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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1930년대 청구학회(靑丘學會)의 활동과 식민주의 역사학의 고착화
The activities of Cheong-gu Hakhoe and fixedness of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in 1930s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9S1A5B5A07110908
선정년도 2019 년
연구기간 1 년 (2019년 12월 01일 ~ 2020년 11월 30일)
연구책임자 조범성
연구수행기관 숭실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식민주의 역사학회였던 청구학회(靑丘學會)의 설립 과정과 인적 구성, 활동 내용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식민주의 역사학이 조선 사회에 제도적·학문적으로 고착화되어가는 과정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는 식민주의 역사학 연구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바 없는 청구학회 및 그 간행물인 『청구학총(靑丘學叢)』에 주목하여 분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의가 있다. 또한 식민주의 역사학이 청구학회를 통해 한국사 연구의 풍토를 잠식해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강점 기간 조선총독부를 통해 역사 연구에 필수적인 학문적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식민주의 역사학이 왜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체계화된 학회를 갖추게 되었고 비로소 장기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 기대효과
  • 첫째, 기존의 연구에서는 식민주의 역사학의 내용적 측면을 비판하는 데 집중하거나 관련 인물·기관 등에만 피상적으로 접근해온 까닭에 식민주의 역사학이 고착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학문상에서의 식민주의적 요소들, 즉 일제의 연구 자료(사료)의 독점과 근대적 학문연구 환경 및 활동의 선점이 한국 역사학의 발전에 미친 악영향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
    둘째, 본 연구는 청구학회 활동의 가장 큰 산물인 『청구학총』을 번역·해제하는 작업과 이에 대한 후속 연구로 연계될 수 있다. 향후 고고학·고대사·중세사·근세사·근대사 등 다방면에서의 식민주의 역사학 연구를 보다 활성화시키기 위해 『청구학총』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셋째, 본 연구는 식민주의 역사학의 성격과 영향을 보다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한국 근대사 및 한국 근대사학사, 근대 역사관의 이해에 관한 강의에 기여할 것이다. 식민주의 역사학은 한국근대사 관련 개설서와 근대사학사 관련 서적에서 민족주의 역사학과 사회경제사학과 함께 빠짐없이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인 만큼, 우리 역사상에서 중요하고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1930년대 청구학회의 설립과 활동을 통해 일제의 식민주의 역사학이 제도적·학문적으로 고착화되어 가는 과정을 서술하고자 한다.
    먼저 선행 연구들을 토대로 1910~1920년대 조선 내 식민주의 역사학계의 동향에 대해 살펴본다. 이 시기에 추진되고 있던 『조선사』 편찬사업의 전개 과정과 경성제국대학의 설립 및 사학과의 설치가 가지는 의미, 그리고 동시기에 활동하고 있던 식민주의 역사학회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청구학회 설립을 둘러싼 시대적인 배경을 검토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청구학총』에 실린 회칙과 임·회원 명단을 통해 1930년 청구학회의 설립 과정과 그 인적 구성을 파악하여 청구학회의 설립 및 운영 주체는 누구였고 무엇을 목적으로 학회를 설립했는지에 대해 고찰할 것이다. 특히 청구학회의 운영과 활동을 주도했던 나카무라 히데타카[中村榮孝] 등 2세대 식민주의 역사학자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확인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10여 년간에 걸친 청구학회의 활동을 통해 식민주의 역사학이 조선에 고착화되는 과정을 확인하고자 한다. 청구학회는 학술지 『청구학총』을 연 4회 발간하고 정기적으로 강연회·발표회를 추진했으며, 매년 1회 학술대회도 개최하였다. 아울러 비정기적으로 학술답사도 추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식민주의 역사학의 ‘고착화’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려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1930년대 청구학회의 설립과 활동을 통해 식민주의 역사학(이하 식민사학)이 식민지 조선의 역사학계에 학문적으로 고착화되어가는 과정을 살피고자 하였다. 먼저 1920년대에 추진되고 있던 『조선사』 편찬사업의 전개 과정과 경성제국대학의 설립 및 사학과의 설치, 그리고 동시기 활동하고 있던 식민사학 연구단체들의 동향을 살펴봄으로써 청구학회 설립 이전 시기의 상황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하여 강점 이후 역사 연구에 필수적인 학문 제도의 권력을 이미 선점·독점하고 있던 식민사학이 왜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체계화된 학회를 갖추게 되었고, 비로소 장기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1930년 청구학회의 설립 과정과 그 인적 구성, 운영 체계를 보다 면밀히 분석했다. 청구학회는 1세대 일본인 식민사학 연구자인 小田省吾의 감독과 지도하에,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조선으로 건너온 젊은 2세대 엘리트 연구자 中村榮孝·末松保和가 중심이 되어 설립·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극동문화 연구 및 보급”이라는 명분하에 1930년대 일제의 대륙 침략을 학술적으로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려 했음을 규명하였다. 아울러 청구학회는 설립 당시 조선총독부 및 조선사편수회 관계자와 경성제국대학 소속 교·강사와 출신자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이전의 학회들보다 풍부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시기 일본의 역사학계에서는 청구학회의 설립과 취지를 환영하며 기대를 보내왔다.
