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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정신계몽운동을 통한 식민통치 -1930년대 심전개발(心田開發) 운동을 중심으로 -
Colonial rule through the spiritual enlightenment movement of the Chosun-chongdokbu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Focusing on the Simjeon Development Movement in the 1930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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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8S1A5B5A07072034
선정년도 2018 년
연구기간 1 년 (2018년 09월 01일 ~ 2019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윤기엽
연구수행기관 동국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1930년대 초 농촌경제의 몰락과 이에 따른 농민의 세력화를 막고자 농총진흥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농촌진흥운동이 조선총독부에서 주도한 경제적 측면의 운동이었다면, 이와 함께 정신적 측면의 계몽운동인 심전개발운동(心田開發運動)이 전개되었다. 심전개발운동은 정신계몽운동으로서 식민지 이데올로기 통제책, 또는 사상통제책이었다. 조선인을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는 충성스러운 황국신민(皇國臣民)을 만드는데 목적을 둔 운동이었다. 심전개발운동은 조선총독부의 주도 아래 약 3년간(1935-1937)에 걸쳐 시행된 식민지통치책이기도 하였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것이 갖는 의미는 크다.
    첫째, 심전개발운동은 전시체제에 대비하여 기획한 통치정책이었던 만큼 1937년 이후 전시체제기의 국민정신총동운동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할 연구주제에 해당한다. 둘째, 1930년대 농촌진흥운동(農村振興運動)의 전개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심전개발운동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1935년도에 들어와 농촌진흥운동이 재편되면서 심전운동이 본격적으로 입안(立案)되고 추진되었던 것을 볼 때, 농촌진흥운동과 심전개발운동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셋째, 조선총독부는 심전개발운동을 시행하면서 종교계를 활용하였는데, 특히 불교계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에 당시 불교계도 조선불교가 중흥(中興)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판단하여 적극 동참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1930년대의 중앙 불교계의 주류는 심전개발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넷째, 일제강점기 1930년대 불교 지식인의 친일활동과 행적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심전개발운동은 어느 다른 사건이나 사안보다도 중요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친일활동이나 친일불교의 연구에서, 심전개발운동은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연구는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우선 1925년에 설립된 친일 불교외호단체인 조선불교단(朝鮮佛敎團)의 활동을 주목하고자 한다. 조선불교단은 막강한 국내외의 인사를 배경으로 하여 불교계가 심전개발운동을 통해서 전개한 활동을 이미 상당부분 수행했던 것이다. 1930년대 초반에 구상되어 1935년 조선총독 우가키 가스시게(宇垣一成)의 제안으로 시작된 심전개발운동이 널리 홍보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신문《불교시보(佛敎時報)》의 힘이 절대적이었다.《불교시보》는 심전개발운동의 실제 내용과 전개 과정을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료(史料)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신문에 실린 심전개발운동에 관련된 사설이나 논설에 전반에 대한 내용 파악이나 해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불교시보》에는 불교계 인사를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지식인들의 글이 실린 관계로 심전개발운동은 물론이고, 1930년대 국내의 친일활동의 연구에는 매우 가치 있는 사료가 아닐 수 없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는 먼저 1937년 전쟁 이전 심전개발운동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그것을 의미 있게 부각시키는 만큼, 1930년대 이후의 민족말살정책을 보다 충실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1930년대 심전개발운동과 조선불교계 양자를 떼어놓을 수 없다. 1920-30년대에 활발한 친일활동을 전개한 조선불교단(朝鮮佛敎團)이 주목된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불교단에 대한 연구를 비중 있게 다루어서 그 활동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지리라고 본다. 조선불교단과 심전개발운동의 관계 속에서 당시 불교계의 현황이 보다 폭넓게 조명되리라고 본다.
