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세기 말 불평등조약 체제 하에서 이루어진 동아시아 3국의 개항을 상호 간 조약 관계와 개항장의 실태를 통해 재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시기 한중일 3국은 서구열강과 치외법권(영사재판권), 협정관세(관세자주권의 상실), 편무적 최혜국 대우 등으 ...
본 연구는 19세기 말 불평등조약 체제 하에서 이루어진 동아시아 3국의 개항을 상호 간 조약 관계와 개항장의 실태를 통해 재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시기 한중일 3국은 서구열강과 치외법권(영사재판권), 협정관세(관세자주권의 상실), 편무적 최혜국 대우 등으로 대표되는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고 개항장을 중심으로 외국인 거류지를 설치하였다. 불평등조약의 구체적인 전개 양상과 각 개항장, 거류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개별적인 연구가 축적되어 왔다. 각국의 개항 시기와 국내외의 제반 상황이 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각 개항장의 규모, 제도와 실제 운용 등에서 서로 다른 특징을 드러내기에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 분석하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겠다. 특정 개항 도시에 대한 비교 연구가 일부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나 이 또한 개별 개항장에 대한 단순 비교 혹은 각 사례 연구의 모음에 그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개별 개항장에 대한 연구들은 개항에 의한 도시의 ‘근대성’, 외래 문물(이문화)의 유입이라는 측면에 주목하거나, 외세 침략의 교두보로서의 성격을 강조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각 개항장의 성격 규정은 열강에 의한 과분(瓜分)의 위기와 반(半)식민지적 상황에 놓여 있던 청국, 급속한 근대화 정책을 통해 탈아입구(脫亞入毆)를 추진하였던 일본, 전통적 화이질서 체제의 변동 속에서 청일 양국과의 관계 재편에 직면한 조선 등, 각국이 처한 당시의 정치, 외교적 맥락에 따른 차이점이 존재하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성격 규정에서 ‘서구열강’, ‘서구에 의한 충격’이 전제가 되었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청일과는 다른 조선의 특수성이 간과되고 있다. 청과 일본의 개항이 서양 열강에 의해 강요된 반면, 조선의 경우는 주지하듯 열강의 포함외교(砲艦外交)를 본뜬 일본에 의해 개항이 강요되었다. 이후 조선은 전통적 사대질서와 근대 국제법질서가 착종하는 가운데 서구열강뿐 아니라 청과 일본의 동아시아 주도권을 둘러싼 각축장이 되고 결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기에 이른다. ‘서양의 충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조선의 개항이 지닌 특수성을 시야에 넣는다면 동아시아 3국의 개항을 동아시아 내부의 상호 간 관계 속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즉 조선뿐 아니라 청과 일본 모두 단순히 서양에 의한 개항에 그치는 것이 아닌, 동아시아 3국의 상호 간 개항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사, 새로운 세계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서구(근대)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계와, 동아시아사의 유형적 파악을 위해 각국 간 비교사의 필요성이 지적되고 있는 현재, 본 연구는 이러한 한계와 과제를 극복하고 근대 동아시아사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효과
본 연구는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아시아 3국의 상호 개항 실태를 영사재판권 행사라는 측면에서 분석한다. 이는 역사적 맥락이나 의미는 다를지언정 국제 관계 하에서 각국의 ‘법권 행사’라는 관점에서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최근 국내의 주요 ...
본 연구는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아시아 3국의 상호 개항 실태를 영사재판권 행사라는 측면에서 분석한다. 이는 역사적 맥락이나 의미는 다를지언정 국제 관계 하에서 각국의 ‘법권 행사’라는 관점에서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최근 국내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인 ‘사법 개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한 국가의 법 체제는 전문적인 ‘법’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일반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사회 질서와 규범에 대한 인식, 정치 문화 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를 통한 영사재판권의 역사적 검토 또한 구체적인 법률적, 법리적 분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과 법학을 아우르는 ‘법문학’적 관점에도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역사 교육의 측면에서는 동아시아 근대사에 관하여 ‘서구의 충격’, 서구에 의한 자본 잠식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이라는 단선적 서술에서 벗어나 개항기 동아시아 내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영사재판권이 시행된 공간적 측면을 고려할 경우, 영사재판권 연구는 개항장 연구와도 이어진다 할 수 있다. 개항장에 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 또한 활발해 지면서 개항장 연구가 흥미 본위의 이문화 유입이라는 측면으로 흐를 우려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사재판권 연구가 개항장 연구의 시각과 분석틀을 다각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요약
동아시아 3국의 상호 개항 실태를 밝히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으로 본 연구에서 주목한 것은 영사재판권 문제이다. 영사재판권은 ‘불평등 조약’의 대표적 요소로 지적되어 왔다. 조약 규정에 따른 영사재판권은 피의자가 외국인일 경우, 소속국 영사에 의해 재판권이 행 ...
