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본 조선시대 평민유학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Confucianism Case of the People in the Joseon Dynasty - Focused on the records of the Joseon Dynasty Annals
사람마다 근성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그 근성을 평생 버리지 못한다. 노예근성이나 패배주의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유교를 전공으로 하면서 오랫동안 이 부분에 의문을 가져왔다. 그것은 우리가 배우고 연구하고 있는 유교가 진실로 조선 백성 ...
사람마다 근성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그 근성을 평생 버리지 못한다. 노예근성이나 패배주의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유교를 전공으로 하면서 오랫동안 이 부분에 의문을 가져왔다. 그것은 우리가 배우고 연구하고 있는 유교가 진실로 조선 백성 모두의 유교였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기록된 조건을 전제로 판단하자면 우리가 지금 유교라고 부르는 것은 당시 20% 내외로 유지 되었던 양반들의 유교를 마치 조선 백성 전체의 이념이었던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국민들이야 하나같이 자기 조상들이 명망 있는 양반 가문이었다고 하니 관계는 없겠으나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는 당시의 유교문화의 실상에 대한 호기심이 없을 수 없다. 이 연구의 목표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해방 후 경제적 근대화와 문화적 서구화를 진행하면서 한국이 겪어야 했던 정체성의 해체는 새로운 대안 없이 진행된 경우가 많았다. 서구 문명의 기세에 눌린 젊은 세대는 전통의 불합리성을 자의적으로 추론하고는 유교문화에 대한 현상 유지를 바라는 구세대를 고지식한 ‘꼰대’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서구의 자유주의적 사고가 지닌 분방함과 이를 통제 하려는 근엄 사이의 갈등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세대갈등으로 천착된 계기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공자의 ‘溫故知新’을 말하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무조건 버려야 할 전통이나 무조건 지켜야 할 전통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는 허다하다. 그 허다한 주장들이 난무하는 곳에서 ‘꼰대’들은 서로를 삿대질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유교가 조선에 전래된 이래 최장시간 최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의 기록이다. 비록 양반 중심의 사회에서 지배자의 사건이나 언행을 기록한 역사 유물이지만 그 안에는 당시 백성들의 선, 악행 사례나 사건들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물론 다른 정치적 사건이나 양반 계층의 언행이나 문화에 대한 기록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겠으나 그 산발적인 기록 속에는 당시 다수를 구성하고 살았던 민초들의 문화와 의식이 탑재되어 있다. 이번 연구는 그러한 산발적인 기록들을 소중하게 분석하고 정리하여 양반들의 전유물로서가 아니라 다수 백성들의 생활 윤리로서의 기능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양반의 도도한 지배 윤리로서가 아니라 단순하지만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생활 윤리로서의 평민유교 유산을 누리고 있다. 다만 그 단순한 윤리마저 현대 한국 사회는 방치하고 있다는 절박감은 있다. 양반 중심의 유교는 어느새 사변학으로 전락하여 현실성을 잃었고, ‘사람 사는 곳에 道理는 있다’는 기본적인 원칙마저 위협받는 현대 평민 사회의 인간적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에 대한 試論이 이 논문의 가장 큰 연구목표이다. 다시 말하자면 양반 중심의 지배 권력으로서의 유교가 아니라 평민 중심의 생활 윤리로서의 유교가 지닌 가능성이다. 말하자면 살아 남고자하는 이기적인 ‘꼰대’들의 이전투구 속에서 전통적 가치 방어에 고군분투하는 평민 개개인들의 미래 가치로서 지닌 유교의 가능성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역사에 기록된 양반 중심의 유교가 아니라 우리의 민간 속에 생활 이념으로서 자리 잡은 유교적 가치를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봉건적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유교는 신분질서, 통치 기능, 외형적 가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에게 남겨진 기록된 자료는 거의 대부분 이 부분이다. 그러나 평민 개인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은 것이 거의 없듯이 평민들이 삶 속에서 실천했던 생활 윤리는 신분, 통치, 외형적 가치가 아니라 평등, 현실적 효율성, 내적 가치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조선왕조실록 속에 기록된 내용들이 지닌 가치이다. 이 연구는 우리들 평민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인간다운 삶의 가치로서의 평민유교가 지녔던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기대효과
봉건 질서가 지배하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은 계급이 지배하거나 신분에 의해 일방이 예속된 관계는 아니다. 각자의 독립적인 지위에 따라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다. 그러나 다양한 논의 대상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나 연구보다는 꼰대스러운 억지와 fake 정보나 뉴스를 ...
