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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16, 7세기 한․중․일 《博物志》의 비교 연구
A Comparative Study on the Bo-Wu-Zhi(博物志) of Korea, China and Japan in the 16th and 7th centuries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B유형)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연구과제번호 2020S1A5B5A17087455
선정년도 2020 년
연구기간 1 년 (2020년 09월 01일 ~ 2021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정영호
연구수행기관 (사)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1) 연구의 필요성
    漢學關係 文獻資料 가운데 특히 중국고전분야는 국내의 중국고전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중국내 연구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고 있는 분야이다. 특히 《三國志通俗演義》, 《型世言》, 《홍루몽》 완역본 등은 세계 唯一本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판본들이다. 또 1492년 국내에서 출판된 《酉陽雜俎》․《新序》․《說苑》과 《兩山墨談》․《刪補文苑楂橘》․《鍾離葫蘆》 등 희귀본들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중국에 없는 판본도 있기에 세계 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에 소장된 《剪燈餘話》․《博物志》등 조선 출판 희귀본들이 발굴되었는데, 이중 《博物志》는 2019년 연구자가 국내 학술지에 연구 게재하였으나 추가적인 연구 작업이 필요한 실정이다. 특히 한·중·일 《博物志》를 상호 비교해보고 당시 동아시아 3국의 문화교류사적 측면에서 중국 고전문헌의 역할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조선시기 출판문화의 우수성을 국내는 물론 해외의 학자들에게 널리 소개하고 상호 공유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 연구의 독창성 및 목적
    연구의 독창성: 새로 발굴된 일본 소장 조선간본 《博物志》(1505-1568)는 국내에 없는 유일본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희귀본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는 국내의 중국고전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중국내 연구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고 있는 분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중․일 《博物志》를 상호 비교한 연구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 연구는 국내외의 연구 영역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비교연구를 더욱 촉진시킬 것이며, 우리의 고전문헌 연구방면에도 寄與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전 연구 자료들과 더불어 한문학, 문헌학, 서지학, 비교문학 등의 여러 분야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독특한 연구라 할 것이다.
    연구 목적: <16, 7세기 한·중·일 《博物志》의 비교 연구>의 목적은 한․중․일《博物志》의 서지사항, 한․중․일《博物志》의 전파와 출판양상, 한․중․일《博物志》의 판본 및 내용 비교를 통해 그 문학적, 문화사적 의의를 찾는 데에 있다. 이를 통해 한․중․일 서지문헌의 영향 관계 연구에 기초자료를 제공하고 한국고전문헌학, 한중비교문학, 판본학, 서지학 방면의 연구와 학부 및 대학원생들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강의에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나아가 국내외 학계에 널리 공유하여 기타 작품간 비교 연구로까지 연구 분야의 지평을 넓혀가고자 한다.

    3) 선행 연구와의 비교를 통한 연구의 필요성과 가치
    《博物志》에 대한 중국의 연구는 <《博物志》研究>⋅<《博物志》詞匯研究>⋅<《博物志》博物書寫研究> 등 석사논문 십여 편과 <《博物志》復音詞研究>⋅<論《博物志》地理敍述的價値與意義> 등 몇 편의 단편논문이 있다. 이들 연구의 주요 내용은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방면으로 張華의 생애, 版本, 素材의 연원, 佚文, 敍事構造, 神話⋅傳說⋅宗敎⋅地理⋅醫藥 방면의 내용, 후대에 대한 影响 등에 대해 연구하거나, 작품의 특정방면으로 단어와 어구의 발전 과정, 神話의 심층 분석, 《山海經》⋅《十州記》⋅《神異經》에서 《博物志》 및 《續博物志》 그리고 《博物志補》와 《廣博物志》에 이르는 書寫傳統, 博物 및 地理의 空間 및 敍事, 민속, 철학사상, 언어학적 측면 등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었다.
