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역사교육체계의 형성–국가건설기 고등교육을 중심으로- A Study on Formation of History Education System in North Korea- Focusing on Higher Education in the National Construction Period -
본 연구는 1945~1950년 북한 대학의 역사교육체계와 내용을 분석해 그 이념적 지향과 실제를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북한 정권은 역사교육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였다. 식민주의 역사학의 극복과 함께 사회주의 역 ...
본 연구는 1945~1950년 북한 대학의 역사교육체계와 내용을 분석해 그 이념적 지향과 실제를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북한 정권은 역사교육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였다. 식민주의 역사학의 극복과 함께 사회주의 역사학의 구축과 그에 따른 체계적인 교육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국가건설기 역사교육의 체계와 내용은 한국전쟁, 1950년대 ‘8월전원회의사건’ 등 역사적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그 원형이 유지되었다. 그러므로 국가건설기 역사교육체계는 1950년대에서부터 오늘날의 역사학과 역사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북한 정권은 특히 대학 등 고등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간부의 양성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이에 종합대학과 전문대학을 설립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각급의 역사학 연구진을 동원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의 중요성에 비추어 아직까지 국가건설기의 고등교육체계와 그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교육의 실상은 본격적으로 검토되지 못하였다. 본 연구는 국가건설기 역사교육체계의 형성 과정 속에서 어떠한 이념이 추구되었고, 논의되었는지, 또 그것이 역사교육에 어떻게 반영되었으며 실현되었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기대효과
첫째, 이 연구는 북한의 역사교육이 국가건설과정에서 가지는 의미를 해명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북한의 정치세력은 해방 이후 국가를 건설하면서 독자적인 고등교육체계를 구축하였고, 이를 통해 인텔리를 양성하였다. 고등교육기관을 졸업한 인재들은 사회의 각 부문에 ...
첫째, 이 연구는 북한의 역사교육이 국가건설과정에서 가지는 의미를 해명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북한의 정치세력은 해방 이후 국가를 건설하면서 독자적인 고등교육체계를 구축하였고, 이를 통해 인텔리를 양성하였다. 고등교육기관을 졸업한 인재들은 사회의 각 부문에 배치되어 “민족간부”로 활동하면서 북한을 새로운 국가로 만들어 나가고자 했다. 본 연구는 북한의 정치세력이 만들고자 했던 국가를 역사교육의 측면에서 새롭게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 연구는 북한의 근대화과정을 역사적으로 해명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북한은 식민의 유산과 소련의 영향 아래 근대국가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역사교육은 그 중에서 주민을 국가가 필요로 하는 ‘國民’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 있었고, 그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본 연구는 북한의 내부적 근대화과정을 밝히는 것으로, 향후 북한체제와 근대성의 상관관계를 해명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셋째, 김정은시대 역사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해명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은시대에 들어서 국가건설기의 역사를 공식적인 국가정체성으로 다시 설정하려 하고 있다. 이렇듯 새롭게 수립된 역사관은 향후 북한의 모든 역사교육에도 반영될 것이다. 따라서 국가건설기의 역사교육 연구는 향후 역사교육의 방향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연구요약
본 연구는 북한이 국가건설기에 생산한 1차 자료, 선행연구에서 활용하지 않은 자료를 새로 발굴함으로써 독창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주요 자료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47~1950년 사이에 북조선인민위원회 교육국과 북한 교육성에서 생산한 자료이다. 예컨대 1947년도 ...
본 연구는 북한이 국가건설기에 생산한 1차 자료, 선행연구에서 활용하지 않은 자료를 새로 발굴함으로써 독창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주요 자료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47~1950년 사이에 북조선인민위원회 교육국과 북한 교육성에서 생산한 자료이다. 예컨대 1947년도 김일성대학발령건, 사회교육지도원양성소용 교재 조선역사 등이다. 선행연구에서 일부 언급되었지만 그 내용이 거의 분석되지 않았다. 이렇듯 새로 발굴한 자료를 통해 북한의 교육 당국이 구축한 역사교육의 체계와 내용을 새롭게 해명하고자 한다. 둘째,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진행된 교육과 연구, 교수․학생 자료이다. 檢閱保存 및 (秘)-김일성대학 김일성대학 입학원서 등이다. 이러한 자료는 교육의 외적 체계는 물론이고 교수와 학생의 활동에 주목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교수 이력서와 학생 입학 원서 등의 자료를 활용할 예정이다. 이 연구의 첫 번째 연구주제는 “국가의 수립과 역사교육 체계․정책의 형성”이다. 북한이 국가건설기에 역사교육의 체제와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해명하고자 한다. 특히 북한이 고등교육기관에서 실시한 역사교육 중에서 “반일·애국사상”에 주목하고자 한다. 두 번째 연구주제는 “김일성종합대학의 설립과 한국사 교육”이다. 고등교육체계의 이념과 구조에 유념하면서, 그 안에서 활동한 교육의 여러 주체를 입체적으로 조명해 보고자 한다. 또한 일제시기부터 이어져 온 反식민주의 역사학의 계보와 분화를 드러냄으로써 김일성종합대학의 한국사 연구와 교육이 갖는 사학사적 의미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북한의 정치세력은 해방 직후부터 새로운 국가 건설에 필요한 민족간부를 양성하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49년 9월까지 총 15개의 정규 주간대학이 설립되었고, 대학생은 1947년 당시 6,200명에서 12,300명으로 급증하였다. 해방 이후 북한의 역사교육정책은 일 ...