동아시아 3국의 상호 개항 실태를 밝히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으로 본 연구에서 주목한 것은 영사재판권 문제이다. 영사재판권은 ‘불평등 조약’의 대표적 요소로 지적되어 왔다. 조약 규정에 따른 영사재판권은 피의자가 외국인일 경우, 소속국 영사에 의해 재판권이 행사된다는 사법적 문제로 한정하여 정의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외국인은 개항장 국가의 행정, 법률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치외법권’으로 확대 해석, 적용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근년에는 영사재판권을 서구 열강에 의해 행사된 것으로 한정하지 않고 아시아 국가 간에도 영사재판권이 행사된 사실에 주목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본 연구는 이같은 선행 연구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며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이를 보완하고 논의의 폭을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 첫째, 이국(二國) 간 관계에 그치지 않는, 다국간 관계를 통해 교착하는 영사재판권을 파악한다. 영사재판권을 행사하는 국가의 국민(피고)과 개항장 국가의 국민(원고)을 상정한 사례 분석이 중심이 된 기존 연구에 대하여, 본고에서는 한국에서의 외국인(일본-중국) 사이에 발생한 영사재판권 행사, 혹은 일본에서의 외국인(중국-외국인) 사이의 영사재판권이라는 다자간 관계의 측면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영사재판의 단순 사례 소개가 아닌, 근대적 사법제도의 확산과 동아시아적 연쇄라는 맥락에서 이를 분석한다. 서구 열강이 동아시아와의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며 영사재판권을 강요한 애초의 논리는 ‘근대적 법제도의 미비’에 있었다. 그런데 영사재판권 행사가 동아시아 내에서 교차하면서 이른바 ‘전근대적 법체제’라는 영사재판권 행사의 근거가 변용되어 오히려 ‘전근대적 법체제’ 하에서 영사재판권이 행사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으로 구체적인 영사재판권의 세부 절차에서도 ‘회심(會審)’, ‘관심(觀審)’과 같이 동아시아 내의 비균질적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제도적 변용을 겪는 다양한 모습을 아시아 간 영사재판권 시행의 구체상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셋째, 동아시아 국제질서 변화라는 시간 축의 비교사적 적용이라는 관점이다. 근대 동아시아의 지역질서는 화이질서의 붕괴, 일본의 대륙 침략과 아시아 패권 추구라는 흐름 속에서 변용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이러한 국제질서 변화라는 수직적 시간 축에 더하여 동아시아 각국 간의 수평적 비교를 통해 그 특징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기존에 비교적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영사재판의 소멸과 유지라는 청일 간의 차이에 대해 각각의 사례 발굴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본 연구는 한중일 간 조약에서 영사재판과 관련해 공통적으로 규정된 ‘회심(會審)’ 조항에 주목했다. 회심은 청심(聽審), 관심(觀審) 등으로도 표현되는데 외국인 원고-(개항장의) 내국인 피고 경우, 외국인 소속국의 관리가 재판에 참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외국인이 ...
본 연구는 한중일 간 조약에서 영사재판과 관련해 공통적으로 규정된 ‘회심(會審)’ 조항에 주목했다. 회심은 청심(聽審), 관심(觀審) 등으로도 표현되는데 외국인 원고-(개항장의) 내국인 피고 경우, 외국인 소속국의 관리가 재판에 참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외국인이 피고인 경우 실시된 영사재판권과 함께 한중일 각국의 법권을 침해하는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청심의 권한은 청과 열강 사이의 조약에서 구체화, 명문화되기에 이른다. 게다가 원칙적으로 청심은 조약 체결국 간 상호 시행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외국인 피고-청국인 원고의 영사재판에 청국 측의 관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청심은 영사재판과 아울러 외국인이 연루된 재판에서 청국의 사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요소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같은 관심 규정은 대한제국과 청 사이에 체결되는 한청통상조약에서도 나타난다. 주지하듯, 한청통상조약을 통해 청과 대한제국은 이른바 대등관계를 표방하게 되는데 이에 따른 상호 영사재판권 시행에서 청심이 규정된 것이었다. 이는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청심권 시행과 그 범위를 둘러싼 양국 측의 견해 차이가 문제화되었다. 이는 청심이 단순한 재판 참관이 아닌 엄연한 사법적 개입에 있음을 양국 모두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청일 사이의 관심 규정은 이와 사정을 조금 달리했다. 1871년 상호 대등 원리를 기반으로 한 청일수호조규가 체결된 뒤에 조약상의 회심을 대신하여 ‘관심’을 실시하기로 청일 양국이 1882년에 합의한 것이다. 청일 사이의 관심은 말 그대로 상대국 관리의 재판 ‘참관’에 가까운 형태였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청과 서구, 혹은 청과 대한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 속의 청심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상호대등 원리에 기반한 청일 관계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일본 우위의 불평등한 조약 관계로 재편된다. 