    1930년대의 심전개발운동은 불교신문《불교시보(佛敎時報)》와 이것을 주관한 포교사 김태흡의 활동이 그 중심에 있었다. 본 연구는《불교시보》에 실린 다양한 글을 통해 특히 김태흡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만큼, 한동안 미루어왔던 친일불교의 문제점과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1930년대 김태흡을 중심으로 한 친일승려의 양산과 당시 불교계의 친일활동에 대한 평가를 보다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리라고 본다.
  • 연구요약
  • 본 연구에서는 먼저 창간 당시 불교계의 유일한 신문인 ≪불교시보≫에 실린(1935-1937년) 심전개발운동 관련의 글을 비중 있게 검토, 분석하도록 한다. 이것은 1930년 대 중반에 전개된 심전개발운동의 실상과 함께 ≪불교시보≫ 창건의 취지와 목적, 연혁 등을 파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 작업에 해당한다. ≪불교시보≫는 매월 1호씩 발행하여 1935년에 5개호, 1936년에 12개호, 1937년 12월까지 12개호를 발행하였다.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불교시보≫는 총 29개호가 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1937년 12월까지 ≪불교시보≫에 실린 사설의 내용을 검토, 분석하여 본 연구의 기초자료로 삼도록 한다. 이것을 통해 심전개발운동에 대한 범주와 실제내용을 파악하고, 이 운동과 불교계와의 관련 내용을 파악하도록 한다. 사설 제목만을 보아서는 심전개발운동과 무관한 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심전개발운동을 다루고 있어서 보다 세심한 분석이 요구된다.
    조선총독부가 심전개발운동을 시행할 때 불교계를 적극 활용하게 된 보다 직접적인 원인을 찾고자 한다. 이것은 심전개발운동과 불교계의 연계성과 후원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관건이 된다. 본 연구에서는 1925년도에 설립된 조선불교단의 활동에 주목할 것이다. 조선불교단의 구체적인 활동을 보면, 조선불교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강화, 내선융화(內鮮融和)정책 보조, 조선인에 대한 사상적 통제 등이었다. 이를 위해 강연회(講演會)와 강습회(講習會) 개최, 기관지 ≪조선불교≫의 발간, 일본 유학생과 견학단 파견, 사회사업의 참여 등이었다. 이러한 활동내용은 심전개발운동에서 전개된 활동과도 매우 유사하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불교≫에 대한 검토를 통해 1930년대 조선총독부와의 조선불교단의 연계성 등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도록 한다.
    또한《불교시보》의 발행인으로서 사설을 쓴 김태흡의 글은 다양한 주제에 걸쳐있지만, 심전개발운동과 관련된 글에 한정하여 연구의 대상으로 할 것이다.《불교시보》에 실린 김태흡의 글은 그의 친일성향과 당시 중앙 불교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불교시보≫는 심전개발운동이 출범한 해인 1935년 8월에 창간되어 매월 1호씩을 발행하는 월간신문으로서 1930년대의 심전개발운동 관련의 글을 많이 게재하였다. 타블로이드 8면으로 발행된 ≪불교시보≫는 1944년 4월 15일 발간된 제105호까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월 1회씩 발간했다. ≪불교시보≫가 창간된 배경에는 일제의 심전개발운동에 동조하는 불교계 정서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1935년부터 출범한 심전개발운동은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에게 국체(國體) 관념을 명확하게 할 것을 비롯해 경신숭조의 사상 및 신앙심을 함양하는 한편 보은·감사·자립의 정신을 양성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불교계는 일제의 이러한 주장과 관련해 간담회를 여는 등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불교시보≫ 사설의 제목을 일별할 때 ≪불교시보≫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매월 1회 발간된 ≪불교시보≫는 심전개발운동 관련 기사가 주류로 등장하였다. 특히 김태흡은 ≪불교시보≫의 사설 외에도 신문 매 호마다 기명으로 논설 형식의 글을 썼다.
