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산업화는 실용적으로 투영된 낭만적인 자아의 끊임없는 영역확장 과정을 말해주는 알레고리와 같다. 영국이 전 세계에 걸쳐 이룩한 식민지가 영국의 산업화와 번영의 근간을 이루었고, 이 때의 식민지 건설 과정도 낭만적 자아의 발전이 국가의 영토 확장으로 변환 ...
영국의 산업화는 실용적으로 투영된 낭만적인 자아의 끊임없는 영역확장 과정을 말해주는 알레고리와 같다. 영국이 전 세계에 걸쳐 이룩한 식민지가 영국의 산업화와 번영의 근간을 이루었고, 이 때의 식민지 건설 과정도 낭만적 자아의 발전이 국가의 영토 확장으로 변환된 결과나 마찬가지이다. J. 힐리스 밀러(J. Hillis Miller)는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적 특성을 언급하면서 “[빅토리아인들에게는] 상상과 현실이 똑 같았다”라고 지적하는데, 이는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를 상실한 빅토리아인들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전통적인 낭만주의의 고요한 명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주변의 타자를 통해 이해하려했음을 의미하고, 이러한 현상은 자아발전의 무한한 가능성과 경제대국으로서의 대영제국의 현실을 연관지어 생각할 때 식민지 건설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영국의 산업화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산업화에 따른 자국의 사회문제를 대단히 비판적으로 바라봤다는 점이다. 산업폐기물과 무차별적인 토지개발로 도저히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는 처참한 빈민의 모습, 너무나 오염된 템즈강의 악취로 국회가 문을 닫아야 하고 콜레라가 창궐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과연 산업화가 자신들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표현하는 지식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도 산업화 과정에서 보이는 제국주의적인 요소를 부정적이기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데, 그들은 이러한 정당성을 서열화 된 문화적, 인종적, 성적인 차이에서 찾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 부분을 인간이 지닌 지배 속성을 파헤치는 사회생태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에 의하면 인간의 자연 지배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에서 보이는 영국 내부의 계급성(여기서도 ‘내적 자아’와 ‘내적 타자’가 갈린다), 영국인이 갖는 다른 인종에 대한 우월성 등은 모두 위와 같은 인간의 지배 속성에 기인한 것이다. 자국의 사회ㆍ환경 문제는 인식하면서도 타 인종이나 국가에 대한 지배는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불완전한 혹은 자아 속에 갇힌 생태주의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불완전한 생태주의적 특성을 보이기 위해 가장 빅토리안적이라 간주되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글과 작품을 살펴보는 것은 당연하다. 디킨스는 1851년 세계박람회에 출품한 영국과 중국을 비교하며 각각 ‘위대한 전시’와 ‘왜소한 전시’라고 부를 정도로 영국의 산업발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번영하는 대영제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은 그에게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대영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제3국(타자)의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그는 인도폭동 사태(The Indian Mutiny)의 소식을 접한 후 Household Words라는 잡지에 <어느 영국 포로들의 위험>이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서인도 제도의 한 섬에서 영국인들이 해적들에게 당한 고통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는 영국인과 원주민의 지배, 피지배 관계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영국사회내의 고착된 계급구조마저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불완전한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인간의 지배 속성이 그대로 발현된 제국주의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영국 포로들의 위험> 이외에도 그가 버뎃 쿠츠(Angela Burdett-Coutts)여사에게 보낸 서신들에서도, 디킨스가 영국과 제3세계국가의 지배ㆍ피지배의 관계가 당연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디킨스의 작품에는 우월한 영국인 혹은 영국 문화가 열등한 타인종이나 문화에 대해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지배담론이 베어있다. 또한, 우월한 영국의 문화 속에도 내적자아와 내적타자를 가르는 우월성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당연하다는 식의 사고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빅토리아 시대 지식인 계층의 사람들은 영국의 산업화와 경제적 번영에 따른 영국 내부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템즈강의 오염에 대한 반응인데, 디킨스가 <우리 모두의 친구>(Our Mutual Friend)에서 보여주듯이 영국인의 젖줄인 템즈강은 온갖 쓰레기가 모여 있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곳이다. 또한, <황폐한 집>(Bleak House)에서의 런던 전체를 짓누르는 안개는 런던 특유의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산업폐기물이나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 등이 뒤섞인 해로운 안개이며, 그것은 단순히 런던에 그치지 않고 점점 영국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
결과등록초록
Charles Dickens is very critical about the social phenomena of the ruling and ruled or destruction and preservation. But this attitude seems to be only limited to those of his own country. When he sees the imperialistic aspects in a British colony, he ...
Charles Dickens is very critical about the social phenomena of the ruling and ruled or destruction and preservation. But this attitude seems to be only limited to those of his own country. When he sees the imperialistic aspects in a British colony, he takes on a wholly differently view. He takes pride in the economic prosperity of England which is in fact based on British imperialism, so it is natural, to him, for a better race to rule the barbarians. I argue that this clearly reflects Dickens' incomplete view of the world. We can detect this characteristic indirectly through his treatment of Mr. Micawber in David Copperfield. But in a short Christmas story entitled "The Perils of Certain English Prisoners," his imperialistic view of the world stands out outrightly. In this story, the classes of English people as the rulers and the Indians as the ruled are treated as natural; even the Indians, as the main character tells us, is grateful for the rule of the British government. Even the social classes within the society of England are understandable and unchangeable. In this story, Dickens shows his view of the world restricted within the boundary of his 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