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일어난 '스파르타 혁명'의 와중에서 클레오메네스(Kleomenes) 3세는 마케도니아식의 팔랑크스(phalanx) 형태를 도입하고, 마케도니아식 긴창인 사릿사(sarissa)의 사용법을 훈련시켰다. 군사적인 면에서의 이 변화는 스파르타사 ...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일어난 '스파르타 혁명'의 와중에서 클레오메네스(Kleomenes) 3세는 마케도니아식의 팔랑크스(phalanx) 형태를 도입하고, 마케도니아식 긴창인 사릿사(sarissa)의 사용법을 훈련시켰다. 군사적인 면에서의 이 변화는 스파르타사에서 주목할만한 것으로 이미 다른 그리스 국가들은 이 변모를 약 1세기 전에 마친 상태였다. 또한 나비스(Nabis) 왕 때에는 스파르타의 피지배계층이었던 페리오이코이(Perioikoi) 일부를 군에 정식으로 편제하고, 스파르타시의 성벽을 축조 내지는 완성하였으며, 해군도 창설하였다. 이는 스파르타의 체제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인 혁신이었으며, 이로써 스파르타는 고전기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결과등록초록
기원전 5세기 말,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 전쟁에서의 승리로 군사적 영광과 국제적 위상이 정점에 달했던 스파르타는 바로 단 한 번의 군사적인 패배를 고비로 걷잡을 수 없이 몰락해갔다. 즉, 테바이(Thebai)의 에파메이논다스(Epameinondas)에 의해 레욱트라(Leuk ...
기원전 5세기 말,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 전쟁에서의 승리로 군사적 영광과 국제적 위상이 정점에 달했던 스파르타는 바로 단 한 번의 군사적인 패배를 고비로 걷잡을 수 없이 몰락해갔다. 즉, 테바이(Thebai)의 에파메이논다스(Epameinondas)에 의해 레욱트라(Leuktra)에서 패배당하고, 다음 해 그에 의해 영토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메세니아(Messenia)가 분리, 독립되어 군사적인 면만이 아니라 경제적, 심리적으로도 크게 위축되었다. 이 전투와 그 결과로 나타난 일련의 사건은 고대 전쟁사와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후 스파르타는 다시는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할 수 없었고, 이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헬레니즘 시대의 개혁왕들은 소위 ‘스파르타 혁명’을 감행했던 것이다. 이 ‘혁명’의 와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 중의 하나는 기원전 3세기 클레오메네스(Kleomenes) 3세의 군제와 장비의 개혁이다. 이제 비로소 고립되어 있어서 외부의 변화에 둔감했던 스파르타가 군사적인 면에서도 외부세계와 발을 맞추려는 시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이후 1세기가 지난 후에 비로소 마케도니아 식의 팔랑크스(phalanx) 형태를 도입하였고, 마케도니아식 긴 창인 사릿사(sarissa)의 사용법을 훈련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고 쓰던 방패도 끈이 달린 것으로 바꾸었다. 군사적인 면에서의 이같은 변화는 주목할 만한 것으로, 이미 다른 그리스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마케도니아식의 장비로 바꾼 상태였다. 또한 나비스(Nabis, 222-207 B.C.)에 이르면 그는 스파르타의 피지배계층에 대해서도 개혁적인 정책을 실시하여, 페리오이코이의 일부를 군대에 편입하고 적어도 그 중의 한 명은 상급지휘관으로 임명하였다. 그 결과 신시민이 기존의 시민단보다 오히려 그 수효가 더 많아졌다. 그밖에 그는 스파르타의 성벽을 축조내지는 완성하였으며, 海軍을 창설하였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이제까지의 스파르타의 체제 자체를 흔드는 변화였으며 이로써 스파르타는 고전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