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필사본『불우헌집(不憂軒集)』의 발굴과 <상춘곡(賞春曲)>의 작자 문제
Discovery of the manuscript『Bulwooheonjip』 and the problem of ’s author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9-S1A5A2A01-2019S1A5A2A01049442
선정년도 2019 년
연구기간 1 년 (2019년 07월 01일 ~ 2020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권순회
연구수행기관 한국교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의 목적은 신발굴 자료인 필사본『불우헌집(不憂軒集)』의 문헌 특성과 가사 <상춘곡(賞春曲)>의 작자 문제를 재론하는데 있다.
    『불우헌집』은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의 문집이다. 현전하는『불우헌집』 판본은 두 종이다. 1786년(정조10) 후손 정효목(丁孝穆)이 황윤석(黃胤錫)의 교정과 서문을 받아 활자본으로 간행한 초간본과, 1969년 18대손 정팔성(丁八聲)이 이를 다시 석인본(石印本)으로 중간한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이 두 판본은 편제나 내용이 모두 동일하다.『불우헌집』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보다 1786년에 간행된 초간본에 가사의 효시작으로도 간주되는 <상춘곡>이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사본『불우헌집』이 새롭게 발굴되었다. 이 자료는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우리가 필사본『불우헌집』을 주목하는 이유는 <상춘곡>의 작자 문제 등 그 동안 논란이 되었던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필사본『불우헌집』은 편제나 수록 내용, 작품의 제목 등이 현재『불우헌집』을 대표하는 1786년 간행 초간본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편제가 다르고 서발문이 빠져 있다. 동일 작품일지라도 초간본과 제목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한시는 활자본보다 수록 작품수가 더 많다. 무엇보다도 <상춘곡>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시기적으로 1786년 간행 초간본보다 선행본일 가능성이 높다.
    『불우헌집』의 원고본의 존재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언급에서 확인된다. <답김천정(答金天挺)>에서 송시열은『불우헌유고(不憂軒遺稿)』의 서문을 요청한데 대해 묘갈명의 내용이 사실과 다름을 지적하며 거절의 뜻을 밝힌다. 송시열이 보았던『불우헌유고』의 실체는 확인된 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판단컨대 새로 발굴된 필사본이 바로 송시열이 보았던『불우헌유고』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일차적으로 정밀한 판본 연구를 통해 필사본『불우헌집』의 문헌 특성을 밝히고자 한다. 서지적 특성 고찰, 1786년 간행 초간본과의 대교를 통해 필사본『불우헌집』의 원고본 여부를 밝혀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본 연구에서 주목할 것은 필사본『불우헌집』의 시가류의 수록 양상과 <상춘곡>의 작자 문제이다. <상춘곡>은 조윤제(趙潤濟, 1904∼1976)의『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史綱)』이래로 연구나 교육 현장에서 정극인의 작품으로 간주되어 왔다. <상춘곡>을 정극인 작품으로 보는 결정적인 근거는 바로 1786년에 간행된 초간본에 <상춘곡>이 수록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상춘곡> 정극인의 사후 305년이 지나 문집에 수록되었기 때문에 과연 <상춘곡>이 정극인의 작품으로 신빙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하다. 이와 아울러 <상춘곡>을 가사의 초기작으로 보기에는 표현이나 내용이 너무 정제되어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현한 필사본『불우헌집』은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단가 <불우헌가>와 경기체가 <불우헌곡>은 수록되었지만 <상춘곡>은 없다. 뿐만 아니라 <불우헌가>와 <불우헌곡>이 모두 이두식으로 표기되어 있다. 반면에 1786년 간행 초간본에는 <상춘곡>이 포함되고 <불우헌가>와 <상춘곡>은 국한문 혼용 표기로 되어 있는데 18세기 국어의 특성을 보여준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시기를 감안하면 필사본의 표기 방식이 보다 정극인 생존 당시의 실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한『성종실록』 등에 정극인이 <불우헌가>, <불우헌곡>을 지은 사실이 나오는 반면에 <상춘곡>을 지었다는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상춘곡>은『불우헌집』 원고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가 어떤 연유로 1786년 초간본이 간행되면서 포함된 것이 분명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원고본『불우헌집』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상춘곡>이 1786년 초간본에 포함된 경위를 탐색하여 정극인 작품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고, 이를 통해 조선 전기 가사 문학사를 새롭게 재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 기대효과
  • 1. 본 연구에서는 그 동안 논란이 되었던 <상춘곡>의 작자 문제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확보함으로써 정극인이 <상춘곡>을 창작했는지에 대한 보다 분명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시가 연구나 교육 현장에서 <상춘곡>을 정극인 작품으로 단정하고 각종 문학사류, 교과서 등에 그대로 기술한 것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2. 조선 전기 가사 문학사를 재편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 동안 <상춘곡>을 가사의 효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 조선 전기 강호가사의 출발점으로 연구, 교육되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라 조선 전기 가사 문학사의 새로운 구도가 마련될 것이다.

