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방법론인 ‘탈식민 연구’는 식민지 지배의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문으로, 1980년대에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 호미 바바 Homi Bhabha, 가야트리 스피박 Gayatri Spivac의 세 사람이 주요 이론가로 꼽힌다. 특 ...
이 연구의 방법론인 ‘탈식민 연구’는 식민지 지배의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문으로, 1980년대에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 호미 바바 Homi Bhabha, 가야트리 스피박 Gayatri Spivac의 세 사람이 주요 이론가로 꼽힌다. 특히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창한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e이라는 개념이 탈식민 연구의 기원이다.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이론(특히 『지식의 고고학』과 『감시와 처벌』의 담론 이론)에 큰 영향을 받은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하나의 담론 discours으로 보고, 이를 서양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한 담론’으로 규정한다.
쥘 베른의 『신비의 섬』을 탈식민 이론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1장 서론, 2장 무인도의 식민지 정체성, 3장 하위주체의 표상, 4장 과학지식과 권력, 5장 결론이라는 목차를 기획했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2장부터 4장까지 향후 연구될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2장. 무인도의 식민지 정체성
쥘 베른이 『신비의 섬』에서 이어 받으려 한 디포우의 『로빈슨 크루소』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탈식민적 관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은 소설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바로 『로빈슨 크루소』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지적한다. 로빈슨의 존재는 “식민화의 사명감, 즉 아프리카, 태평양, 대서양의 원격지에 혼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사명감 없이는 생각될 수 없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제국주의의 절정기인 1875년에 출간된 쥘 베른의 『신비의 섬』 역시 제국주의적 함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소설이다. 프랑스 사회의 제국주의 옹호적 배경 속에서 다섯 명의 표류자들은 태평양의 섬에 표착하자, 그 섬을 미국의 식민지로 간주한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땅에서 토지자본으로의 이행이라는 주제야말로 제국주의 사명의 단 하나 중요한 줄기이다”라고 말한다. 이 토지를 ‘링컨 섬’이라고 명명하고, 이곳에 조난자들끼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사명감, 원시의 자연을 개척한다는 이념은 암묵적으로 식민주의를 미화하고 있다.
3장. 하위 주체의 표상
이 소설에는 프라이데이와 같은 원주민은 등장하지 않지만, 대신 백인 표류자들 사이에 유일한 유색인, ‘검둥이’ 네브가 등장한다. 탈식민적 시각에서 볼 때 쥘 베른은 『신비의 섬』에서 19세기의 편견에 물든 전형적인 흑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혀 갖지 못한 채 백인중심주의에 빠진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네브는 『신비의 섬』 내의 백인 동일자 그룹에서 타자화되어, 오리엔탈리즘이 동양과 타자를 취급하는 전형적인 묘사 방법 - 유아 상태에 있거나 동물과 같은 상태의 우둔함과 비논리성을 갖고 있는 - 이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가야트리 스피박의 하위 주체 subaltern라는 용어를 빌려 생각해 본다면, 네브는 흑인이라는 인종적 하위성, 그리고 하인이라는 계급적 하위성을 가진 이중의 하위 주체이다. 말하거나 표상하는 ‘권력’이 없는 하위 주체 네브는 담론의 영역에서는 침묵 당하고, 표상의 영역에서는 자의적으로 (부정적으로) 표상되는 존재로 남는 것이다.
4장. 과학 지식과 권력
『신비의 섬』은 과학을 찬양하는 과학 소설이다. 링컨 섬의 표류자들은 단 몇 개월 만에 채집에서 수렵시대로, 이어 철기시대로 이동하며, 마침내 근대의 과학 기술까지 발명하고 이용하게 된다. 『신비의 섬』에서 높이 평가하는 과학과 과학적 지식은 19세기 후반의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제국의 기초는 예술과 과학”이기 때문이다. 사이드는 유럽의 위대한 리얼리즘 소설이 어떻게 ‘해외 영토 확장을 긍정하는 사회의 합의’를 지지하게 되었는지를 검토한다. 그 합의는 “제국주의를 충동하는 이기적인 힘이 박애주의라든가 종교라든가 ‘과학’이라든가 예술이라고 하는, 공평무사한 운동이라는 보호색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합의이다. 일견 중립적으로 보이는 근대의 과학적 지식은 이와 같이 동서양의 제국주의적 권력과 결합하여 푸코가 말하는 지식-권력의 복합체로 작용하는 것이다.
탈식민적 관점에서 쥘 베른의 『신비의 섬』은 과학과 지식에 대한 찬양이라는 담론을 내세워 식민주의적 차원 - 무인도의 자연을 제국의 영토화 하기, 하위 주체에 대한 인종차별적 표상 - 을 은폐하는 소설로 보인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탈식민 연구의 여러 저작들과 쥘 베른 관련 서적의 독서를 통해, 『신비의 섬』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