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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유흥과 예술의 공존, 근대 공연 공간으로서 ‘요정(料亭)’의 의미 -전라북도 전주, 남원, 군산을 중심으로-
Coexistence of Entertainment and Art, the Meaning of “Yojeong(High-Class Korean-Style Restaurant)” as a Modern Performance Space - Focusing on Jeonju, Namwon, and Gunsan in Jeollabuk-do -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9-S1A5B5A07-2019S1A5B5A07093357
선정년도 2019 년
연구기간 1 년 (2019년 09월 01일 ~ 2020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권은영
연구수행기관 전북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고는 1900년대에 출현한 이래로 유흥과 예술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이었던 ‘요정’을 대상으로 요정의 공연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연구하기 위한 계획서이다.

    1) 공연의 유통과 소비를 위한 장(場)으로서 요정의 의미
    요정은 ‘요정 정치’나 ‘관광 기생’ 등과 결부되어 봉건적인 구태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떠오르게 하여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요정은 기생을 포함하여 전통공연예술가들이 생산해내는 공연의 유통과 소비를 위한 장(場)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문학이나 미술 등은 예술가가 고립된 채로도 작품을 생산할 수 있지만 공연예술은 소비 주체들과 분리된 상태에서는 작품 생산이 불가능하다. 공연예술은 공연자가 관객과 함께 동일한 시공간 내에서 다양한 공연 기호로써 메시지를 생산하고 공유하고 교감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이 없다면 공연예술은 생산될 기회를 잃게 되며 구전이나 행위로써 전승되는 민속예술은 전승도 불가능해진다.
    요정은 식민지 시대, 미군정 시대,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시기를 거쳐 지속적인 근대화의 진행 속에서 성행하였다. 이 시기는 대중문화의 서구화가 급진전된 때로, 전통공연예술가들은 입지가 점점 더 좁아졌다. 이러한 때에 요정은 유흥과 예술이 공존하고 있다고는 하나, 지속적인 ‘놀음’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예술-노동자의 경제활동을 돕고 전통공연예술이 사멸되지 않도록 지탱해준 공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요정의 공연예술사적 의의와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2) 선행연구 검토
    서지영(2009), 신현규(2007), 주영하(2011), 전우용(2017) 등은 근대에 출현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요정에 주목하였다. 정형지(2012)는 음식문화사의 관점에서 대한제국기 조선요리옥의 출현 배경과 과정, 운영상의 특징 등을 연구하였다. 요정을 공연 공간으로서 주목한 연구에는 이정노(2015)가 있는데, 그는 일제강점기 기생들의 춤 연행 양상의 하나로서 요정에서의 춤 공연을 다루었다. 김취정(2014)과 최열(2014)은 람전(藍田) 허산옥을 연구하면서 그녀가 운영했던 요정 ‘행원’을 중요하게 거론하고 있다.

    3) 공연 공간으로서의 요정에 관한 포괄적인 연구 필요
    요정에 대해 연구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공연 공간으로서 요정을 연구할 때에는 출연자를 기생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남녀 예인 모두를 대상으로 해야 하며 이들 간의 역학 관계, 공연단의 편성과 리더십, 공연 종목 전체 등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 또한 이들 공연은 관객들의 선호와 취향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공연이 겨냥하는 핵심 관객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출연자와 관객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 무대 형태, 무대와 관객석의 배치 상의 특징 등에 대해서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 기대효과
  • 1) 전통공연예술가들의 은폐된 기억 복원
    무형문화재 지정 보유자들과 그 외의 명인들 중 많은 수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높은 보수 때문에 요정에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상업적이고 불건전한 공간이라는 요정에 대한 인식 때문에 비난이 두려워 많은 이들이 요정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함구하고 있다. 오늘날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볼 때에 이것은 요정이 부당하게 저평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공연 공간으로서의 요정에 대한 연구는 억눌려 있고 은폐되었던 전통공연예술가들의 기억을 복원하는 효과가 있다.

