자의적인 해석에 치중했다는 점을 전제로 이에 대한 대안적 연구의 방법으로 해당 ...
고지도에 나타난 기장의 지명 연구
A study of Gijang place name in Old Maps
본 연구는 기존의 지명 연구가 문헌 자료 중심으로 연구되어 정확한 지명 변화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하고 자의적인 해석에 치중했다는 점을 전제로 이에 대한 대안적 연구의 방법으로 해당 지명이 표기된 고지도의 지명 자료를 통해 지명의 변화양상과 지도의 지명 표기 오류를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존의 고지도 연구가 지리학적 연구와 역사적인 연구의 대상으로만 한정되어 있었으나 고지도에 표기된 지명이 지명의 어원과 지명의 변천과 변화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되며 이러한 연구가 지명학 뿐만 아니라 지리학적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의 고지도 지명 연구는 특정 소지명에 대한 제한적 연구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특정 지역 지명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는 없었다. 지속적으로 고지도에 대한 지명학적 연구의 필요성은 강조되었지만 구체적인 연구가 부족한 현실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대상이 되는 55종의 고지도를 지도별로 검토하면 지도별 지명별로 분류할 수 있으며, 순차적인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전 지명의 정확한 해독이 요구된다. 이러한 해독과정을 통해 지도 제작자의 지명 오류와 전사 오류 등을 발견하고 확인하여 이것을 유형화하고 분석하였다. 이와 함께 규장각 한국학연구소에서 제공되고 있는 해당 지도의 지명 색인 정보를 원지도 지명과 비교를 통해 이를 확인하여 오류를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제공 정보의 정확성을 검토하였다. 본 연구의 대상이 된 자료는 54개의 기장 관련 고지도이며, 여기에 표기된 지명의 종류는 218개이다.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고지도의 지명 표기 오류이다.
첫째, 같은 지명이라도 지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장’의 경우, ‘機張’ 표기가 일반적이지만 다음과 같이 지도에 따라 ‘機長’이라는 지명이 나타난다. 이는 기장의 베풀장(張)이 고정적으로 쓰이는 한자가 아님을 의미하며 지명 어원 해석에 또다른 조건을 제공한다. 불광산(佛光山)의 경우는 표기 오류가 많이 나타나는데, 광(光)을 용(竜)으로 잘못 기록하거나 ‘노(老)’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 또, 불(佛)의 경우도 오표기가 나타난다. 또, 앵림산의 경우, 앵봉산(鸎峯山)으로 잘못 표기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꾀꼬리 앵(鸎)자를 유사한 한자인 ‘鶯’으로 표기한 경우도 나타난다. 원적산의 경우도 약자로 표기하거나 원적산(元寂山)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러한 산명의 한자표기는 거문산에서도 나타나는데, 거문산(巨文山)을 거문산(巨門山)으로 다른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는 문(文)자를 오독하여 대(大)로 오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취봉산(鷲峯山)의 경우 첫음절의 한자를 바꾸어 표기하여 취봉산(就峰山)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둘째 음절의 한자를 오표기하여 취봉산(鷲封山)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취봉산에 있는 절인 취정사(鷲井寺) 역시 첫음절을 오표기 하여 축정사(丑井寺)로 표기하거나 둘째 음절을 오표기하여 취월사(鷲月寺)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한자의 오표기는 산사(山祠)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산(山)’을 ‘상(上)’으로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 한자의 오표기는 원지명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지도를 참고하여 지명을 옮겨적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날음재를 한자로 표기한 ‘비음현(飛音峴)’에서 나타난다. 비음현의 비(飛)자를 용 용(龍)자의 약자로 오해하고, 소리 음(音)자를 지(旨)로 오독하여 잘못 옮이러한 오표기는 선여사(船餘寺)에서도 나타나는데, 배 선(船)자를 신선 선(仙)자로 오표기하거나 남을 여(餘)자를 ‘서(俆)’자로 오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또, 여(餘)자와 동음의 여(余)로 표기하는 경우, 첫음절의 선(船)자를 빼고 ‘여산’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겨서, 용음현, 용지현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용현’이라는 오표기도 나타난다. 지명 한자를 오표기한 경우는 기포(碁浦)에도 나타난다. 기포는 원래 바둑돌이 많이 나오는 포구라는 뜻에서 명명한 지명인데, 이것을 棊, 基로 오표기한 지명이 나타난다. 아이포(阿爾浦)봉수의 경우, ‘이(爾)’자의 약자로 尒로 표기한 ‘아이포(阿尒浦)’를 ‘아리포(阿里浦)’로 표기하거나 ‘아이봉(阿伊烽)’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또, 봉수(烽燧)를 봉봉으로 잘못표기하는 것과 ‘아(阿)’를 ‘하(河)’를 잘못 표기한 경우도 있다. 무지포(無只浦)의 경우에도 이를 동일한 음의 한자인 무지포(武知浦)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며, 무지산(武知山), 모지(毛知)로 오표기한 경우도 나타난다. 이러한 표기는 두모포(豆毛浦)에서도 나타나는데, ‘모(毛)’자를 ‘무(無)’자의 약자로 이해하여 ‘두무포’포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 원래 지명과 전혀 다른 지명으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러한 지명의 변화를 보이는 지명으로 화살포, 항포, 산성, 형산 등이 있다. 먼저 ‘조전리’를 동동전리, 속이전리로 표기한 오류는 일음절 단어인 棗자를 이음절 단어로 보고 ‘동동(東東)’이나 ‘속속(束束)’으로 표기한 오류가 나타난다. 이와는 반대로 이음절 단어인 일광(日光)을 일음절 단어로 오해하여 황(晃)으로 표기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그 외에도 험애를 험조로 표기하거나 형로(衢路)를 형로(衡路)로 표기하거나 백운산을 자운산으로 표기한 지명도 나타난다.
