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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식(怯薛) 文書의 분석을 통해 본 14세기 원과 고려의 정치
Yuan and Goryeo Politics at 14th Century through analysis of Kešig documents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 #40;박사후국내연수&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8-S1A5B5A01-2018S1A5B5A01029369
선정년도 2018 년
연구기간 1 년 (2018년 07월 01일 ~ 2019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권용철
연구수행기관 서울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몽골제국은 13~14세기 세계사의 흐름에 획기적인 변동을 일으킨 주체로서 관련된 여러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몽골이 정복 지역의 토착 문화를 수용하고 여기에 흡수된 것과는 별개로 몽골 고유의 제도를 끝까지 유지했다는 점은 몽골제국의 독특한 위상을 정립한다는 측면에서 크게 강조되어 왔다. 그 중에서 대칸의 친위(親衛)라고 정의할 수 있는 케식[怯薛, Kešig] 제도는 정치ㆍ군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을 배출하게 만들었다. 케식 집단을 이끄는 케식長은 칭기스 칸을 호위했던 공신들의 가문에서만 선출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몽골 엘리트 집단의 형성으로 이어졌고, 케식長을 포함한 그 구성원들은 대대로 대칸에 충성을 바치는 집단으로 성장했다. 또한, 카안 이외에도 황후나 황태자 등도 각자의 케식 집단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에 몽골제국에서 일어난 빈번한 계승분쟁의 향배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케식이 핵심 역량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케식의 운영 구조와 그 인원들에 대한 탐색은 곧 몽골제국 정치의 전반적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케식의 중요성은 이미 선구 연구자들의 업적을 통해 여러 측면에서 밝혀져 왔고, 현재까지도 계속 새로운 성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 중에서 연수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케식의 윤번(輪番) 실상이 기록되어 있는 문서이다. 케식은 총 4개조로 나뉘어 3일씩 숙위(宿衛)를 맡게 되는데, 몽골제국에서는 황제의 결정 내용이 들어가 있는 문서에는 황제가 결정을 내린 날짜에 어떤 케식 인원이 숙위를 맡고 있었는지도 기록되어 있었고 이것을 케식 문서라고 지칭한 것이다. 하지만 원대의 문서들에서는 주로 케식들에 관련된 내용은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케식 문서는 100여 건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에서 14세기에 작성된 문서들을 검토하고, 문서가 작성된 각 시기에 활약했던 케식 인원들이 『원사』 등과 같은 자료들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게 되면 그 동안 연구가 미진했던 14세기 원대사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덧붙여 지금까지 발견된 케식 문서 중에 1건이 『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되어 있다. 케식 문서 대부분은 원대의 독특한 몽문직역체(蒙文直譯體)로 서술되어 문서의 송ㆍ수신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해석하는 것이 굉장히 까다롭다. 그래서 『고려사』에 수록된 문서에 대한 현재의 해석 및 번역도 완전하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원대 자료에 보이는 케식 문서와 비교하면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1건의 문서 역시 14세기 중반의 것이기 때문에 당시 고려와 원의 관계 및 전후 고려의 정치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케식 문서에 대한 분석과 해석 검토는 연수자가 다루고자 하는 14세기 원-고려의 역사 전개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연구라고 생각된다.
  • 기대효과
  • 연수자가 계획한 연구가 적절하게 이루어질 경우에는 아래와 같은 세 가지 기대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케식 제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다. 대칸을 최측근에서 호위하며 대대로 충성을 바쳤던 케식 집단이 당시 몽골제국에서 한인, 색목인 관료보다 더욱 깊숙이 정치에 개입할 수 있었던 환경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인물이 케식이라는 제도를 통해 출세하여 활약할 수 있었고 이것이 한문과 이슬람권의 비교적 제한된 기록 속에서도 확인되는 부분을 검토하게 되면 케식의 역할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케식이 전체 몽골제국에서 제국이 사라질 때까지도 존재한 제국 고유의 제도였다는 사실을 밝히게 되면서 케식의 역사적 의미와 위상을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원대의 독특한 문서 체계에 대한 검토에 기여할 수 있다. 원대의 문서 작성 양식이 훗날 명청대의 양식으로 계승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원대의 문서에 대한 분석은 상당히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케식 문서 구조의 분석과 이에 대한 해석 시도를 통해 원대의 몽문직역체로 작성된 문서 체계를 상세하게 검토하면서 차후 『원전장』(元典章), 『지정조격』(至正條格)과 같은 원대의 법률자료에 대한 해독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본 연구가 원대의 여러 문서 자료들에 대한 접근과 검토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고, 차후 다양한 주제를 개발하는 데에 있어 출발점의 역할을 해 줄 것이라 생각된다.
