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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구도와 교육-소통의 관점에서 본 플라톤의 <에우튀프론>
Plato’s Euthyphro Examined in the Frame of Tetralogy and from the Perspective of Education and Communication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8-S1A5A2A01-2018S1A5A2A01037259
선정년도 2018 년
연구기간 1 년 (2018년 07월 01일 ~ 2019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강철웅
연구수행기관 강릉원주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제까지 플라톤의 <에우튀프론>은 대체로 정의나 논박 작업의 성격, 중기 형상론과의 관계, 경건 개념 및 소크라테스/플라톤의 종교 사상 내지 종교 비판, ‘에우튀프론의 딜레마’를 둘러싼 신명론(神命論) 및 윤리관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고, 연구되어 온 텍스트도 특정 주요 대목에 편중되어 있다. 이 연구는 <에우튀프론>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하 <변명>으로 줄임), <크리톤>과 ‘3부작’을 이룬다는 구도를 설정하고 그 동안 주목되지 않은 교육과 소통의 관점을 통해 이 작품에 접근하려 시도한다.
    이 3부작의 중심에 놓인 <변명>은 표면적, 형식적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다루고 있지만, 내용적, 심층적으로는 소크라테스와 폴리스 아테네(즉, 아테네 시민들)의 만남, 다시 말해 철학과 정치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양자의 ‘비극적’ 만남은 플라톤이 보기에 근본적으로 서로 엇나가 있는 소통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를 향한 폴리스 아테네의 불만이 표현된 두 죄목, 청년 오도죄와 불경건죄는 후자가 전자의 수단이 되는 관계다. 소크라테스의 불경건은 불경건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 불경건이 청년들에게 미치는 교육적 영향 때문에 문제시된다. 소크라테스의 무신론적 혹은 이단적 믿음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것의 소통과 유포가 문제였다. 이는 다시 <에우튀프론> 3c-d의 시기/인색함 대 인간애의 대비에 의해 조명 받는다.
    <에우튀프론> 내의 극적 진행 자체도 이 작품의 표면적 주제인 경건의 정의 너머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런 새로운 시야는 수많은 논자들이 주목해 온 9a-11b 등 경건의 정의의 내용과 방식을 다루는 ‘주요 대목’들에서 눈을 돌려 작품의 그런 정의 작업들을 이어 주는 ‘이행 대목’들이나 ‘외곽 구절’들을 살펴볼 때 얻어질 수 있다.
    경건의 정의라는 표면적 주제를 넘어 교육과 소통의 관점으로 <에우튀프론>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작품의 통일적 이해에도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기존 해석자들이 집중한 바 있는 문제, 즉 인간의 봉사를 통해 신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무엇인가의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도 이 연구를 통해 얻어내려 한다.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전반부의 ‘인간애’와 후반부의 ‘작품’이 어떻게 통일적으로 연관되는지 분명히 보여 주는 일련의 해석적 체계가 마련될 수 있다.
    사실 서양 학계의 풍부한 논의에 비해 국내 학계의 경우에는 위에 언급한 몇몇 연구 외에 괄목할 만한 전문적 연구가 미흡하다. 선행 연구들은 양적으로는 매우 적지만, ‘주요 대목’에 집중된 서양 학계의 주된 논의 흐름을 뛰어 넘으면서 국내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연구들은 이 작품의 외곽을 이루는 논의들이 그 자체로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지 충분히 보여 주기 전에 다소 성급하게 그것들이 주요 경건 정의 대목들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려 한다.
    <에우튀프론>은 경건을 정의하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 그것은 정의 대화편이고 종교 이야기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것은 3부작이라는 포괄적 기획에 속해 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종교 이야기인 것 같지만 깊숙이는 여전히 교육 이야기요, 종교 담론을 어떻게 나누고 가르칠 것인가의 이야기다. 정치 담론을 어떻게 나누고 모아갈 것인가의 문제는 <크리톤>에서 다루고, 이 두 이야기의 출발점과 문제 제기가 이미 <변명>에서 이루어진 바 있다.
    <에우튀프론>을 교육과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궁극적으로 이 연구는 우리 사회의 담론(특히, 첨예한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는 종교 담론과 정치 담론)에 대한 성찰과 방향 모색의 장을 펼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교육은 소통을, 소통은 교육을 필요로 한다. 소통되는 교육이어야 하고, 교육적인 소통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의미만을, 소통은 재미만을 성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반성 하에서 소통적 교육과 교육적 소통의 모델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데 화두와 출발점을 제공하는 것이 이 연구의 최종 목표다.
