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박정희 정권 시기 근대화와 경제개발을 주요 목표로 삼아 제기되었던 인력개발 담론 및 지식의 확산을 사상사적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는 것이다.
해방과 정부수립,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의 학술연구는 크게 변화하였다. 특히 전후(戰後) 남한의 사회과 ...
본 연구는 박정희 정권 시기 근대화와 경제개발을 주요 목표로 삼아 제기되었던 인력개발 담론 및 지식의 확산을 사상사적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는 것이다.
해방과 정부수립,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의 학술연구는 크게 변화하였다. 특히 전후(戰後) 남한의 사회과학 지식인과 관료들은 ‘피폐’하고 ‘빈곤’한 현실을 타개하고 ‘선진’으로 ‘도약’을 도모하려는 의도 속에 미국 근대화담론의 동향에 주목하였다. ‘좌우’에서 ‘선후’로 인식의 초점을 전환하는 가운데 경영학, 행정학 등 응용학문들이 적극 도입되었다. 특히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응용학문들은 열전의 공간에서 체제경쟁의 우위를 점하는 가운데, 산적한 남한의 ‘병리’들을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주목받았다.
박정희 정권 시기 인력개발 담론의 동향 또한 위의 사회과학적 변화와 깊이 연관되었다. 인력개발을 검토한 기존의 시각들은 노동정책의 일환으로 실업교육 내지 기술인력 양성 차원에 주로 주목하였으나, 실제로 인력개발은 사상사/지성사의 차원에서 미국 근대화론의 자장, 여러 사회과학 학문분과 간의 협업 및 공통의 지적 전제, 인력을 둘러싼 개념상의 확대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일례로 1950년대 중반 미국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MIT대, UC 버클리대 지식인들이 공동 기획한‘경제개발에 있어서의 노동문제에 관한 대학간 연구’ 프로젝트와 그 지적 산물인 교육과 경제성장: 인력자원 개발 전략론 등은 당대 남한의 사회과학 지식인들에게 주목받았고, 교육학자 김종철에 의해 1965년 번역돼 교육학, 행정학, 경영학은 물론 인력개발정책론 구상 등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이 확인된다. 국제관계사 차원에서는 한미간 지식 네트워크를 비롯하여 OECD, UNESCO, ILO 등 주요 국제기구에서 산출한 지식들의 유동 양상들이 확인된다.
이처럼 인력개발 담론과 인력개발/인력양성 정책은 실업교육이나 기능공 양성과 같이 노동하는 인력을 확충하려는 차원을 넘어서서, 선진국은 물론, 후진국에서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고자 구상된‘생산하는 국민 만들기’의 구체적 기획 사례라 하겠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점들을 두루 해명하여 1960년대 인력개발 담론을 사상사, 지성사적 맥락에서 검토, 정리하고 그 성격을 밝혀보려는 것이다.
첫째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인력개발담론이 미국을 비롯하여 국제기구 등 세계적 차원에서 어떻게 마련되고 유동되었는지를 남한과의 연관 여부를 중심으로 하여 검토한다. 가령 앞서 언급한 대로 프레데릭 하비슨(Frederick Harbison)과 찰스 마이어스(Charles A. Myers)의 공저 교육과 경제성장은 노동, 경제 분야 지식인이 아니라 교육학자 김종철에 의해 번역되었다. 하비슨은 미국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MIT대, UC 버클리대 지식인들이 공동 기획한‘경제개발에 있어서의 노동문제에 관한 대학간 연구’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OECD, UNESCO 학술회의 등에서 인력개발담론을 주장했던 학자이기도 하였다. 영국 출신의 베이지(John Vaizey), 미국의 슐츠(Theodore Schultz) 또한 미국과 OECD에서 인력개발담론, 인적 자본담론을 제기했는바, 이들의 논의는 잡지 인력개발을 비롯하여 교육학자, 행정학자, 경영학자들에 의해 1960년대 중반부터 상당히 비중 있게 소개되었다.
둘째 인력개발담론이 각 분과학문 지식체계에 미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교육학의 경우,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듀이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진보주의 교육론, 민주교육론이 한국에서 주류를 점했다면 1965년을 즈음하여 이러한 양상은 변화한다. 즉, 미국과 국제기구에서 산출한 인력개발담론의 영향 속에 발전교육의 양상이 확대된다. 김종철, 정범모, 백현기를 비롯해 1960년대 중앙교육연구소의 여러 연구 및 프로젝트는 발전교육의 차원에서 인력개발을 검토한바 있다. 이렇듯 발전에 조응하는 인간형의 창출을 분과학문별 특색에 맞추어 고민하는 흔적들이 확인되는바, 이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셋째, 인력개발담론의 구성 및 전개에 있어 다학제적 접근을 의도한 사회과학 지식인들의 활동과 그 의미를 음미해본다. 1966년과 67년 인력개발위원회 설치 당시 인적 구성에서 확인되지만, 김입삼, 이은복, 이창렬과 같은 경제지식인, 백현기, 박용헌와 같은 교육(심리)학자들이 노동관계 관료, 지식인들과 함께 인력개발정책을 논의하고 검토하는바, 이러한 활동이 갖는 무엇을 뜻하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