    한편, 9년여 간에 걸친 청구학회의 활동 내용을 통해 식민사학이 식민지 조선의 역사학계에 학문적으로 고착화되어가는 과정을 확인하였다. 청구학회는 『청구학총』을 연 4회 계간으로 간행하고, 정기적으로 강연회·강습회를 개최하며, 연구자료와 저술을 출판하고, 고적답사도 추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였다. 특히 『청구학총』은 기존의 식민사학 연구단체에서 간행했던 것보다 체재와 내용 면에서 월등히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939년 10월 제30호를 마지막으로 폐간을 선언할 때까지 매년 지속적으로 간행되어, 1930년대 생산된 식민사학의 연구 성과를 축적하고 학계와 일반에 보급하는 데 일조하였다. 이렇게 청구학회를 통해 연구·보급된 식민사학의 성과는 한국근대역사학에 뿌리 깊게 남아 해방 이후에도 한국사학계에서 끊임없이 비판과 반성의 대상으로 남게 되었다.
  • 영문
  • Through the establishment and activities of the Cheong-gu Hakhoe(Cheong-gu Academic Society) in the 1930s, this study attempts to examine the process in which the history of colonialism (hereinafter referred to as colonial history) became academically entrenched in the history academia of the colonized Joseon. To begin with, the study reviews the development process of a compilation project called The History of Chosen that was promoted throughout the 1920s as well as the establishment of Gyeongseong Imperial University and the foundation of its Department of History. Furthermore, this article seeks to examine the situation before the establishment of Cheong-gu Hakhoe by scrutinizing the trends among research groups of colonial history that were active in the 1920s. Through such attempts, this study aims to explain why it was not until the 1930s that colonial history, which had already preoccupied and monopolized the power of the academic system essential for history research, was not able to form a systematic academic society and eventually sustain in the long run.
    Additionally, the foundation of Cheong-gu Hakhoe in 1930, the organization’s personnel structure and operations system are thoroughly analyzed in this research. It can be concluded that under the supervision and guidance of Shogo Oda, a first-generation Japanese colonial history researcher, Cheong-gu Hakhoe was established and operated mainly by young second-generation elite researchers, namely Hidetaka Nakamura and Yasukazu Suematsu, who came to Joseon right after graduating from Tokyo Imperial University. Moreover, this study found out that Cheong-gu Hakhoe, under the pretext of ‘research and dissemination of Far Eastern culture’, provided academic support to Imperial Japan’s invasion of the continent in the 1930s. As Cheong-gu Hakhoe is comprised of officials working for Governor-General of Chosen and Chosen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as well as teachers and professors from Gyeongseong Imperial University, it can be seen that Cheong-gu Hakhoe was founded with a more diverse pool of human resources compared to previous academic associations. At that time the history academia in Japan welcomed and had high expectations of the establishment as well as the purposes of Cheong-gu Hakhoe.
