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고려 천태승 義旋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국내의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중국과 대만의 연구를 비교·분석하여, 의선과 티베트불교와의 관계, 元과 고려 불교계에서 의선의 역할, 의선이 韓國佛敎史上 유일하게 삼장법사 호칭을 받은 배경 등을 고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
본 연구는 고려 천태승 義旋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국내의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중국과 대만의 연구를 비교·분석하여, 의선과 티베트불교와의 관계, 元과 고려 불교계에서 의선의 역할, 의선이 韓國佛敎史上 유일하게 삼장법사 호칭을 받은 배경 등을 고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기대효과
본 연구는 원 간섭기에, 원 황실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며 삼장법사 칭호까지 받은 고려승 의선의 활동을 통해, 한중불교교류사의 한 부분을 재검토하고 복원하기 위한 것이다. 본 연구자는 한국·중국·대만의 연구 결과와, 그들이 사용한 사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다 ...
본 연구는 원 간섭기에, 원 황실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며 삼장법사 칭호까지 받은 고려승 의선의 활동을 통해, 한중불교교류사의 한 부분을 재검토하고 복원하기 위한 것이다. 본 연구자는 한국·중국·대만의 연구 결과와, 그들이 사용한 사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긍정적 성과를 도출하고자 한다.
첫째, 의선과 천태종·밀교와의 관계 규명 의선은 천태종 사찰인 묘련사에서 출가하였는데, 고려 불교계에서 影殿制度가 확립되며 묘련사에는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충선왕의 眞容을 모시는 영당이 설치되었다. 한편 元 大都의 敕建 사원에는 모두 神禦殿을 세워 원 황제의 禦容이나 畫像을 供奉하였다. 의선이 주지했던 대천원연성사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에 의선과 두 사찰의 영전제도와의 관련성 여부를 살펴보고, 의선과 천태종·밀교와의 관계를 규명할 것이다.
둘째, 문명교류의 주체자로서의 의선과 주변 인물 고찰 계국대장공주의 무고로 인하여 의선의 부친과 형제들은 귀양 가고, 누이인 충선왕비는 폐비되었다. 그 후 이 사건에 연루된 의선의 속가 구성원과 관련자들이 중국의 어느 곳으로 흩어져 어떻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폭넓게 고찰할 것이다.
셋째, 원에서 활동한 고려승들의 활동과 불교교류 상황 고찰 의선이 대천원연성사에 머물던 시기에 대도에는 고려인들이 창건하고 고려승들이 주석한 사찰이 몇 군데 있었다. 본 연구와 관련하여, 당시 대도에서 활약한 다른 고려 승려들과 시주자에 대한 조사도 병행하여, 고려승들의 활동과 불교교류 상황, 사찰의 규모나 소재지, 특이점 등을 고찰할 것이다.
연구요약
고려 천태승 삼장법사 의선의 元 불교계에서의 위치, 생애와 활동, 불교사상 등을 한층 깊이 살펴보기 위해, 의선에 대한 각국의 선행연구와, 『고려사』·『元史』·『益齋亂藁』·『稼亭集』·『析津志』·『明一統志』·『日下舊聞考』 등의 사료를 종합 분석하여, 주요 연구 내용을 다음의 세 가지 관점으로 나 ...
고려 천태승 삼장법사 의선의 元 불교계에서의 위치, 생애와 활동, 불교사상 등을 한층 깊이 살펴보기 위해, 의선에 대한 각국의 선행연구와, 『고려사』·『元史』·『益齋亂藁』·『稼亭集』·『析津志』·『明一統志』·『日下舊聞考』 등의 사료를 종합 분석하여, 주요 연구 내용을 다음의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눈다.
첫째, 천태승 의선과 티베트불교와의 관계를 살펴본다. 의선은 禪選의 상상과에 급제한 천태종 승려로, 그의 출가 사찰인 묘련사나, 入元 전에 주지를 역임했던 진구사·만의사·영원사 등도 천태종 사찰이다. 그런 그가 어떤 이유로 티베트불교 사원인 대천원연성사에서 오랫동안 주지를 역임할 수 있었는지, 중국과 대만의 연구 성과, 일본학자의 연구서, 유적지 발굴보고서 등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둘째, 元 황실과 고려 불교계에서 의선의 역할을 고찰한다. 의선의 부친인 조인규와 5남 4녀의 자녀들, 조인규의 형인 대선사 混其, 의선의 조카 普解와 증조카 妙慧 등, 의선 주변 인물들은 고려 사회에서 상당히 유력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의선이 아무리 명문가 출신이라 해도, 그가 별다른 능력 없이 원 황실의 대표적인 사찰의 주지를 역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의선은 승려로나 문인으로나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런 점들이 원 황제의 눈에 들어 중책을 맡았으며, 양국간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승려로서의 의선의 역할을 고찰한다.