  • 기대효과
  •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될 경우 기대할 수 있는 학문적 효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이제까지의 <에우튀프론>에 대한 미시적 접근과 경건의 정의라는 표면적 주제에 집중된 일정한 편향을 극복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플라톤의 작품은 줌 인과 줌 아웃을 반복해 가며 미시, 거시적인 다이내믹한 접근과 작품의 다양한 면모를 다각도에서 조명하는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과의 유기적 연관을 포함한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시야의 확보가 유용하다. 작품간 비교의 위험을 넘어설 수 있도록 유관 작품에 대한 3부작 구도라는 틀의 존재를 설정한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다른 두 작품의 논의를 이 작품에 대한 이해에 활용하는 통로가 확보될 수 있다. 게다가 이 작품에만 미시적으로 착목할 경우 자칫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교육과 소통이라는 관점,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폴리스 아테네의 만남이라는 3부작적 스케일의 구도를 확보함으로써 이 작품의 여러 해석적 난제들을 해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야와 장치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직 <에우튀프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단계에 이르지 못한 우리 학계에서 이 작품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과 후속 논의를 촉발함으로써 주요 메이저 작품들에 집중된 플라톤 연구의 폭을 넓히고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논의 내용에만 집중하던 기성 연구에 비해 내용과 형식 둘 다에 주의를 기울이는 연구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자칫 타성과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기성 연구에 신선한 자극과 화두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학문적 효과를 넘어 사회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와 아테네의 만남이라는 포괄적 기획 하에서 <에우튀프론>을 바라보는 이 연구가 잘 수행된다면,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가 자주 부딪치는 소통의 문제, 즉 확신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열린 자세로 민주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일정한 조망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자기 확신과 열린 대화의 태도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성취할 것인데, 이는 대화 단절과 독선에 사로잡힌 우리 담론 문화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유용한 자극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날로 늘어가는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실천적 삶과 긴밀히 연결된 양질의 성찰 자료를 제공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문학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대중적 관심과 사회적 효용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인문학 수행 모델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자료와 밑거름을 제공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러한 사회적 효과를 염두에 두면서 <에우튀프론>을 교육과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하려는 이 연구는 기존 학계와 대중 사이에 존재할 수도 있는 편향적인 <에우튀프론> 이해 방식, 혹은 더 나아가 고대 지성사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에 일정한 균형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연구가 적절한 변환 과정을 거쳐 보다 쉽고 재미있는 저서나 칼럼, 강연 등 다양한 형태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면, 앞서도 언급한 이분법적이고 유아독존적인 우리 사회의 담론 문화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양질의 인문학적 문화 자산을 대중이 ‘인문학적인 방식’으로 향유하고 소비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인문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 비교적 폭넓게 공유되어 있지만, 어떤 인문학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소비되어야 하는지는 아직 충분히 성찰되지 않았다. 이 연구는 학문적인 중요성이 공감되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회적,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적용 가능성이 높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런 까닭에 연구 성과의 적절한 대중적 변환에 성공한다면, 인문학의 산출 방식만이 아니라 소비 방식 자체에 대해서도 연구 집단이나 대중 양자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 연구가 이 모든 일들을 단숨에 해내리라고 기대할 수는 물론 없지만, 이런 시도들이 축적되고 재미와 의미가 어우러진 인문학 담론들이 산출되고 유통되는 데 중요한 촉매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마지않는다.
  • 연구요약
  • <에우튀프론>을 <변명>, <크리톤>과 긴밀히 연계된 3부작 구도 하의 작품으로 설정하면서 교육과 소통이라는 관점 하에서 조명하려는 이 연구는 핵심적으로 다음과 같은 작업들로 구성된다.
    [작업 1] 작품 분절 확인과 수정: 작품 분절은 해석의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현 단계에서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작품 분절을 상정한다.
    1. 도입 (2a1-5d6)
    2. 경건의 첫째 정의 (5d7-6e10)
    3. 경건의 둘째 정의 (6e11-9b11)
    4. 경건의 둘째 정의 수정 버전 (9c1-11b5)
    5. 막간 논의 (11b6-e6)
    6. 경건의 셋째 정의 (11e7-14a10)
    7. 경건의 넷째 정의 (14a11-15c10)
    8. 결말 (15c11-16a4)
    [작업 2] <에우튀프론>, <변명>, <크리톤>의 상호 인용 구절 탐색과 해석: 세 작품이 서로를 매우 분명하게 지시하는 대목들을 찾고, 그것들을 통해 세 작품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관되는지를 해명한다.
    [작업 3] ‘우리’ 등 무리 지음(grouping) 관련 구절 분석 및 '인간애' 해명: 서두(2a-3d), 6a, 11b, 12e 등에서 지혜를 소유한 엘리트를 지칭하는 ‘우리’ 안으로 소크라테스를 끌어들이려는 에우튀프론과 그 무리 지음에 저항하는 소크라테스가 대비되는 대목을 분석하면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특징 짓는 ‘인간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특히 ‘자신을 내어줌’(heauton parechein)의 의미와 기능이 무엇인지를 해명한다.
