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7세기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1623-1688)의 〈타타르 여행기(Journey into Tartary)〉를 중심으로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康熙帝(1661-1722)의 모습과 東巡 사건, 滿洲의 다양한 풍경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당시 중국에 전래된 西學이 글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 ...
본 연구는 17세기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1623-1688)의 〈타타르 여행기(Journey into Tartary)〉를 중심으로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康熙帝(1661-1722)의 모습과 東巡 사건, 滿洲의 다양한 풍경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당시 중국에 전래된 西學이 글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17세기는 여러 측면에서 역사적 전환기이자 흥미로운 시기이다. 국내적으로는 동북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던 만주족이 점차 강대한 세력을 형성하더니 山海關을 넘어 중원을 장악하면서 중국 역사의 주인공이 한족에서 만주족으로 바뀌었다. 국제적으로는 동서 문명의 본격적인 조우가 시작된 시기였다. 그 본격적인 시작은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로부터 비롯되었다. 1582년 마카오에 도착한 그는 萬曆帝(1563-1620)에게 세계지도, 자명종, 프리즘, 성모상 등의 선물을 바치고 1601년 북경 거주 허가를 받았고, 사망 후 葬地와 성당 건물을 하사받았다. 그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복수 문명권과 복수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두 문명권의 지식과 문화유산을 본격적으로 이해, 통합하고자 했던 최초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히라카와 스케히로, 《마테오 리치》, 358쪽 참조) 그의 선구자적 역할 덕분에 이후 롱고바르디(N. Longobardi, 龍華民, 1559-1654), 판토하(Diego de Pantoja, 龐迪我, 1571-1618), 우르시스(Sabbathin de Ursis, 熊三拔, 1575-1620), 테렌츠(Johannes Terrenz, 鄧玉函, 1576-1630), 알레니(Giulio Aleni, 艾儒略, 1582–1649), 디아스(Emmanuel Diaz, 陽瑪諾, 1574-1659), 아담 샬(J. Adam Schall, 湯若望, 1591-1666), 페르비스트 등이 중국 상류층에서 폭넓은 활동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들 예수회 선교사들은 공고하게 유지되던 기존 전통 중국의 지식체계에 일부 균열과 변화의 조짐을 마련하였는데, 그것은 주로 천문, 역법, 수학, 측량, 지리, 화포 등과 같은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필자가 본 연구를 통해 다루어 보고자 하는 인물은 벨기에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로 중국명은 南懷仁이다. 그는 플랑드르 예수회 선교사(Flemish Jesuit missionary)로 1659년 마카오에 도착한 후 1688년 북경에서 사망할 때까지 30년 가까이 중국에서 활동하였다. 萬曆 시기에 마테오 리치, 崇禎(1628-1644)과 順治(1644-1661) 연간에 아담 샬이 있었다면, 페르비스트는 그들을 뒤이어 康熙帝 시기에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다. 그는 강희제의 스승이자 欽天監監正을 거쳐 정2품인 工部侍郞을 역임하였고 65세 사망 후 勤敏이란 시호를 하사받았다. 지리학적인 측면에서 마테오 리치의 《坤與萬國全圖》(1602), 알레니의 《職方外紀》(1623)를 계승하고 있는 그의 《坤輿全圖》(1674)는 중국인들의 세계인식을 바꾸었고, 이후 經緯度를 바탕으로 실제 측량을 거쳐 제작된 《皇輿全覽圖》(1718)가 탄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천문역법에 있어서 그는 아담 샬을 뒤이어 강희8년(1669)부터 欽天監에서 근무하면서 《康熙永年曆》(1678)을 편찬하였고, 오늘날 북경 古觀象臺에 남아있는 천문 관측기구를 새로 제작하였다.
《淸史稿》권272 ‘열전59’에는 아담 샬과 함께 그에 관한 傳이 기록되어 있고, 紀昀(1724-1805)이 總纂한 《四庫全書總目提要》권71 史部 ‘地理類4’에는 알레니의 《職方外紀》와 함께 그의 《坤輿圖說》에 관한 해제가 수록되어 있으며, 阮元(1764-1849)이 편찬한 《疇人傳》권44에도 그의 생애와 과학적 업적을 소개하는 傳이 있다.
지금까지 그의 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천문, 역법, 수학, 과학기술 등 과학사 분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종교와 지리, 외교 등과 관련된 연구가 나머지 일부분을 차지하였다. 필자가 본 연구를 통해 다루고자 하는 그의 〈타타르 여행기〉는 1682년 강희제를 수행하여 만주 지역을 여행하면서 쓴 일종의 기행문으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본 연구를 통해 먼저 서양인의 눈에 비친 강희제의 모습과 東巡 사건, 만주의 다양한 풍경들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아가 여행기라는 문학적인 글을 통해 당시 중국에 전래된 서학이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의 페르비스트에 대한 이해와 연구영역을 확대하고, 17세기 동서 문화교류의 구체적인 한 단면을 파악하는데도 유익한 내용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