셋째, 의선이 韓國佛敎史에서 유일한 삼장법사 호칭을 받은 배경 등을 고찰한다. 이 문제는 의선의 사상적 정체성과도 깊이 관련된다. 대도 인근의 여러 황실 사찰에는 의선 외에도 몇몇 非 밀교승이 주지직을 역임한 예가 보이는데, 삼장법사의 칭호를 받은 경우는 의선이 유일하다. 과연 의선의 어떤 점이 그런 결과를 낳았는지 연구가 필요하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천태승 순암 의선은 고려 후기 대표적 명문가인 조인규의 아들로, 해방 전까지의 한국불교사상 유일한 삼장법사였다. 그간 의선의 주변 인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가 되었으나, 그가 어떤 공적과 배경으로 삼장법사가 되었고 또 황실 사원의 주지가 되었는지에 대해 ...
천태승 순암 의선은 고려 후기 대표적 명문가인 조인규의 아들로, 해방 전까지의 한국불교사상 유일한 삼장법사였다. 그간 의선의 주변 인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가 되었으나, 그가 어떤 공적과 배경으로 삼장법사가 되었고 또 황실 사원의 주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런데 논자는 최근 충선왕에 관한 선행 연구를 통해, 그에 대한 답을 일부나마 찾게 되었다. 충선왕은 원 황실의 가장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특히 유교와 불교에 해박했다. 의선이 국내에서 점차 이름을 날릴 무렵, 왕은 대도에서 무종과 인종을 옹립하였고, 그들에게 인재를 추천하고 과거제 부활을 도우며 원 제국의 전성기를 견인하였다. 그뿐 아니라 충선왕은 여원 양국에 사찰을 창건하고 대장경을 기진하였으며, 성지순례, 행향 등의 다양한 불사(佛事)를 하였다. 원대에는 석사라바와 석달익바, 고려의 의선 등 총 3명의 삼장법사가 있었다. 그들의 삼장법사 피봉과 경수사 주석, 입적 전후의 상황 등도 충선왕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편 원의 황제들은 계율을 잘 지키고 호국불교를 중시하던 고려승에 대한 존경이 커서, 그들을 주요 사찰에 주석하게 하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충선왕이 유배에서 풀려난 태정제 통치기에 의선도 원으로 가서 활동하다가, 1332년에 『예념미타도량참법』을 중각·유포한 공으로 삼장법사 법호를 받고 황실사찰 대천원연성사에서 20여 년을 주석하였다. 대천원연성사는 당시 황제의 부친이자 충선왕의 장인인 명종의 신어전이 있는 곳이었다. 의선은 충선왕의 처남이면서 매우 뛰어난 승려였기에 충선왕에 의해 원 황실에 그 존재가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영문
Shùnān Yìxuán(順庵義旋), a monk of Tiāntáizōng, was a son of Jo Ingue(趙仁規), representative nobleman of the late Goryeo Dynasty. He was highly respected in Goryeo and Yuan Dynasty, and he is the only Buddhist monk to receive the title of the tripiṭaka-ācā ...
Shùnān Yìxuán(順庵義旋), a monk of Tiāntáizōng, was a son of Jo Ingue(趙仁規), representative nobleman of the late Goryeo Dynasty. He was highly respected in Goryeo and Yuan Dynasty, and he is the only Buddhist monk to receive the title of the tripiṭaka-ācārya in Korean Buddhist History. Although some research has been conducted on the surrounding characters such as Yìxuán's family. But there is no specific study on what contribution Yìxuán made to become a tripiṭaka-ācārya and how he became the chief monk of the imperial temple of the Yuan Dynasty Dàtiānyuányánshèngsì(大天源延聖寺). I believe that King Chungseon(忠宣王) played a big role in the process. By the time Yìxuán gradually became known in the Buddhist community of Goryeo, the King established a political power by supporting the two emperors in the capital of Yuan Dynasty, Dàdū(大都). Furthermore, King Chungseon worked as a representative intellectual among the imperial family of the Yuan Dynasty based on his broad knowledge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During Yuan Dynasty, there were a total of three Buddhist monks, two Tibetan monks(釋沙囉巴, 釋達益巴) and Yìxuán. King Chungseon not only achieved the revival of the test system(bureaucrat selection test) in the political aspect, but also founded temples in China and Goryeo, printed and distributed the Tripitaka Koreana, and performed various Buddhist services such as pilgrimage etc. Yìxuán engaged in many Buddhist activities in Dàdū since 1323, when King Chungseon was exiled in Tibet, and he became the chief monk of Dàtiānyuányánshèngsì in 1332. He reissued and distributed Lǐniànmítuódàochǎngchànfǎ(『禮念彌陀道場懺法』) there and he also incorporated them into the Tripitaka Koreana. This achievement seems to be the direct reason why he received the title of the tripiṭaka-ācārya.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본 연구는 고려 천태승 義旋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① 의선과 티베트불교와의 관계, ② 元과 고려 불교계에서 의선의 역할, ③ 의선이 한국불교사상 유일하게 삼장법사 호칭을 받은 배경 등을 고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의선에 관한 연구는 『 ...
