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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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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68운동기 <코뮌>의 일상과 성혁명, 그리고 몸의 정치학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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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번호 |
A00109 |
선정년도 |
2008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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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진행현황 |
종료 |
제출상태 |
재단승인 |
등록완료일 |
2010년 04월 29일 |
연차구분 |
결과보고 |
결과보고년도 |
2010년 |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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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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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혁명은 1960년대 중반이 이미 서독사회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1960년대 초까지 성에 대한 보수주의적 사고가 퇴조하고, 성의 상업화, 자유화 혹은 정치화라는 용어가 그것을 대신했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것은 무엇보다도 피임약의 등장, 누드사진의 전파, 포르노그 ...
성혁명은 1960년대 중반이 이미 서독사회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1960년대 초까지 성에 대한 보수주의적 사고가 퇴조하고, 성의 상업화, 자유화 혹은 정치화라는 용어가 그것을 대신했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것은 무엇보다도 피임약의 등장, 누드사진의 전파, 포르노그라피의 출연이었다. 이러한 성의 촉발은 사회 전반의 자유화 물결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신좌파, 반체제인사들, 그리고 학생운동가, 동성애 집단들이 이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그것을 지지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자라난 68운동가들은 신체와 성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저항’을 이미 어릴 적부터 시도했고, 그러한 저항에 도움을 준 것이 새로운 성에 관련된 담론과 움직임이었다. 프리섹스와 피임은 말할 것도 없고, 급속히 퍼지는 성에 관련된 지식과 성 전문가의 등장, 그리고 인기몰이를 하던 섹스 숍(예컨대, Beate Uhse) 등에서 이들은 ‘해방’의 구원자를 찾았다. 말하자면 이들은 1968년 정치적 해방 이전에 이들은 신체와 성의 해방을 경험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라이히는 성혁명의 ‘도발자’ 혹은 ‘예언자’로 손꼽힌다. 그에 따르면, 섹슈얼리티의 정치화는 주로 그것의 다양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인간의 정신적 건강은 무엇보다도 섹슈얼리티의 자유로운 분출, 곧 성적 욕망의 자유로운 분출에 달려 있다. 섹슈얼리티는 결코 억압하거나 회피하거나 혹은 ‘억압으로 승화시키거나’ 해서는 안 되며, ‘억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승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하며 질적으로 그리고 양적으로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논의는 1945년 이래로 서독 사회에서 지배적이었던 성담론, 곧 성이라는 인류 재생산의 기제라는 담론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해방의 에토스가 되었다. 요컨대 성에 대한 두려움이나 아니라 성의 충족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의 시발점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코뮌>의 성정치에서 더욱 중요한 논란거리로 부상했던 것은 바로 ‘어린이의 섹슈얼리티’(Kindliche Sexualität)였다. 코뮌운동의 주창자들은, 아도르노가 말한 바대로, 권위적 가부장제가 사회적 억압을 키운다는 점에 공감하고 그 싹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족제도를 해체해야 한다고 믿었다. 시민사회를 재생산하는 기구인 ‘전통적인’ 가족으로부터 분리되기 위해서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성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인간의 형성’을 위해서 68운동가들은 무엇보다도 자가유아원(Kinderladen) 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들은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교육에서 탈피하고 여성의 해방에 기여할 목적으로 이러한 운동을 벌였는데, 그 주된 초점이 바로 어린이의 성적 발달에 맞추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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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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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the 68 movement the revolution of sex already began. The leader of the movement were influenced by the change fo the discourses concerning sexuality. The commercialising and liberalising of sex replaced the conservative attitude to sexuality. ...
Before the 68 movement the revolution of sex already began. The leader of the movement were influenced by the change fo the discourses concerning sexuality. The commercialising and liberalising of sex replaced the conservative attitude to sexuality. Wilhelm Reich gave them the theoretical ideas. According to him, programs for social change should start with the liberation of sex, because sexual repressiveness lead to strong paternal authority and reactional political power. The body politics of the 68 movement reflected most in the education of children. The supporters of Kinderladen, the new form of the Kindergarten, believed that children should be grown up without the repression of sex. They experimented "the new sex-education", which, however, didn't long last.

