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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射法의 學問的 體系 定立에 대한 硏究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f the Scientific System in the Traditional Archery Technique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박사후국내연수)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8-S1A5B5A01-2018S1A5B5A01029237
선정년도 2018 년
연구기간 2 년 (2018년 07월 01일 ~ 2020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박근
연구수행기관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현재 우리나라의 국궁에게는 세상에 자랑할 만한 두 가지의 기법이 존재한다. 활을 만드는 기법과 활을 쏘는 기법이 그것이다. 반면에 활에 대한 역사적 유물과 射法에 대한 학문은 거의 부재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까지도 생생히 구전심수되고 있는 射法은 우리에게는 전통 활쏘기의 비법이 살아있는 증거이며 자랑거리이지만, 구전심수에만 그치고 학문적인 체계를 갖추지 않는다면, 이는 앞으로 맞이할 활의 발전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는 실증주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활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이 각별하다고 하여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문헌과 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근거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 연구자가 주력하고자 하는 부분은 구전심수되는 射法에 맞추어 사법의 학문적 체계를 정립하는 일이다. 이러한 학문적 체계는 일찍이 중국에서는 여러 차례 실시되었고 소위 射經이라 불리우는 여러 편의 저서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學이 존재한다고 해서 반드시 法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아니지만, 法이 존재하는 곳에는 學은 언제든지 생성될 수 있는 것이다. 法은 뿌리요, 學은 줄기이다. 法이 學에 우선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활쏘기의 法이 지금까지도 생생히 존재하니, 중국의 형식만 남은 射學을 우리의 射法으로 재정립해내게 된다면, 射學은 우리나라에서 재정립되게 될 것이다. 射法이 이미 전승되니 이에 맞추어 射法의 학문적 체계를 정립시키는 일은 순리이다. 단지 조심스러운 부분은 어떠한 체계에 의해 집대성하는가의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활에 있어서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 될 것이다.
    본 연구자는 유불선 사상, 특히 전통 仙脈을 활 속에서 찾아내어 새롭게 활의 가치를 재정립하고자 한다. 이는 본 연구자의 창작이 결코 아니다. 활에 담겨져 있는 심의를 학문적 체계에 맞추어 기술하여, 현재의 변형된 사법 - 개량된 활에 의해 맞추기 놀이에 급급하는 사풍을 쇄신하고, 활로써 도를 싣는 射以載道論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 기대효과
  • 이 연구가 기대한 만큼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면, 우리민족은 수천 년의 세월동안 射法이 전해져 내려오는 만큼, 이에 합당한 사법의 학문적 체계도 보유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활을 만드는 기법을 보유하고 있는, 활의 종주국으로 명실상부하게 될 것이다. 재정립된 사법의 학문적 체계는, 활을 매개로 하여 동양 정신문명의 심의에 도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 할 것이다.
    미루어보건데 앞으로 우리의 국궁은 전 세계적인 스포츠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현재 세계적인 스포츠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골프라고 할 수 있다. 골프가 세계적인 스포츠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테지만,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남녀노소 누구나가 즐길 수 있고, 비경쟁적이며, 자연 친화적이며, 사교적이며, 동작이 쉽고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국궁은 이러한 골프가 가진 장점 외에도 더욱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전 세계 모든 민족은 활에 대한 향수가 있다는 것과 활을 통해 동양의 정신세계를 깊이 체득 할 수 있다는 것과 활 동작 자체의 심오함 등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국궁은 현 시대가 요구하는 많은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국궁은 전 세계적인 스포츠가 될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이때의 사법의 학문적 체계의 재정립은, 우리가 활의 종주국임을 각인시키고, 국궁이 세계적인 스포츠로 나아가게 하는 데에 있어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연구요약
  • 기존의 射學은 유학적 가치이념과 활 쏘는 기법이 섞여져서 만들어 졌다고 볼 수 있다. 가치설정은 유학을 근간으로 하고, 여기에 활의 기법이 서술된 이중적인 구조이다. 기존의 射學에서는 유학적 가치이념이 당위성을 제시하였으나, 이것이 射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는 보기가 어렵다. 이는 사법을 통해 체득되는 양생법(養生法) 혹은 양기법(養氣法) 연기법(鍊氣法), 심법(心法) 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중간 과정이 생략되어 버린 상황에서, 과거의 射學은 다만 형식적인 禮學으로 흘러가 버릴 소지가 많게 되었다.