    셋째, 『고려사』의 번역과 해석을 재검토하며 14세기 중반 고려-원 관계의 성격을 밝히는 것이다. 몽골제국과 관련된 용어들이 꽤 많이 기록되어 있는 『고려사』를 해석할 때에는 몽골제국의 용어들과 그 문법을 알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고려사』에 수록된 케식 문서는 그러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즉, 몽골제국 문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려사』를 재해석하여 현재의 한글 번역에서 발견되는 오류를 바로잡고 이와 동시에 케식 문서가 기록된 전후 시기 고려-원 관계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에 구체적인 사례를 제공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 연구요약
  • 연수자는 본 연수 과제를 통해 기존 연구에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은 14세기 중반의 몽골제국과 고려의 정치를 케식 제도의 운영 실태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파악하고자 한다. 케식 운영의 상세한 측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케식 윤번이 기록되어 있는 문서 자료를 검토하면서 몽골제국의 독특한 문서 형식과 구조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이를 해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중국측 자료에 나온 문서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고려사』에 수록된 케식 문서 역시 분석하여 기존의 번역과 비교하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고려 정치사의 일단을 살펴볼 것이다.
    본 연구를 추진하기 위한 방법은 원과 고려 측의 여러 문헌 자료를 검토하는 것이다. 문헌 자료들로는 정사(正史)에 해당하는 『원사』나 『고려사』는 물론이고, 각종 문집과 석각 자료 및 원대의 법률 문서 등이 다방면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또한, 케식 문서의 독특한 문체인 몽문직역체 해석을 위해서는 몽문직역체 문법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 역시 부분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한편, 케식은 몽골제국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이미 세계학계의 관련 연구 성과가 상당 정도로 축적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최신의 연구 성과까지 최대한 흡수하고 특히 케식 문서와 관련된 연구들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도록 한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케식 문서는 100여 건에 달하는데, 본 연수자는 이 중에서 14세기에 나온 것들을 선별하고 어떤 내용이 주로 담겨있는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특히 『고려사』에 수록된 문서가 至正 7년(1347)의 것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근접한 자료들을 집중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1340년대 중반~1350년대 초반에 걸친 시기에 케식 출신으로 주로 활동했던 인물은 누구이며, 그 시기 몽골제국과 고려의 정치적 모습은 어떠했는가를 분석할 것이다. 이 시기에는 원 순제(順帝, 몽골 측에서의 묘호는 혜종(惠宗)))가 친정(親政)을 하면서 나름의 개혁을 추진하던 중이었고, 때마침 고려에 전해진 케식 문서에는 이러한 개혁의 일환으로 설치를 명한 정치도감(整治都監)과 관련된 내용이 기재되어 있어 양국의 개혁적 분위기를 연동시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고에서는 󰡔高麗史󰡕에 기록된 원대 케식문서사료의 해석 및 분석을 바탕으로 그 내용과 의미를 재검토하면서 고려 충목왕 시기 정치도감을 둘러싸고 벌어진 원과 고려의 정국을 살펴보았다. 케식문서사료는 몽골제국의 정치 구조로 인해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公文으로 황제와의 對面을 통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질 때 배석했던 케식 관원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훗날에 이러한 공문들이 편집되어 자료로 편찬될 때에는 늘 케식 관원들의 이름이 나열된 부분은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작 현존하는 케식문서사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완벽히 모든 내용을 담은 문서는 아니지만, 케식문서사료의 형태를 보존한 1건의 자료가 󰡔高麗史󰡕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高麗史󰡕 卷37의 「忠穆王世家」에서 충목왕 4년(1348) 2월 乙未條에 보이는, 원의 중서성에서 고려에 보낸 咨文이 바로 케식문서사료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 문서의 구조에 대한 분석과 번역은 여전히 재검토의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원대 공문에서 사용되었던 독특한 문체인 蒙文直譯體 및 케식문서사료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뒤에 심도있는 분석을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원 중서성의 咨文은 혜종 황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충목왕 3년(1347) 2월에 설치되었던 정치도감이 기삼만 옥사 사건으로 인해 활동이 정지되고 원의 관원들에 의해 정치도감 관원들이 국문을 받은 이후 ‘復置’된 정치도감의 개혁을 지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咨文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을 뿐, 이미 정동행성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정치도감의 개혁을 계속 이끌만한 강력한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치도감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직접 관원을 임명하고 사신을 보내 整治의 여부를 물었던 것과는 달리 혜종은 復置 정치도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결국 중서성을 통한 咨文만이 고려에 전달되었던 것이다. 이는 충목왕 4년(1348)부터 진행된 원과 고려의 정국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었고, 결국 정치도감은 구체적인 개혁을 더 이상 실현시키지 못한 채 폐지되고 말았다. 정치도감의 정치적 의미를 밝히는 데에 있어서 본고에서 분석한 咨文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므로 앞으로도 원대 공문의 문서 구조에 입각한 분석과 재검토가 계속 이루어져서 원과 고려 말기 역사 연구에 일조했으면 한다.
