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Gallus gallus domesticus)은 과거 사회·문화·정치·경제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가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가금류인 닭이 가진 중요성에 비해서 한반도 고대 닭에 관한 고고학적 정보는 부족하였다. 그 요인 가운데 하나는 자료의 부족을 지적할 수 있다. 한반 ...
닭(Gallus gallus domesticus)은 과거 사회·문화·정치·경제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가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가금류인 닭이 가진 중요성에 비해서 한반도 고대 닭에 관한 고고학적 정보는 부족하였다. 그 요인 가운데 하나는 자료의 부족을 지적할 수 있다. 한반도 산성토 환경은 유기물질 보존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류 뼈의 경우 다른 포유류 뼈에 비해서 잔존하기 어려우며, 수습 과정에서도 누락되는 사례가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꿩과 닭의 뼈는 형태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학적 식별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명확하게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동물고고학의 주요 방법인 형태학적 분석을 통해 닭의 존재를 밝히고, 시공간적 양상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나아가 이러한 닭의 양상이 고대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고찰하고자 하였다. 연구 대상은 광주 신창동 유적, 나주 장동리 수문 패총, 해남 군곡리 패총, 사천 늑도 패총, 김해 신문리 유적, 함안 성산 산성을 선정하였다. 그 기준은 시공간적 맥락을 통시적으로 볼 수 있으며, 명확한 구분을 위해 실견이 가능한 것을 기준으로 정하였다. 유적들의 연대는 대략 기원전 3세기~기원후 6세기까지 1,000년 이상의 시간 폭을 나타낸다. 즉, 장기간 닭의 사육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광주 신창동 유적과 함안 성산 산성은 내륙에 위치하고, 해남 군곡리 패총, 사천 늑도 패총, 김해 신문리 유적은 해안에 위치한다. 이를 통해 입지별 닭의 사육과 전파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연구는 크게 4가지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첫째, 동아시아 닭의 기원의 연구 동향을 살펴본 결과, 최근 게놈 분석 성과에 따르면 적색야계의 아종 Gallus gallus spadiceus에서 파생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아종은 현재 주로 중국 남서부, 태국 북부 및 미얀마에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최소 청동기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닭이 사육된 것으로 보인다. 적색야계 원종이 서식하지 않는 한반도는 중국 또는 동북지역에서 유입될 가능성이 크고, 앞선 시기적 맥락으로 보아 최소 청동기시대 이후에 도입되었을 것이다. 일본 야요이시대에도 소수의 닭 유체가 보고되었는데, 한반도를 거쳐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한반도 꿩科 조류의 생태지리학적 분포를 파악하고, 동물고고학적 방법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꿩科 안에 속한 종들의 뼈는 형태적으로 유사하다. 중국 및 일본에서 연구된 식별자료를 참고하는 데 있어, 선행적으로 한반도 서식종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에서는 꿩科에 속한 종 가운데 동정에 유의해야 할 조류가 9속 20종에 이른다. 한반도에서는 들꿩(Tetraste bonasia), 멧닭(Lyrurus tetix ussuriensis), 메추라기(Coturnix japonica), 꿩(Phasianus colchicus) 4종이 서식한다. 이 가운데 생태적 분포와 종의 크기를 고려하면 대부분 고려할 수 있는 종은 꿩(Phasianus colchicus)에 국한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셋째, 중국 및 일본에서 이루어진 형태학적 분석 성과를 통해 닭의 동정 기준을 파악하였다. 족근중족골(足根中足骨: Tarsometatarsal)의 내측족저릉(內側足底稜: Crista medialis) 및 대퇴골(大腿骨: femur)의 대전자함기와(大轉子含氣窩: Pneumatic foramen)가 동정에 용이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넷째, 유적에서 출토된 꿩科의 족근중족골과 대퇴골의 형태학적 차이를 통해 분석한 결과, 닭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적어도 철기시대 무렵부터 이미 닭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꿩에 비해 수량이 많지 않으며, 그 양상이 오랜 기간 지속해서 유지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단순한 식용뿐만 아니라 의례, 위신재 등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