셋째, 한자 표기를 누락한 경우도 있다. 이는 다음절 지명에서 음절을 누락하여 표기하는 경우로 요현(蓼峴)을 요(蓼)로만 표기하거나 상북(上北面)에서 상북(上北)만을 표기하거나 동백포(冬柏浦)에서 동포(冬浦)로 표기하는 경우이다.
넷째, 지명 부류칭을 오표기하는 경우이다. 이는 중북면(中北面)을 중북리(中北里)로 표기하거나 공수원(公須院)을 공수산(公須山)으로 표기하고 비옥포(非玉浦)를 비옥면(非玉面)로 표기한 경우이다.
다음으로 기장 고지도의 색인 서비스 오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자 오판독으로 인한 오류이다. 전체 40개의 오류 중에서 17개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체의 42.5%에 해당한다. 여기서 용지현(龍旨峴)은 원래 날음재의 한역지명인 비음현(飛音峴)이었으나 ‘비’자가 용자의 약자로 오해되어 용으로 표기하였으나 이를 장(章)자로 오해하여 색인표기를 한 경우이다. 또, 아소(阿厼)의 경우, 원래 아이(阿厼)인데, 이는 이(爾)의 약자 이(尒)를 필사한 것이 며(厼)와 유사하게 보인다. 그래서 ‘며’로 읽어야할 것이 아니라 ‘이’로 읽어야 하지만 이를 ‘소’로 읽은 오류이다.
둘째, 한자 속자를 다른 한자로 오해한 경우이다. 이는 세 글자인 ‘器’, ‘無’, ‘壇’, ‘船’의 약자를 오판독하여 생긴 것이다. 기(器)는 물건이나 기기를 뜻하는 것인데, 약자로 쓰면 빛 광과 유사한 글자로 읽기 쉽다. 이것으로 인해 ‘육군기’가 ‘육군광’으로 오독한 경우이고, 기지포도(旡只浦島)는 무(無)의 약자인 ‘旡’를 ‘기(旡)’로 오독하여 나타난 경우이다. 올바른 색인은 ‘무지포도’이다. 사직담(社稷坍)은 단(壇)의 약자 十丹을 坍(담)으로 읽은 경우이고, 강여산(舡餘山)은 배 선(船)자의 속자인 ‘舡’을 ‘강’으로 읽은 것으로 ‘선여산’으로 읽어야 한다.
셋째, 한자음을 잘못 읽은 경우이다. 항관포(項串浦)로 읽은 지명에서 ‘串’은 지명에서 갑(岬)을 뜻하는 경우에는 ‘곶’으로 읽고 ‘꿰다’ 혹은 ‘꼬치’를 뜻할 경우에는 ‘관’으로 읽는데, 여기서는 모두 ‘관’으로 읽은 경우이다. 바로 읽은 것은 항곶포(項串浦)이다.
고지도 지명 표기 중에 탄산, 성산 등 지명 표기를 대상으로 그 변화를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현재 지도에는 ‘주산’, 『기장군지』와 《부산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수령산(繡嶺山)’으로 나타나는 ‘탄산(炭山)’은 기장현의 주산으로 16세기 《동람도》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나타나다가 1870년 《기장읍지》에서 ‘탄산(炭山)’과 ‘수산(繡山)’이 함께 나타난다. 이후 ‘수산’이란 지명은 나타나지 않다가 1904년에 간행된 《기장군읍지》에서 ‘수령(繡嶺)’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이후 산명이 사라졌다가 1957년경에 만들어진 『지방별지명조사철』에 ‘주산(主山)’으로 새롭게 나타나고 이것이 오늘날의 지도명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후 1980년 『한국지명총람』, 2001년 『부산지명총람』에서 ‘주산’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가 2001년 『기장군지』에서 다시 ‘수령산(繡嶺山)’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향토문화전자대전》에 그대로 ‘수령산’으로 나타난다.
다음으로 기장현의 고읍성이 있었던 ‘성산(城山)’은 기장현의 안산이 아닌 관계로 고지도에 나타나지 않다가 1750년에 간행된 《해동지도》에서 ‘탄산’과 함께 처음 나타난다. 이후 18세기 중엽의 《여지도》에서 ‘성산’으로 나타나고 19세기 중엽의 《지도》에서 ‘산성(山城)’으로 표기되어 나타난다. 이후 1870년 『기장읍지』에서 처음 ‘형산(衡山)’이 나타나고 1872년 《지방지도》에서도 그대로 ‘형산’으로 표기되어 나타난다. 이후 1910년에 간행된 『조선지지자료』에서 ‘성산(筬山)’으로 표기가 변화하여 나타나며, 1957년경에 만들어진 『지방별지명조사철』에서 ‘산성(山城)’으로 산명이 바뀌어 현재의 지도에 나타난다. 이것이 1980년에 만들어진 『한국지명총람』에서 그대로 ‘산성’으로 나타나며, 2001년에 간행된 『부산지명총람』에서는 구체적인 지명으로는 등장하지 않다가 2001년의 『기장군지』에서 다시 ‘성산(筬山)’으로 바뀌어 나타나며 이것이 《향토문화전자대전》에까지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