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범과 김시종의 오랜 신뢰와 서로의 글쓰기에 대한 깊은 애정에 기반한 특별한 문학적 관계에 주목한 이 연구는 김석범과 김시종, 두 대표적인 재일 한인 디아스포라 문인의 문학적 우정과 연대, 문학적 차이에 대해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이 둘의 문학세계에 대해 ...
김석범과 김시종의 오랜 신뢰와 서로의 글쓰기에 대한 깊은 애정에 기반한 특별한 문학적 관계에 주목한 이 연구는 김석범과 김시종, 두 대표적인 재일 한인 디아스포라 문인의 문학적 우정과 연대, 문학적 차이에 대해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이 둘의 문학세계에 대해 한층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 연구의 1차연도에는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에 등장하는 시인 김시종의 우편국 사건 스토리를 김시종 자서전 『조선과 일본에 살다』에 등장하는 스토리, 김석범·김시종 대담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해 왔는가』(일본어판 2001, 한국어 번역은 2007년. 제주대출판부)와 면밀하게 비교 분석했다.
우선 김석범과 김시종의 대담과 김시종의 자전에 묘사된 차이가 있다. 자서전의 도피 행로가 대담보다 한층 구체적이며 다양하다. 대담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던 지명이 자전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처음 상륙한 해변 지명도 자전에서 정확하게 서술된다. 자서전과 대담의 내용 차이는 2015년과 2000년이라는 15년의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 정치적 환경의 변화와 연관된다. 요컨대 그 차이는 4·3이라는 민감한 역사적 경험을 공개하는 시대적 감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김시종 시인은 자신의 4·3 관련 행적과 스토리, 연관 인물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화산도』 곳곳에는 김시종 시인의 4·3사건 당시 우편국 사건 스토리와 이후 행적이 기술돼 있다. 물론 소설 『화산도』에 등장하는 서술은 김석범 작가에 의해 김시종 시인의 스토리가 다소 변주된 것이다. 그 내용은 김시종이 직접 밝힌 스토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가령 우편국 사건의 결말, 탄압 주체, 도피 장소 등에 차이가 존재하며, 자서전과 대담에서 긴박하게 묘사된 관탈섬 장면은 『화산도』에 빠져 있다. 이런 스토리의 차이는 소설과 실제 사실의 고백이라는 담론(장르)의 차이에서 비롯되지만, 김석범과 김시종의 문학관과 4·3이라는 역사적 현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도 연유한다. 말하자면 『화산도』에 등장하는 우편국 사건과 그로 인한 도피 과정에는 김시종의 실제 스토리를 소설로 변용할 수밖에 없는 김석범의 시각과 관점이 투영돼있는 것이다.
아울러 김석범과 김시종의 대담을 편집한 단행본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해 왔는가』에 서술된 김시종의 4·3으로 인한 도피 경로와 자서전에 등장하는 도피 경로에도 몇몇 차이가 존재한다. 이 점은 4·3이라는 민감한 역사적 경험을 공개하는 시대적 감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김시종 자서전이 발간된 2015년, 김시종이 4·3과 연관된 행적과 우편국 사건을 처음 공개하던 2000년, 그리고 <화산도> 2부가 한창 집필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이라는 세 가지 시기의 정치·사회적 상황의 차이가 존재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2차연도에는 김석범과 김시종의 대담집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해 왔는가』(제주대출판부, 2007)에서 제기된 중요한 논점 중에서 주로 제주 4·3 체험 여부가 둘의 글쓰기에 미친 영향(침묵과 계속 쓰기), 이와 이어지는 주제로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직접 체험(리얼리티)과 허구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두 사람의 육성과 체험, 기질, 문학과 언어, 역사에 대한 관점이 매우 생생하게 드러난 이 대담은 제목에서 암시되듯이, 무엇보다 제주 4.3을 둘러싼 직접 체험 여부의 차이가 지닌 의미가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과 해석은 두 사람의 문학세계와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역사적 사료의 가치를 지녔기에, 공적으로 기억하고 의미부여 해야 할 소중한 대목들이 많다.
김시종은 4·3의 저항조직에 참여했다가, 가까스로 일본으로 밀항했던 처지였다. 그래서 김시종에게 4·3은 인생의 원체험이자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며 깊은 상처에 해당한다. 그래서 김시종은 4·3에 대해 알리고, 4·3의 비극을 초래한 세력에 문학적으로 저항하는 대신에 자신이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다. 그의 몇몇 시편들에는 제주 4·3 학살과 그 상처에 대한 내용이 간접적이고 암시적으로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요컨대 그는 김석범 작가처럼 4·3의 비극을 구체적이며 적극적으로 다루고 형상화해오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들 수 있다. 첫 번째, 제주 4·3으로 인한 가공할 학살의 현장에서 자신이 도망쳤다는 죄의식과 부끄러움의 감정이 김시종의 평생을 지배했다는 사실, 두 번째 당시 남로당 조직과 연계되었던 자신의 이력이 드러나면, 4·3의 진실이 특정한 이념과 연계되어 봉기의 정당성이 훼손되면서 편향되게 알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 세 번째 자신이 밀항으로 인한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이 발각돼 추방될 수도 있다는 불안 등이 김시종으로 하여금 제주 4·3에 대한 침묵을 지키게 만든 것이다.
이에 비해 소설가 김석범은 「까마귀의 죽음」(1957)부터 치면 올해 2022년까지 65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4·3이라는 한국 현대사 미증유의 비극에 집중적으로 매달려왔다. 제주 4·3을 평생 동안 천착해온 김석범 글쓰기의 정점에 4·3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대하소설 『화산도』가 존재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마땅한 사실은 그가 4·3의 비극을 직접 겪지 않은 채, 심지어 작품 대부분을 현장답사도 없이 대하소설 화산도를 창작했다는 점이다.
4·3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김석범은 일본에서 출간된 4·3 관련 자료와 역사서, 체험자의 증언, 자신의 기억 등 4·3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총망라하고 개연성 있는 허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를 쓸 수밖에 없었다.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전체적인 역사적 구도는 사실이지만, 세부적인 묘사는 허구와 사실의 변용에 가깝다. 요컨대 김석범은 제주 4·3을 직접 체험하지 않았고 작품 현장도 탐방할 수 없었기에, 특히 『화산도』 같은 대하소설 창작에 있어서 개연성 있는 허구를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