    2) 로컬리티 연구에 기여
    현재 시점에서 가치가 인정 되는 기억은 과거의 것을 회상할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기도 한다. 기억된 것은 역사가 될 수 있고, 정체성 형성과 새로운 가치 창출에 기여한다. 전주, 남원, 군산의 요정에 대한 기억은 지역사와 공연예술사의 공백을 채우는 미시 역사로 기록되어 로컬리티 연구에 기여할 것이다.
  • 연구요약
  • 1) 연구 대상 및 방법
    본 계획서의 연구 대상은 요정이 생겨난 1900년대부터 국가가 주도하여 기생들과 그들의 공연을 관광 상품으로 홍보 판매했던 1970~80년대까지의 전라북도 전주, 남원, 군산의 요정과 그곳에서 수행된 공연이다.
    본 연구계획은 지역의 주변성, 소수성, 장소성, 다양성의 가치에 주목하는 로컬리티 연구의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본 고의 연구 대상은 자연적 물리적 측면에서의 기층적 로컬리티, 근대 중앙 중심의 통제장치 시스템에 의해 발현된 탈중심성, 주변성으로서의 위계적 로컬리티, 다원성․소수성․타자성 등 포스트 모던적 가치와 연결된 인식 내지 가치의 로컬리티의 세 가지 측면이 중첩되어 있다. 전주․남원․군산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소규모 도시로서, 중앙의 제도에 통제 받고 자본에 포섭되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류로부터 소외되었다. 때문에 거대 자본과 대중문화가 주도하는 근대 대중 사회에서 문화적으로도 주변화되었으나 이 세 지역은 나름의 독특한 문화적 로컬리티를 이루어왔다.
    전주는 도청소재지로서 전라북도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조선 후기부터 대사습과 ‘연(宴)날’을 연례적으로 치르면서 판소리를 비롯한 공연문화가 번성한 곳이다. 근래에도 문화유산 지수가 최상위등급으로 높은 도시로 평가되고 있다.
    남원은 판소리 예술가를 위시로 전통공연예술가들의 육성 전통이 강한 곳이다. 1921~22년경에 설립된 남원 권번은 1920년대 말에서 1930대 초 가무악 선생은 5~6명 정도였고 학습생은 30~50명 정도의 규모였으며, 수많은 판소리 명창뿐 아니라 조갑녀, 장금도와 같은 명무를 배출했다.
    군산은 1899년 5월 1일 개항이후 급격하게 식민지 근대 도시로 전환되었다. 호남평야의 넓은 토지와 쌀에 대한 관심과 기대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이 군산으로 진출하였고 식민지 통치기구와 우체국․병원 등의 근대 시설, 일본으로의 쌀 반출을 위한 상업회사들이 군산에 들어섰다. 군산이 쌀 중심의 물류 도시가 되자 자본이 집중되었고 문화 수요층이 늘어나면서 요정과 권번도 성행하였다.
    이처럼 전주, 남원, 군산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었고 이에 따라 이 지역의 요정들과 전통공연예술가들의 활동에도 지역 간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먼저 요정에 대한 선행 연구들, 기존에 간행된 명인들의 구술집, 󰡔전북일보󰡕와 같은 지역 신문 자료 등등 서지자료들을 검토하고 미비한 점은 현지조사를 통해 보완하고자 한다. 요정 건물이 보존되어 있는 사례가 있으므로 현지조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요정에서의 활동 경험이 있는 공연예술가들을 면담한 후 구술을 채록할 것이다.