    [작업 4] 에우튀프론-소크라테스의 사제 관계 설정과 논박적 대화 과정 분석: 에우튀프론을 ‘동지’(hetairos)라고 칭하면서 가르침을 청하는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컬한 요청 대목들(5c, 6d, 11d, 15e)을 중심으로 선생-제자 역할 전도의 의미와 역할을 탐색하고, 소크라테스가 에우튀프론과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소크라테스적 대화 특유의 두 태도, 즉 논변 소유권을 상대에게 귀속시키는 태도와 공동 탐색의 태도가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이 작품의 교육과 소통이라는 주제를 성취하는가를 해명한다.
    [작업 5] 질문과 사랑(에로스)의 관계가 이 작품에 반영되는 양상의 해명: 막간 논의(11b-e)와 14c 텍스트 문제를 연결하여 다루면서 다수설로 굳어 있는 ‘질문’ 쪽 독법(erōtōnta, erōtōmenōi) 대신 ‘에로스’ 쪽 독법(erōnta, erōmenōi)을 택할 가능성은 없는지 타진한다. [작업 3]에서 다루어진 ‘자신을 내어줌’이 질문과 연결되고 질문은 다시 에로스와 연결됨을 확인한다. ‘트뤼판’(tryphan)을 ‘게으름’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상당히 많은데, ‘탄탈로스의 재산’과 연결하여 이를 에로스 관련 개념으로 이해할 가능성은 없는지를 탐색한다.
    [작업 6] 신들의 ‘작품’에 대한 해명: 이제까지의 탐색 결과를 활용하여 신들의 ‘작품’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시도한다. 그것이 이 작품 도처에서 두 대화자가 자주(6e, 7a, 9c, 14c 등) 언급하고 있는 ‘아름답게 이야기함’(kalōs legein)이나 ‘잘 이야기함’(eu legein)과 연결할 가능성은 없는지 타진한다. 특히 6e, 14c에서는 ‘굉장히 아름답게’(pankalōs)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아름다운 이야기(논변)’는 <크리톤>에서도 두 대화자가 이전의 대화와 합의를 상기하면서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변명>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 가운데 하나인 38a에서도 “날마다 덕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검토하며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좋음이며,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 천명된다. 결국 ‘동지’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신이 인간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내려는 인간애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작업가설 하에 관련 대목들을 검토하고 해명한다. 이 작업을 통해 교육과 소통의 관점으로 <에우튀프론>이 통일적으로 조명될 수 있다는 점이 해명되면서, 동시에 세 작품이 3부작으로 연결되는 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단서도 마련될 수 있게 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경건을 정의하려는 표면적 기획에 관한 한 <에우튀프론>은 정의(定義) 대화편이고 종교 이야기다. 그러나 <변명> 및 <크리톤>과 이루는 3부작적 구도 하에서 보면 그것은 단순한 정의 이야기요 종교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종교와 정의(正義)를 어떻게 나누고 가르칠 것인가를 다루는 소통과 공감 이야기요 교육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지혜 주장을 하는 에우튀프론은 정작 그것의 나눔에 ‘인색’한 반면, 무지 주장을 하는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물음으로써 대화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인간애’를 드러낸다. 소크라테스의 ‘인간애’는 자신의 아포리아에 더해 남들도 자기처럼 아포리아에 빠져 무지 고백자가 되게 ‘만드는’ 소통과 공감의 작업이며, 교육을 자처하지 않는 교육이요, 질문에 능한 자가 베푸는 에로스다. 그의 대화에서 논변의 소유권을 상대에게 귀속시키는 태도와 공동 탐색의 태도가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진다.
    결국 작품 말미에 던져진 신들이 ‘만드는’ ‘굉장히 아름다운 작품’이란 대화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라 할 수 있고, 그것은 그런 신적인 도움 아래 (작품 서두에 언급된) 매우 신적인 어떤 것이라 할 인간애가 발휘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게 이 작품이 일관되게 드러내려는 소크라테스적 소통과 대화의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만드는 담론 세상은 소크라테스의 신에 대한 봉사의 장이자 결과물이며, 결국 소크라테스를 통해 신이 이 땅에 구현하는 ‘굉장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 영문
  • As far as its ostensible project to define piety is concerned, the Euthyphro is a definitional dialogue and a talk on religion. But viewed from the standpoint of its connectedness with Plato's two other works, the Apology and the Crito, it is not just definitional dialogue or a talk on religion but a talk on communication and sympathy and education, i.e. on how we should communicate discourses on religion and justice with others.