본 연구는 고려 천태승 義旋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① 의선과 티베트불교와의 관계, ② 元과 고려 불교계에서 의선의 역할, ③ 의선이 한국불교사상 유일하게 삼장법사 호칭을 받은 배경 등을 고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의선에 관한 연구는 『고려사』·『元史』·『益齋亂藁』·『稼亭集』 등을 바탕으로, 한국(민현구, 고익진, 황인규 등)과, 중국측 사료에 기반하여 서술한 대만(許正弘), 중국(桂栖鵬 등)의 학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국내 연구자의 경우에는 『고려사』·『익재난고』·『가정집』 등을 기본 사료로 하여 의선의 속가 배경과 생애, 원과 고려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천태종 승려로서의 위치와 역할 등을 살펴보았다. 국내와 달리 대만과 대륙의 연구자들은 『元史』·『析津志』·『明一統志』·『日下舊聞考』 등과, 大都 인근의 황실 소유의 12 밀교사찰에 관한 여러 연구와 기록, 그리고 한국학자들의 선행연구 등을 근거로, 의선의 생애와 중국에서의 활동을 서술하였다. 그런데 의선은 그의 생애 중 가장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기에는 주로 元 大都에 머물렀으며, 특히 티베트불교 계열의 밀교사찰인 대천원연성사에 20년 이상 주석하였다. 그는 降香使 등의 역할로 몇 차례 고려에 온 적은 있으나, 그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의선은 주로 대도의 사찰에 머물렀고, 원에서 입적 하였다. 따라서 그의 불교사상을 천태종으로만 규정하기에는 사실상 무리가 있다. 그런데 본 연구과제를 신청할 때까지는 그런 면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시도되지 않았다. 이에 본 연구자는 중국의 각종 사료를 통해, 대도의 다른 황실 사찰의 상황과 비교하며, 의선의 불교사상을 재검토해 보고자 하였다. 나아가 그 과정에서 그가 삼장법사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받게 된 배경도 살펴보기로 하였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삼장법사 義旋의 在元 활동 고찰」이라는 주제는 원간섭기에 원에 가서 고려의 우수한 불교학을 바탕으로 각종 불사를 한 전법승 연구의 일환이다. 의선은 삼장법사에 봉호 되었을 만큼 원의 불교계에 미친 영향이 컸을 것이기에 이 주제를 선택하였다. 이 연구의 수행 결과 ...
「삼장법사 義旋의 在元 활동 고찰」이라는 주제는 원간섭기에 원에 가서 고려의 우수한 불교학을 바탕으로 각종 불사를 한 전법승 연구의 일환이다. 의선은 삼장법사에 봉호 되었을 만큼 원의 불교계에 미친 영향이 컸을 것이기에 이 주제를 선택하였다. 이 연구의 수행 결과로 도출될 활용 방안, 혹은 기대효과는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고려와 원의 불교교류를 정리하여 강의 자료·인접 학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각국의 연구자는 주로 해당 국가의 사료에 근거해 연구하므로, 의선에 대한 국가별 연구내용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본 연구자는 한국·중국·대만·일본학자들의 관련 연구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또한 각국의 사료를 충실히 검토하여, 의선과 밀교, 원과 고려의 불교교류, 의선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 정리하였다. 특히 충선왕의 각종 불사와 관련하여 유추한 내용은 강의 자료 등으로 활용할 수 있고, 또한 인접 학문 관련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둘째, 의선과 고려 시대 불교에 대한 중국과 대만, 일본의 연구 상황을 국내에 소개할 수 있다. 구법승·전법승 같은 대외 교류 승려들의 주 활동 영역이 외국이다 보니, 그들에 관한 기록도 주로 해당 국가의 사료에 남아 있다. 그뿐 아니라 그들과 관련되는 장소, 묘소, 지명, 전설 등도 그곳에 소재하기에, 해당 국가 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할 수밖에 없고, 연구의 질이나 성과도 긍정적이다. 따라서 의선에 관한 대만과 중국학자들의 논문 내용을 소개하는 일은 국내의 관련 학자들을 위해서도 매우 유용하고 의미 있는 작업이다.
셋째, 고려불교사의 대외교류 활동을 추적하여, 한국고대사의 한 부분을 복원하였다. 본 연구를 수행하며 국내외의 관련연구에서 확보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선의 구체적인 활동을 심층 추적하여, 원 간섭기의 고려시대 불교 상황을 복원하였다. 천태승 의선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활동을 밝히는 것은 연구자의 의무일 뿐 아니라, 한국고대사의 한 부분을 복원하는 의미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