    2) 연구내용

    근대 이전부터 공연예술가이자 연예인이었던 기생과 광대들은 민간 ‘협률사’, 창극단, 여성국극단 등을 꾸려 신파극, 악극, 영화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대중예술들과 각축을 벌였다. 마당이나 방중에서 놀던 전통공연예술은 ‘신식 극장’에 어울리게 ‘개량’됨으로써 대중예술로의 변모를 꾀하였고 기생과 광대 중에서는 ‘대중 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들도 있었다.
    이런 흐름의 저변에는 전통공연예술을 꾸준히 소비하면서 한편으로는 높은 수준의 감식안을 갖고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패트론(patron) 계층이 있었다. 1960~70년대 산업화가 더뎠던 전주와 남원은 토착 세력으로서 이런 패트론 계층이 상당 기간 유지되었다. 요정 또한 이들의 문화 수요에 대한 공급의 차원에서 지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군산의 요정은 기존의 토착 세력에 일본인, 근대의 새로운 관료, 신흥 경제 계층, 지식인들이 더해져 좀 더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도시와는 달리 비교적 고정적인 요정의 소비자이자 지역의 토착세력이었던 패트론들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은 개요 하에서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개요>

    (1) 전주, 남원, 군산 지역 요정의 발생과 추이
    (2) 요정에서 수행된 공연의 특징
    ① 출연자 및 악기 편성
    ② 공연 소비자들
    ③ 무대 및 객석의 공간적 특징
    ④ 주요 레퍼토리
    (3) 요정의 공연에서 발견되는 전통성과 근대성의 교섭과 착종
    (4) 요정의 공연사적 의미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요정(料亭)은 식사와 공연 예술을 결합시킨, 사회의 지배층을 위한 식당이었다. 그곳은 유흥과 예술, 전통성과 근대성, 긍정과 부정의 가치가 착종되어 있는 혼종적이고 양가적인 공간이었다. 오늘날 이곳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는 것은 단순한 회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역사가 될 수 있으며, 미래의 전망을 형성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데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요정은 20세기 초에 등장하여 요릿집, 요리점, 요리옥 등으로도 불렸는데 이러한 명칭들 자체는 식당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요정은 유흥과 진지한 예술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요정의 운영자들은 조선의 음식과 공연문화를 재해석하고 상업화하였다. 요정은 그 당시의 신문물로서, ‘컨벤션 산업’(convention industry)의 특성을 보여주는 공적인 공간이었다.
    본 과제에서는 주변성, 소수성, 장소성, 다양성의 가치에 주목하는 로컬리티 연구의 관점에서 전북지역의 전주․남원․군산의 요정을 대상으로, 유흥과 예술이 공존하였던 근대 공연 공간으로서의 요정의 의미를 검토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는 두 편의 논문으로 작성되었다.
    ‘논문1’에서는 전주를 대표하는 요정 ‘행원’(杏園)을 중심으로 ‘요정의 공간 취향과 공연의 특성’을 논의하였다. '논문2'에서는 '남원과 군산 지역 요정의 성쇠와 공연자의 활동'을 연구하였다.
  • 영문
  • Yojungs were restaurants that combined performing-arts with dining for the social elite. They were mixed and ambivalent spaces in which entertainment and art, tradition and modernity, and positive and negative values were entangled. At present, restoring memories of these places is nothing more than simple retrospection. Memories can become history and they can contribute toward shaping prospects of the future while creating new meanings.
    Yojungs first appeared at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and were also called as yoritjib, yorijum, and yoriok, all of which refer to bona fide restaurants. However, they were complex cultural spaces where entertainment and serious arts coexisted. Yojung managers inherited, reinterpreted, and commercialized the food and performance culture of Joseon. During their time, Yojungs were public spaces that display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nvention industry' as a new culture.
    In this task, the meaning of Yojung as a modern performance space where entertainment and art coexisted was reviewed for Yojung in Jeonju, Namwon, and Gunsan in Jeollabuk-do from the perspective of locality research focusing on the value of peripherality, hydrophobic, place, and diversity. The results of these studies have been written in two papers.
