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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代화상석에 반영된 조상제례연구
A Study on the ancestral ritual formalities reflected in painting carved on a stone in Han Dynasty.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9S1A5B5A07107271
선정년도 2019 년
연구기간 1 년 (2019년 12월 01일 ~ 2020년 11월 30일)
연구책임자 허명화
연구수행기관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先秦시기 宗法제도에 따라 엄격했던 廟祭의 조상제례는 漢代에 이르러 墓祭로 확산되었다. 다시 말해 ‘무덤의 제사’로써 조상 모시기를 시작했다. 이러한 墓祭를 지내기 위해 무덤에 민간에서도 개인적인 祠堂을 건립한 시기가 바로 漢代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중국에서 출토된 畵像石은 거의 대부분이 漢代의 祠堂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漢代에만 국한된 민간의 사당에 화상석이 성행했던 것인가? 이것은, 기존의 화상석 연구에서 미학적, 종교적인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본고에서는 곧 漢代의 특성인 조상제례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고, 화상석에 반영된 조상제례의 시대적배경과 조상제례의 변천과정을 분석해보기로 한다. 이러한 시대적배경과 변천과정 속에서 과연 국가의 권력이 민간사회의 조상제례에 어떠한 방식으로 침투했을 것인지, 漢代사회의 조상제례에는 어떤 영향을 초래했는지를 구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가의 유교 이데올로기와 조상제례는 어떤 방식으로 결부되면서 민간사회에 정착되고 화상석이 이 시기에만 성행되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본고에서 고찰하는 漢代 畵像石에 반영된 조상제례연구는 기존의 연구 성과인 미학적, 종교적인 것과는 달리 민간의 조상제례 고찰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나아가 漢代에서만 성행했던 화상석에 반영된 조상제례는 孝治 사상을 통해 국가의 권력이 민간사회에 전반에 걸쳐 침투했을 것임을 구명하는 데에도 유의미하다고 사료된다.
    특히 2006년 이후부터 오늘날 현대중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청명절과 祭祀網에서 성업 중인 조상섬기기 열풍은 바로 마치 전통부활로서 漢代의 조상제례 상황의 재현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되어 그 원천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향후 본고의 화상석에 반영된 漢代조상제례연구를 통해서 학제간의 새로운 융합연구로서 민속학, 경제학과 연계하여 확대시켜 연구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본고의 연구과정에 산출되는 중국 언론매체 조사는 오늘날 현대중국에서 청명절과 인터넷 祭祀網에서 확산되고 있는 조상섬기기 열풍과 연계될 것이다. 이것은 중국생활풍속사, 사회사, 사상사의 동양사 강의와 후속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 연구요약
  • 춘추전국시대에서 씨족제가 해체되면서 漢代 편호제민체제로의 이행은 조상제례에도 큰 영향을 초래했다. 이것은 곧 廟祭가 墓祭로 변화가 시작되면서 민간에서도 무덤에 사당을 지어 조상신을 모시게 된 것이다. 墓祭의 발전과 祠堂의 성행은 조상신이 현세의 화복을 결정한다는 ‘攘禍招福’의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곧 화상석에서 반영된 漢代人의 ‘事死如事生’관념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에서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孝治를 禮的 질서로 활용하였지만, 화상석에 반영된 조상제례의 정황을 살펴보면 당시 사회에서 확산된 ‘事死如事生’의 ‘조상모시기’열풍을 막지 못했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고는 漢代에 이르게 되면 編戶齊民체제로서 가족단위의 조상제사가 가능해졌음에 주목하였다. 이것은 漢代에 실시된 유교가 국교로 되면서 효렴제도의 영향과 함께 조상제례가 정착된 요인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漢代에 墓祭를 지내기 위해 민간에서도 무덤에 개인적인 祠堂을 건립을 성행시켰는데, 바로 이것이 바로 무덤 祠堂에 있었던 畵像石이었다.
