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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만남: 페르비스트의 〈타타르 여행기〉를 중심으로
The Encounter of the East and the West: Focusing on F.Verbiest’s “Journey into Tartary”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8S1A5B5A07073109
선정년도 2018 년
연구기간 1 년 (2018년 09월 01일 ~ 2019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최형섭
연구수행기관 서울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17세기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1623-1688)의 〈타타르 여행기(Journey into Tartary)〉를 중심으로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康熙帝(1661-1722)의 모습과 東巡 사건, 滿洲의 다양한 풍경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당시 중국에 전래된 西學이 글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17세기는 여러 측면에서 역사적 전환기이자 흥미로운 시기이다. 국내적으로는 동북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던 만주족이 점차 강대한 세력을 형성하더니 山海關을 넘어 중원을 장악하면서 중국 역사의 주인공이 한족에서 만주족으로 바뀌었다. 국제적으로는 동서 문명의 본격적인 조우가 시작된 시기였다. 그 본격적인 시작은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로부터 비롯되었다. 1582년 마카오에 도착한 그는 萬曆帝(1563-1620)에게 세계지도, 자명종, 프리즘, 성모상 등의 선물을 바치고 1601년 북경 거주 허가를 받았고, 사망 후 葬地와 성당 건물을 하사받았다. 그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복수 문명권과 복수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두 문명권의 지식과 문화유산을 본격적으로 이해, 통합하고자 했던 최초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히라카와 스케히로, 《마테오 리치》, 358쪽 참조) 그의 선구자적 역할 덕분에 이후 롱고바르디(N. Longobardi, 龍華民, 1559-1654), 판토하(Diego de Pantoja, 龐迪我, 1571-1618), 우르시스(Sabbathin de Ursis, 熊三拔, 1575-1620), 테렌츠(Johannes Terrenz, 鄧玉函, 1576-1630), 알레니(Giulio Aleni, 艾儒略, 1582–1649), 디아스(Emmanuel Diaz, 陽瑪諾, 1574-1659), 아담 샬(J. Adam Schall, 湯若望, 1591-1666), 페르비스트 등이 중국 상류층에서 폭넓은 활동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들 예수회 선교사들은 공고하게 유지되던 기존 전통 중국의 지식체계에 일부 균열과 변화의 조짐을 마련하였는데, 그것은 주로 천문, 역법, 수학, 측량, 지리, 화포 등과 같은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필자가 본 연구를 통해 다루어 보고자 하는 인물은 벨기에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로 중국명은 南懷仁이다. 그는 플랑드르 예수회 선교사(Flemish Jesuit missionary)로 1659년 마카오에 도착한 후 1688년 북경에서 사망할 때까지 30년 가까이 중국에서 활동하였다. 萬曆 시기에 마테오 리치, 崇禎(1628-1644)과 順治(1644-1661) 연간에 아담 샬이 있었다면, 페르비스트는 그들을 뒤이어 康熙帝 시기에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다. 그는 강희제의 스승이자 欽天監監正을 거쳐 정2품인 工部侍郞을 역임하였고 65세 사망 후 勤敏이란 시호를 하사받았다. 지리학적인 측면에서 마테오 리치의 《坤與萬國全圖》(1602), 알레니의 《職方外紀》(1623)를 계승하고 있는 그의 《坤輿全圖》(1674)는 중국인들의 세계인식을 바꾸었고, 이후 經緯度를 바탕으로 실제 측량을 거쳐 제작된 《皇輿全覽圖》(1718)가 탄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천문역법에 있어서 그는 아담 샬을 뒤이어 강희8년(1669)부터 欽天監에서 근무하면서 《康熙永年曆》(1678)을 편찬하였고, 오늘날 북경 古觀象臺에 남아있는 천문 관측기구를 새로 제작하였다.
    《淸史稿》권272 ‘열전59’에는 아담 샬과 함께 그에 관한 傳이 기록되어 있고, 紀昀(1724-1805)이 總纂한 《四庫全書總目提要》권71 史部 ‘地理類4’에는 알레니의 《職方外紀》와 함께 그의 《坤輿圖說》에 관한 해제가 수록되어 있으며, 阮元(1764-1849)이 편찬한 《疇人傳》권44에도 그의 생애와 과학적 업적을 소개하는 傳이 있다.