    Meanwhile, through the activities of Cheong-gu Hakhoe during nine years, this study recognizes that colonial history was becoming academically entrenched in the history academia of the colonized Joseon. Cheong-gu Hakhoe planned various activities such as the issuance of Cheonggu Hakchong four times a year, frequent operations of lectures, publication of research materials and books, and promotion of history research. In particular, in comparison to the materials published by preexisting research groups of colonial history, Cheonggu Hakchong was far more superior in terms of format and content. Published annually until October 1939 when the 30th issue was released as the last publication, Cheong-gu Hakchong played a part in accumulating and dispersing research results of colonial history in the 1930s to both the academia and general public. The achievements of colonial history that were studied and distributed through Cheong-gu Hakhoe have remained deeply rooted in the Korean modern history and become the subject of criticism and reflection within Korean history academia even after liberalizati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1930년대 청구학회의 설립과 활동을 통해 식민주의 역사학(이하 식민사학)이 식민지 조선의 역사학계에 학문적으로 고착화되어가는 과정을 살피고자 하였다. 먼저 1920년대에 추진되고 있던 『조선사』 편찬사업의 전개 과정과 경성제국대학의 설립 및 사학과의 설치, 그리고 동시기 활동하고 있던 식민사학 연구단체들의 동향을 살펴봄으로써 청구학회 설립 이전 시기의 상황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하여 강점 이후 역사 연구에 필수적인 학문 제도의 권력을 이미 선점·독점하고 있던 식민사학이 왜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체계화된 학회를 갖추게 되었고, 비로소 장기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1930년 청구학회의 설립 과정과 그 인적 구성, 운영 체계를 보다 면밀히 분석했다. 청구학회는 1세대 일본인 식민사학 연구자인 小田省吾의 감독과 지도하에,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조선으로 건너온 젊은 2세대 엘리트 연구자 中村榮孝·末松保和가 중심이 되어 설립·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극동문화 연구 및 보급”이라는 명분하에 1930년대 일제의 대륙 침략을 학술적으로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려 했음을 규명하였다. 아울러 청구학회는 설립 당시 조선총독부 및 조선사편수회 관계자와 경성제국대학 소속 교·강사와 출신자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이전의 학회들보다 풍부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시기 일본의 역사학계에서는 청구학회의 설립과 취지를 환영하며 기대를 보내왔다.
    한편, 9년여 간에 걸친 청구학회의 활동 내용을 통해 식민사학이 식민지 조선의 역사학계에 학문적으로 고착화되어가는 과정을 확인하였다. 청구학회는 『청구학총』을 연 4회 계간으로 간행하고, 정기적으로 강연회·강습회를 개최하며, 연구자료와 저술을 출판하고, 고적답사도 추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였다. 특히 『청구학총』은 기존의 식민사학 연구단체에서 간행했던 것보다 체재와 내용 면에서 월등히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939년 10월 제30호를 마지막으로 폐간을 선언할 때까지 매년 지속적으로 간행되어, 1930년대 생산된 식민사학의 연구 성과를 축적하고 학계와 일반에 보급하는 데 일조하였다. 이렇게 청구학회를 통해 연구·보급된 식민사학의 성과는 한국근대역사학에 뿌리 깊게 남아 해방 이후에도 한국사학계에서 끊임없이 비판과 반성의 대상으로 남게 되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먼저 식민사학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에서 ‘학회’에 주목한 사례가 드물었던 만큼, 본 주제는 연구사적으로 일정한 의의를 지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청구학회의 설립 과정과 활동 내용은 1930년대 식민사학이 제도적·학문적으로 완전히 고착화되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본 연구는 식민사학이 단순히 존재했음을 넘어, 일련의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한국사 연구 풍토를 잠식해가고 있었음을 파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기존의 연구에서는 식민사학의 내용적 측면을 비판하는 데 집중하거나 그와 관련된 인물·기관에 대해 피상적으로 접근해온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식민사학이 고착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학문상에서의 식민주의적 요소들, 즉 일제의 연구 자료(사료)의 독점과 근대적 학문연구 환경 및 활동의 선점이 한국 근대사학사의 발전에 미친 악영향에 대해서는 별다른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 본 연구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나아가 본 연구는 청구학회 활동의 가장 큰 산물인 『청구학총』을 번역·해제하는 작업과 이에 대한 후속 연구로 연계할 수 있다. 『청구학총』은 1930년대 다양한 식민주의 역사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담고 있는데, 기존의 연구에서는 고고학·고대사·중세사·근세사·근대사 등 각 전공 분야에서 연구에 필요한 글을 부분적으로 발췌해서 활용해왔을 뿐, 이를 전체적으로 검토하여 목록화·분류화하고 그 내용을 번역하거나 해제한 경우는 없다. 향후 다방면에서의 식민사학 연구를 보다 활성화시키기 위해 『청구학총』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본 연구를 통해 청구학회의 활동과 그 성격을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식민사학의 성격과 영향을 보다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한국 근대사 및 한국 근대사학사, 근대 역사관의 이해에 관한 강의에 일정하게 기여할 것이다. 식민사학은 한국근대사 관련 개설서와 근대사학사 관련 서적에서 민족주의 역사학과 사회경제사학과 함께 빠짐없이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인 만큼, 우리 역사상에서 중요하고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본 연구 성과가 갖는 의의는 학계와 역사 교육에 있어 유의미한 것이라 생각된다.
  • 색인어
  • 청구학회, 청구학총, 식민주의 역사학, 조선사편수회, 경성제국대학, 中村榮孝, 末松保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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