    또한 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바, 정신적 경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유학적 가치이념이 절대우위인 상황에서 글(文)만으로도 道를 싣는 수단을 삼기에 충분했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활로써 道를 싣는다는 것은 의미를 가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射以載道論은 구전심수의 방법을 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인부전(非人不傳)의 전래적 전수 방법과 문자화 되지 않은 사법은 특히 현시대에 개량된 활이 나오면서 급속히 변형되기 시작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는 개량된 활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가치기준이 서구화되어 전통적 가치기준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활 속에 내재된 의미를 찾는 것보다는 단순히 과녁맞추기 놀이로 활을 인식하는 것이 보편적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제 활 속에 내재된 정신적 가치를 되살리는 일은 현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활에 대한 연구는 옛 문헌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기반으로 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로 우리나라의 사법비전공하, 유예지. 정사론 등과, 두 번째로 중국의 사의, 사경, 무비지, 기효신서, 궁전보, 무경집요, 청대사예총서 등의 문헌을 우선으로 하고 더욱 많은 자료를 구하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이후 세 번째로 동양의 사서오경을 위시한 경전 속에 언급된 활에 관련된 내용을 발취하고, 네 번째로 활의 심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의서(醫書)와 무예서(武藝書) 혹 내단서(內丹書) 등에서 발취하여, 마지막으로 이 세 가지 영역의 문헌을 일정한 체계에 의해 재정립하게 될 것이다. 연구자의 의견은 註를 다는 형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본 결과물은 한문본과 해설본 두 권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2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활이 가진 내재적 특징과 역사적 연원에 대한 실마리와 대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당초에 우리나라에는 활에 대한 문헌적 자료가 없다고 판단하고 연구 설계를 했었던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후에 발굴된 정사론이라는 19세기 말에 쓰여진 사법서는 참으로 우리나라 활의 역사에 있어서는 소중한 자료였다. 여기에 소개된 우리나라의 독자적이며 거대한 사법체계와 정신적 경지에 대한 기술은 중국의 수십권의 사법서를 뛰어넘는다고 판단되었기에, 이에 대한 연원을 밝히는 것이 중요해지게 되었다. 만약 장언식 한명의 창작물이라면 이를 우리 사법의 정통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사론의 연원을 밝히는 것으로 본 연구는 선회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조선 초기, 김숙자의 문집에 실린 「학규」에서 성리학의 전승 텍스트로서 활쏘기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후 김숙자의 아들이자 제자인 김종직에 의해 제도화되고 예식화된 활쏘기인 「향사례」가 전국적으로 보편화되게 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후의 활쏘기는 「향사례」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었다. 또한 성리학의 전승구조로서의 활쏘기는 사화로 인해 성리학의 전승맥이 단절되면서, 활쏘기로 더욱 집약되었을 것이며 이는 제한된 전승방식인 비인부전의 방식을 통해 조선 후기의 『정사론』까지 연결될 것이라는 추론을 하게 되었다. 현재 연구는 여기까지이다. 그러나 전국의 유서깊은 활터를 통해 「향사례」와의 연관성을 검증하여 보았을 때에는 현재의 활터는 과거의 「향사례」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현재 활쏘기의 정통성을 「향사례」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그러나 이는 15세기 말에서 21세기의 오백년이 넘는 세월동안의 변화양상을 추적하지 않고 결론만 연결지어 단언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오백년의 세월동안의 「향사례」의 변화양상과 성리학의 전승구조로서의 활쏘기의 사상적 변화양상을 추적해야 하는 과제가 남은 것이다.