    지금까지 그의 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천문, 역법, 수학, 과학기술 등 과학사 분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종교와 지리, 외교 등과 관련된 연구가 나머지 일부분을 차지하였다. 필자가 본 연구를 통해 다루고자 하는 그의 〈타타르 여행기〉는 1682년 강희제를 수행하여 만주 지역을 여행하면서 쓴 일종의 기행문으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본 연구를 통해 먼저 서양인의 눈에 비친 강희제의 모습과 東巡 사건, 만주의 다양한 풍경들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아가 여행기라는 문학적인 글을 통해 당시 중국에 전래된 서학이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의 페르비스트에 대한 이해와 연구영역을 확대하고, 17세기 동서 문화교류의 구체적인 한 단면을 파악하는데도 유익한 내용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기대효과
  • (1) 연구결과의 학문적 기여
    본 연구는 17세기 페르비스트의 〈타타르 여행기〉를 중심으로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강희제와 그의 東巡 장면, 만주의 풍경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당시 중국에 전래된 西學이 글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본 연구가 가지는 의미는 우선, 국내 학계에서 아직 다루어진 바 없는 새로운 자료를 소개함으로써 동서 문화 교류 연구에 일부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문건에는 서구인의 눈으로 본 강희제의 모습, 황제의 순행 과정과 의식 행사, 만주족의 사냥 장면, 만주의 풍속과 지리, 조선 사절단의 모습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통해 17세기 중국을 조금은 색다른 관점에서 이해하는 동시에, 동서양 문화가 조우하는 구체적인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금까지 페르비스트에 관한 연구는 천문, 역법, 수학, 과학기술 등 과학사 분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종교와 지리, 외교 등과 관련된 연구가 나머지 일부분을 차지하였다. 본 연구는 그가 남긴 문학적인 텍스트인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그에 관한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지금까지 페르비스트에 대한 연구영역을 보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 본 연구는 한국학 분야에도 일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의 글 가운데는 〈타타르 여행기〉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조선과 관련된 자료들이 상당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북쪽과 동쪽 타타르(Noord en oost Tartaryen)》(1705)를 훑어보다 보니, 42쪽 이후로 ‘Korea’라는 전문 세션을 마련하여 당시 조선에 대한 정보를 수록해 놓은 부분이 있었고, 뒷부분 ‘색인’에도 ‘Korea’(p. 2, 28, 29, 42, 43, 44, 46, 49, 60, 62, 106, 153, 260)라는 용어에 적잖은 관련 페이지가 적혀 있었다. 언어상의 제약으로 상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이런 자료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하멜(Hendrik Hamel, 1630-1692) 시대 네덜란드가 이해하고 있던 조선에 대해서도 보다 명확히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2) 연구결과의 사회 교육적 활용 방안
    오늘날 우리는 20세기와는 확연히 다른 그야말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 문명과 경제 수준의 발달로 국가 간의 거리는 좁혀지고 왕래는 더욱 빈번해졌다. 인터넷과 SNS, 스마트폰의 출현은 실시간 네트워크가 가능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또한 국제결혼도 빈번해져서 주변에서 이른바 다문화가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서인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과 한국문화, 한국인의 눈에 비쳐진 외국인의 가치관과 생활습관 등을 다루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상당수 발견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페르비스트의 만주 여행기는 쉽게 말하면 17세기 유럽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의 약간은 낯선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황제의 순행 의식과 결부되어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여행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그 속에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와 종교, 사유방식의 차이와 같은 비교적 심오한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 다루는 내용은 이처럼 딱딱하고 전문적인 학술 영역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강좌나 시민강좌의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본 연구는 대학의 전공 및 교양과정 수업의 일부 내용으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여행기’를 주제로 하는 내용의 강좌에서 동양과 서양의 여행기 비교, 서구인의 눈으로 본 중국 등을 다룬다고 할 때 〈타타르 여행기〉는 《동방견문록》등과 함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서 문화 교류의 역사와 관련된 수업에서도 비교적 평이하면서도 다루는 내용은 17세기 동양과 서양의 사회 문화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중요한 문건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문화 관광 답사와 관련이 있는 수업일 경우 청대 당시 황제의 東巡 루트와 규모, 衣食住, 매일매일의 이동 거리와 방문한 유적지, 주요 행사,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만주어 지명들 등 본 연구는 흥미로운 자료들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17세기 페르비스트의 〈타타르 여행기〉를 중심으로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강희제의 모습과 東巡 사건, 만주의 다양한 풍경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당시 중국에 전래된 西學이 글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페르비스트는 1682년 3월 23일 강희제를 수행하여 산해관 너머 遼東 지역을 거쳐 沈陽 및 吉林까지 갔다가 6월 9일 밤 북경으로 되돌아오기까지 79일 간의 멀고도 긴 여행을 하였다. 필자는 편의상 이와 관한 내용을 기록한 문건을 〈타타르 여행기(Journey into Tartary)〉라고 명명하였는데, 이는 “a journey into Eastern Tartary”라는 영문본 표현 일부를 차용한 것이다. 이 문건은 1686년 유럽에서 프랑스어본이 처음 간행되었고, 1692년 네덜란드어본이 나왔다. 