    In this work Euthyphro who claims wisdom is sparing with communicating it, while Socrates who claims ignorance reveals his 'self-offering' 'philanthropy' by questioning. Socrates' philanthropy makes him communicate and sympathize with others by 'making' them also get into aporia which he himself already got in. It is an education without claiming it, and an eros offering by a person who is proficient at questioning. In his dialogue the attitude of attributing the ownership of argument to other party and the attitude of cooperative searching coexist harmoniously with each other, and make communication and sympathizing possible.
    The 'immensely beautiful work' which gods 'make' mentioned at the end of the dialogue can be interpreted to be the beautiful talk which participants of dialogue make together, and it is made when philanthropy, a very divine thing mentioned at the beginning of the dialogue, is exercised by a certain divine dispensation. The discursive world which Socrates makes is both the arena and the product of his 'service' to the god, and the 'immensely beautiful work' which the god realizes in this earth through Socrates' servic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경건을 정의하려는 표면적 기획에 관한 한 <에우튀프론>은 정의(定義) 대화편이고 종교 이야기다. 그러나 <변명> 및 <크리톤>과 이루는 3부작적 구도 하에서 보면 그것은 단순한 정의 이야기요 종교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종교와 정의(正義)를 어떻게 나누고 가르칠 것인가를 다루는 소통과 공감 이야기요 교육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지혜 주장을 하는 에우튀프론은 정작 그것의 나눔에 ‘인색’한 반면, 무지 주장을 하는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물음으로써 대화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인간애’를 드러낸다. 소크라테스의 ‘인간애’는 자신의 아포리아에 더해 남들도 자기처럼 아포리아에 빠져 무지 고백자가 되게 ‘만드는’ 소통과 공감의 작업이며, 교육을 자처하지 않는 교육이요, 질문에 능한 자가 베푸는 에로스다. 그의 대화에서 논변의 소유권을 상대에게 귀속시키는 태도와 공동 탐색의 태도가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진다.
    결국 작품 말미에 던져진 신들이 ‘만드는’ ‘굉장히 아름다운 작품’이란 대화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라 할 수 있고, 그것은 그런 신적인 도움 아래 (작품 서두에 언급된) 매우 신적인 어떤 것이라 할 인간애가 발휘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게 이 작품이 일관되게 드러내려는 소크라테스적 소통과 대화의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만드는 담론 세상은 소크라테스의 신에 대한 봉사의 장이자 결과물이며, 결국 소크라테스를 통해 신이 이 땅에 구현하는 ‘굉장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소크라테스와 아테네의 만남이라는 포괄적 기획 하에서 <에우튀프론>을 조명하는 이 연구의 결과물은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가 자주 부딪치는 소통의 문제, 즉 확신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열린 자세로 민주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일정한 조망을 제공하는 자료가 된다. 이 연구가 타진하고 성취하는, 자기 확신과 열린 대화의 태도의 공존 가능성은 (특히 정치와 종교 영역에서) 대화 단절과 독선에 사로잡힌 우리 담론 문화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유용한 자극제로 활용될 수 있고, 아울러 날로 늘어가는 인문학에 대한 시민들의 사회적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실천적 삶과 긴밀히 연결된 양질의 성찰 자료로도 이용될 수 있다. 이는 결국 인문학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대중적 관심과 사회적 효용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인문학 수행 모델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자료와 밑거름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에우튀프론>을 교육과 소통이라는 관점 하에 읽고 조명하려는 이 연구는 기존 학계와 대중 사이에 존재할 수도 있는 편향적인 <에우튀프론> 이해 방식, 혹은 더 나아가 고대 지성사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에 일정한 균형을 제공하려는 의도 하에 기획되었다. 이 연구가 적절한 변환 과정을 거쳐 보다 쉽고 재미있는 저서나 칼럼, 강연 등 다양한 형태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면, 앞서도 언급한 이분법적이고 유아독존적인 우리 사회의 담론 문화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양질의 인문학적 문화 자산을 대중이 ‘인문학적인 방식’으로 향유하고 소비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인문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 비교적 폭넓게 공유되어 있지만, 어떤 인문학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소비되어야 하는지는 아직 충분히 성찰되지 않았다. 이 연구는 학문적인 중요성이 공감되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회적,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적용 가능성이 높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런 까닭에 연구 성과의 적절한 대중적 변환에 성공한다면, 인문학의 산출 방식만이 아니라 소비 방식 자체에 대해서도 연구 집단이나 대중 양자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가 이 모든 일들을 단숨에 해내리라고 기대할 수는 물론 없지만, 이런 시도들이 축적되고 재미와 의미가 어우러진 인문학 담론들이 산출되고 유통되는 데 중요한 촉매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색인어
  • 소통, 공감, 교육, 인간애, 자신을 내어줌, 질문, 에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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