    국내 연구 중 논문은 석사논문 1편과 단편논문 4편이 있다. 그 가운데 <《博物志》試論 및 譯註>는 저자, 성립 배경, 체재 및 내용 분석과 원문에 대한 역주를 진행했다. 그리고 <《博物志》에서의 공간의 의미>는 《博物志》의 공간 중심적 서술방식, 지리 관념 성분에 대한 고찰, 거대 공간이 인간에게 주는 상상력의 문제에 대해 고찰했다. <신 발굴 《博物志》의 연구>는 일본에 소장되어 있던 조선간본 《博物志》를 학계에 보고하고 조선간본 《博物志》의 서지사항, 국내유입과 출판양상을 중심으로 살폈다. 또 <박물지의 바둑기원설에 대한 소고>는 장화가 최초로 《博物志》에서 바둑에 대해 언급했다는 바둑의 기원설을 검증하였다. <《博物志》試論>은 《博物志》의 저자, 판본, 내용구성 등에 대한 개략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단행본으로 林東錫 譯註의 《박물지》와 김영식 옮김의 《박물지》는 范寧 校證 《博物志校證》을 저본으로 삼아, 해제 및 원문 역주를 중심으로 엮었다.
    이상의 연구 현황을 볼 때, 연구자가 계획한 16, 7세기 한․중․일의 《博物志》를 상호 비교한 연구는 전무한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博物志》가 중국에서 출판된 후 조선과 일본에 유입되고 전파된 상황, 출판과 판본 현황, 판본 및 내용 등을 상호 비교해보는 것은 가치 있는 작업이며, 그 연구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하겠다.
  • 기대효과
  • 1. 연구결과의 학문적․사회적 기여도
    본 연구의 내용과 범위는 국내외적으로 희귀하고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큰 자료이면서 그 동안 중국 고전문헌 연구자들이 진행하지 못했던 분야이며, 연구 방법에서는 고증학을 비롯한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을 진행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는 국내외 학자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우리의 고전문헌 연구에도 寄與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국문학, 한문학, 중문학자들의 비교문학적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연구 논문을 완성한 후, 중국소설학회 및 중국인문학회 등 전국규모학회의 학술발표대회를 통해 논문을 발표하여 학계에 널리 알릴 예정이다.
    조선 출판본 《博物志》는 조선에서 출판된 후 망실된 중국 고전문헌의 원형으로서, 한․중․일《博物志》를 비교 연구하는 것은 한․중․일 서지문헌의 영향 관계 연구에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그리고 한국고전문헌학, 중문학, 한중비교문학 방면에 자료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연구의 영역을 넓혀주고 연구토양 조성과 학술발전에도 기여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2. 교육과의 연계 활용방안
    본 연구 결과의 자료는 한․중․일 서지문헌학, 한국고전문헌학, 국문학, 한문학, 중문학 등과 관련된 비교문학적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는 국내외 학자들이 해당 교육 분야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 결과는 관련 학문의 학부 및 대학원생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 및 오프라인 강의에 적극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추후 연구하는 결과물들과 함께 자료집 혹은 서적으로 출간하여 목록학, 판본학, 서지학 등 분야의 연구와 교육에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길 기대한다.

    3. 국제적 공동 연구를 위한 기반 마련
    본 연구 결과는 학회의 학술논문집에 게재하는 것은 물론, 추후 “조선간본 《博物志》의 복원과 연구”를 진행하는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이 연구가 종료된 후에는 중국에서도 출판하여 중국 학계에 성과를 널리 알림으로써 해당 분야 연구자의 많은 관심을 이끌어 내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본 연구 성과물을 토대로 하여 향후 한․중․일 등 여러 국가의 관심 있는 연구자들과 연계하여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는 등 지속적인 연구 작업을 통해 국제적 공동연구의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본 연구는 외국문학(중국문학) 연구의 영역을 넘어 국문학과 비교문학의 범주까지 그 학문적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향후 국내외 학계에 널리 공유되어 기타 작품간 비교 연구로까지 연구 분야의 지평이 확대될 것으로 사료된다.
  • 연구요약
  •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1) 연구의 필요성
    漢學關係 文獻資料 가운데 특히 중국고전분야는 국내의 중국고전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중국내 연구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고 있는 분야이다. 최근 일본에 소장된 《剪燈餘話》․《博物志》등 조선 출판 희귀본들이 발굴되었는데, 이중 《博物志》는 2019년 연구자가 국내 학술지에 연구 게재하였으나 추가적인 연구 작업이 필요한 실정이다. 특히 한·중·일 《博物志》를 상호 비교해보고 당시 동아시아 3국의 문화교류사적 측면에서 중국 고전문헌의 역할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2) 연구의 독창성 및 목적
    연구의 독창성: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중․일 《博物志》를 상호 비교한 연구는 이전 연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주제이다. 이 연구는 국내외의 연구 영역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비교연구를 더욱 촉진시킬 것이며, 한문학, 문헌학, 서지학, 비교문학 등의 여러 분야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독특한 연구라 판단된다.