그리고 필자가 텍스트로 삼은 영문본은 네덜란드어본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으로 1854년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본 연구에서 필자는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관방의 史料인 《淸聖祖實錄》, 《康熙起居注》을 비롯하여 한족 문인 관료인 高士奇(1645-1704)가 남긴 《扈從東巡日錄》과 비교해서 읽는 방법을 통해 〈타타르 여행기〉의 특징과 성격을 보다 뚜렷하게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 내용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강희제와 페르비스트의 관계에 대해서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르비스트의 생애와 활동, 강희제와의 특별한 인연, 강희제의 서학에 대한 관심과 문화정책 등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여행기 곳곳에서도 강희제에 대한 묘사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와 함께 《淸史稿》列傳과 《疇人傳》의 기록, 《熙朝崇正集熙朝定案(外三種)》등을 참고하여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또한 필자가 〈타타르 여행기〉라고 명명한 문건의 끝부분에는 여행기와는 약간 별도로 니콜라스 위센의 메모노트(note)라고 하면서 당시 서구인들이 묘사해 놓은 강희제의 肖像에 관한 희귀한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같이 참고하고자 한다.
    둘째, 〈타타르 여행기〉의 전반적인 내용 구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행하게 된 계기와 배경, 황제의 순행과 사냥 장면, 정치적인 주요 의식, 동만주와 북만주의 주택과 풍토, 조선 사절단에 대한 묘사, 길림(Kirin)과 울라(Ula, 烏喇) 지역 시찰 등 전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구성 안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당시 영문본 지명 표기를 병기하여 전체적인 여행 루트를 지도로 구현해 볼 예정이다.
    셋째, 당시 중국에 전래된 西學이 여행기 속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천문, 지리, 종교 등과 관련된 기술을 중심으로 그것이 당시 ‘西學東漸’의 역사 속에서 어떤 맥락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글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의 페르비스트에 대한 이해와 연구영역을 확대하고, 17세기 동서 문화교류의 구체적인 한 단면을 파악하는데도 유익한 내용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1623-1688)의 <타타르 여행기(Journey into Tartary)>를 중심으로 동서 문명 교류의 구체적인 실태와 양상을 살펴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페르비스트는 오늘날 벨기에 영토인 피템(Pittem)에서 태어났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그곳은 스페인령 네덜란드(1556-1713)에 속해 있었다. 1640년 그는 루뱅가톨릭대학(Catholic University of Leuven)에 입학했지만, 1641년 대학을 중퇴하고 예수회에 가입하였다. 중국 선교를 목적으로 1659년 그는 마카오에 도착하였고 섬서성 서안에서 선교하였다. 1660년 아담 샬(1591-1666)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는 북경에 와서 欽天監에서 같이 근무하였다. 1660년대에 발생한 선교사 박해 사건 때 그는 어린 황제 康熙帝(1661-1722)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면서 황제와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는 강희제의 스승이자 欽天監을 책임지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 다루는 <타타르 여행기>는 유럽에서 여러 언어로 간행되었다. 페르비스트는 이 글에서 1682년 강희제를 수행하여 만주 지역을 답사한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문건은 강희제의 東巡 목적과 루트, 규모, 황제의 사냥 장면, 만주의 다양한 풍경 등이 기술되어 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이 문건은 우선 그동안 공백상태에 있던 방대한 만주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유럽인들에게 새롭게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를 들면 심양, 길림, 울라, 녕고탑 등과 같은 생소한 도시의 지리 역사적 정보가 기술되어 있어, 아시아 동북 지역에 대한 세계지도의 공백을 메울 수 있게 되었다. 이 문건은 또한 동서양 사람들의 언어 교류의 실제적인 양상과 두 문명권의 상이한 교육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연결고리와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17세기 이래 본격적으로 전래된 서학이 중국에 미친 영향은 아편전쟁 이전까지 매우 제한적이고 미미한 것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학계의 일반적인 주장일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중국에 전래된 서학에 관한 연구가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사실 그렇게 전면적이고 깊이있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서학에 관한 보다 전면적이고 깊이있는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진다면, 언젠가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새로운 평가가 내려질 날도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영문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actual situations and aspects of East-West civilization exchanges, focusing on Ferdinand Verbiest(1623-1688)’s “the Journey into Tartary”. F.Verbiest was born in today's Belgian territory Pittem. But when he was active, it belonged to the Spanish Netherlands(1556-1713). In 1640 he entered the Catholic University of Leuven, but in 1641 he dropped out of college and joined the Jesuits. In 1659, he arrived in Macau for mission in China and he was a missionary in Xi'an of Shaanxi province. In 1660, he accepted Adam Schall(1591-1666)’s request and came to Beijing, where he worked together in Imperial observatory(欽天監). During the missionary persecution in the 1660s, he saved his life with the help of the young emperor, Kangxi Emperor(1661-1722), so had a special relationship with the emperor. He was the teacher of Kangxi Emperor and was in charge of Imperial observatory.
