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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일본그리스도교문학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DB구축사업 참여 관련분야 전문가가 추가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01-041-A00221
연구기간 2001-09-30~ 2002-09-29
연구책임자 하태후(경일대학교)
연구수행기관 미상
  • 주기(비고)
  • 해당사항없음
  • 신청시초록
  • 芥川龍之介는 日本近代文學 作家 中의 한 사람이고 그의 基督敎 文學作品만을 본다고 하더라도 芥川--堀辰雄--遠藤周作로 이어지는 카톨릭시즘과 芥川--太宰治--椎名麟三로 이어지는 프로테스탄티즘의 分岐點에 선 作家라는 点을 勘案할 때, 全體 日本近代文學 속에서 基督敎文學 乃至 基督敎思想의 흐름, 그 흐름 속에서 芥川의 位置, 그리고 芥川에게 影響을 준 前代의 作家들, 芥川에게서 影響을 받은 現代 作家들의 硏究가 主要 課題가 된다. 여기서 日本近代文學 속의 基督敎文學의 흐름을 整理하면 다음과 같다. 日本近代文學의 基督敎界를 리드한 것은 明治 初期에 結成되었던 프로테스탄트의 세 信仰者 集團 즉 橫浜밴드, 熊本밴드, 札幌밴드였는데 이 中에서 近代文學 形成期에 가장 影響力을 發揮한 것은 앞의 두 系列로, 基督敎 저널리즘을 形成하고 明治 20年代에 精神的 思想界를 主導했던 사람들이었다. 즉 뛰어난 英文學의 紹介者였던 植村는 '日本評論'을 出版하였고, 또 같은 橫浜系에서 나온 岩本善治는 '女學雜誌'를 主宰, 이 系列에서는 北村透谷, 島崎藤村, 戶川秋骨, 平田禿木 等 '文學界' 同人인 基督敎 靑年이 輩出되었다. 한편 熊本밴드에서 나온 德富蘇峰는 民友社를 세워 '國民之友' '國民新聞' 等을 發行, 여기에서는 宮崎湖處子, 德富蘆花, 國木田獨步 等이 輩出되었다. 明治 20年代에는 時代의 閉鎖感과 함께 知識靑年들이 그 삶의 方式의 方向 轉換을 强要當했던 時期였다. 將來에 對한 不安은 必然的으로 그들을 安定된 곳을 찾아 헤매게 했고 宗敎의 길로 引導 했다. 明治 20年 前後 基督敎가 急速히 敎勢를 넓힌 것도 이 같은 靑年 群의 輩出과 關係가 있다. 宗敎로 向하는 마음은 또 永遠한 것에로 이어짐에 依해 精神의 絶對的인 自由를 確保하고자 하는 浪漫的 精神과 通한다. 靑年들의 大部分이 當代를 代表하는 로맨티시즘의 무리였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거꾸로 그들 信仰의 根底가 얕다는 것도 推測할 수 있다. 藤村이나 獨步에서 典型的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는 釋迦나 셰익스피어, 西行, 芭蕉와 同列에 세우는, 말하자면 永遠한 것의 體現者에 지나지 않았고 唯一 絶對인 人格神의 信仰은 缺乏되어 있었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容易하게 棄敎로 向하는 理由가 되었다. 基督敎와 日本近代 文學者의 이 같은 關係는 그 後 文學史에 자주 나타나는 宗敎的인 時代에 있어서도 基本的으랜외㉶舊?않았다. 例를 들면 大正期가 되면 그 文化主義的 風潮 속에서 基督敎가 信仰에서는 멀어진 敎養으로서 求해지는 한편, 內村鑑三의 直接的인 指導나 '聖書之硏究'의 影響 下에 나온 有島武郞, 志賀直哉, 武者小路實篤, 長與善郞 等 '白樺'派의 그룹과 같이 理想主義的 휴머니즘 속에서 求해진 基督敎가 結局은 自己確立을 沮害하는 것으로 버려지기도 했다. 基督敎가 信仰의 問題로서 作家의 內部로부더 깊이 받아지게 되었던 것은 오히려 第2次 世界大戰을 契機로 椎名麟三나 遠藤周作 等 戰後作家의 登場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椎名麟三의 基督敎的 實存, 遠藤周作의 問題 즉 自己속의 日本的인 것과基督敎와의 葛藤, 日本文化와 西洋文化와의 問題, 基督敎의 日本에의 土着의 問題 等이 解明되어야 한다. 따라서 日本近代文學 初期를 硏究하여 近代 基督敎文學의 方向을 把握하고, 나아가 芥川龍之介의 基督敎思想을 보다 깊이 糾明하여 博士論文에 이은 硏究의 主要 테마로 하고, 더 나아가서는 現代의 椎名麟三와 遠藤周作에 接近하여 이들에게서 基督敎思想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追求하는 것이 硏究 中心 課題이다. 竝行하여 硏究하고자 하는 것은 所謂 切支丹文化이다. 1907년 北原白秋, 與謝野鐵幹, 木下 太郞, 吉井勇, 平野万里는 白秋의 故鄕 柳河에서 天草의 旅行에 나서 切支丹 風物에 接하고서 切支丹文學이라는 基督敎文學의 하나의 素材를 發掘했다. 本 硏究者는 上記 作家들의 素材가 되었던 切支丹文化를 附隧的으로 깊이 있게 硏究하고 싶다.