    1925년 5월에 창립된 ‘조선불교단(朝鮮佛敎團)’은 그 전신에 해당하는 ‘조선불교대회(朝鮮佛敎大會)’는 1920년 9월에 조직된 불교단체로서 1919년 3.1운동 후 일제의 문화정치가 시작된 시기에 결성되었다. 1925년 5월 재단법인으로 출범한 조선불교단의 임원진은 단장 이윤용, 부단장 한창수․마에다 노부루(前田昇)였다. 그리고 1924년에 재단법인을 설립하는데 실무를 담당한 이원석, 나카무라 겐타로(中村健太郞), 고바야시 겐로쿠(小林源六) 등이 상무이사에 선정되었다. 1925년 재단법인으로 확대, 개편된 조선불교단이 이후 가장 심혈을 기울여 개최한 행사는 전국불교대회인 1929년의 ‘조선불교대회(朝鮮佛敎大會)’를 꼽을 수 있다. 1930년 이후 조선불교단의 근황은 잘 파악되지 않는다. 조선불교단의 소식을 비교적 소상히 전해준 기관지 ≪조선불교(朝鮮佛敎)≫에서 그 소식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선불교단의 활동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조선불교단의 활동 목표는 조선인과 일본의 불교교단 사이를 극복하는데 있었다. 그리고 일본 불교도와 조선 불교도의 교류를 최상의 과제로 삼은 것이었다. 조선불교단은 두 불교교단의 융화를 기본 목적으로 삼고 ≪조선불교≫ 창간호에 “내선의 불교도는 동일한 부처의 제자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보면 조선불교에 대한 영향력 강화, 내선융화 정책 보조, 조선인에 대한 사상적 통제 등이었다. 이를 위해 강연회와 강습회 개최, 기관지 발간, 일본 유학생과 견학단 파견, 사회사업의 참여 등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 내용은 1930년대에 출범한 심전개발운동에서 전개된 활동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우가키 총독의 조선불교단에 대한 관심과 이해, 후원 등은 심전개발운동과의 관련성 여부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 영문
  • The Buddhism Times was published in August 1935, the year the Simjeon Development Movement, was launched, and was published monthly. It published many articles related to the Simjeon Development Movement, in the 1930s. The Buddhism Times, published in eight tabloids, was published once a month without being filtered out to No. 105, published April 15, 1944. In the background of the publication of Buddhism Times, Buddhist sentiment deeply sympathized with the Agrarian Improvement Movement was deep. Since its inception in 1935, the Simjeon Development Movement has called on people who have been deprived of the country to clarify the idea of ​​nationality, to cultivate the spirit and beliefs of god worship, and to foster a spirit of reward, thanksgiving and independence. The Buddhist community has also been actively sympathizing, including holding a roundtable on Japanese imperialism.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Buddhism Times when we summarize the title of the editorial. Once published monthly, Buddhism Times appeared mainly on articles related to the Simjeon Development Movement. In addition to the editorials in the Buddhism Times, Kim Tae-Ab also wrote editorial articles in every issue of the newspaper.
    Founded in May 1925, Joseon Buddhism, the predecessor of the Joseon Buddhism, was a Buddhist organization organized in September 1920. It was formed at the beginning of the later Japanese cultural politics. The executives of the Chosun Buddhism, which was founded in May 1925, were heads of director Yun Yoon-yong, vice-chairman Han Chang-soo and Maeda Noburu. In 1924, Lee Won-seok, Gentaro Nakamura, and Genroku Kobayashi, who were in charge of establishing the foundation, were selected as executive directors. Chosun Buddhism, which was expanded and reorganized as a foundation in 1925, was the most sincerely held event in 1929, the National Buddhism Buddhism. The status of Joseon Buddhism since 1930 is not well understood. This is because it is not easy to find the news in Chosun Buddhism. This means that the activities of Chosun Buddhism have entered a lull. In fact, the goal of Chosun Buddhism was to overcome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ns and Buddhists in Japan. The best task was to exchange Japanese and Korean Buddhists. Chosun Buddhism was based on