    “The Journey into Tartary” covered in this study were published in several languages ​​in Europe. In his writing, F.Verbiest recorded a historical event in 1682 which he explored Manchuria in the suite of the Kangxi Emperor. This document described the purpose of the Kangxi’s journey, route, scale, hunting scenes of the emperor, and various landscapes of Manchuria etc. According to my research, first of all, this document is meaningful in that detailed information about the vast Manchuria that had been vacant became newly known to Europeans. For example, geographical and historical informations of unfamiliar cities such as Shenyang, Jilin, Ula, and Ningguta etc were described, which could fill the gap of world map of Northeast Asia. This document was also valuable in the fact that we can find actual aspects of language exchanges between East and West people, and can find efforts to detect links and contacts in the different education institutions and systems between the two civilizations.
    It must have been the general argument of academia so far that the influence of Western Learning on China Since the 17th century had been very limited and insignificant until the Opium War. However, on the other hand, it is difficult to deny that the study of Western Learning transferred to China has not been so thoroughly and deeply conducted not only in Korea but also in China. If a more thorough and in-depth study of the Western Learning is made in the future, we may hope that one day a new evaluation will be made which is quite different from the present.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17세기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1623-1688)의 〈타타르 여행기〉를 중심으로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康熙帝(1661-1722)의 모습과 東巡 사건, 만주의 다양한 풍경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당시 중국에 전래된 西學이 글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페르비스트는 1682년 3월 23일 강희제를 수행하여 山海關 너머 遼東 지역을 거쳐 沈陽 및 吉林까지 갔다가 6월 9일 밤 북경으로 되돌아오기까지 79일 간의 멀고도 긴 여행을 하였다. 필자는 편의상 이와 관한 내용을 기록한 문건을 〈타타르 여행기(Journey into Tartary)〉라고 명명하였는데, 이는 “a journey into Eastern Tartary”라는 영문본 표현 일부를 차용한 것이다. 이 문건은 1686년 유럽에서 프랑스어본이 처음 간행되었고, 1692년 네덜란드어본이 나왔다. 그리고 필자가 텍스트로 삼은 영문본은 네덜란드어본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으로 1854년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본 연구에서 필자는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관방의 史料인 《淸聖祖實錄》, 《康熙起居注》을 비롯하여 한족 문인 관료인 高士奇(1645-1704)가 남긴 《扈從東巡日錄》과 비교해서 읽는 방법을 통해 〈타타르 여행기〉의 특징과 성격을 보다 뚜렷하게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 내용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강희제와 페르비스트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페르비스트의 생애와 활동, 강희제와의 특별한 인연, 강희제의 서학에 대한 관심과 문화정책 등을 고찰하였다. 여행기 곳곳에서도 강희제에 대한 묘사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와 함께 《淸史稿》 列傳과 《疇人傳》의 기록, 《熙朝崇正集熙朝定案(外三種)》 등을 참고하였다. 또한 필자가 〈타타르 여행기〉라고 명명한 문건의 끝부분에는 여행기와는 약간 별도로 니콜라스 위센(Nicolaas Witsen, 1641-1717)의 메모노트(note)라고 하면서 당시 서구인들이 묘사해 놓은 강희제의 肖像에 관한 희귀한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내용도 같이 참고하였다.