    연구 목적: <16, 7세기 한·중·일 《博物志》의 비교 연구>의 목적은 한․중․일《博物志》의 서지사항, 한․중․일《博物志》의 전파와 출판양상, 한․중․일《博物志》의 판본 및 내용 비교를 통해 그 문학적, 문화사적 의의를 찾는 데에 있다. 이를 통해 한․중․일 서지문헌의 영향 관계 연구에 기초자료를 제공하고 한국고전문헌학, 한중비교문학, 목록학, 판본학, 서지학 방면의 연구와 학부 및 대학원생들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강의에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나아가 국내외 학계에 널리 공유하여 기타 작품간 비교 연구로까지 연구 분야의 지평을 넓혀가고자 한다.
    2. 연구의 내용 및 방법
    최근 일본에 소장된 조선 간본 중국소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公文書館에 소장되어 있는 正集 十卷과 續集 十卷 2冊本《博物志》를 발굴하고 학계에 보고를 통해, 조선 출판으로 완정한 유일본임을 확인하고, 한·중·일 《博物志》를 비교 연구하는 작업을 계획하게 되었다. 이 연구는 16, 7세기에 출판된 朝鮮刊本(公文書館本, 1505-1568)과 中國刊本(古今逸史本, 1585년 경) 및 日本刊本(天和三年本, 1683) 등 세 나라의 판본을 비교하여 그 이동점을 정리한 후 분석을 진행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중·일 《博物志》의 서지사항, 전파와 출판 양상, 판본 및 내용의 이동점 등에 대해 고찰한다.
    한․중․일 판본의 일부인 卷頭, 卷之一, 卷末을 비교한 내용은 부분적인 차이점을 나타냈다. 비교 검토 결과, 卷頭에는 세 판본 중 일본간본만 序文이 있고, 卷末 부분은 조선간본과 일본간본에 跋文으로 “弘治乙丑年都穆記”가 있다. 그리고 조선간본과 일본간본은 周日用等이 注를 한 판본이고 중국간본은 吳琯이 校한 판본이다. 중국간본은 서문과 발문이 전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卷一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는 조선간본과 일본간본은 유사점이 많으나 중국간본은 글자 등에 차이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校證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博物志》의 심도 있는 비교 연구를 위해 국내 소장본과 비교해 보았다. 국립중앙도서관은 10卷 1冊으로 속집이 없이 정집만 남아있고 公文書館本은 10권 2책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전후 표지가 모두 파손되어 새로 제본한 상태이고, 卷之一의 1-2쪽이 缺한 상태이며, 卷之十의 끝 2쪽 분량이 결한 상태로 序文과 跋文의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국립중앙도서관본은 목차에서 ○外國, ○異人의 형태를 보이나 內閣文庫本은 外國, 異人의 형태로 ○의 부호가 없다. 이러한 형태는 매 권에서 동일하지는 않다. 그런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博物志》와 일본간본인 天和三年本(1683) 《博物志》가 일치하는 점이 있는데, 부분 차이는 있으나 목차 앞에 ○의 부호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天和三年本(1683)의 嘉靖辛卯良月 崔世節의 正續博物志序이다. 嘉靖 辛卯年 良月은 嘉靖 10년 10월로 1531년 중종 26년이며 崔世節(1479-1535)은 조선 중기 문인이기 때문이다. 이로 보면 正續博物志序는 1531(중종 26)년 崔世節이 《博物志》의 서문을 쓰고 출판하였다는 증거이며, 天和三年本은 조선 출판본이 일본에 전파된 후 150여년 후에 覆刻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 상호 비교하는 기본 판본은 公文書館本, 古今逸史本, 天和三年本이지만,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조선간본과 范寧校證 《博物志校證》(中華書局, 1980)까지도 폭 넓게 비교한다. <16, 7세기 한․중․일 《博物志》의 비교 연구>를 진행하는 목차(예정)는 서론, 한․중․일《博物志》의 서지사항, 한․중․일《博物志》의 전파와 출판양상, 한․중․일《博物志》의 판본 및 내용 비교, 결론의 순서로 진행할 예정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朝鮮刊本(公文書館本, 