북한의 정치세력은 해방 직후부터 새로운 국가 건설에 필요한 민족간부를 양성하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49년 9월까지 총 15개의 정규 주간대학이 설립되었고, 대학생은 1947년 당시 6,200명에서 12,300명으로 급증하였다. 해방 이후 북한의 역사교육정책은 일제교육의 잔재를 청산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학교교육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인민학교부터 고급중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교에 역사 과목이 개설되었으며, 고등교육기관의 역사과를 졸업한 인물들이 역사 과목을 담당하였다. 김일성대학과 교원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는 역사문학부와 인민 역사과가 설치되었으며, 세계사와 조선사 과목이 개설되었다. 교과서의 목적은 조선의 문화와 소련의 문화를 결합해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인재의 양성이었다. 학교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개조함으로써 신 국가의 건설에 필요한 새로운 근로자를 만들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역사교육에서 무엇보다 애국주의 교육을 중시하였다. 김일성종합대학의 한국사 연구와 교육이 주목된다. 1957년 발행된 조선사개요(이하 개요)가 주목된다. 개요는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사강좌 교수진의 저술이었다. 교수진의 집단적인 토론을 통해 저술된 대학 창설 10주년의 성과이자 그의 公論이었다. 개요에서는 삼국시기를 조기 봉건사회로 서술했다. 1950년대 중⋅후반 조기 봉건사회설을 지지한 역사학자는 김석형⋅박시형⋅채희국⋅정찬영 등으로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 사학과 출신이었고, 다수가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사강좌 구성원이었다. 이들은 1930년대~해방 전후 조선의 주류 마르크스주의자와 연줄이 이어져 있었다. 조기 봉건사회설은 그들의 상호 작용 속에서 제기되었다. 조기 봉건사회설은 사료비판과 이를 통한 실증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아시아적 특수성을 강조했다. 반봉건의 현실 속에서 소련의 소비에트 제도 수용이란 비약을 지향한 것이다. 이러한 한국사 인식과 전망이 김일성종합대학의 전반적인 분위기이자 조선사강좌가 공유한 학문적 지향으로, 개요에 조기 봉건사회설이 채택된 또 하나의 배경이었다.
영문
Political force of North Korea had a great interest in training of ethnic cadre for building up a new country right after the liberation. By September 1949, a total of 15 regular day universities were established, and the number of students leapt to 1 ...
Political force of North Korea had a great interest in training of ethnic cadre for building up a new country right after the liberation. By September 1949, a total of 15 regular day universities were established, and the number of students leapt to 12,300, which was 6200 in 1947. The history education policy of North Korea after the liberation was to clear up the vestiges of Japanese imperialism education and to promote school education based on Marxism-Leninism historical perception. History courses have been established in all schools from people's schools to senior middle schools, and the graduates from department of history of higher education institutions have taken charge of history courses. Institutions of higher education such as Kim Il Sung University and Pyongyang Teacher Training College established the Department of History literature and the Department of People's History, and opened World History and Joseon History courses. The textbook aims at cultivating talent who could create a new national culture by combining cultures of Joseon and the Soviet Union. This was to create new workers for the construction of a new country by remodeling students' thoughts and worldview through school education. To this end, patriotism education was of paramount importance in history education. The research and education of Korean history at Kim Il Sung University is noteworthy. In addition, An Overview of Joseon History (hereinafter called Overview) published in 1957 is also noticeable. It was written by the faculty members of the Kim Il Sung University. It was an achievement of the 10th anniversary of the foundation of the university and an academic discussion, written through a group discussion of faculty members. In the Overview, the Three Kingdoms period of Korea was described as an early feudal society. The historians who supported early feudal social theory in the mid and late 1950s were Kim Seokhyeong, Park Sihyeong, Chae Huiguk and Jeoung Chanyeong. They were from history department of Keijo Imperial University-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many were members of Joseon History Course at Kim Il Sung University. They were related to mainstream of Marxists from the 1930s to the liberation period. Early feudal social theory was raised through their interactions. It emphasized criticism of historical records and demonstrations, and Asian specificity. This aims at rapid growth through accepting the system of the Soviet Union in anti-feudal circumstance. This perception and prospect of Korean history was the overall atmosphere of Kim Il Sung University and the academic aim shared by the Joseon History courses, which was another ground for adopting early feudal social theory in the Overview.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북한의 정치세력은 해방 직후부터 새로운 국가 건설에 필요한 민족간부를 양성하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7월 7일에 교원대학, 7월 8일에 전문학교․북조선종합대학․의학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로써 북한지역에는 1946년 ...