봉건 질서가 지배하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은 계급이 지배하거나 신분에 의해 일방이 예속된 관계는 아니다. 각자의 독립적인 지위에 따라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다. 그러나 다양한 논의 대상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나 연구보다는 꼰대스러운 억지와 fake 정보나 뉴스를 취사선택하여 자신을 만족 시키는 阿Q 증상이 사회 곳곳에 난무하고 있다. 정보 습득을 위한 깊이 있는 공부는 싫고, 합리적인 결과를 위한 진지한 토론을 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하다. 결국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점점 더 단절이 심화되고 식자는 식자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들을 나열하면서 자신을 과시하고, 일반인은 일반인대로 고함과 삿대질로 자신을 옹호하기에 바쁜 시대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학습해야 하는 지식은 삿대질이 아니라 도리와 예의염치로 무장한 평민 조상들의 생활윤리와 실천 덕목이다. 교육의 기회가 현실적으로 박탈당했던 조선의 평민들이 유교 이념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나 현실적 토론이 충분 했을 리는 없고, 양반들에 의해 강요 되거나 시혜된 이념들 중에서 가족과 집단의 질서 유지에 필수적인 덕목들을 취사하여 그들의 생활윤리 속에 몸으로 안착시켰을 것이다. 양반의 허세가 제거된 오랜 검증을 거친 현실적인 생활 윤리의 덕목들은 오늘날이라고 그 가치가 반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안착된 평민 유교는 그런 의미에서 배척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오늘날 대부분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진 우리 한반도의 자생적 ᄒᆞᆫ사상은 삼국시대를 전후로 유교 사상에 의해 세척되고 제거 되었다. 그것은 과거의 불행이다. 그러나 유교는 정복자로서의 이념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 가령 무격 전통과 결합한다거나 仙 사상의 인본주의를 유교 본래의 인본주의 이념과 자연스럽게 융합하는 등의 방법으로 타협하고 수용하면서 한국적 유교로 재탄생하여 안착된 것이다. 삼국 이후 이천년 이상 우리의 전통 이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서구 자본주의 물결은 타협과 수용의 형식이 아니었다. 서구적 개인주의와 배금주의가 우리의 공동체 가치와 인간 중심주의를 철저하게 분쇄하는 방식으로 이식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 논문은 이러한 흐름에 대한 진지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질은 물질적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만족의 기준점이 어디냐에 달려있다. 한국의 전통적 삶의 가치는 물질적 소유가 아니라 소유의 나눔에 있었다고 믿고 있다. 담장의 비름구멍을 통해서 생선 한 토막을 나눠 먹던 선조들의 삶이 과잉 풍요 속에서 사는 현대보다 불행하다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평민유교의 가치는 수직적 시혜가 아니라 수평적 연민이다. 그렇다고 양반유교가 수직적 시혜를 고집하고 조선의 평민유교는 수평적 배려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저력은 절대 다수의 평민 문화 속에 계승된 나눔의 공동체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전통이 조선 평민들의 생활 속에 구현된 의미를 분석하고 현대 한국 사회에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토론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평민유교라는 생소한 개념으로 현대 한국 사회의 담론에 조그마한 불꽃처럼 발제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한다. 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계급이나 신분이 아니라 박제된 이념들에 의해 스스로의 사고를 확증편향적으로 몰아가는 이념적 예속이 가속화 되고 있다.
연구요약
①연구목적 연구 목적으로는 두가지를 상정하고 있다. 하나는 조선시대 성리학이 나라와 백성들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하고 이념으로서의 한계를 노출한 원인을 분석해 보는 것이다. 조선의 유학은 지나친 관념 논쟁과 약탈적 정치 행태로 민본의 이념과는 유리되어 있었 ...
