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비교방법: 차이들 사이의 폴리포니적 대화
종래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주술적 원리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비교연구의 역사는 자국중심주의나 식민주의의 역사와 중첩되면서 타자를 부정적으로 투사해온 인간정신의 오류의 역사에 중요한 일부를 구성해 왔다. 한일문 ...
Ⅰ. 비교방법: 차이들 사이의 폴리포니적 대화
종래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주술적 원리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비교연구의 역사는 자국중심주의나 식민주의의 역사와 중첩되면서 타자를 부정적으로 투사해온 인간정신의 오류의 역사에 중요한 일부를 구성해 왔다. 한일문화비교 연구도 그런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유사성 속의 차이’ 및 보편성의 발굴에 초점을 맞춘 ‘비교의 정신’에 주목하면서, ‘특정 문화에의 비종속’을 뜻하는 ‘엑조토피’와 다성적인 ‘폴리포니’에 바탕한 바흐친의 대화 모델을 하나의 참고점으로 삼아 한일문화비교를 수행하고자 한다. 즉 폴리포니적 대화의 관계성 회복을 비교작업의 궁극적인 과제로 간주하는 본 연구는 ‘한’과 ‘모노노아와레’의 비교를 통해 그러한 폴리포니적 대화의 가능성을 묻고자 한다.
2. ‘한’의 대화적 가능성: 동경・오리엔테이션・카타르시스・용서
한 담론은 대표적으로 원한으로서의 한, 비애(설움)으로서의 한, 정(情)으로서의 한, 원망(願望)과 동경으로서의 한, 한풀이로서의 한을 비롯하여, 한국적 낭만주의로서의 한, 한탄으로서의 한, 미련으로서의 한, 체념으로서의 한, 불안으로서의 한, 무의미로서의 한, 좌절감으로서의 한, 분리로서의 한, 갈등복합체로서의 한, 종교적 상징으로서의 한, 문화적 표상으로서의 한, 역사적 경험 또는 침전물로서의 한, 만들어진 신화로서의 한, 성무적(成巫的) 한, 삭임으로서의 한, 민중의 한, 르상티망으로서의 한, 가면으로서의 한, 비극미로서의 한, 역동적 힘으로서의 한, 용서와 화해의 기제로서의 한, 멋으로서의 한, 신명으로서의 한, 카타르시스로서의 한 등 대단히 다양하다. 이 가운데 본 연구가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담론은 부정적 정조로서의 한보다는 미래지향적인 동경으로서의 한, 종교적 오리엔테이션으로서의 한, 해학과 신명으로의 승화에 의한 카타르시스로서의 한, 용서와 화해의 기제로서의 한 개념이다. 예컨대 한을 용서로써 해결하고 판소리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묘사한 <서편제>는 ‘한’의 대화적 가능성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3. 모노노아와레의 대화적 가능성: 모노・공감・일본미・불완전성
모노노아와레는 “섬세한 교감의 세계”, “사물에 대한 감수성”, “사물에 감동할 줄 아는 능력”, “깊고 절절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 “비애와 연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의 파토스” 등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사물’이란 ‘모노’(物)라는 말의 번역어이다. 그런데 일본어 ‘모노’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동물뿐만 아니라 일이나 사건까지도 모두 포괄하는 말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일본인 특유의 애니미즘적 감성과 관계가 있다.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이와 같은 모노의 마음을 아는 것이 모노노아와레의 핵심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모노 개념의 미학적 확장을 초래했다. 나아가 공감과 감정이입을 핵심으로 하는 노리나가의 감동지상주의는 ‘일본미로서의 모노노아와레’라는 관념을 낳았다. 이렇게 일본미 전체를 표상하게 된 모노노아와레는 주객미분의 속성에 있어 불완전성 및 그것의 수동적 수용을 핵심적인 특징으로 가진다. 예컨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무상감이나 비애미로 수용하면서 결핍된 것이나 부재하는 것 자체를 미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깊은 공감을 느끼는 불완전성의 미학은 모노노아와레의 대화적 가능성을 깊이있게 시사한다.
4. ‘한’과 모노노아와레의 대화
국내 학계에서 한과 모노노아와레를 비교하는 대부분의 고찰들은 양자의 유사성이나 차이를 단편적・기계적・단선적으로 나열한다든지 혹은 비교에 있어 심정적 가능성만 비친 채 향후의 과제로 남겨두거나 종종 모노노아와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사성 속의 미묘한 차이’에 주목하는 본 연구에서는 카타르시스・동경・오리엔테이션・용서라는 ‘한’의 속성과 모노・공감・일본미・불완전성이라는 ‘모노노아와레’의 속성을 각각 대응시키면서 양자간 폴리포니적 대화의 가능성을 도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