    3. 필사본 『불우헌집』이 발굴되어 <상춘곡>의 작자 문제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뿐만 아니라 초간본과의 교감을 통해『불우헌집』의 편집 과정을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필사본에만 수록된 한시 작품을 통해 정극인의 문학 세계를 새롭게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고전시가뿐만 아니라 한문학 분야에도 새로운 연구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한국학 분야의 연구 기반을 확충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 연구요약
  • 이 연구는 문헌 및 문학사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서지(書誌)적 특성 고찰

    필사본『불우헌집』의 서지적 특성을 고찰하여 기본적인 문헌의 특성을 파악할 것이다. 지질이나 표지의 개장여부, 추록된 내용, 필사 상태 및 서체 등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어서 편제의 특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필사본『불우헌집』에는 서발이나 행장도 없다. 권수 구분 없이 시가, 산문, 한시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여타 문집과 달리 시가와 산문을 앞에 둔 것이 특이하다.
    이러한 필사본『불우헌집』의 편제는 문집으로 정리되기 이전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필사본『불우헌집』이 원고본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에 정밀한 탐색을 통해 이 자료의 원고본 여부를 밝히고자 한다.

    2. 1786년 간행 활자본(초간본)과의 대교(對校)

    1786년에 초간된 활자본과의 대교를 통해 필사본의 특성과『불우헌집』의 편집 과정을 탐색하고자 한다.
    초간본과 달리 필사본에는 산문이 한시 앞에 배치되어 있다. 작품 수록 순서와 제목도 약간 다르다. 한지만 시가와 한시는 양상이 좀 더 복잡하다. 시가는 초간본에 <불우헌가>, <불우헌곡>, <상춘곡> 3편을 수록한 반면에 필사본에는 <상춘곡>이 빠져 있고 이두식 표기로 되어있다.
    한시는 필사본에는 초간본과 달리 산문 뒤에 수록되어 있다. 초간본에는 정극인 작품 57수, 타인이 정극인 시에 차운하거나 봉정한 시 34수 등 91수가 수록된 반면에 필사본에는 모두 149수가 수록되어 작품 수량이 60수 가까이 차이가 난다. 초간본에 비해 필사본의 제목이 더 길고 덜 정비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역시 필사본이 시기적으로 선행할 뿐만 아니라 원고본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두 판본의 대교를 통해 필사본의 성격과 위상을 파악하고 아울러『불우헌집』의 편집 과정을 탐색고자 한다.

    3. <상춘곡>의 작자 문제

    <상춘곡>은 조윤제가『조선시가사강』이래 연구나 교과서, 교육 현장에서 정극인의 작품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 근거는 바로 1786년 간행 초간본『불우헌집』에 <상춘곡>이 수록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강전섭, 권영철, 최강현 등이 반론을 제기한 바 있다.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춘곡>이 정극인의 사후 305년이 지나 문집에 수록되었기 때문에 과연 정극인 작품으로 신빙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 <불우헌가>나 <불우헌곡>과 달리 정극인이 <상춘곡>을 지었다는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상춘곡>이 가사의 초기작으로 보기에는 표현이나 내용이 너무 정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반론은 개연성은 충분하지만 결정적인 논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사본『불우헌집』의 발굴은 <상춘곡>의 작자 문제에 대한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아닐 수 없다. 필사본『불우헌집』에는 단가 <불우헌가>와 경기체가 <불우헌곡>이 권두에 수록되었지만 <상춘곡>은 없다. 뿐만 아니라 표기도 모두 이두식으로 되어 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시기를 감안하면 필사본의 표기 방식이 정극인 생존 당시의 실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춘곡>은 애초에 원고본 형태의『불우헌유고』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가 어떤 연유로 1786년 문집 간행 과정에서 포함된 것이 분명하다. 물론 애초 유고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상춘곡>이 정극인 작품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국문시가의 경우 문집과 별도로 가승(家乘)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전라도 태인 지역에서 전승되던 강호가사가 18세기 전후에 정극인 작품으로 와전(訛傳)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성종실록』에 정극인이 단가 2장과 장가 6장을 지었다고 나오는 것과 같이 정극인이 즐겨 지어 불렀던 장가는 가사가 아니라 경기체가라는 점이다. 또한 당시에 장가로 경기체가를 부르는 것이 관행이었다면 정극인이 가사를 지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상춘곡>이 1786년 초간본에 포함된 경위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조선 전기 가사 문학사를 새롭게 재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의 목적은 신발굴 자료인 필사본『불우헌집(不憂軒集)』의 문헌 특성을 밝히고 <상춘곡(賞春曲)>의 작자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데 있다.