①연구목적 연구 목적으로는 두가지를 상정하고 있다. 하나는 조선시대 성리학이 나라와 백성들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하고 이념으로서의 한계를 노출한 원인을 분석해 보는 것이다. 조선의 유학은 지나친 관념 논쟁과 약탈적 정치 행태로 민본의 이념과는 유리되어 있었다. 지나친 理氣 논쟁은 정치적 모순을 통제하지 못했고, 이념적 명분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空談의 허구에 빠지고 말았다. 따라서 양반유교 사회의 난맥상에 대한 분석은 조선 사회의 불합리를 이해하는 전제조건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두 번째는 현실적 생존의 문제와 직면한 평민들의 유교 전통에 대한 인식에 관한 문제이다. 조선 사회의 유교는 평민들의 생활 속에서 일상화 되어 있었으나 이에 대한 반론은 미약했다. 당시 평민들의 삶 속에서 유교는 양반 계층의 권위와는 상관없이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도리로서의 공통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은 국가의 정치적 사실과 사건에 관한 사실적 기록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문화적 저력으로서 평민 유학의 내용과 안착 과정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②연구내용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성하였다. Ⅰ. 조선시대 양반유교의 흐름 1. 양반유교의 내용과 현실적 한계 2. 평민유교의 내용과 현실적 한계 Ⅱ.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평민유학의 가치와 의미 1. 전통 유교에 대한 내적 수용과 형식주의의 탈피 2. 봉건 구조에 대한 저항과 평민 문화로서의 의미 Ⅰ-1에서는 벌열 계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유교에 대한 관념적 몰입의 과정에 대한 분석이 진행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민본의 대의명분과 단절하고 당파에 따라 자의적 해석이 난무하는 실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토대로 Ⅰ-2에서는 상생적 관계가 아니라 평민 유교가 독자적으로 형성되는 과정과 그 내용을 살펴본다. 나아가 내용의 특징과 독자성, 문화적 내면의 의미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1에서는 조선의 평민들은 권위주의적 유교의 형식을 수동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내적 가치를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취지를 설명할 것이다. 나아가 평민 사회의 가족주의 전통을 수호하기 위한 주체적 생활윤리로서의 가치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Ⅱ-2에서는 그들이 수용할 수 없는 관념적, 형식적 양반유교의 흐름과는 별도로 연민과 배려의 윤리로서 열어간 평민 유교의 의미를 도출하고자 노력한다. ③연구방법 먼저 본 연구는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평민유교에 대한 분석을 진행한다. 특히 실록에 나타난 양반들의 언행들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양반 계층의 행동 양식을 분석한다. 형식과 명분에 함몰된 맹목주의가 나라를 피폐로 몰고 갔다는 것이 오늘날 연구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으므로 양반들의 행동양식을 분석하는 것은 피폐의 원인을 찾는데 중요할 것이다. 또한 평민들의 실천 사례와 언행들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평민유교의 특징들을 추론할 것이다. 실록에 기록된 평민들의 유교 윤리와 祭儀와 같은 형식에 대한 수용 범위와 실천 반경을 검토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우리 민족 특유의 개성이 잠재되어 있거니와 유교를 수용하는 평민들 나름의 기준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동시에 역사학계나 철학계에서 연구된 최근의 자료들을 같이 분석할 것이다. 조선 사회의 평민문화는 독자적이면서도 봉건 질서에 대한 저항적 의도가 상당히 내장되어 있다는 분석들이 다수 있다. 이들 자료들을 분석하는 것은 연구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소중한 근거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 평민들의 유교 문화는 주로 大同의 공동체주의와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는 이념을 중심으로 주로 생활 윤리와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성리학의 사변적 논쟁과는 구별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로서의 유교문화이다. 이번 연구를 기회로 이 부분에 대한 사례 채록과 분석을 하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라고 본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조선왕조실록』은 유교가 조선에 전래된 이래 최장시간 최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의 기록이다. 비록 양반 중심의 사회에서 지배자의 사건이나 언행을 기록한 역사 유물이지만 그 안에는 당시 백성들의 선, 악행 사례나 사건들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물론 다른 정치적 사건 ...
『조선왕조실록』은 유교가 조선에 전래된 이래 최장시간 최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의 기록이다. 비록 양반 중심의 사회에서 지배자의 사건이나 언행을 기록한 역사 유물이지만 그 안에는 당시 백성들의 선, 악행 사례나 사건들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물론 다른 정치적 사건이나 양반 계층의 언행이나 문화에 대한 기록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겠으나 그 산발적인 기록 속에는 당시 다수를 구성하고 살았던 민초들의 문화와 의식이 탑재되어 있다. 이번 연구는 그러한 산발적인 기록들을 소중하게 분석하고 정리하여 양반들의 전유물로서가 아니라 다수 백성들의 생활 윤리로서의 기능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양반의 도도한 지배 윤리로서가 아니라 단순하지만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생활 윤리로서의 평민유교 유산을 누리고 있다. 다만 그 단순한 윤리마저 현대 한국 사회는 방치하고 있다는 절박감은 있다. 양반 중심의 유교는 어느새 사변학으로 전락하여 현실성을 잃었고, ‘사람 사는 곳에 道理는 있다’는 기본적인 원칙마저 위협받는 현대 평민 사회의 인간적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에 대한 試論이 이 논문의 가장 큰 연구목표이다.