  • 결과등록초록
  • 芥川龍之介の芸術を論ずる時、その審美的、知的、技巧的側面が强調される場合が多い。しかし、彼の芸術の一方には倫理的、宗敎的、全人的側面もあることを見逃してはならない。特に彼とキリスト敎との關わりを論ずる場合は切支丹趣味、エキゾティシズム、好事癖が强調されすぎてきた傾向がある。しかし、芥川のキリスト敎認識の土台は、何よりも〈聖書〉そのものにあり、また〈人間存在〉そのものにあったことを再認識する必要がある。彼が何よりも尊んだものはドグマでもなく、また制度としての敎會や信徒の信仰行爲でもなかった。キリストという存在に「世界苦」そのものを?った受難の相、また人間存在そのものの實存的形相の根源ともいうべきものを彼は見出していた。
    「クリストは今日のわたしには行路の人」ではなく現代人が見放し、「倒すことをためらはない十字架に目を注ぎ出した」というその深い告白、これは『西方の人』冒頭の言葉だが、彼はさらに『續西方の人』の冒頭でも、「わたしは四福音書の中にまざまざとわたしに呼びかけてゐるクリストの姿を感じ」「わたしのクリストを描き加へるの」を「やめることは出來ない」と言う。また『西方の人』の終わりに、「クリスト敎は或は威びるであらう。少くとも絶えず變化してゐる。けれどもクリストの一生はいつも我我を動かすであらう」と言った彼は、『續西方の人』の最後でもまた、「彼の一生はいつも我我を動かすであらう」と記す。芥川とキリスト敎という問題が、制度としてのリキスト敎ではなく、我がクリストとの對面そのものにあったことは、もはや再言するまでもない。この故にこそ『續西方の人』は「我我はエマヲの旅びとたちのやうに我我の心を燃え上らせるクリストを求めずにはゐられないのであらう。」という一句をもって閉じられることになる。これはもはや芥川一人のみの問題ではなく、眞の新たな文學の誕生を後代に託すという芥川のメッセ-ジとも取ることができる。
    芥川の死をもって大正文學は終わり、またその死をもって昭和文學は始まると言われるが、まさにこの芥川の最後の一句は、兩時代の文學を架橋しようとしたものと言える。しかも新たな時代の文學という時、彼は「我我の心を燃え上らせるクリスト」なくして、それは可能かという問いをも投げかけているはずである。勿論これは宗敎的文學への待望ではない。我我の實存を最も深いところで捉え返す、その對者の眼としてそれが言われていることは明らかである。
    また彼は「いつもクリストの中に我我を虐んでやまないものを―近代のやつと表現した世界苦を感じずにはゐられないであらう。」とも語る。「近代のやつと表現した世界苦」という時、果たしてこの日本の文學は何を表してきたのか。それは「世界苦」ならぬ、世間苦、裟婆苦に過ぎなかっ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問いも含まれている。芥川のキリスト觀のその中に、この〈世界苦〉という近代普遍の課題を?うキリスト像があると知る時、彼が生み出そうとして果たし得なかったものは何であったかも見えてくる。
  • 목차
  • 1.일본그리스도교문학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보고서)
    2.일본그리스도교문학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학술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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