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요사노 덱캉(与謝野鉄幹)의 단카혁신론이 청일전쟁과 조선체험을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단카라는 근대적 장르의 탄생과 본질형성에 조선이 어떻게 관여되는지를 살피고자 한 것이다. 이는 근대단카 출발기의 성취와 한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 ...
본 연구는 요사노 덱캉(与謝野鉄幹)의 단카혁신론이 청일전쟁과 조선체험을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단카라는 근대적 장르의 탄생과 본질형성에 조선이 어떻게 관여되는지를 살피고자 한 것이다. 이는 근대단카 출발기의 성취와 한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보고자 한 것으로, 세부적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론(歌論) 「망국의 노래(亡国の音)」(1894)를 통해 주장된 덱캉(鉄幹)의 혁신론이 『동서남북(東西南北)』(1896)이라는 작품으로 실천되는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여, 그의 새로운 단카에 조선이라는 기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읽어내고자 했다. 1880년대 후반 시작된 와카개량운동에 이어 본격적인 단카혁신의 선두에 선 덱캉은 청일전쟁 직후 3회에 걸쳐 조선을 방문했으며, 그의 가집(歌集) 『동서남북』은 조선에서의 정치적 행적을 시사하는 언어로 넘치고 있다. 그런데 초기의 덱캉을 거론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단카혁신과 조선, 이 두 가지 키워드를 연결하여 논한 연구는 의외로 드물다. 덱캉과 조선의 관계는 주로 을미사변과 연관된 전기적 연구에 집중되었고, 조선을 통해 이루어진 그의 문학적 실천에 대해서는 부차적인 언급에 그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덱캉의 『동서남북』은 근대시가사상 하나의 전기를 이룬 최초의 근대 가집이며, 단카에서 최초로 근대적 창작주체가 등장한 순간이라는 것이 문학사적 정설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근대단카의 출발과 덱캉의 조선체험, 이 두 가지의 관계에 주목하고자 했다. 둘째, 조선체험을 통해 이루어진 덱캉 단카를 통해 메이지 중기 이후 내셔널리즘의 자장 속에서 이루어진 국민시가 담론의 문제점을 구명하고자 했다. 메이지 중기 이후 시작된 일본의 문학사 서술에서 문학은 문명국으로서의 자부와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때문에 와카의 개량과 혁신의 목표 또한 문명국의 증명이자 국민의 정신적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시가의 창출에 있었다. 이 시기 국민시가 담론의 특징은 『만요슈(万葉集)』의 특권화와 함께 수행되었다는 점과, 역사적으로 여성적이라는 문화적 함의 아래 있었던 와카의 가치전도를 주장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덱캉의 「망국의 노래」 또한 강대한 문명국으로 성세를 누리기 위해 웅대하고 남성적인 시가가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하지만 『만요슈』가 바람직한 국민적 시가의 부재를 메우기 위한 심리적 등가물(品田悦一, 『創造された古典』, 1999)이었던 것처럼 남성적인 국민 시가 또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본 연구는 덱캉이 주장한 ‘대장부의 시’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했다. 셋째, 근대 일본문학에 나타난 조선상의 연구에 있어서 방법론적 전환을 시도하고자 했다. 근대 일본문학과 조선의 관계를 다룬 연구는 주로 개별 텍스트에 그려진 조선상만을 추출하여 대상 작가의 사상이나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도식으로 이루어져왔다. 이는 20세기 전반에 일어난 지배/피지배의 양국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이러한 연구방법은 식민지배의 논리를 복원하고 역사적 자료를 축적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양국의 관계성을 다루어갈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것 또한 필요할 것이다. 본 연구의 방법은 일본 문학자가 조선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나아가, 조선에 대한 인식과 표상의 방식이 그들의 문학발전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살피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덱캉에 주목하는 것은 그가 국시창출 운동의 한 가운데서 혁신을 주도했고 최초의 근대가집을 상재한 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카가 근대적 문학 장르로 변화하던 시기, 근대 국가 일본이 국가의 정체성을 담보할 문학사 서술을 시작하고 국민적 시가의 창출에 분주했던 담론공간에 조선이 어떻게 호명되는지, 그것이 근대단카의 출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명하는 것이 본 연구의 궁극적 목표이다.