연구결과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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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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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혁명은 1960년대 중반이 이미 서독사회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1960년대 초까지 성에 대한 보수주의적 사고가 퇴조하고, 성의 상업화, 자유화 혹은 정치화라는 용어가 그것을 대신했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것은 무엇보다도 피임약의 등장, 누드사진의 전파, 포르노그 ...
성혁명은 1960년대 중반이 이미 서독사회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1960년대 초까지 성에 대한 보수주의적 사고가 퇴조하고, 성의 상업화, 자유화 혹은 정치화라는 용어가 그것을 대신했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것은 무엇보다도 피임약의 등장, 누드사진의 전파, 포르노그라피의 출연이었다. 이러한 성의 촉발은 사회 전반의 자유화 물결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신좌파, 반체제인사들, 그리고 학생운동가, 동성애 집단들이 이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그것을 지지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자라난 68운동가들은 신체와 성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저항’을 이미 어릴 적부터 시도했고, 그러한 저항에 도움을 준 것이 새로운 성에 관련된 담론과 움직임이었다. 프리섹스와 피임은 말할 것도 없고, 급속히 퍼지는 성에 관련된 지식과 성 전문가의 등장, 그리고 인기몰이를 하던 섹스 숍(예컨대, Beate Uhse) 등에서 이들은 ‘해방’의 구원자를 찾았다. 말하자면 이들은 1968년 정치적 해방 이전에 이들은 신체와 성의 해방을 경험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라이히는 성혁명의 ‘도발자’ 혹은 ‘예언자’로 손꼽힌다. 그에 따르면, 섹슈얼리티의 정치화는 주로 그것의 다양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인간의 정신적 건강은 무엇보다도 섹슈얼리티의 자유로운 분출, 곧 성적 욕망의 자유로운 분출에 달려 있다. 섹슈얼리티는 결코 억압하거나 회피하거나 혹은 ‘억압으로 승화시키거나’ 해서는 안 되며, ‘억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승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하며 질적으로 그리고 양적으로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논의는 1945년 이래로 서독 사회에서 지배적이었던 성담론, 곧 성이라는 인류 재생산의 기제라는 담론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해방의 에토스가 되었다. 요컨대 성에 대한 두려움이나 아니라 성의 충족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의 시발점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코뮌>의 성정치에서 더욱 중요한 논란거리로 부상했던 것은 바로 ‘어린이의 섹슈얼리티’(Kindliche Sexualität)였다. 코뮌운동의 주창자들은, 아도르노가 말한 바대로, 권위적 가부장제가 사회적 억압을 키운다는 점에 공감하고 그 싹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족제도를 해체해야 한다고 믿었다. 시민사회를 재생산하는 기구인 ‘전통적인’ 가족으로부터 분리되기 위해서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성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인간의 형성’을 위해서 68운동가들은 무엇보다도 자가유아원(Kinderladen) 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들은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교육에서 탈피하고 여성의 해방에 기여할 목적으로 이러한 운동을 벌였는데, 그 주된 초점이 바로 어린이의 성적 발달에 맞추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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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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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학술잡지 등에 이 연구 성과를 게재함으로써 68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이에 대한 학문적 토대를 심화시키고자 한다. 68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전개된 사건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와 조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물론 기타 학술잡지가 아닌 ...
우선, 학술잡지 등에 이 연구 성과를 게재함으로써 68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이에 대한 학문적 토대를 심화시키고자 한다. 68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전개된 사건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와 조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물론 기타 학술잡지가 아닌 일반 교양지에도 이 성과를 기반으로 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학술적으로 이 논문은 <몸의 정치학>을 다루고 있다. 최근 신체와 감성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연구를 기반으로 몸에 관련된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함으로써 이에 대한 학문적 연구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학술대회에서 발표와 토론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이것을 활용할 것이다.
셋째, 수업 시간에 이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반영할 것이다. 현재 서양현대사에 다루고 있는 시대는 20세기 말까지이다. 그러므로 특히 대학원 등에서 수업할 때, 본 연구 결과는 강의의 일환으로 다룰 수 있다.
넷째, 68운동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계속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후 68운동에 대한 단행본을 낼 수 있는 토대로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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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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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 성해방, 몸의 정치학, 빌헬름 라이히, 코뮌1, 피임, 자가유아원, 섹슈얼리티, 권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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