    본고는 漢代의 정착된 조상제례를 찾아볼 수 있는 화상석에 반영된 배례도를 통해서 고찰하기 위해 그 시대적 배경으로 조상제례의 관념양상을 검토하였고, 墓祭변화를 함께 분석하였다. 한대에서 국가의 유교이데올로기와 前漢시기부터 孝治를 내세운 국가의 권력이 민간사회에 영향을 끼치면서 수많은 화상석 건립을 확산시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漢代人의 조상제례에서 喪葬풍속은 영혼관의 상징인 生死관념은 기본적으로 “不死其親”의 신념이 지배하였다. 그 가운데서 “事死如事生”의 상장예속은 영혼불멸관이라는 漢代의 독특한 생사 관념으로서 漢代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였다. 風은 자연환경에 의해, 俗은 군주의 의도에 의해 형성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漢代 民間의 풍속은 상당 부분이 귀신과 관계된 것이 많았으며, 이러한 漢代의 鬼神觀이 漢代人들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속의 漢代人들의 喪葬에서 기인된 생사관은 신비주의와 결합된 귀신관념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이러한 漢代人들의 무덤에 대한 풍속배경은 조상제사를 지내는 무덤에 대한 인식과 墓祭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화상석이 출현되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 되었다고 파악된다. 이러한 상황의 무덤에 대한 조상숭배 변화는 한대사회가 씨족제에서 편호제민 가족제로 바뀌고, 조상숭배의 주요 대상도 종족의 먼 조상에서 가까운 가족 특히 부친으로 바뀌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무덤이나 무덤 근처에서 死者인 조상에게 제사한 이유는, 사자의 영혼이 무덤에 살면서 제사를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墓祭가 확산되고 성행한 시기는 明帝 시기’가 되겠지만, ‘墓祭가 시작된 시기는 前漢시기’로 파악하였다.
    조상제례와 직접 관련 있는 화상석의 누각배례도의 제사 도상은 ‘事死如事生’이라는 한대인의 영혼관과 유가사상을 함께 반영하였다. 배례도 화상석에 보이는 거마출행도, 扶桑樹, 서왕모의 상징을 종합해보면 삼단형태의 누각배례도의 하층은 거마출행도라는 상징을 통해 ‘지하세계’를 표현했으며, 중간층에는 祠主가 자손에게 제사를 받는 祠主祭祀圖를 표현하여 ‘현실세계’를 나타냈으며, 중층과 상층사이에는 扶桑樹를 표현하여 하늘을 향해 오르는 신성함을 나타낸 '神樹'를 상징한 것으로 판단된다. 여인의 신분을 상징하는 서왕모가 있는 상층부는 ‘천상세계’를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중하로 나뉜 화상석 배례도의 표현들로 보아 조상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된 사당의 건립은 후손들의 영혼관과 당시의 喪葬풍속이었다. 이는 묘주에게 배례를 하는 효행의 의미를 표현한 것으로서 孝사상의 확산이자, 바로 漢代의 통치사상이었던 '罷黜百家, 獨尊儒術'의 사회적 기풍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통치수단이었던 유가사상이 국가적 지배구조의 논리가 되면서 조상제례의 성행이 누각배례도 화상석에 잘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영문
  • Abstract

    A Study on the ancestral ritual formalities reflected in painting carved on a stone in Han Dynasty
    Heo, myung-hwa

    This paper noted that in the Han Dynasty, ancestral rites became possible in the family unit due to the system of “resident registration for each house(編戶齊民)”.
    This was a factor in which the ancestral ritual was settled along with the influence of the system that the Confucian ideology practiced in the Han Dynasty became the nation's religion, and the system was governed by filial piety and integrity. These influences were at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of personal ancestral gods on the tombs in general society in order to perform rituals in the tombs during the Han Dynasty, and the paintings engraved on the stone were located in the building where the ancestors were enshrined next to the tombs.
    This thesis examines the formation of ancestral rites and their phenomena against the background of the period in order to examine through paintings that show etiquette to ancestors reflected in the paintings engraved on stone, which can be found in the settled ancestral rites of the Han Dynasty. The change of the rite was analyzed together. It can be presumed that the religious ideology of the state's Confucian ideology in the Han era and the state's power to rule the country with filial piety from the previous period influencing the general society and spreading the construction of numerous stone-carved paintings.