이에 따라 청이 일본에서 행사하던 영사재판권은 소멸하고 일본만이 영사재판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게 되었다. 청은 이러한 일본에 대해 실질적으로 사문화된 연대조약에서의 관심 조항을 근거로 청의 회심을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청국인과 청국 재류 일본인 사이의 사건에서 청국 관헌과 일본 영사관 사이의 ‘회동 심문’이 이루어졌던 것을 전례로 삼은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은 “단순히 방청을 허가한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며 청의 회심 요구를 일축하였다. 결과적으로 일본인 피고-청국인 원고 사건에서 청이 요구한 회심은 실시되지 않았다. 19세기 말 동아시아에서 조약상 규정된 관심은 재판에 관여하는 회심의 성격이 강했고 오히려 단순한 참관을 의미하는 회심은 청일수호조규 하의 청일 관계에서 성립된 특수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청일전쟁 이후의 일본과의 불평등한 조약 관계에 속에서 일본은 청일수호조규 하의 ‘관심’ 형태를 재차 소환하여 청의 회심 요구에 대응했던 것이다. 이처럼 회심, 혹은 관심이라는 재류 외국인을 둘러싼 재판 형식은 19세기 말 동아시아 근대의 전개 과정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 활용된 것이다.
영문
This study focused on the ‘mixed court’(會審) provisions which are common to the 19th century of East Asia countries. The mixed court are also called ‘attending the trial(聽審 or 觀審)’, literally meaning that in the case of the foreign plaintiff and the lo ...
This study focused on the ‘mixed court’(會審) provisions which are common to the 19th century of East Asia countries. The mixed court are also called ‘attending the trial(聽審 or 觀審)’, literally meaning that in the case of the foreign plaintiff and the local defendant, the foreign consular can attend to the local trial. However, it is not only for watching the proceedings of a trial, but also can have right to present or protest the proceedings. In other words, mixed court functioned as a part of an unequal-treaty system in East Asia, in conjunction with consular jurisdiction. Mixed court was also foun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Qing(Treaty of Commerce between Korea and Qing in 1899). The diplomatic conflict between two countries surrounding how to operate the mixed court are showing that the mixed court are directly related to the infringement of the jurisdiction. However, the mixed court provisions between Qing and Japan have a distinct difference. Modern relationship between Qing and Japan are formally established by 1871, standing based on the principles of equality. Because of that, mixed court are decided to execute differently after the diplomatic consultation of the two countries, which means to restrict the right of foreign consular, to execute ‘attending the trial’ literally. However, the Sino-Japanese relationship based on the principle of mutual equality is reorganized into an unequal treaty relationship after Japan’s victory of the Sino-Japanese War. As a result, the consular jurisdiction that Qing used to exercise in Japan disappeared, and Japan unilaterally exercised the consular jurisdiction. Qing called for the mixed court based on the treaty supposed to be executed mutually. In fact, there was a precedent of mixed court took place between the Qing and Japan after the Sino-Japanese War. Japan dismissed Qing's request, emphasizing that ‘mixed court executed in the past was just a permission to watch’. As such, the format of trials surrounding foreigners was varied and utilized in the modern development of East Asia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본 연구는 한중일 간 조약에서 영사재판과 관련해 공통적으로 규정된 ‘회심(會審)’ 조항에 주목했다. 영사재판은 기본적으로 피고가 외국인인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외국인과 내국인이 얽힌 재판-이른바 내외인 민형사 사건-은 원고가 외국인인 경우를 포괄하고 있다 ...