1505~1568)과 中國刊本(古今逸史本, 1585년 경) 및 日本刊本(天和三年本, 1683) 등 세 판본을 기본 텍스트로 비교하고,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조선간본, 明弘治十八年(1505)賀泰刻公文紙印本, 현대에 출판된 范寧校證《博物志校證》(中華書局, 1980)과도 상호 비교하여 이동점을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간본은 1505년《賀志同刻本》이 중국에서 출판된 이후 곧바로 조선에 유입되었고, 중종 26년인 1531년 崔世節의 “正續博物志序”가 있는 嘉靖辛卯本과 卷末에 “弘治乙丑年都穆記”가 있는 1568년 이전 출판본 등 적어도 2회 이상 출판 유통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간본은 賀志同刊本, 公文紙印本, 胡文煥刊본(百家名書本), 新安吳氏校刊本(古今逸史本), 會稽商氏刊本(稗海本), 武林何允中刊漢魏叢書本(漢魏叢書本) 등 6종 이상이었다. 일본간본은 延寶 五年(1677) 4册本, 天和 三年(1683) 4册本, 天和 三年 7册本 등 최소 3회 이상 출판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비교 판본 중 일본간본만 卷頭에 崔世節의 “正續博物志序” 서문이 있고, 조선간본과 일본간본은 卷末 부분에 跋文으로 “弘治乙丑年都穆記”가 있다. 조선간본과 일본간본은 周日用等이 注를 한 판본이고, 중국간본인 古今逸史本은 吳琯이 校正한 판본이다. 公文紙印本은 明弘治十八年(1505) 賀泰가 출판한 것으로 周日用等이 注를 했다. 古今逸史本은 서문과 발문이 없고, 公文紙印本은 조선간본과 체재와 내용에서 거의 일치하고 卷十 끝과 都穆記 사이에 明 天啓 2년 壬戌年(1622) 馮舒의 手跋이 있다. 天和三年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인인 崔世節의 序에 의하면, 1531년(중종 26) 崔世節이《博物志》의 서문을 쓰고 출판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판본이 일본에 전파된 후 150여년 후에 覆刻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崔世節의 “正續博物志序”가 있는 조선 출판 판본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셋째,《古今書刻》 湖廣楚府本의 “崔世節湖廣楚府刻本跋”, “嘉靖辛卯良月下浣鏡湖居士崔世節介之跋”이란 기록과 天和年本의 “正續博物志序”, “嘉靖辛卯良月下浣鏡湖居士崔世節介之書”라는 기록을 비교해본 결과,《古今書刻》 湖廣楚府本을 편찬한 周弘祖의 활동 시기는 과거에 합격한 1559년 이후이고, 최세절의 서문에 나타난 嘉靖 辛卯는 1531년은 崔世節의 만년시기이니, 두 사람이 활동한 시기를 고려한다면 崔世節이 편찬한 서적이 明으로 역 유입되었고, 이를 모본으로 재편찬한 것으로 판단된다.
    넷째, 판본에 따라 각 卷를 표기하는 것이 약간 차이가 있는데, 조선간본과 일본간본은 매 권의 첫 쪽은 1행에 “博物志卷之○” 또는 “博物志卷第○”, 2행에 “晉 司空 張華茂先撰”, 3행에 “汝南 周日用等注”로 되어 있고 4행에서 본문을 시작하였다. 매 권의 마지막 쪽에는 “博物志卷之○” 또는 “博物志卷第○”로 끝나는 형식을 취했다. 반면 중국의 古今逸史本은 “博物志卷第○” 형식만을 활용하였고, 公文紙印本은 조선간본과 같은 형식을 취했다. 范寧校證《博物志校證》(中華書局, 1980)은 매권 서두에 “博物志卷之○”의 형식만을 취했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조선간본과 일본간본은 목차 앞에 “○山”과 같은 형식으로 ○를 가미하였으나, 일률적이지 않은 것을 보면 후인이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卷三 異獸의 “魏武伐冒頓~雞犬皆無鳴吠.”의 조목이 조선간본과 天和三年本, 公文紙印本에 존재하나 古今逸史本에는 이 조목이 없다. 공문서관 소장 조선간본 卷八의 “詹何以獨~割粒” 이후 2쪽 분량이 없는데 기타 판본에 모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製冊 시의 착오로 판단된다. 중앙도서관 소장 조선간본만이 卷四의 마지막 부분에 “西洋國有地膏塗之銅鐵環年久自磨者則還復如古取氷法六月極炎之時取水煎陽入小甁中壑沉井自然成氷”이 手記로 추가되어 있다. 公文紙印本은 공문지의 후면에 인쇄한 관계로 쪽에 따라 글자가 겹치게 보이고, 脫刻된 글자가 종종 있고 古字, 俗字, 略字 등 異體字가 다수 활용되었다.