    In the ancestral rites of the people of the Han Dynasty, the concept of life and death, which is a symbol of the view of the soul, was basically dominated by the belief of “people never die(不死其親).” Among them, the listing subordination of “Thinking like a living person even when they die(事死如事生)” is a unique concept of life and death in the Han dynasty, which is the view of the immortality of the soul, and further developed in the Han dynasty. It is said that the “conventionalism(風俗)” is formed by the natural environment and by the intention of the monarch. That is why many people's customs during the Han Dynasty were related to ghosts, and this idea of ​​ghosts during the Han Dynasty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lives of people during the Han Dynasty. The life and death view that originated from the traditions of Han Dynasty people's contemplation of such customs originated from the Confucian thought of the “The filial piety(孝)”, but the idea of ​​ghosts combined with mysticism was also dominant. Eventually, the background of customs on the tombs of the people of the Han Dynasty was considered not only to be an opportunity to recognize the tombs where ancestral rites were held and to develop into tomb rites, but also to be a very suitable environment for the appearance of burns. This change in ancestor worship in the tombs was a phenomenon that occurred when the “Han period(漢)”society changed from the clan system to the family system of “resident registration for each house(編戶齊民)”, and the main object of ancestor worship was changed from a distant ancestor of the tribe to a close family, especially a father. The reason for the sacrifice to the ancestors who died in the tomb or near the tomb was because they thought that the souls of the dead lived in the tomb and received sacrifices.
    In this thesis,'the time when the tomb rites spread and prevailed would be the “míngdì(明帝)”period, but the ‘beginning of the tomb rites was the “Qián Hàn period(前漢時期)”. Directly related to ancestral rites, this pavilion ancestral rite painting reflects the Han(漢)people’s view of the soul and the Confucian idea of ​​“Thinking like a living person even when they die(事死如事生)”In summarizing the symbols of děmǎchūxíngtú(車馬出行圖), fúsāngshù(扶桑樹), and Xīwángmǔ(西王母) in the paintings of the ancestral priests, the lower layer of the three-stage “A picture of worship(拜禮圖)”is represented by the symbol of děmǎchūxíngtú. In the middle floor, the owner of the graveyard expresses the ritual of the graveyard owner who receives sacrifices from his descendants to represent the 'real world'. It is judged to symbolize shénshù(神樹)', which shows the sacredness of the ascendant. The upper part with the Xīwángmǔ, which symbolizes the status of a woman, expresses the “heavenly world”. The construction of a building next to the tomb prepared for ancestral rites can be seen as an expression of etiquette to the ancestors in the paintings carved on the stone divided into upper and lower parts. This expresses the meaning of the act of filial piety to the owner of the cemetery. It is the spread of filial piety and the social atmosphere of “All scholarly thoughts are extinguished and only Confucian thoughts are respected(罷黜百家, 獨尊儒術)”, which was the ruling ideology of the Han Dynasty. Therefore, it can be seen that Confucian ideas, which were the means of governance, became the logic of the national governance structure and that the ancestral rites were well reflected in the paintings carved on the ston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고는 漢代에 이르게 되면 編戶齊民체제로서 가족단위의 조상제사가 가능해졌음에 주목하였다. 이것은 漢代에 실시된 유교가 국교로 되면서 효렴제도의 영향과 함께 조상제례가 정착된 요인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漢代에 墓祭를 지내기 위해 민간에서도 무덤에 개인적인 祠堂을 건립을 성행시켰는데, 바로 이것이 바로 무덤 祠堂에 있었던 畵像石이었다.
    본고는 漢代의 정착된 조상제례를 찾아볼 수 있는 화상석에 반영된 배례도를 통해서 고찰하기 위해 그 시대적 배경으로 조상제례의 관념양상을 검토하였고, 墓祭변화를 함께 분석하였다. 한대에서 국가의 유교이데올로기와 前漢시기부터 孝治를 내세운 국가의 권력이 민간사회에 영향을 끼치면서 수많은 화상석 건립을 확산시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漢代人의 조상제례에서 喪葬풍속은 영혼관의 상징인 生死관념은 기본적으로 “不死其親”의 신념이 지배하였다. 그 가운데서 “事死如事生”의 상장예속은 영혼불멸관이라는 漢代의 독특한 생사 관념으로서 漢代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였다. 風은 자연환경에 의해, 俗은 군주의 의도에 의해 형성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漢代 民間의 풍속은 상당 부분이 귀신과 관계된 것이 많았으며, 이러한 漢代의 鬼神觀이 漢代人들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속의 漢代人들의 喪葬에서 기인된 생사관은 신비주의와 결합된 귀신관념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이러한 漢代人들의 무덤에 대한 풍속배경은 조상제사를 지내는 무덤에 대한 인식과 墓祭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화상석이 출현되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 되었다고 파악된다. 이러한 상황의 무덤에 대한 조상숭배 변화는 한대사회가 씨족제에서 편호제민 가족제로 바뀌고, 조상숭배의 주요 대상도 종족의 먼 조상에서 가까운 가족 특히 부친으로 바뀌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무덤이나 무덤 근처에서 死者인 조상에게 제사한 이유는, 사자의 영혼이 무덤에 살면서 제사를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墓祭가 확산되고 성행한 시기는 明帝 시기’가 되겠지만, ‘墓祭가 시작된 시기는 前漢시기’로 파악하였다.