the consolidation of two Buddhist denominations and published in the first issue of Chosun Buddhism. The activities included strengthening influence on Korean Buddhism, subsidizing internal integration policies, and ideological control of Koreans. To this end, lectures and workshops were held, the publication of the magazine, the dispatch of Japanese students and field trips, and participation in social projects. This series of activities is very similar to the activities developed in the Simjeon Development Movement launched in the 1930s. Ugaki governor's interest, understanding, and support of Chosun Buddhism have been important clues to find out the relationship with the Simjeon Development Movement.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에서는 먼저 창간 당시 불교계의 유일한 신문인 ≪불교시보≫에 실린(1935-1937년) 심전개발운동 관련의 글을 비중 있게 검토, 분석하였다. 이것은 1930년 대 중반에 전개된 심전개발운동의 실상과 함께 ≪불교시보≫ 창건의 취지와 목적, 연혁 등을 파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 작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불교시보≫는 매월 1호씩 발행하여 1935년에 5개호, 1936년에 12개호, 1937년 12월까지 12개호를 발행하였다. 본 연구의 대상이 된 ≪불교시보≫는 총 29개호로 압축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1937년 12월까지 ≪불교시보≫에 실린 사설의 내용을 검토, 분석하여 본 연구의 기초자료로 삼았다. 이것을 통해 심전개발운동에 대한 범주와 실제내용을 파악하고, 이 운동과 불교계와의 관련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설 제목만을 보아서는 심전개발운동과 무관한 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심전개발운동을 다루고 있어서 보다 세심한 분석을 요구했다.
    조선총독부가 심전개발운동을 시행할 때 불교계를 적극 활용하게 된 보다 직접적인 원인을 찾고자 주목했다. 이것은 심전개발운동과 불교계의 연계성과 후원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1925년도에 설립된 조선불교단의 활동에 주목하였다. 조선불교단의 구체적인 활동을 보면, 조선불교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강화, 내선융화(內鮮融和)정책 보조, 조선인에 대한 사상적 통제 등이었다. 이를 위해 강연회(講演會)와 강습회(講習會) 개최, 기관지 ≪조선불교≫의 발간, 일본 유학생과 견학단 파견, 사회사업의 참여 등이었다. 이러한 활동내용은 심전개발운동에서 전개된 활동과도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불교≫에 대한 검토를 통해 1930년대 조선총독부와의 조선불교단의 연계성 등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여 1930년대 조선불교단이 심전개발운동의 참여 여부를 규명할 수 있었다.
    또한《불교시보》의 발행인으로서 사설을 쓴 김태흡의 글은 다양한 주제에 걸쳐있지만, 심전개발운동과 관련된 글에 한정하여 연구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불교시보》에 실린 김태흡의 글은 그의 친일 성향과 당시 중앙 불교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판단하여 그의 글을 통해 불교계의 현실과 친일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먼저 1937년 전쟁 이전 심전개발운동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그것을 의미 있게 부각시키는 만큼, 1930년대 이후의 민족말살정책을 보다 충실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 본다. 그리고 1930년대 심전개발운동과 조선불교계 양자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1920-30년대에 활발한 친일활동을 전개한 조선불교단(朝鮮佛敎團)을 주목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불교단에 대한 연구를 비중 있게 다루어 그들의 활동 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었다. 특히 1930년대 조선불교단의 활동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있었다. 조선불교단과 심전개발운동의 관계 속에서 당시 불교계의 현황이 보다 폭넓게 조명되어 일제강점기 조선불교사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일조하였다고 생각한다.
    1930년대의 심전개발운동은 불교신문《불교시보(佛敎時報)》와 이것을 주관한 포교사 김태흡의 활동이 그 중심에 있었다. 본 연구는《불교시보》에 실린 다양한 글을 통해 특히 김태흡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만큼, 한동안 미루어왔던 친일불교의 문제점과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1930년대 김태흡을 중심으로 한 친일승려의 양산과 당시 불교계의 친일활동에 대한 평가를 보다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판단한다.
  • 색인어
  • 농촌진흥운동, 심전개발운동, 조선총독부, 《불교시보》, 김태흡, 조선불교단, 중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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