    논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서지적 특성이다. 필사본『불우헌집』은 필사본 1책, 총 38장 분량이다. 표지는 마모가 심하고 왼쪽 상단을 자세히 보면 표제를 썼던 흔적이 매우 흐릿하게 보인다. “不憂軒遺稿”로 판독된다. 필사 시기는 지질의 상태 등을 고려할 때 16세기 전반 무렵으로 판단된다. 후손들이 문집 간행을 염두에 두고 정극인의 유고를 정리한 원고본으로, 1786년에 간행된 활자본 문집의 모본으로 판단된다. 편제를 살펴보면 서문이나 발문, 행장도 없고 권수 구분 없이 시가 → 산문 → 한시 순으로 수록되었다. 다른 문집과 달리 시가와 산문을 앞에 둔 것이 특이하다.
    다음은 활자본과의 대교 결과이다. 산문류의 경우 두 판본의 수록 작품이 동일한데 순서와 제목은 약간 다르다. 다만 <성종조유서(成宗朝諭書)>의 경우 필사본이 활자본에 비해 내용이 더 있다. 문종 때 정극인이 천거된 내용이 활자본에는 없는데 이유는 『불우헌유고』의 서문을 부탁받았던 송시열(宋時烈)의 지적 때문으로 판단된다.
    한시(漢詩)는 그 양상이 좀 더 복잡하다. 활자본에는 91수가 수록된 반면에 필사본에는 149수가 수록되어 작품 수량이 60수 가까이 차이가 난다. 수록 순서나 제목이 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필사본이 제목이 더 길뿐만 아니라 작품도 정비가 될 된 상황이다.
    다음은 상춘곡의 작자 문제이다. <상춘곡>은 정극인의 지은 작품으로 한 동안 가사의 효시작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 결정적인 근거는 바로 활자본에 <상춘곡>이 수록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한 반론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사본『불우헌집』의 발굴은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상춘곡>의 작자 문제에 대한 분수령이다. 필사본에는 <상춘곡>이 없다. 뿐만 아니라 <불우헌가>와 <불우헌곡>이 모두 이두식으로 표기되어 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시기를 감안하면 필사본의 표기 방식이 국한문으로 표기된 활자본에 비해 창작 당시의 실정에 가깝다. 또 『성종실록』에는 정극인이 장가 6장 단가 2장을 지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장가 6장은 경기체가 <불우헌곡>이다.
    이러한 사실은 <상춘곡>의 작가 판단에 대한 매우 중요한 단서들이다. 어떤 이유로 유고에 빠져 있던 <상춘곡>을 1786년 문집을 간행하면서 포함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경위는 무엇일까?
    첫째, 국문시가의 경우 문집에 수집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별도로 집안에서 전승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춘곡>도 그러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둘째, 정극인의 후손이 지었거나 전라도 태인 지역에서 전승되던 강호가사가 18세기 전후에 정극인 작품으로 와전(訛傳)되었을 가능성이다. 후대에 집안 자제나 향리의 누군가가 지어 부르다 정극인인 작품으로 탈바꿈되어 문집에 수록된 것으로 판단된다.
  • 영문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s of the bibliographic of the newly discovered manuscript, 『Bulwooheonjip(不憂軒集)』, and to re-discuss the author of Gasa's <Sangchungok(賞春曲)>.