  • 영문
  • This study compares three versions, the Joseon-version printed book(1505-1568) housed at Gongwenshuguan(公文書館), the Chinese Gujinyishiben(古今逸史本, 1585), and the Japanese Tianhesanyianben(天和三年本, 1683), as its basic texts and compared them against the Joseon-version printed book housed at the National Library of Korea, Hetaikegongwenzhiyinben(賀泰刻公文紙印本, 1505), and Bowuzhijiaozheng(《博物志校證》, 1980) published in modern times in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The findings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Joseon-version printed book came out after Hezhitongkeben(《賀志同刻本》) was published in China in 1505 and was introduced into Joseon right away. At least two versions were published and circulated, including Jiajingxinmaoben(嘉靖辛卯本) containing Zhengxubowuzhixu(正續博物志序) of Cuishijie (崔世節) published in 1531, the 26th year of Zhongzong(中宗), and the version published before 1568 with Hongzhiyichoudoumuji(弘治乙丑年都穆記) at the end. There were more than six versions of Chinese printed books including Hezhitongkeben(賀志同刊本), Gongwenzhiyinben(公文紙印本), Baijiamingshuben(百家名書本), Gujinyishiben(古今逸史本), Baihaiben(稗海本), and Hanweicongshuben(漢魏叢書本). Compared in the study, Gujinyishiben had no prefaces and epilogues, and Gongwenzhiyinben and Gongwenshuguan contained Hongzhiyichoudoumuji at the end like the Joseon version. The Japanese versions were published and circulated at least three times, including four books in the fifth year(1677) of Yanbao(延寶), four books in Tianhesanyian(1683), and seven books in Tianhesanyian. The four books in Tianhesanyian contained Zhengxubowuzhixu by Cuishijie in Jiajingxinmao(1531), and the seven books of Tianhesanyian contained Biju.
    Second, only the Japanese versions had the Zhengxubowuzhixu preface by Cuishijie. There was a Hongzhiyichoudoumuji epilogue at the end of the Joseon and Japanese versions. While the Joseon and Japanese versions contained annotations by Zhouriyong(周日用) and others, the Chinese version Gujinyishiben was proofread by Wuguan(吳琯). Gongwenzhiyinben was published by Hetai(賀泰) in 1505 and contained annotations by Zhouriyong and others. Gujinyishiben had no prefaces and epilogues, and Gongwenzhiyinben was almost the same as the Joseon version in terms of system and content. The Japanese Tianhesanyian contained Zhengxubowuzhixu by Cuishijie, a literary figure in middle Joseon. According to its content, Cuishijie wrote a preface for 《Bowuzhi》 and published it in 1531(the 26th year of King Jungjong's reign). It was engraved on wood blocks approximately 150 years after its introduction to Japan. It is, however, unfortunate that no versions published in Joseon have been identified to contain Zhengxubowuzhixu by Cuishijie.
    Third, Cuishijiehuguangchufukebenba(崔世節湖廣楚府刻本跋) of 《Gujishuke》 Huguangchufuben(《古今書刻》 湖廣楚府本) was compared with Zhengxubowuzhixu of Tianhesanyianben. The comparison results show that Zhouhongzu(周弘祖), who published 《Gujishuke》 Huguangchufuben, was active after 1559 when he passed the state exam. The year of 1531 in the preface of Cuishijie was in his latter years. Given the time when these two figures were active, it seems that the book published by Cuishijie was introduced into Ming and then republished in Japan.
