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에서는 19세기말 독일 자연주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독일지식인들에 의해 주창되었던 사회귀족주의의 발생배경과 그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술과 문학에서 혁신적인 실험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던 19세기말 독일작가와 지식인들의 정신적인 동요와 ...
이 연구에서는 19세기말 독일 자연주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독일지식인들에 의해 주창되었던 사회귀족주의의 발생배경과 그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술과 문학에서 혁신적인 실험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던 19세기말 독일작가와 지식인들의 정신적인 동요와 정신사적 지형도의 한 부분을 밝혀준다. 1860년대를 전후로 태어난 젊은 작가들은 독일제국의 탄생과 대도시의 매력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자본의 성장만을 염두에 둔 경제정책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분노하며 지금까지는 거의 터부시되어오던 새로운 테마들에 주목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의 참상, 알코올중독, 창녀, 가정의 파괴와 인간관계의 몰락, 사회적으로 억눌린 자들에 대한 관심과 동정은 1871년 성립된 독일제국에 대한 문학적 저항과 더불어 자연주의 문학운동의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스스로를 시민사회의 비판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던 젊은 작가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사회를 자신들의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만들어 가는 모순에 노출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시민적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시민사회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주관적 감정의 유지가 그들에게 가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시민적 삶과 반시민사회적 사고라는 독특한 관계가 보여진다. 자연주의를 사회주의 시대감정의 혹은 사회주의 예술의 등가로 보는 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왜냐하면 자연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자연주의에서 바라던 것들을 이행할 수 없었고 이행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연주의자들의 대다수는 결코 실제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들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접근이나 참여는 민주주의적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도 결코 정치적-경제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도덕적-미학적 관심에서였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새로운 예술적 소재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들의 관심은 그것들의 예술적인 극복에 있었다. 프리드리히 니체와 막스 슈티르너가 사회주의에 대해 실망한 작가들에게 새로운 우상이 된다. 니체와 슈티르너는 자연주의자들을 엄습한 정신적, 문화적 공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들에게 니체와 슈티르너의 강한 자아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이 새로이 의지할만한 발판을, 새로운 믿음을 가져다 준 것이다.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산쵸 판자라고 조롱받고 있는 슈티르너가 자연주의자들에게는 대중을 무시하고 개인을 강조하는 부분에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니체의 영향도 이미 80년대에 들어서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니체에 대한 열광은 대부분의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현상이었다. 자연주의자들이 그들이 초기에 열광했던 사회주의로부터 벗어나 - 어느 정도의 내적인 주저함 또는 부분적으로는 양심의 가책을 동반하면서 - 초인사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과정 속에서 하나의 이념적인 결합체가 만들어진다. 즉 이전에 목소리를 높여서 대변하던 사회주의와 이제 다시금 받아들여 선전하는 개인주의가 융합된 형태의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빌헬름시대 지식인들의 이념구조인 사회귀족주의이다. 자연주의자들이 사회주의로부터 개인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에 관한, 그리고 사민당의 일상정책에 대한 비판적이고 회의적 입장에 관한 많은 예들을 통해 자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양진영에는 결코 허물 수 없는 편견들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주의자들은 분명히 당의 인정과 동조를 얻기를 바랬으면서도 그럼에도 지식인으로서의 특별한 위치와 역할에 대해 스스로 인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열광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시민적이고 엘리트적 입장을 고수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당대의 사회주의자들에게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지식인들에게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예민함과 혁명에 대한 조급증이 관찰된다. 문학적인 견해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연주의자들은 정치적 태도에 있어서도 그 입장을 빠르게 바꾸고 있으며 그로부터 유발되는 불확실함과 불안감을 강한 어조로 자의식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로 덮고 있다. 이로써 그들은 스스로가 극복하려고 했던 시민적 인식의 태도를 계속 유지하며, 개인주의를 찬미함으로써 사회적인 소외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시인으로서 혹은 지식인으로서 불가피한 역할이라는 특정한 성격으로 부각시켜 양식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부초록(다른언어)
Sympathie für die sozial Entrechteten, für das Proletariat und seine Probleme, wurde neben dem literarischen Protest gegen die Gründerzeit das entscheidende Merkmal der naturalistischen Literaturbewegung. Ihre Autoren lebten in dem Gefühl, mit ihren l ...