영문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is a record of the period when Confucianism enjoyed its heyday for the longest time since it was introduced to Joseon. Although it is a historical relic that records the events and words and actions of rulers in a noblem ...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is a record of the period when Confucianism enjoyed its heyday for the longest time since it was introduced to Joseon. Although it is a historical relic that records the events and words and actions of rulers in a nobleman-centered society, there are many examples of good and bad deeds and incidents of the people at the time. Of course, it is insignificant compared to other political events or records of the yangban class's words and culture, but the scattered records contain the culture and consciousness of the common people who made up the majority at the time. This study is to carefully analyze and organize such scattered records to find out what their function was as a living ethic of the majority of people, not as the exclusive property of noblemen. We, who are living in modern times, are also enjoying the legacy of commoner Confucianism as a simple but realistic and practical life ethic, not as an arrogant ruling ethic of the yangban. However, there is a sense of urgency that modern Korean society is neglecting even that simple ethics. Confucianism centered on the yangban has lost its reality by degenerating into speculative studies, and the biggest research goal of this thesis is to examine ways to overcome the human crisis of modern common people society, where even the basic principle of 'there is morality where people live' is threatened. to be.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조선왕조실록』은 유교가 조선에 전래된 이래 최장시간 최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의 기록이다. 비록 양반 중심의 사회에서 지배자의 사건이나 언행을 기록한 역사 유물이지만 그 안에는 당시 백성들의 선, 악행 사례나 사건들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물론 다른 정치적 사건 ...
『조선왕조실록』은 유교가 조선에 전래된 이래 최장시간 최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의 기록이다. 비록 양반 중심의 사회에서 지배자의 사건이나 언행을 기록한 역사 유물이지만 그 안에는 당시 백성들의 선, 악행 사례나 사건들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물론 다른 정치적 사건이나 양반 계층의 언행이나 문화에 대한 기록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겠으나 그 산발적인 기록 속에는 당시 다수를 구성하고 살았던 민초들의 문화와 의식이 탑재되어 있다. 이번 연구는 그러한 산발적인 기록들을 소중하게 분석하고 정리하여 양반들의 전유물로서가 아니라 다수 백성들의 생활 윤리로서의 기능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양반의 도도한 지배 윤리로서가 아니라 단순하지만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생활 윤리로서의 평민유교 유산을 누리고 있다. 다만 그 단순한 윤리마저 현대 한국 사회는 방치하고 있다는 절박감은 있다. 양반 중심의 유교는 어느새 사변학으로 전락하여 현실성을 잃었고, ‘사람 사는 곳에 道理는 있다’는 기본적인 원칙마저 위협받는 현대 평민 사회의 인간적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에 대한 試論이 이 논문의 가장 큰 연구목표이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1. 인력양성 방안 본 연구의 연구 과정에서는 대략 3차에 걸쳐 소규모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소규모 세미나는 우선 공통의 관심을 지닌 다수의 참여자를 초청하여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확산해 나갈 것이다. 토론은 서로가 스승이 될 수 있는 기회일 뿐 ...
1. 인력양성 방안 본 연구의 연구 과정에서는 대략 3차에 걸쳐 소규모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소규모 세미나는 우선 공통의 관심을 지닌 다수의 참여자를 초청하여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확산해 나갈 것이다. 토론은 서로가 스승이 될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평민유교라는 화두를 확산 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도제식 교육 방식으로서의 인력 양성은 아니지만 학문적 도반으로서의 동지를 다수 확보할 수 있다는 긍정적 부분이 있다고 본다.
2.교육의 연관성·후속연구와의 연계 본 연구의 과정은 주로 사실적 역사 자료를 사례 중심으로 분석하여 정리하고 『조선왕조실록』의 사건 등을 분석하여 정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연구 작업은 융복합적 학문을 지향하는 현대의 대학 사회에서 이미 고착된 자기 영역주의를 타파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자료나 연구 결과의 광범위한 공유를 통해서 후속 연구의 모티브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