  • 영문
  • This paper reviewed content and meaning of kešig document recorded in History of Goryeo(󰡔高麗史󰡕). And this paper tried to review the interpretation of the kešig document in 1348, and studied the political situation in Mongol-Yuan Empire and Goryeo surrounding Jeongchidogam(整治都監). Kešig document is a unique historical material created by the political structure of the Mongol-Yuan Empire, there are not many existing data. So it is worth noting that this document remains in History of Goryeo.
    This paper raised some questions about the current perception and translation of kešig document recorded in History of Goryeo. In addition, this paper tried to created an instrument for more accurate identification of the related data of Yuan-Goryeo history through correction of errors. It is expected that various perspectives on the analysis of archives and documents of Mongol-Yuan Empire will be made in the future.
    The document analyzed in this paper contains the contents of the reform of Jeongchidogam that was abolished and reestablished in 1347. When Jeongchidogam was first established in February 1347, Yuan Emperor Huizong(惠宗) showed great interest, but this document shows that emperor’s interest in the reestablished Jeongchidogam has diminished. In the end, Jeongchidogam was abolished without concrete reforms. In other words, the document analyzed in this paper is important in revealing the meaning of the Jeongchidoga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고에서는 󰡔高麗史󰡕에 기록된 원대 케식문서사료의 해석 및 분석을 바탕으로 그 내용과 의미를 재검토하면서 고려 충목왕 시기 정치도감을 둘러싸고 벌어진 원과 고려의 정국을 살펴보았다. 케식문서사료는 몽골제국의 정치 구조로 인해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公文으로 황제와의 對面을 통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질 때 배석했던 케식 관원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훗날에 이러한 공문들이 편집되어 자료로 편찬될 때에는 늘 케식 관원들의 이름이 나열된 부분은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작 현존하는 케식문서사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완벽히 모든 내용을 담은 문서는 아니지만, 케식문서사료의 형태를 보존한 1건의 자료가 󰡔高麗史󰡕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高麗史󰡕 卷37의 「忠穆王世家」에서 충목왕 4년(1348) 2월 乙未條에 보이는, 원의 중서성에서 고려에 보낸 咨文이 바로 케식문서사료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 문서의 구조에 대한 분석과 번역은 여전히 재검토의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원대 공문에서 사용되었던 독특한 문체인 蒙文直譯體 및 케식문서사료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뒤에 심도있는 분석을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원 중서성의 咨文은 혜종 황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충목왕 3년(1347) 2월에 설치되었던 정치도감이 기삼만 옥사 사건으로 인해 활동이 정지되고 원의 관원들에 의해 정치도감 관원들이 국문을 받은 이후 ‘復置’된 정치도감의 개혁을 지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咨文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을 뿐, 이미 정동행성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정치도감의 개혁을 계속 이끌만한 강력한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치도감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직접 관원을 임명하고 사신을 보내 整治의 여부를 물었던 것과는 달리 혜종은 復置 정치도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결국 중서성을 통한 咨文만이 고려에 전달되었던 것이다. 이는 충목왕 4년(1348)부터 진행된 원과 고려의 정국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었고, 결국 정치도감은 구체적인 개혁을 더 이상 실현시키지 못한 채 폐지되고 말았다. 정치도감의 정치적 의미를 밝히는 데에 있어서 본고에서 분석한 咨文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므로 앞으로도 원대 공문의 문서 구조에 입각한 분석과 재검토가 계속 이루어져서 원과 고려 말기 역사 연구에 일조했으면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를 통해 도출된 케식문서사료의 분석 및 해석 방법은 주로 원대에 행해졌던 여러 제도들과 행정 절차 등을 검토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다루는 데에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케식문서사료는 公文이고, 원대의 公文은 몽문직역체로 이루어진 경우가 다수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분석과 해석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본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가 차후 또 다른 원대 공문의 해석과 분석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본 연구자는 여전히 원대의 케식문서사료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본 연구에서 시도했던 방식의 해석과 분석은 물론이고 문서사료에 출현하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존재에도 주목하고 있다. 케식長을 포함하여 당시 대원제국 궁정 핵심부에서 활약했던 케식이 누구이며, 이들이 󰡔元史󰡕 등의 원대 자료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출현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 시도했던 방식의 분석은 필수적인 연구 과정이므로 앞으로 더욱 심화된 분석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는 원대 자료를 통해 고려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재 한국사학계에서는 고려-몽골 관계의 다양한 측면과 다채로운 관점들이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는데, 여기에 더하여 세부적인 사실들에 대한 꼼꼼한 분석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고 또한 한 인물의 행적에 대한 검토 역시 상세하게 진행될 필요성을 본 연구를 통해 제기하고 있다. 앞으로 고려-몽골 관계사 연구에서 거시적인 관점의 제시뿐만 아니라 개개의 사건과 인물에 대한 검토가 진행될 때에 본 연구에서 사용했던 분석과 해석의 방식이 연구자들에게 일정한 시사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 색인어
  • 몽골제국, 고려사, 케식, 케식문서사료, 정치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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