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최근 인문학에서의 간학제 연구에 주목하여 전후 맥락을 살펴본다. 인류세는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크루첸(Paul Crutzen)에 의해 제시된 개념으로 인류가 지구의 원래 환경(생태, 대기, 토양 등)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 ...
본 연구는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최근 인문학에서의 간학제 연구에 주목하여 전후 맥락을 살펴본다. 인류세는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크루첸(Paul Crutzen)에 의해 제시된 개념으로 인류가 지구의 원래 환경(생태, 대기, 토양 등)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 시기를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지난 만년 전에서 이천년 전의 지질학적 시기로서 수용되었던 홀로세(Holocene)가 끝나고 인류세에 들어왔다는 입장은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멀게는 인류가 경작을 시작했던 시기부터 크루첸을 포함한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17세기 후반, 18세기부터의 산업혁명 이래로의 지구 전체를 바꾸어 놓는 단일 생명의 강력한 영향력을 의미한다. 물론 이 영향력이란 지구온난화, 멸종을 포함한 생태계 변화, 화학 오염 및 물리적 쓰레기(플라스틱)의 축적, 화석자원(석유) 채굴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인간이 행성 전체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위에서 열거되었듯이 마치 지구가 멸망하거나 돌이킬 수 없게 훼손되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왔고, 이 인류세라는 용어에 함의된 완벽한 부정성은 단순히 지구의 대기, 생태, 지질 등의 추이를 관찰하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자기반성적을 보다 구체적으로 촉구하기 위한 인문학자들의 연합된 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본 연구가 주목하려는 21세기 인문학의 경향이 대두되었다. 기존에 문학, 예술, 철학, 미디어학 등에 천착해왔던 인문학자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행성 전체의 변화를 관찰하고 파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자기반성적 사고를 이끌어기 위해서 지질학, 생물학, 기후학에서부터 사회학, 경영학, 경제학까지 그동안 인문학적 영역에서 생소했던 다른 학문 분야의 개념과 연구들을 횡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포스트식민주의로 잘 알려진 『유럽을 지방화하기』의 저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epesh Chakrabarty)는 2009년 「역사의 기후: 네 가지 테제」라는 글에서 세계화, 자본과 하위주체(subaltern) 연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후기식민주의 이론에 대한 지난 25년 간의 독서가 오늘날 지구의 위기를 이해하게 하는데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기후 변화의 위기가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에 어떻게 도전하도록 만들었고 보통 인문학에서 논하던 인류 보편에 대한 사고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고려했던 역사에서 벗어나서 인류 전체가 지구 환경과 조건에 미친 영향에 유의하여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미디어고고학자 유시 파리카(Jussi Parikka)는 미디어를 지질학의 개념으로 맥락화한다. 지질학과 미디어의 간학제적 연구를 통해 그는 미디어 자체를 아주 구체적인, 땅에서 비롯된 구체적인 광물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광물은 단순히 중립적인 지구의 자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간 힘이 얽히고 설킨 자본주의 착취의 맥락까지 포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즘 학문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도나 해러웨이는 최근 인류세나 자본세 개념 대신 더 급진적인 술루세를 제안한다. 술루세란 지구상의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들과 공동의 삶을 꾸려나가는 친족 만들기, 그리고 그동안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지구를 파괴해 왔던 인간들의 지구 보존을 위한 책임감을 보다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언제나 주류 역사에서 타자로 존재해 온 대상들과의 협력, 대상들 사이의 혼종을 강조한다.
차크라바르티, 파리카, 해러웨이의 공통점은 각각 다른 영역에서(포스트식민주의, 미디어고고학, 페미니즘) 대안을 추구하는, 이론이 어떤 한 쪽으로 쏠리는 중심화, 혹은 이분법을 꾸준히 경계하고 비판하고 거부해 오던 인문학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세라는 용어를 제시한 과학자들, 그리고 행성 전체가 파국을 맞이할 수 있음을 구체적인 수치로 입증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그들 역시 인류의 역할과 책임감에 대해 말함으로써 지구 보전에 일조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그들의 연구로 대표되는 21세기의 인류세 담론, 인문학에서의 간학제적인 방법론은 지구 전체가 파국을 맞이하기 직전에 뒤늦게 스스로 되돌아본 인류가 지구 전체의 당면한 과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한 유일하고 필수불가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들의 간학제적 연구 사례의 분석을 통해 본 연구는 위기에 봉착한 21세기 인문학이 나아갈 방향의 모색의 ‘방법론’과 인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과 실천’이 함께 연합하고 있음을 궁극적으로 강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