    Paper 1. is a study centered on "Haengwon," Yojung representing Jeonju, whose title is "The Yojung's Space Taste and the Characteristics of Performance." Paper 2. is "The Rise and Fall of Fairies in Namwon and Gunsan and the Activities of Performer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과제에서는 주변성, 소수성, 장소성, 다양성의 가치에 주목하는 로컬리티 연구의 관점에서 전북지역의 전주․남원․군산의 요정을 대상으로, 유흥과 예술이 공존하였던 근대 공연 공간으로서의 요정의 의미를 검토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는 두 편의 논문으로 작성되었다.
    ‘논문1’에서는 전주를 대표하는 요정 ‘행원’(杏園)을 중심으로 ‘요정의 공간 취향과 공연의 특성’을 논의하였다. 행원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전주의 명소로서 전주 음식문화와 공연예술을 누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었다. 그 기원을 전라감영의 영저리청과 연관시키는 논의도 있다.
    요정은 ‘정계의 고위층’이 핵심 소비자로서, 요정의 모든 것은 이들에 대한 봉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요정의 핵심 소비자들은 비대중적이고, 특권적이며, 과시적인 취향을 보이는데, 이것은 경제 자본이 적은 일반 대중들에게 나타나는 필요성이나 기능성과는 거리가 먼 특성이다. 그러나 과시적인 지출에는 사회관계자본 축적을 위한 투자의 의미가 숨어있으며 다만 그것을 표면화하지 않을 뿐이다. 고래로부터 공동체의 이벤트에는 음식과 구경거리가 동반되었다. 이 둘은 강력한 기쁨의 정동을 유발하여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데에 유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행원은 음식과 공연예술이라는 비정치적 수단으로서 정치적 효과를 얻기 위해 활용된 공간이었다.
    지배층의 미적 성향 중 하나는 풍부하고 양질의 학습 기회를 획득한 데에서 비롯되는 ‘지적인 즐거움’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대중미학에서의 기능성이나 필요성과는 거리가 먼 특성으로, 이것을 동양적인 개념으로 말하자면 ‘풍류(風流)’로 설명할 수 있다. 권번에서 학습되는 가무악에서는 집단성과 감정의 격렬함보다는, 잘 훈련된 형식미를 강조하고 감식안을 갖춘 지적이고 정신적인 고양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논문2’에서는 ‘남원과 군산 지역 요정의 성쇠와 공연자의 활동’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남원이 전통적인 공연자 교육의 전통이 강한 반면에 군산은 개항과 더불어 새롭게 부상한 신흥경제도시로서 요정에서의 공연의 소비가 성행했던 곳이다.
    판소리를 중심으로 공연자의 육성 전통이 강한 남원 지역에서는 1921년에 남원 권번이 설립된 이래 김정문, 박중근, 김준팔, 장득진, 김영운, 강도근 등실력있는 판소리 강사들에 의해 수많은 공연자가 배출되었다. 남원 권번의 대표적 인물로는 이화중선과 이중선이 있으며, 판소리뿐 아니라 명무 조갑녀와 행원의 운영자이자 화가였던 허산옥 등 무용과 서화에서도 빼어난 예술가들을 배출하였다.
    권번의 규모와 학습의 실력 정도는 곧 그 지역의 예술 향유층의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정도와 비례한다. 남원 권번과 교류하며 운영에 관여하던 예술 향유층과 후원자들은 ‘한량’(閑良)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된다. 이들은 토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남원 지역 토호세력들로서, 권번 시대에는 정치가, 기자, 병원장, 공무원 등의 직업인들로 나타났다. 이들은 권번 기생들의 공연인 ‘놀음’의 실제 소비자로서 이들의 취향과 경제력은 곧 요정의 성쇠와도 직결된다.
    1950년대 중반부터 남원의 요정이 급격하게 쇠락하였다. 남원은 빨치산이 활동했던 지리산 영역 내의 지역이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강력한 빨치산 토벌과 그로 인한 양민학살 등 정치적 사안으로 인해 지역사회는 경직되었고, 이후에도 경제 계발에서 소외됨에 따라, 남원의 수많은 공연자들이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대도시로 이출되었다.
    군산은 1899년에 개항됨에 따라 신흥 경제도시로 부상되었고 일본인을 비롯하여 많은 인구들이 유입되자 군산에 권번이 설치되었다. 명무 장금도를 중심으로 권번에서의 학습과 요정에서의 공연활동을 살펴보면 다른 지역의 권번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산의 소화권번에서도 판소리는 필수 과목이었으며 무용을 수학한 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주목되는 것은 일본어 교육이다. 권번은 요정 공연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교육하는 곳이기 때문에 요정 소비자들의 취향과 요구에 맞는 것들을 학습시키고 준비하도록 한다. 군산의 요정들에서는 일본인 권력가나 자본가와 빈번하게 접촉하였기 때문에 ‘말하는 꽃’으로 여겨지던 기생들에게도 일본어로의 의사소통 능력이 요구되었다.
    권번 시험을 통과한 후 장금도는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명월관, 동양관(근화각), 만수장(천수각) 등 군산 지역의 요정들에 출연하였다. 그녀는 19살이던 1946년 경 서울로 이주하였다. 이 시기는 해방직후로서 일본인이 중심이 되었던 군산의 경제가 해방과 함께 무너지면서, 요정의 소비층이 몰락하던 때였다. 이 때문에 공연자들이 이 시기에 타지로 대거 이출되었다. 1948년 12월 7일 <군산신문>의 기사는 군산 지역 요정들의 상황을 전하는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로컬리티 연구에 기여