기대효과
근대단카와 제국주의, 그리고 조선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본 연구는 그 점에 대한 문제제기의 의미를 포함한 것이다. 본 연구를 바탕으로 가능한 후속 연구 및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를 바탕으로 식 ...
근대단카와 제국주의, 그리고 조선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본 연구는 그 점에 대한 문제제기의 의미를 포함한 것이다. 본 연구를 바탕으로 가능한 후속 연구 및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를 바탕으로 식민지배와 전쟁수행의 역사 속에서 단카라는 장르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고찰해갈 수 있을 것이다. 강력한 내셔널리즘의 자장 속에서 이루어진 단카혁신이 확장과 동화라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이데올로기를 그대로 투사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본 연구의 결과는 이후의 단카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덱캉에 의해 단카사상 최초로 등장한 근대적 자아가 전쟁과 침략이라는 제국의 논리를 구가한다는 점에서 단카에 의한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전쟁찬미 등, 쇼와(昭和)파시즘과 관계하게 되는 단초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문학을 조선에 이식한다는 덱캉의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조선인을 내부의 국민으로 동원해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식민지 조선과 단카의 관계에 대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연구의 축적과 논의가 과제로 남아있으며, 본 연구는 그 출발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일본문학자와 조선의 관계 뿐 아니라, 본 연구에서 제시한 방법론으로 동아시아 전반으로 확장된 제국 일본의 문학을 조명한다면 일본 근대문학자의 이문화 체험이 그들의 문학발전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복원해내는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청일전쟁시 종군한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와 러일전쟁까지 이어지는 모리 오가이(森鴎外)의 중국 체험이 단카와 하이쿠, 나아가 한시와 자유시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근대적 변용에 미친 영향과 그 역학관계의 연구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셋째, 근대 한일 문학관계 연구의 폭을 넓히고 한일간 학술 교류의 증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의 조선에 대한 인식과 표상의 방식이 그들의 문학발전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초점을 둔 본 연구의 방법은, 상호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되 긴밀한 교류가 필요한 한일 양국 학계에 바람직한 연구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제국과 식민지의 문화교섭을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다루어갈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배문화에 의한 일방적인 억압이나 이식이 아닌, 그 반대의 경우까지 포함하는 논의가 축적된다면 20세기 전반 동아시아 각국의 문화지형을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본 연구는 일본문학 및 문화 교육의 질과 범위를 확장시키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청일전쟁과 을미사변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단카라는 문학 장르에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대한 논의를 포함하므로, 일본문학 교육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 강좌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연구 종료 이후 <한일 문화비교>, <일본의 이해>와 같은 강좌에서 개화기 한일관계의 교육에 덱캉의 단카를 활용한 결과, 학생들의 흥미를 높이고 내셔널리즘과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또한 일본 근대단카의 출발점이자 최초의 근대가집을 중심 텍스트로 하므로, <일본문학의 이해>, <일본문학 특강>, <동양문학의 이해>와 같은 교과목에 교육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전통시 단카는 그 자체로 일본 문학의 역사임과 동시에 일본 문화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단카적 서정과 7・5조 운율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현대의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접근하는 중요한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단카혁신을 다루는 본 연구는 일본문학의 전통과 근대를 아울러 이해하는 훌륭한 텍스트로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요약
본 연구는 요사노 덱캉의 단카혁신에 조선이 관여하는 양상을 구명하기 위해, 최초의 본격적인 단카혁신론 「망국의 노래」와 조선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가집 『동서남북』을 중심텍스트로 삼았다. 연구의 순서는 「망국의 노래」에서 제시된 단카의 혁신방안을 추출한 후, 이 ...
