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에서는 조선중후기 양반의 일기와 문집 기록에 서술된 노비(남종/여종) 관련 기록을 대상으로 글쓰기에 매개된 수사학적 분석 방법과 문학해석학적 담론 분석 방법으로 접근함으로써, 조선시대 노비의 일상, 노동, 신체, 감성, 역량, 관계의 밝혀지지 않은 실제 ...
이 연구에서는 조선중후기 양반의 일기와 문집 기록에 서술된 노비(남종/여종) 관련 기록을 대상으로 글쓰기에 매개된 수사학적 분석 방법과 문학해석학적 담론 분석 방법으로 접근함으로써, 조선시대 노비의 일상, 노동, 신체, 감성, 역량, 관계의 밝혀지지 않은 실제를 해명했다.
1차년도 연구에서는 “여종의 젖과 눈물, 로봇-종의 팔다리: 사회적 신체로서의 노비 정체성과 신분제의 역설”을 탐구했다. 이를 위해 한국고전번역원DB 사이트에서 수집한 16~18세기의 노비 관련 텍스트 및 묵재일기를 중심으로 노비의 표기, 명명, 신분의 다양성 및 노비 정체성의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노비 노동이 육체노동으로 한정되지 않으며, 인격과 감성, 윤리를 수반한 인격적 활동이었고, 일부는 노동과 놀이, 취미의 경계를 넘나들었으며, 다른 일부는 양반이 수행하는 일상 내역을 대리-수행함으로써, 실제로 엄격한 신분적 위계화를 일시적, 한정적으로 해체하는 여백을 갖추었던, 유연하고 탄력적 성격이 존재했음을 밝혔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노비 정체성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밝히고 노비가 기계처럼 대체될 수 있는 팔, 다리, 젖을 분절해 낼 수 있는 도구적 존재가 아니라, 양반의 사회적 연결망을 몸으로 체현하면서, 양반가에서 일상을 공유했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섬세한 감각과 지성, 감성, 윤리, 교양을 체득하고 내면화한 복합적 주체로서 자신을 단련하며 문화를 형성했음을 해명했다.
2차년도 연구에서는 “매 맞는 노비의 상처ㆍ눈물ㆍ저항, 신분제와 윤리/젠더의 역설”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이문건의 묵재일기에 기록된 노비의 체벌에 대한 서술을 바탕으로 노비의 체벌 사유, 체벌에 대한 노비의 저항, 체벌을 둘러싼 신분간 갈등, 신분 내 균열 등을 분석하고, 체벌이라는 형식으로 노비의 윤리와 교양을 요구했던 신분제의 역설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했다. 노비는 노주로부터 명령에 대한 복종, 성실, 높은 노동의 질과 속도, 세심한 육아 태도, 기물 파손 금지, 노주의 취향과 요구에 대한 적절한 응대, 안전 등을 요구받았으며, 근면, 성실, 신중, 조심스러움, 예의, 공손, 돌봄, 신뢰, 가족 및 동료에 대한 등의 예의 바른 태도와 언어생활, 윤리 등을 요청받았다. 노주는 노비의 사귐, 다툼, 강간, 간통 등 개인적, 신체적, 성적 부분에 대해서도 통제했으며, 노비를 통해 감정을 해소하거나 투사하는 등 감정 노동의 수혜를 받았다. 노비에 대한 노주의 체벌은 역설적으로 노비의 역량과 자질, 윤리와 교양을 노주가 인정했음을 시사한다. 이 논문에서 이를 신분제 사회의 윤리/교양의 역설로 명명하고, 조선시대의 윤리 규범이나 실천이 상층 양반의 독점적 문화가 아니라, 하층민에게까지 기대되었고 실천되었던 요소임을 역설했다.
3차년도에는 “질병과 사망 기록을 통해 본 노비에 대한 양반-노주의 감정 스펙트럼과 네트워크 신체성”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3차년도 연구에서는 오희문의 일기 쇄미록에 서술된 노비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노비에 대한 양반 노주의 감정과 태도를 감정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하고, 노비의 질병과 사망을 대하는 양반의 태도와 감정 재현을 양반가의 경우와 비교 분석함으로써, 조선시대 노-주가 일상적, 경험적, 감성적 차원에서 연결성을 형성했으며, 네트워크 신체성을 구성하고 있었음을 해명했다. 노비에 대한 양반- 노주의 감정은 일정 부분 가족이나 지친 등에 대한 감정 반응과 중첩되면서 인간 보편의 동질성에 기반한 등위 감정으로 표출된 경우도 많았지만, 신분적ㆍ도덕적 요인에 따라 위계 감정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이때 감정 주체인 노주가 노비의 계약 위반이나 의무 또는 약속의 불이행, 업무 지체, 사취, 도주, 거짓말, 무례, 불손, 비위생 등의 사유에 대해 도덕적, 윤리적인 판단을 발휘해 감정 표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성도 나타났다. 양반은 노비와 일상과 생애 시간을 공유했기에, 노비에 대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적층되었고, 이질적인 감정이나 양가감정이 교차하기도 했다. 양반의 노비에 대한 감정 경험과 표현의 특징은 노비의 질병과 사망을 둘러싼 기록을 통해 확인되었다. 가족이나 지친의 질병과 사망에 대해서는 감정적 공감과 염려, 애도가 반드시 병치되었지만, 노비의 병을 대하는 태도는 정보 내용과 진실성에 따라 가변적이었다. 다만, 특정 지점에서 노비와 양반은 신분적 격차를 떠나 질병이라는 인간 보편의 신체 경험을 통해 연결되었고, 관심과 배려, 동정과 치료 등의 정동적 실천으로 통합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양반 남성이라는 동성ㆍ등위 집단에 대한 정치적ㆍ사상적ㆍ학문적 이해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었던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에 대한 편폭을 확장하고 심화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