    둘째, 〈타타르 여행기〉의 전반적인 내용 구성을 살펴보았다. 여행하게 된 계기와 배경, 황제의 순행과 사냥 장면, 정치적인 주요 의식, 동만주와 북만주의 주택과 풍토, 조선 사절단에 대한 묘사, 길림(Kirin)과 울라(Ula, 烏喇) 지역 시찰 등 전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구성 안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전체적인 여행 루트를 지도로 구현해 시각적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셋째, 당시 서학이 중국에 전래되고, 동서양 문화가 교류되는 역사 속에서 <타타르 여행기>가 어떠한 위치에 있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인지를 살펴보았다. 이 부분에서는 특히 서양인들이 지리적으로, 세계지도에서 만주를 ‘발견’하여 인식이 구체화되는 과정을 추적해 보았으며, 동서양 언어와 교육제도가 여행기 속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의 페르비스트에 대한 이해와 연구영역을 확대하고, 17세기 동서 문화교류의 구체적인 한 단면을 파악하는데도 일부 기여하는 바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결과의 학문적 기여
    본 연구는 17세기 페르비스트의 〈타타르 여행기〉를 중심으로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강희제의 모습과 東巡 사건, 만주의 풍경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당시 중국에 전래된 西學이 글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본 연구가 가지는 의미는 우선, 국내 학계에서 아직 다루어진 바 없는 새로운 자료를 소개함으로써 동서 문화 교류 연구에 일부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문건에는 서구인의 눈으로 본 강희제의 모습, 황제의 순행 과정과 의식 행사, 만주족의 사냥 장면, 만주의 풍속과 지리, 조선 사절단의 모습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통해 17세기 중국을 조금은 색다른 관점에서 이해하는 동시에, 동서양 문화가 조우하는 구체적인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금까지 페르비스트에 관한 연구는 천문, 역법, 수학, 과학기술 등 과학사 분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종교와 지리, 외교 등과 관련된 연구가 나머지 일부분을 차지하였다. 본 연구는 그가 남긴 문학적인 텍스트인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그에 관한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지금까지 페르비스트에 대한 연구영역을 보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 본 연구는 한국학 분야에도 일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의 글 가운데는 〈타타르 여행기〉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조선과 관련된 자료들이 상당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북쪽과 동쪽 타타르(Noord en oost Tartaryen)》(1705)를 훑어보다 보니, 42쪽 이후로 ‘Korea’라는 전문 세션을 마련하여 당시 조선에 대한 정보를 수록해 놓은 부분이 있었고, 뒷부분 ‘색인’에도 ‘Korea’(p. 2, 28, 29, 42, 43, 44, 46, 49, 60, 62, 106, 153, 260)라는 용어에 적잖은 관련 페이지가 적혀 있었다. 언어상의 제약으로 상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이런 자료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하멜(Hendrik Hamel, 1630-1692) 시대 네덜란드가 이해하고 있던 조선에 대해서도 보다 명확히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2) 연구결과의 사회 교육적 활용 방안
    오늘날 우리는 20세기와는 확연히 다른 그야말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 문명과 경제 수준의 발달로 국가 간의 거리는 좁혀지고 왕래는 더욱 빈번해졌다. 인터넷과 SNS, 스마트폰의 출현은 실시간 네트워크가 가능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또한 국제결혼도 빈번해져서 주변에서 이른바 다문화가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서인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과 한국문화, 한국인의 눈에 비쳐진 외국인의 가치관과 생활습관 등을 다루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상당수 발견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페르비스트의 만주 여행기는 쉽게 말하면 17세기 유럽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의 약간은 낯선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황제의 순행 의식과 결부되어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여행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그 속에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와 종교, 사유방식의 차이와 같은 비교적 심오한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 다루는 내용은 이처럼 딱딱하고 전문적인 학술 영역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강좌나 시민강좌의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본 연구는 대학의 전공 및 교양과정 수업의 일부 내용으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여행기’를 주제로 하는 내용의 강좌에서 동양과 서양의 여행기 비교, 서구인의 눈으로 본 중국 등을 다룬다고 할 때 〈타타르 여행기〉는 《동방견문록》등과 함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서 문화 교류의 역사와 관련된 수업에서도 비교적 평이하면서도 다루는 내용은 17세기 동양과 서양의 사회 문화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중요한 문건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문화 관광 답사와 관련이 있는 수업일 경우 청대 당시 황제의 東巡 루트와 규모, 衣食住, 매일매일의 이동 거리와 방문한 유적지, 주요 행사,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만주어 지명들 등 본 연구는 흥미로운 자료들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남회인(南懷仁), 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강희제(康熙帝), 만주(滿洲), 타타르(Tartary), 17세기, 서학(西學), 지리, 예수회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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