    Fourth, there were little differences in the marks of each book among the different versions. The Joseon and Japanese versions had Bowuzhijuanzhi○(博物志卷之○) or Bowuzhijuandi○(博物志卷第○) on the first page or in the first line, JinsikongZhanghuamaoxianzhuan(晉司空張華茂先撰) in the second line, and Runanzhouriyongdengzhu(汝南周日用等注) in the third line before beginning the main body in the fourth life in each book. In these versions, each book was finished with Bowuzhijuanzhi○(博物志卷之○) or Bowuzhijuandi○(博物志卷第○) on the last page. The Chinese version Gujinyishiben used only the Bowuzhijuandi○(博物志卷第○) form, and Gongwenzhiyinben was in the same form as the Joseon versions. 《Bowuzhijiaozheng》 adopted only the Bowuzhijuanzhi○(博物志卷之○) form at the beginning of each book. The Joseon and Japanese versions housed at the National Library of Korea added ○ in the same form as ○Shan(○山) before the table of contents. Such cases were not, however, uniform, which means that they were written by someone else later.
    Finally, the articles of Weiwufamaodun~jiquanjiewumingfei(魏武伐冒頓~雞犬皆無鳴吠.) in Book 3 of Yishou(異獸) are found in the Joseon versions, Tianhesanyian, and Gongwenzhiyinben, but Gujinyishiben does not contain them. Two pages are missing after the articles of Zhanheyidu~geli(詹何以獨~割粒) in Book 8 of the Joseon version housed at Gongwenshuguan, but they are found in the other versions, which suggests that they were omitted in the bookbinding process. The articles of Xiyangguo~ziranchengbing(西洋國~自然成氷) were added as scripts only to the end of Book 4 of the Joseon version housed at the National Library of Korea. Gongwenzhiyinben was printed on the back of Gongwenzhi(公文紙), thus having letters overlapping on some pages. It contained some letters cast off occasionally and used a lot of variant forms including Guzi(古字), Suzi(俗字), and Luezi(略字).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論文은 朝鮮刊本(公文書館本, 1505-1568)과 中國刊本(古今逸史本, 1585년 경) 및 國立中央圖書館 所藏 日本刊本(天和三年本, 1683)을 기본 텍스트로 比較하고, 國立中央圖書館 所藏 朝鮮刊本, 中國 國家圖書館 所藏 公文紙印本(1505), ≪博物志校證≫(1980)과도 상호 비교하여 異同點을 살펴보았다.
    朝鮮刊本은 1531년 崔世節의 嘉靖辛卯本, 1568년 이전 출판된 公文書館 所藏本 등 2종 이상, 中國刊本은 賀志同刊本, 公文紙印本, 胡文煥刊본(百家名書本), 新安吳氏校刊本(古今逸史本), 會稽商氏刊本(稗海本), 武林何允中刊漢魏叢書本(漢魏叢書本) 등 6종 이상, 日本刊本은 延寶 五年(1677) 4册本, 天和 三年(1683) 4册本, 天和 三年 7册本 등 3종 이상이 각각 출판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日本 天和三年本은 朝鮮 中期 文人인 崔世節의 “正續博物志序”가 있는 것으로 보아, 1531년 崔世節의 嘉靖辛卯本이 日本에 전파되었고 150여년 후인 1683년에 覆刻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板本에 따라 序跋文의 有無, “博物志卷之○”, “博物志卷第○”, “晉 司空 張華茂先撰”, “汝南 周日用等注”와 같은 卷頭와 卷末의 表記方式, “山”, “○山”과 같은 目次의 表記方式이 차이가 있고, 條目의 有無, 글자의 異同, 異體字의 활용 등에서 차이를 보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 결과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기여와 활용성과가 기대된다.
    첫째,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는 국내외 학자의 관심을 받을 것이며, 국문학, 한문학, 중문학자들의 비교문학적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는 국내외 학자들이 해당 교육 분야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둘째, 한•중•일 《博物志》의 비교 연구는 한•중•일 서지문헌의 영향 관계 연구에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고, 한국고전문헌학, 중문학, 한중비교문학 방면에 자료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연구의 영역을 넓혀주고 연구토양 조성과 학술발전에도 기여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연구 결과는 관련 학문의 학부 및 대학원생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 및 오프라인 강의에 적극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추후 연구하는 결과물들과 함께 자료집 혹은 서적으로 출간하여 목록학, 판본학, 서지학 등 분야의 연구와 교육에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길 기대한다.
  • 색인어
  • 중국, 박물지, 장화, 조선간본, 중국간본, 일본간본, 판본, 출판양상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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