    The results of the discussion are as follows. First, it is a bibliographical characteristic. The manuscript, 『Bulwooheonjip』 is one manuscript, totaling 38 pages. The cover is very worn, and if you look closely at the top left, the traces of the title appear very blurry. It is read as “Bulwooheonyugo(不憂軒遺稿)”. The time of copying is judged to be around the first half of the 16th century, considering the condition of the paper. It is a book in manuscript form, which organizes Jeong Geuk-in(丁克仁)'s demise with the publication of the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by descendants in mind, and is considered to be the original textbook published in 1786.
    When looking at the organization, there are no prefaces, epilogue, and records of a deceased person's life, and they are listed in the order of ‘poetry → prose → Chinese poetry(漢詩)’, regardless of the number of volumes. Unlike other collections of literary works, it is peculiar to put poetry and prose in front.
    The following is the result of comparison with print version. In the case of prose, the works included in the two versions are the same, but the order and title are slightly different. However, in the case of <Seongjongjoyuseo(成宗朝諭書)>, the manuscript has more content than the print version. The text recommended by Jeong Geuk-in during the reign of King Munjong(文宗) is not found in the printed text, which is believed to be due to the point of Song Si-yeol(宋時烈), who was asked for the preface of 『Bulwooheonyugo』.
    Chinese poetry is a bit more complicated in its aspect. The print version contains 91 numbers, while the manuscript contains 149 numbers, so the number of works varies by nearly 60. There are also many cases in which the order of recording or title is different. Not only the manuscript has a longer title, but the work is less organized.
    The following is the problem of the author of <Sangchungok>. <Sangchungok> is a work written by Jeong Geuk-in and has been evaluated as the first Gasa work for a while. The decisive reason is the fact that <Sangchungok> is included in the print version. However, there have been several opposing opinions about this.
    In such a situation, the discovery of the manuscript 『Bulwooheonjip』 is a watershed for the controversial author problem of <Sangchungok>. There is no <Sangchungok> in the manuscript. In addition, both <Bulwooheonga(不憂軒歌)> and <Bulwooheongok(不憂軒曲)> are marked with Idu(吏讀). Considering the time when Hunminjeongeum(訓民正音) was created, the way in which the manuscript was written is closer to the reality at the time of creation compared to the print version written in Korean. Also, in the 『Annals of Seongjong(成宗實錄)』, there is a record that Jeong Geuk-in wrote the long song 6 stanza and the short song 2 stanza. The long song is the Gyeonggichega(景幾體歌) of <Bulwooheongok>.
    These facts are very important clues to the judgment of the author of <Sangchungok>. It is clear that <Sangchungok>, which for some reason fell into posthumous work, was included in the publication of the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in 1786. So, what is the reason?
    First, Korean poetry may be included in the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However, it is not so, and there are many cases that are transmitted separately in the house. <Sangchungok> can be seen as such a case.
    Second, it is possible that Gangho-Gasa(江湖歌辭), a descendant of Jeong Guk-in or passed down in the Taein area of ​​Jeolla-do, was converted into a work of Jeong Guk-in around the 18th century. It is judged that it was transformed into a work of Jung Geuk-in, which was created by someone from the family or by someone from the hometown, and was included in the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의 목적은 신발굴 자료인 필사본『불우헌집(不憂軒集)』의 문헌 특성을 밝히고 <상춘곡(賞春曲)>의 작자 문제를 재론하는데 있다.
    논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서지적 특성이다. 필사본 『불우헌집』은 필사본 1책, 세로×가로 32.5×21.5cm 총 38장 분량이다. 표지는 마모가 심한데 개장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왼쪽 상단을 자세히 보면 표제를 썼던 흔적이 매우 흐릿하게 보인다. “不憂軒遺稿”로 판독된다.
    필사 시기는 지질의 상태 등을 고려할 때 16세기 전반 무렵으로 판단된다. 후손들이 문집 간행을 염두에 두고 정극인의 유고를 정리한 원고본으로 1786년에 간행된 활자본 문집의 모본으로 판단된다. 위의 여백에 본분의 글자를 정정하는 주석을 적어 놓았는데 이 역시 원고를 정리한 흔적이다.
