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루시앙 골드만(Lucien Goldmann)은 예술과 사회변혁의 의존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오늘날의 예술이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인 사회의 물화(reification) 현상과 영합하는 데 주목하고, 예술을 빌려 사회의 ‘탈물화(to irreify)를 지향할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다 ...
프랑스의 루시앙 골드만(Lucien Goldmann)은 예술과 사회변혁의 의존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오늘날의 예술이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인 사회의 물화(reification) 현상과 영합하는 데 주목하고, 예술을 빌려 사회의 ‘탈물화(to irreify)를 지향할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 시대의 예술이 걸어야 할 휴머니즘을 환기하였다.
1. 후기산업사회를 맞아 초개인적·정신적 가치들이 절하되고 이것들이 한낱 교환가치(exchange value)로 추락함에 즈음해, 문화예술이 이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서는 안 되며, 이를 막기 위해 사회의 물화(reification)를 비판해야 한다.
2. 예술은 이를 위해 사회의 물화와 상이한 방향을 지향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집단의 올바른 정신적 가치를 견인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회의 물화에 저항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예술은 사회를 휴머니즘의 방향으로 견인할 수 있다.
3. 오늘의 예술이 긍정적 주인공(positive hero)을 다룰 수 없게 된 건 정신적 가치가 교환가치로 전락하고 항상적인 가치가 부정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주인공을 부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4. 궁극적으로 오늘의 예술은 이를 빌려, 정신적 가치의 소멸과 보편적 인격의 몰락을 서술하고, 그 부산물로서 개인의 소멸과 죽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초개인적 가치를 복원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골드만의 제안처럼, 예술은 후기산업사회가 용인한 인간성의 물화를 비판하고 부정적 주인공(negative hero)을 끝없이 생산하고 있디. 바로 이 지점에서 불쾌의 감성학이 지니는 형이상학적 메시지가 생성된다. 그동안 한국의 정서적·문화적 풍토 안에서 예술로서의 ‘불쾌의 이미지’는 미학적, 윤리적 일탈이라는 부정적 평가에 늘 직면해 있었다. 본 연구는 불쾌의 감정을 동반하는 예술작품에 대한 감성적 판단 기준을 점검·수정하고, 그 안에 담긴 고도의 휴머니즘과 유익한 정신적 가치를 함양했다는 측면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본 연구는 학술적·비평적 의미에서 크게 두 가지의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첫째,
불쾌를 동반하는 작품들이 표현하는 노골적인 페티시(Fetish)와 성(性) 취향, 변덕스러움, 병적이거나 기형적인 것에 대한 강한 집착 등은 강력한 대상 앞에서 느끼는 좌절과 불쾌가 쾌로 전환되는 숭고(Sublime)나 비극의 연민과 공포를 통해 마음의 정화를 이루는 카타르시스(Catharsis)와 같은 미학적 개념들 과는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들이 어떤 미학적 절차와 근거를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지에 관한 연구는 쉽게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본 연구는 이 문제를 ‘불쾌의 감성학’을 정립함으로써 해소하고, 그것의 미학적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밝혀 창작자에는 이론적 정당성을 주고, 감상자에게 비평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본 연구는 팬데믹과 같은 집단적 공포와 질병에 의한 죽음의 이미지를 우리 사회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관한 미학적, 윤리적 판단의 진전된 기준을 제시하였다. 고통받는 인간을 다룬 작품들에 나타난 인간의 의지와 행동은 미학적 평가 이전에 주체와 타자의 관계 맺기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여기서 고통의 이미지는 신체적 고통은 물론, 종교적 고통, 도덕적 고통, 사회적 고통 등과 같은 다양한 의미 영역 안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유한한 인간에게 고통이라는 주제는 본질적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그 특유의 모호성을 완전히 지울 순 없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생물학적 합목정성 외에도 사회적, 문화적, 철학적 기능이 잠재하고 있기에 진지한 ‘사유의 대상’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가다머와 레비나스는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 고통의 과정을 수용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고통은 실존의 깨임 즉, 우리가 ‘무엇인지’를 자각할 수 있게 하는 체험이며, 삶의 고유한 차원도 고통 속에서 예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유한한 존재로서 우리는 타자의 고통에 관여함으로써, 그 고통의 호소에 귀 기울임으로써 건강한 이성을 지닌 윤리적 주체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실존의 깨임' 안에서 ‘불쾌의 감성학’의 형이상학적 지향성도 긍정성과 보편타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불쾌 이미지가 어떤 순기능과 역기능을 발생시키는 지를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미술 비평은 물론, 사회, 문학, 영화, 게임, 문화 비평 영역에서 활용 가능한 비평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본 연구는 이상의 기대 효과와 활용 방안을 기본으로 학문적 성과를 대중사회로 환원한다는 실리도 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