    조상제례와 직접 관련 있는 화상석의 누각배례도의 제사 도상은 ‘事死如事生’이라는 한대인의 영혼관과 유가사상을 함께 반영하였다. 배례도 화상석에 보이는 거마출행도, 扶桑樹, 서왕모의 상징을 종합해보면 삼단형태의 누각배례도의 하층은 거마출행도라는 상징을 통해 ‘지하세계’를 표현했으며, 중간층에는 祠主가 자손에게 제사를 받는 祠主祭祀圖를 표현하여 ‘현실세계’를 나타냈으며, 중층과 상층사이에는 扶桑樹를 표현하여 하늘을 향해 오르는 신성함을 나타낸 '神樹'를 상징한 것으로 판단된다. 여인의 신분을 상징하는 서왕모가 있는 상층부는 ‘천상세계’를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중하로 나뉜 화상석 배례도의 표현들로 보아 조상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된 사당의 건립은 후손들의 영혼관과 당시의 喪葬풍속이었다. 이는 묘주에게 배례를 하는 효행의 의미를 표현한 것으로서 孝사상의 확산이자, 바로 漢代의 통치사상이었던 '罷黜百家, 獨尊儒術'의 사회적 기풍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통치수단이었던 유가사상이 국가적 지배구조의 논리가 되면서 조상제례의 성행이 누각배례도 화상석에 잘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화상석에서 墓主는 자손들의 효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묘주에게 배례를 하는 효행의 의미를 표현한 것으로서 孝사상의 확산이자, 바로 漢代의 통치사상이었던 '罷黜百家, 獨尊儒術'의 사회적 기풍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며, 이는 後漢시기의 당시 효사상 뿐만 아니라 생사관과 영혼관에도 반영되어 당시사회에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武氏祠画像 누각배례도의 특징은 거마출행도, 나무 ‘扶桑樹’, 서왕모의 표현이었다. 이것은 삼단형태의 누각배례도로서 하층은, 거마출행도라는 상징을 통해 ‘지하세계’를 표현했으며, 중간층에는 祠主가 자손에게 제사를 받는 祠主제사도를 표현하여 ‘현실세계’를 나타냈으며, 중간층과 상층사이에 신성함을 나타낸 '神樹'를 표현하였다. 최상층의 서왕모는 ‘천상세계’를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 부분으로 나뉜 화상석에 반영된 조상제례를 보면 사당의 건립은 후손들의 영혼관과 입신양명과 관련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배경은 한대사회에서 조상제례를 부각시키는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것은 국가적 지배구조의 논리이자 통치수단이었던 유가사상과 당시 조상제례의 관념인 “不死其親”과 墓祭로의 변화와 맞물려서 조상제사의 성행과 확산이 화상석에 잘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논문을 통해 오늘날의 현대중국인들의 조상섬기기 열풍의 확산의 그 근거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漢代에서 성행했던 화상석에 반영된 조상제례는 유교적인 사상을 통해 국가의 권력이 침투했을 것임을 구명하는 데에도 유의미하다고 사료된다.
    특히 이러한 이해는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전통적인 근원을 파악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대중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청명절의 조상섬기기 열풍의 확산에 대해서도 漢代의 상황이 재현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향후 본고의 화상석에 반영된 漢代조상제례연구를 통해서 학제간의 새로운 융합연구로서 민속학, 경제학과 연계하여 확대시켜 연구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본고는 오늘날 현대중국에서 청명절에 확산되고 있는 조상섬기기 열풍과 연계될 것이다. 漢代의 조상섬기기 성행의 재현과 관련하여 ‘중국생활 풍속사 강의’에서도 2006년에 시작된 중국의 공자아카데미 활성화 정책방안과 연계하여 강의 할 수 있는 근거가 제공될 것이다. 이것은 중국생활사, 사회사, 사상사, 예제사의 후속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 색인어
  • 편호제민編戶齊民, 불사기친不死其親, 묘제墓祭, 누각배례도樓閣拜禮圖, 화상석畵像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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