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계획 요약>
{소설의 이론}은 분명히 '난해한' 책이다. {소설의 이론}의 서술 속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출발하여 단테의 {신곡}을 거쳐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소설의 이론}의 구도에 따르면 '서구'의 '소설'에 포함되지 않는)에까지 이르는 서구의 주요 ...
<연구 계획 요약>
{소설의 이론}은 분명히 '난해한' 책이다. {소설의 이론}의 서술 속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출발하여 단테의 {신곡}을 거쳐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소설의 이론}의 구도에 따르면 '서구'의 '소설'에 포함되지 않는)에까지 이르는 서구의 주요한 문학적, 예술적 성취가 대거 등장하고 있으며, 플라톤에서부터 베르그송에 이르기까지 서구철학이 폭넓게 '인용'되고 있다. 게다가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서구문명의 위기를 감지하는 한 젊은 영혼의 '구도적(求道的)' 글쓰기를 통해 그러하니 텍스트의 '난해성'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텍스트 읽기에서 당장 부딪치게 되는 이러한 난관을 가능한 한도 내에서 '명쾌하게' 해소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철학적 소설시학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타진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몇 가지 서로 교차하는 맥락들 속에 놓고 중층적 복합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지점을 고찰하게 될 것이다.
1. 초기 루카치의 발전사적 맥락에서 본 {소설의 이론}
루카치 저작의 발전 맥락 속에서 {소설의 이론}이 점하는 위치를 매기는 것이 첫 번째 연구과제이다. {영혼과 형식}(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마음의 가난에 관하여])과 {소설의 이론}의 관계, {하이델베르크 예술철학} 및 {하이델베르크 미학}과 {소설의 이론}의 관계 등이 고찰의 중심에 놓일 것이다. 그리고 루카치의 초기 저작이 당시의 문학적 철학적 경향들에 편입되는 양상을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도 이 대목에서 할 일이다. {소설의 이론}을 전후한 루카치 텍스트들에 관한 지식과 당시 지배적이었던 문학적 철학적 경향들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2. 문학사와 철학사의 전통 속에서 본 {소설의 이론}
{소설의 이론}에는 칸트, 라스크, 딜타이, 베르그송, 헤겔, 괴테, 쉴러, 프리드리히 슐레겔, 졸거, 니콜라스 쿠사누스 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용어와 개념 들이 사용되고 키에르케고르, 니체, 짐멜, 베버, 소렐, 도스토예프스키 등에서 발원하는 생각들이 뒤섞여 있다. 복잡하게 착종되어 있는 수많은 사상적 조류들을 서구의 문학사적, 철학사적 전통의 맥락 속에서 풀어헤치는 한편, {소설의 이론} 자체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이론(Rahmentheorie)', 곧 주도이론을 밝히는 것이 두 번째 연구과제이다. 고전적인 역사주의와 생철학 그리고 신칸트주의가 {소설의 이론}에서 어떤 양상으로 얽혀있는지를 밝혀내면 이 책의 난해성은 벌써 반 이상 해소된 셈이다. 우리는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참조하는 가운데 텍스트 자체를 정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이 문제를 풀어낼 것이다.
3. 역사철학(역사관)의 측면에서 본 {소설의 이론}
{소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회고하는 62년 신판 서문에서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 집필 당시 그가 "칸트에서 헤겔로의 이행과정"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의 이론}의 역사철학은, 특히 근대를 평가하는 관점에 있어서 헤겔의 역사철학과 다르다. 근대를 세계정신이 자기 자신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하는 헤겔과는 달리 루카치에게 근대는 "완전한 죄악의 시대"라는 피히테의 표현으로 압축된다. 그렇다고 해서 피히테적인 역사관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럴 것이 피히테의 경우 "완전한 죄악의 시대"는 "본능의 지배"에서 "이성의 지배"로 넘어가는 이행기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헤겔의 역사변증법의 키에르케고르화"라는 루카치의 또다른 자기평가 또한 {소설의 이론}의 역사철학에 전적으로 조응한다고 보기는 힘든데, 키에르케고르의 3단계론, 곧 "미의 단계", "윤리의 단계", "종교의 단계"는 우선 '개인'의 발전 단계론이며, 또 그것을 역사에 적용했을 때 근대에 해당할 "윤리의 단계"는 "종교의 단계"의 전 단계로 설정될 터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루카치에게 있어서 근대는 그 자체 '완전한 몰락'이다. 이러한 평가에 따른 도저한 절망은 서구 바깥, 곧 러시아로부터 그 조짐이 보이는 '구원의 빛'을 향한 갈구로 이어지는데, 그렇다면 {소설의 이론}에서 드러나는 역사철학은 인류의 '황금시대'로서의 그리스시대에서 출발, 중세 기독교 시대라는 긴 이행기를 거쳐 서구적 근대에서 '완전한 몰락'에 이르렀다가 러시아적인 이념을 통해 다시 '재상승'하는 모습을 띤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대목에서는 대략 위와 같은 외형(이에 관해서는 {소설의 이론}을 다룬 거의 모든 연구물들이 다 언급하고 있다)을 가진 역사철학의 내적 원리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것이다. 이때 그 양상이 흡사한 신플라톤주의의 역사도식이 같이 검토될 것이며, 당시 루카치의 근대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조르쥬 소렐에 관한 검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를 회고하면서 루카치가 사용하고 있는 몇 가지 핵심적 코드, 즉 "낭만적 반자본주의", "메시아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