Sympathie für die sozial Entrechteten, für das Proletariat und seine Probleme, wurde neben dem literarischen Protest gegen die Gründerzeit das entscheidende Merkmal der naturalistischen Literaturbewegung. Ihre Autoren lebten in dem Gefühl, mit ihren literarischen Beiträgen auch die politischen Entwicklungen beeinflussen und die sozialistische Politik unterstützen zu können. Nur selten jedoch ließen sich wirklich sachliche, kritische oder gar aggressive Töne vernehmen. Indem die Naturalisten zumeist schonungslose Schilderungen der gesellschaftlichen Hintergründe vermieden, offenbarten sie ihre Abhängigkeit vom Bürgerlichen Realismus. Da die sozialistische Haltung der Naturalisten keineswegs ideologisch gefestigt war, folgte der Schwärmerei oft nach kurzer Zeit ein Wandel der Anschauungen. Im Laufe der neunziger Jahre distanzierten sich fast alle Naturalisten vom Sozialismus. Auf beiden Seiten - bei Naturalisten und Sozialdemokraten - bestand eine Fülle von gegenseitigen Vorurteilen, die nicht abgebaut werden konnten. Anstatt sich auf die proletarische Seite zu stellen, verharrten die Naturalisten zwar in scheinbar antibürgerlicher Einstellung. Diese stellte jedoch schließlich nichts anderes dar als selbst auch nur eine Spielart bürgerlicher Verhaltensformen. Als Intellektuelle beanspruchten die Naturalisten eine Sonderrolle für sich, womit sie trotz ihrer äußerlichen Annäherung an den Sozialismus gesinnnungsmäßig in bürgerlichem Elitedenken verharrten und somit von den Parteisozialisten überaus mißtrauisch betrachtet wurden. Während die Naturalisten in ihrer Dichtung meist nur die Verfallserscheinungen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beschrieben, vermissten die Sozialisten das aufbauende Element in der Dichtung. Friedrich Nietzsche und Max Stirner avancieren schließlich zu den neuen Idolen der vom Sozialismus enttäuschten Literaten. Nietzsche hatte den jungen Literaten mit seiner Idee der Umwertung aller Werte zwar den Schritt vom gefühlsmäßig akzeptierten Sozialismus zum Individualismus erleichtert. Doch mußte aus der nicht ohne schlechtes Gewissen und durchaus gegen gewisse innere Widerstände eingegangenen Bindung an die Philosophie des Übermenschen beinahe zwangsläufig ein Ideenkonglomerat entstehen, das Elemente des zuvor lautstark vertretenen Sozialismus mit dem neuerlich akzeptierten und propagierten Individualismus verknüpfte. In dieser Verbindung fand die Intelligenz der wilhelminischen Ära die Grundlage für eine der eigenwilligsten und bis heute wenig untersuchten ideologischen Konstruktionen, auf deren Basis sie sich als sogenannte Sozialaristokratie neu konstituierte.
목차
Ⅰ. 들어가는 글 Ⅱ. 시민적 삶과 반시민사회적 태도 1. 시민적 삶과 시민사회에 대한 비판 2. 정치작가로서의 한계 Ⅱ. 마르크스에서 니체로 1. 사회주의 진영의 자연주의 비판 2. 고타의 문학논쟁 3. 마르크스에서 니체로 Ⅲ. 사회귀족주의의 탄생 참고문 ...
Ⅰ. 들어가는 글 Ⅱ. 시민적 삶과 반시민사회적 태도 1. 시민적 삶과 시민사회에 대한 비판 2. 정치작가로서의 한계 Ⅱ. 마르크스에서 니체로 1. 사회주의 진영의 자연주의 비판 2. 고타의 문학논쟁 3. 마르크스에서 니체로 Ⅲ. 사회귀족주의의 탄생 참고문헌 Zusammenfas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