본 연구는 한중일 간 조약에서 영사재판과 관련해 공통적으로 규정된 ‘회심(會審)’ 조항에 주목했다. 영사재판은 기본적으로 피고가 외국인인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외국인과 내국인이 얽힌 재판-이른바 내외인 민형사 사건-은 원고가 외국인인 경우를 포괄하고 있다. 회심 조항은 외국인 원고-(개항장) 내국인 피고 경우, 외국인 소속국의 관리가 재판에 참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회심은 청심(聽審), 관심(觀審) 등으로도 불리며 실제로 문맥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미묘히 달라지기도 했는데 기본적으로는 재판에 관여하여 증인의 소환과 심문, 판결에 대한 반박 등이 가능했기에 영사재판권과 같이 한중일 각국의 법권을 침해하는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관심, 혹은 청심이라는 용어 자체는 단순히 재판을 참관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나 이같은 용어상의 애매함은 열강의 강제력 행사 속에서 청심의 권한은 조약상 구체화, 명문화되기에 이른다. 게다가 원칙적으로 청심은 조약 체결국 간 상호 시행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외국인 피고-청국인 원고의 영사재판에 청국 측의 관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청심은 영사재판과 아울러 외국인이 연루된 재판에서 청국의 사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요소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같은 관심 규정은 대한제국과 청 사이에 체결되는 한청통상조약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주지하듯, 한청통상조약을 통해 청과 대한제국은 이른바 대등관계를 표방하게 되는데 이에 따른 상호 영사재판권 시행에서 청심이 규정된 것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통해 나타나듯, 청심권 시행과 그 범위를 둘러싼 양국 측의 견해 차이가 문제되었다. 이는 청심이 단순한 재판 참관이 아닌 엄연한 사법적 개입에 있음을 양국 모두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청일 사이의 관심 규정은 이와 사정을 조금 달리했다. 즉 청일 사이에 회심 규정이 실제로 시행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자 이를 대신하기 위해 ‘관심’을 실시하기로 청일 양국이 1882년에 합의한 것이다. 청일 사이의 관심은 말 그대로 상대국 관리의 재판 ‘참관’에 가까운 형태였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청과 서구, 혹은 청과 대한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 속의 청심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청일수호조규의 상호 대등관계에 기반하여 양국이 영사재판권을 인정하면서도 자국의 사법권 침해를 최소화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구체적인 운용과정에서 ‘관심’ 적용 문제를 이용해 청은 일본 나가사키 재류 청국인이 관계된 일본의 재판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하였고, 결국 일본 측이 관계 사건의 예심을 반복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상호대등 원리에 기반한 청일 관계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일본 우위의 불평등한 조약 관계로 재편된다. 이에 따라 청이 일본에서 행사하던 영사재판권은 소멸하고 일본만이 영사재판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게 되었다. 청은 이러한 일본에 대해 실질적으로 사문화된 연대조약에서의 관심 조항을 근거로 청의 회심을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청국인과 청국 재류 일본인 사이의 사건에서 청국 관헌과 일본 영사관 사이의 ‘회동 심문’이 이루어졌던 것을 전례로 삼은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은 “필경 단순히 방청을 허가한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며 청의 회심 요구를 일축하였다. 결과적으로 일본인 피고-청국인 원고 사건에서 청이 요구한 회심은 실시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회심과 관심(청심) 시행을 둘러싼 동아시아적 교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한 방청, 임석에 불과한 ‘관심’은 청일수호조규 하의 청일 사이에 성립된 특수한 형태였고 실제로 관심은 재판에 직접 관여하는 회심의 성격이 강했다. 청은 이같은 관심 규정을 이용해 청일전쟁 이후의 불평등한 조약 관계에 대응하고자 했고, 이에 대해 일본은 청일수호조규 하의 ‘청심’ 형태를 재차 소환했던 것이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본 연구는 19세기 말 동아시아 3국이 열강과 체결한 불평등조약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영사재판권 관련 규정이, 한중일 삼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 상에서는 어떻게 규정 시행되었는지를 비교 분석한 연구로 위치지을 수 있다. 이를 통해 19세기 동아시아의 역사적 ...
본 연구는 19세기 말 동아시아 3국이 열강과 체결한 불평등조약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영사재판권 관련 규정이, 한중일 삼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 상에서는 어떻게 규정 시행되었는지를 비교 분석한 연구로 위치지을 수 있다. 이를 통해 19세기 동아시아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영사재판이 단순히 서구 열강에 강요된 불평등한 요소가 아닌, 조약상의 규정과 실제 시행 과정의 괴리와 혼선, 그리고 동아시아 내의 교착을 보여주는 사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법권 행사’라는 관점에서 동아시아 내의 영사재판권 검토는 현재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가 ‘사법개혁’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그 역사적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고 하겠다. 한 국가의 법 체계는 단순히 학술적, 전문적 법 영역에 그치지 않고 사회 일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는 사회 질서와 규범에 대한 일반의 인식, 정치 문화와 도덕 관념과도 관계된다. 때문에 법리적 분석에 그치지 않고 인문학과 법합을 아우르는 ‘법문학’적 관점에서도 본 연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색인어
영사재판권, 회심(會審), 관심(觀審), 청심(聽審), 동아시아 간 개항, 동아시아 국제 관계, 거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