본 연구는 요사노 덱캉의 단카혁신에 조선이 관여하는 양상을 구명하기 위해, 최초의 본격적인 단카혁신론 「망국의 노래」와 조선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가집 『동서남북』을 중심텍스트로 삼았다. 연구의 순서는 「망국의 노래」에서 제시된 단카의 혁신방안을 추출한 후, 이론적 논의가 작품 속에 실천되는 방법으로서 조선이라는 기호가 호명되는 양상을 고찰했다. 그 과정을 통해 최초의 근대가집인 『동서남북』이 당시의 국민시가 담론을 반영하는 양상과 문제점을 구명해가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핵심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망국의 노래」가 주장한 바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1)고전의 모방에만 치중하는 진부하고 협소한 와카 미학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 2)섬약한 여성성에서 탈피하여 ‘대장부의 노래’로 거듭나야한다는 것, 3)이러한 와카가 국가의 흥망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기성가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이루어진 그의 주장은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논의 자체가 치밀하지 못하고 관념적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었다. 즉 덱캉은 「망국의 노래」 발표 당시에는 스스로 주장한 ‘대장부의 노래’가 어떤 것인지 작품으로 보여줄 수 없는 단계였고, 따라서 새로운 시를 실현하기 위해 조선 방문을 희망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청일전쟁 개전과 함께 일본제국 발전의 최전선으로 인식된 조선이야말로 변화하는 시대의 기운을 담아낼 새로운 시를 실천할 수 있는 장소였던 것이다. 둘째, 이상의 주장이 가집 『동서남북』에서 실천되는 양상은 1)조선을 새로운 ‘제(題)’로 채용하는 것, 2)조선을 무대로 한 일본 대장부의 허구적 드라마를 단카 속에 연출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 덱캉의 단카는 ‘호검조(虎劍調)’라고 불리며, 그 호기로운 어조에서 막부말기 지사가의 계보가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본 연구는 『동서남북』의 단카가 제영(題詠)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통해 메이지 전기에 성행한 신제가(新題歌)와 연결점을 찾고자 했다. 덱캉이 화조풍월의 모방과 협소한 미의식을 벗어나서 단카가 아우르는 세계를 확장해가고자 했을 때 새로운 ‘제’가 요구된 것이며, 이 때 채택된 제가 바로 조선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웅대한 남성적인 시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칼, 호랑이와 같은 소재를 다용하고 청일전쟁, 을미사변과 같은 정변을 머리글(詞書)로 활용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즉 덱캉의 방법은 조선이라는 미지의 땅에서 황량한 대륙을 도모하는 우국지사의 모습을 조형해내는 것으로, 본 연구에서는 그것이 연출된 허구라는 점에 주목했다. 『동서남북』에 구현된 ‘대장부의 시’는 험난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영웅적 남성상을 연기한 자기극화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드라마의 무대가 조선인 것이다. 청일전쟁을 통해 중국을 상대로 용맹을 떨친 일본의 이미지가 당시의 신문미디어 등을 통해 부각되어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전장이었던 조선은 ‘대장부의 드라마’를 위한 가장 적절한 무대였던 것이다. 셋째, 허구에 의한 자기극화라는 덱캉 단카의 특성을 통해 이 시기 새로운 국시 창출을 둘러산 담론이 실체가 없는 공허한 것이라는 점을 살필 수 있었다. 일본이 국가적 과제로서 추구한 웅대하고 남성적인 국민시가란, 와카라는 장르의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배태된 것이 아니라 제국 일본의 성립을 위해 외부로부터 규정되고 요청된 것이었다. 스스로 문명국임을 증명할 비교항으로서 ‘미개한 조선’을 부각시키고 웅대한 일본문학을 조선에 이식한다는 담론 속에 존재한 ‘상상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공허함을 지우기 위한 노력이 덱캉이 연출한 드라마이며, 조선인에 의해 문명국으로 인식되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일본의 문학을 허구 속에서 만들어간 것이다. 요컨대 덱캉의 단카혁신에 있어서 조선은 새로운 제재를 발견하고 대장부의 드라마를 실현할 장소이자, 방법이었으며, 완성된 국민시가를 상상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확장과 동화라는 제국의 식민지배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투사하는 것으로, 강력한 내셔널리즘의 자장 속에 이루어진 단카혁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임을 지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