북한의 정치세력은 해방 직후부터 새로운 국가 건설에 필요한 민족간부를 양성하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7월 7일에 교원대학, 7월 8일에 전문학교․북조선종합대학․의학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로써 북한지역에는 1946년 12월까지 19개의 기술전문학교, 9개의 사범전문학교, 4개의 대학이 설립되었다. 북조선인민위원회는 1948년 7월부터 단과대학을 독립시키는 방식으로 고등교육체계를 개편함으로써 인민경제부흥발전 2개년계획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화된 고등인력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였다. 그 결과 1949년 9월까지 총 15개의 정규 주간대학이 설립되었고, 대학생은 1947년 당시 6,200명에서 12,300명으로 급증하였다. 해방 이후 북한의 역사교육정책은 일제교육의 잔재를 청산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학교교육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인민학교부터 고급중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교에 역사 과목이 개설되었으며, 고등교육기관의 역사과를 졸업한 인물들이 역사 과목을 담당하였다. 김일성대학과 교원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는 역사문학부와 인민역사과가 설치되었으며, 세계사와 조선사 과목이 개설되었다. 교과서의 목적은 조선의 문화와 소련의 문화를 결합해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인재의 양성이었다. 학교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개조함으로써 신 국가의 건설에 필요한 새로운 근로자를 만들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역사교육에서 무엇보다 애국주의 교육을 중시하였다. 이상과 같은 추이와 관련하여 김일성종합대학의 한국사 연구와 교육이 주목된다. 김일성은 종합대학의 창립 과정에서 조선의 언어와 지리와 함께 역사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한국사 연구와 교육이 갖는 비중을 짐작케 한다. 1957년 발행된 조선사개요(이하 개요)가 주목된다. 개요에서는 삼국시기를 조기 봉건사회로 서술했다. 1950년대 전반까지 북한의 주요 통사적 저술에서는 조선사회경제사에서 제시된 백남운의 연구가 통설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1950년대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삼국의 사회구성 및 시대구분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며 백남운의 통설적인 이해가 도전받았다. 개요는 그 중에서 조기 봉건사회설에 입각해 저술된 북한 역사학계의 첫 번째 통사였다. 개요는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사강좌 교수진의 저술이었다. 교수진의 집단적인 토론을 통해 저술된 대학 창설 10주년의 성과이자 그의 公論이었다. 1950년대 중⋅후반 조기 봉건사회설을 지지한 역사학자는 김석형⋅박시형⋅채희국⋅정찬영 등으로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 사학과 출신이었고, 다수가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사강좌 구성원이었다. 이들은 1930년대~해방 전후 조선의 주류 마르크스주의자와 연줄이 이어져 있었다. 조기 봉건사회설은 그들의 상호 작용 속에서 제기되었다. 조선사강좌의 公論으로 개요에 채택된 배경의 하나였다. 해방 이후~1950년대 북한 역사학계의 주축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그룹이었고, 그들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에 비판적이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그룹은 다시 세계사적 보편성을 추구한 그룹과 아시아적 특수성을 강조한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조기 봉건사회설은 후자에서 배태되었다. 조기 봉건사회설은 사료비판과 이를 통한 실증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아시아적 특수성을 강조했다. 반봉건의 현실 속에서 소련의 소비에트 제도 수용이란 비약을 지향한 것이다. 이러한 한국사 인식과 전망이 김일성종합대학의 전반적인 분위기이자 조선사강좌가 공유한 학문적 지향으로, 개요에 조기 봉건사회설이 채택된 또 하나의 배경이었다.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북한의 역사학계는 급변했다. 한국사에서 외부의 영향은 배격되었고, 내재적 발전이 강조되었다. 조기 봉건사회설은 비록 1960년대 전반 정립된 북한 역사학계의 통설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지만, 본래의 의미는 이미 퇴색된 다음이었고, 새로이 제시된 주체사상에 긴박되어 갈 처지였다. 조선사강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