  • 영문
  • Through two years of research, we were able to grasp the clues and outline of the inherent characteristics and historical origin of the Korean bow. There was a big difference in the fact that the research and design of the bow was originally judged to be lacking in literature in Korea. The theory of Jeongsa, which was later discovered, was indeed a valuable resource in the history of Korean archery. It has become important to reveal the origin of our country's independent and massive theoretical system and mental state, as it has been judged to surpass China's dozens of archery theory books. If Jang Eon-sik's creation is a work of art, it cannot be regarded as the orthodoxy of Korean archery. Therefore, the study turned around by revealing the origin of the theory of Jeongsa.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rchery was introduced as the text of the transmission of Neo-Confucianism in Kim Sook-ja's Curriculum, and later it was confirmed that "Hyangsarye," an archery instrument institutionalized and ceremonialized by Kim Jong-jik, became common throughout the countrywide. Therefore, it was inferred that the archery would be related to the "Hyangsarye". In addition, it was inferred that archery as the successor structure of Neo-Confucianism was further concentrated in archery as the chain of succession of Neo-Confucianism was cut off through the "sahwa" and this would lead to the "Jeongsa Theory"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rough limited means. This is the end of the current research. However, based on the verification of its connection with "Hyangsarye" through the historic archery training ground across the country, it was confirmed that the current archery training center is closely related to the past "Hyangsarye". This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the legitimacy of archery can be found in relation to "Hyangsarye". However, this could lead to the fallacy of asserting a conclusion without tracking changes over five hundred years in the late 15th and 21st centuries. Therefore, the task of this study remains to track the changes in "Hyangsarye" over five hundred years and the ideological changes in archery as a successor to Neo-Confucianis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2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활이 가진 내재적 특징과 역사적 연원에 대한 실마리와 대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당초에 우리나라에는 활에 대한 문헌적 자료가 없다고 판단하고 연구 설계를 했었던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후에 발굴된 정사론이라는 활에 대한 문헌은 참으로 우리나라 활의 역사에 있어서는 소중한 자료였다. 우리나라의 독자적이며 거대한 활쏘기체계와 정신적 경지에 대한 기술은 중국의 수십권의 사법서를 뛰어넘는다고 판단되었기에, 이에 대한 연원을 밝히는 것이 중요해지게 되었다. 만약 장언식 한명의 창작물이라면 이를 우리나라 활쏘기의 정통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사론의 연원을 밝히는 것으로 본 연구는 선회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조선 초기, 김숙자의 「학규」에서 성리학의 전승 텍스트로서 활쏘기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후 김종직에 의해 제도화되고 예식화된 활쏘기인 「향사례」가 전국적으로 보편화되게 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후의 활쏘기는 「향사례」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었다. 또한 성리학의 전승구조로서의 활쏘기는 당시의 선비들을 박해하였던 사화로 인해 성리학의 전승맥이 단절되면서, 활쏘기로 더욱 집약되었을 것이며 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심수의 방식을 통해 조선 후기의 『정사론』까지 연결될 것이라는 추론을 하게 되었다. 현재 연구는 여기까지이다. 그러나 전국의 유서깊은 활터를 통해 「향사례」와의 연관성을 검증하여 보았을 때에는 현재의 활터는 과거의 「향사례」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현재 활쏘기의 정통성을 「향사례」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그러나 이는 15세기 말에서 21세기의 오백년이 넘는 세월동안의 변화양상을 추적하지 않고 결론만 연결지어 단언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오백년의 세월동안의 「향사례」의 변화양상과 성리학의 전승구조로서의 활쏘기의 사상적 변화양상을 추적해야 하는 과제가 남은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결과를 통해 우리 활의 실체에 대한 그간의 논의에 대한 일말의 해결을 제시해 주게 되었다. 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활을 쏘는가? 화약무기로 전환한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인데 아직까지도 이러한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체제를 고수하는가? 전국의 380여개의 활터는 도대체 무엇을 계승하고자 하는 것인가? 활을 통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전통 사법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 활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등등의 많은 문제에 대한 전국의 수만 명의 궁사들의 활에 대한 갈증은 실로 대단했다. 인터넷을 달구며 토론의 장이 이어졌고, 동호인을 중심으로 한 연구 단체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에 관한 책도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열기는 답답함만을 양산했을 뿐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전 무과의 관점에서만 활을 접근한 것으로는 갑오경장 이후로 활을 지속하게 되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상황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현대 우리나라의 활쏘기가 가지고 있는 지향점 또한 그 연원이 어디에서부터 인지 설명이 되질 않는다. 따라서 본 연구는 향사례에 대한 김종직의 연구를 통해 이러한 의문에 대한 일말의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간 연구의 결과물은 국궁신문을 통해 지속적으로 국궁인들과 교류가 되어 왔다. 그리고 국궁문화연구회라는 학회를 통해 발표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앞으로의 연구는 점필재 김종직 이후의 향사례의 진행 양상과 그리고 도학의 전승구조로서의 활쏘기가 사상적으로 심화되어 가는 면모를 추적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물은 지속적으로 국궁신문과 국궁학회를 통한 발표를 통해 국궁인들과 공유해 나갈 것이다. 아직은 미완의 연구결과이지만 현재까지의 연구를 통해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타국가와 대별되는 독자적인 우리나라 활쏘기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이는 올해 7월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활쏘기의 정체성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정체성의 확립은 2024년에 진행하고자하는 유네스코의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바탕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 색인어
  • 활쏘기, 정사론, 장언식, 이항, 박영, 김숙자, 김종직, 학규, 향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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