    요정은 유흥과 예술, 전통성과 근대성이 착종되어 있는 혼종적인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여 현재 시점에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단순한 회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억된 것은 역사가 될 수 있고, 정체성 형성과 새로운 가치 창출에 기여한다. 전주, 남원, 군산의 요정에 대한 기억은 지역사와 공연예술사의 공백을 채우는 미시 역사로 기록되어 로컬리티 연구에 기여할 것이다.

    2) ‘한국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의 관광콘텐츠 개발의 단초 제공

    요정은 100년도 더 전인 1900년대에 출현한 공간이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도 문화산업과 관광산업 면에서 시사하는 점이 크다. 요정은 한중일과 서구문화가 뒤섞이며 혼종성과 다양성이 폭발하던 20세기 초에 시대와 조응하면서 조선적인 향취를 시대에 맞게 가공하여 상업적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문화적 정체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던 주체들이 일구어낸 시대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세계의 문화가 경쟁하고 뒤섞이고 돌출하는 현 시점에서 요정에 대한 연구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경제적 활용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 ‘전주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전주의 ‘행원’의 사례는 요정에 관한 연구가 과거에 대한 회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에 관한 이야기이며, 미래에 대한 전망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행원’은 요정으로부터 시작하여 한정식 식당을 거쳐 현재 한옥카페를 겸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한옥마을의 성장을 중심으로 관광도시로 부상되고 있는 전주에서 ‘행원’은 그 자체로 ‘한국적인 것’과 전주의 문화사를 기반으로 하는 관광콘텐츠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주의 공연문화가 전승되는 공연 공간으로서 꾸준히 그 명맥을 잇고 있다.

    3) 전통공연예술가들의 은폐된 기억 복원

    무형문화재 지정 보유자들과 그 외의 명인들 중 많은 수가 요정에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다른 대중공연예술들과 경합을 벌이면서 한시적으로 올리는 기획 공연에 비해 요정은 비교적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었고 보수도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흥 공간’에서 예술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이 두려워 많은 이들이 기억을 조작하거나 은폐하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비난 받을 일이 아닌 데도 말이다. 따라서 본 연구 계획은 부당하게 저평가된 요정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억압되고 은폐되었던 기억을 복원하는 효과가 있다.
  • 색인어
  • 요정, 공연 공간, 전통공연, 로컬리티, 전라북도, 전주, 남원,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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