    편제를 살펴보면 서발이나 행장도 없고 권수 구분 없이 시가 → 산문 → 한시 순으로 수록되었다. 다른 문집과 달리 시가와 산문을 앞에 둔 것이 특이하다. 한시의 경우 수창한 작품이 여러 군데 분산되어 배치된 경우가 다수 포착된다.
    다음은 활자본과의 대교 결과이다. 산문류의 경우 두 판본의 수록 작품이 동일한데 순서와 제목은 약간 다르다. 본문 글자가 다른 부분도 다소 있는데 의미가 달라질 정도는 아니다. 다만 <성종조유서(成宗朝諭書)>의 경우 필사본이 활자본에 비해 내용이 더 있다. 문종 때 정극인이 천거된 내용이다. 이 부분이 활자본에 빠진 이유는 『불우헌유고』의 서문을 부탁받았던 송시열(宋時烈)의 지적 때문으로 판단된다.
    한시(漢詩)는 그 양상이 좀 더 복잡하다. 활자본에는 91수가 수록된 반면에 필사본에는 149수가 수록되어 작품 수량이 60수 가까이 차이가 난다. 뿐만 아니라 수록 순서나 제목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필사본이 제목이 더 길뿐만 아니라 작품도 정비가 될 된 상황이다.
    다음은 상춘곡의 작자 문제이다. <상춘곡>은 정극인의 지은 작품으로 한 동안 가사의 효시작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 결정적인 근거는 바로 활자본에 <상춘곡>이 수록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권영철, 강전섭, 최강현 등이 반론을 제기한 바 있는데, 이들은 추론의 개연성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논거를 확보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고를 정리한 필사본 『불우헌집』의 발굴은 그 동안 논란이 되었던 <상춘곡>의 작자 문제에 대한 분수령이다. 필사본에는 <상춘곡>은 없다. 뿐만 아니라 <불우헌가>와 <불우헌곡>이 모두 이두식으로 표기되어 있다. 반면에 활자본에는 <불우헌가>와 <상춘곡>은 국한문 혼용 표기로 되어 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시기를 감안하면 필사본의 표기 방식이 보다 정극인 생존 당시의 실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 『성종실록』에는 정극인이 장가 6장 단가 2장을 지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장가 6장은 <상춘곡>이 아니라 경기체가 <불우헌곡>이다. 활자본 이외에 어디에서 정극인이 <상춘곡>을 창작했다는 기록이 없다.
    이러한 사실은 <상춘곡>의 작가 판단에 대한 매우 중요한 단서들이다. 어떤 이유로 유고에 빠져 있던 것을 1786년 문집을 간행하면서 포함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경위는 무엇일까?
    첫째, 국문시가의 경우 문집에 수집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별도로 가승(家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춘곡>도 그러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둘째, 정극인의 후손이 지었거나 전라도 태인 지역에서 전승되던 강호가사가 18세기 전후에 정극인 작품으로 와전(訛傳)되었을 가능성이다. 후대에 집안 자제나 향리의 누군가가 지어 부르다 정극인인 작품으로 탈바꿈되어 문집에 수록된 것으로 판단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본 연구에서는 그 동안 논란이 되었던 <상춘곡>의 작자 문제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하여 정극인이 <상춘곡>을 창작했는지에 대한 보다 분명할 결론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그동안 시가 연구나 교육 현장에서 <상춘곡>을 정극인 작품으로 단정하고 각종 문학사류, 교과서 등에 <상춘곡>을 정극인 작품으로 기술한 것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2) 조선 전기 가사 문학사를 제조명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시하였다. 그 동안 <상춘곡>을 가사의 효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 의심 없이 <상춘곡>을 정극인의 작품으로 간주하여 조선 전기 강호가사의 출발점으로 연구, 교육되었다. 이제 연구 결과에 따라 조선 전기 가사 문학사의 구도를 새롭게 구도화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3) 필사본 『불우헌집』이 발굴되어 <상춘곡>의 작자 문제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뿐만 아니라 활자본(초간본)과의 교감을 통해 『불우헌집』의 편집 과정을 탐색할 수 있게 되었고 필사본에만 수록된 한시 작품을 통해 정극인의 문학 세계를 새롭게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고전시가뿐만 아니라 한문학 분야에도 새로운 연구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한국학 분야의 연구 기반을 확충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 색인어
  • 정극인, 불우헌집, 불우헌유고, 상춘곡, 펼사본, 가사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