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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일본의 ‘쇼와유신(昭和維新)’과 니치렌슈(日蓮宗)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1930년대 일본의 ‘쇼와유신(昭和維新)’과 니치렌슈(日蓮宗) | 2014 년 | 노병호(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4S1A5B5A07040196
선정년도 201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6년 04월 27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의 수행과정에서 새로이 접하게 되었거나 인식한 사항 및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근대 일본의 니치렌슈는 국가주의와의 협력을 통한 생존방법을 모색했다.
    둘째, 국가주의적인 니치렌슈는 <국주회> 노선이 주도했다. 따라서 <비국주회>의 노선이 어떠했는지를 규명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셋째, 니치렌슈가 시련에 직면한 인간에게 위안의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
    넷째, 1930년대 우익, 좌익, 영관급장교와 위관급장교 등 군부의 테러와 쿠데타의 사상적 준거점 중의 하나로 니치렌슈를 들 수 있다면, 그때의 니치렌슈는 이슬람교가 수행하는 기능을 일부분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니치렌슈는 1930년대 일본을 동요시킨 주역들에게 (1)시대인식의 배경으로, (2)행동의 에너지로서, (3)죽음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마음의 안식처로서, (4)천황제의 내부에서 천황제를 돌파할 가능성으로서 기능했다.
  • 영문
  • In this research I have been contact with and able to recognize the items as follows. And my temporary conclusion is as follows.
    First, Nichirensyu in Modern Japan had tried to keep the life in cooperation with Nationalism.
    Second, Nationalistic Nichirensyu was leaded by Kokuchukai(国柱会). Therefore it is meaningful that Non-Kokuchukais which were the other side have selected any ways.
    Third, though Kokuchukai had committed to Nationalism, Nichirensyu itself had maintained potential power in comfort and healing to weak people.
    Fourth, if the rights, the lefts, the field-grade officers, and the company-grade officers in the 1930s had insisted on Nichirensyu as reliable thought for doing terror and coup d‘ Etat, we can say that Nichirensyu had shared the fuction which Islam(a part) is doing in contemorary World
    In the end, we can say that Nchirensyu had performed (1)as a background for recognizing the times, (2)as energy for action, (3)as mental comfort for overcoming fear of death, (4)as probability for sliping through the system in the inside of Tennosei system, to main actors who had shaked Japan in the 1930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쇼와유신 당시의 니치렌슈를 포함하여 근대일본의 니치렌슈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네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가 국가주의적인 니치렌신앙, 두 번째가 니치렌에게서 국가와 속세를 초월한 성스러운 세계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마음의 강력한 의지처를 발견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니치렌계의 신종교운동이다.
    국가주의적 니치렌신앙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국주회(国柱会)를 연 다나카 지가쿠(田中智学), 현본법화종(顕本法華宗)의 승려로서 천정회(天晴会)와 통일각(統一閣)을 연 혼다 닛쇼(本多日生)를 들 수 있다.
    이 계통에 속하는 인물로는 혈맹단사건과 5・15사건의 배후인 이노우에 닛쇼(井上日召), 2・26사건의 배후 혹은 입안자인 기타 잇키(北一輝), 우익 혁명가와는 다르지만 그와 유사한 인물로서 만주사변의 장본인이며, 세계최종전쟁을 주장한 이시하라 간지(石原莞爾)를 들 수 있다.
    니치렌으로부터 성스러운 세계와 마음의 의지처를 발견한 인물로는 다카야마 초규(高山樗牛)를 들 수 있다. 그는 30세에 결핵에 걸린 후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보편적인 個의 세계를 찾았다. 즉 俗의 세계가 아닌 성스러운 종교의 세계를 찾았다. 그 때에 접한 것이 다나카 지가쿠의 『종문의 유신(宗門の維新)』이었다. 이후 니치렌슈 신자가 되었다. 이 책은 국가주의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었지만, 다카야마 초규는 국가초월적인 방향에서 이를 이해했다.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또한 법화경에서 무한한 우주의 실상, 유구한 영원의 생명을 발견하여 니치렌 혹은 법화경 신자가 되었다. 그 또한 다나카 지가쿠의 국주회에 가입했지만, 내성적인 방향으로 변모해 간다. 즉 무궁의 우주, 유구한 생명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어 죽음을 초월한 우주 실상 혹은 우주 생명의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조르게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에 처해진 오자키 호쓰미(尾崎秀実) 또한 옥중에서 『法華経講義』를 읽고 무한한 우주의 실상을 보았고, 유구한 우주의 생명을 느끼면서 죽음을 각오했다고 한다. 한편 세노오 요시로(妹尾義郎)는 대일본니치렌주의청년단(大日本日蓮主義青年団)을 조직하는 등 혁신적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한 니치렌주의자다.
    세 번째 유형인 니치렌계의 신종교운동 조직으로는 막말의 불립강(仏立講), 연문교(蓮門教), 영우회(霊友会) 및 영우회로부터 파생한 여러 교파, 그리고 창가학회(創価学会)를 들 수가 있다.
    네 번째로 니치렌슈와 이슬람교를 동시에 응시하는 인물이 있다. 예를들면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는 「대표적 일본인(代表的日本人)」에서 일본의 국민적 성격과 관련된 5명의 주요한 인물중 한명으로 니치렌(日蓮)을 거론했다. 우치무라는 니치렌을 “획기적인 인간”이라고 평가했는데, 그 이유로는 (1)하나의 経과 하나의 法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정도로 용감했고,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적 박해를 일본에서 최초로 받았다는 점, (2)니치렌의 독창과 독립으로 불교를 일본의 종교로 만들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우치무라는 니치렌을 강렬함과 열광,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에 대한 성실성, 진실된 연민과 유화의 풍부함이라는 점에서, 마호메트가 코란을 신뢰한 이상으로 니치렌은 경전을 신뢰한 점에서 위대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대의 세계에서 이슬람교가 그 신자들에게(물론 다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강력한 행동의 에너지 및 목표를 제공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우치무라가 이슬람교와 니치렌을 연결시킨 점은, 비록 우치무라가 의도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이슬람교의 강한 행동성과 1930년대의 일본의 니치렌슈를 병렬적으로 고려하게 한다.
    이처럼 근대 일본의 니치렌슈는 그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일원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다채로운 측면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의 수행과정에서 새로이 접하게 되었거나 인식한 사항은 다음과 같이 5가지 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근대 일본의 니치렌슈는 근대 일본 불교가 천황제 이데올로기, 국가신도 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러했던 것처럼 국가주의와의 협력을 통한 생존방법을 모색했다.
    (2). (1)에도 불구하고 니치렌슈의 종교적인 성격, 즉 시련에 직면한 인간에 대한 위안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은 아니었다.
    (3). 니치렌슈는 전전, 전후의 수많은 신흥종교의 모태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창가학회를 들 수 있다.
    (4). 1930년대의 군부의 테러와 쿠데타의 사상적 준거점 중의 하나로 니치렌슈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 니치렌슈는 이슬람교적인 성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교 내의 일부 분파가 생명을 내걸고, 자폭과 테러를 자행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니치렌슈는 강력한 사상적 무기였다.
    (5). 근대 일보의 니치렌슈를 연구하기 이해서는 <국주회 노선의 니치렌슈>와 <국주회와 무관한 니치렌슈> 이 두 계보로 나눌 수 있다.

    1. 위처럼 수행된 연구는 일본의 국체 이데올로기의 형성에 끼친 국주회의 영향에 대한 시사를 줄 것이다.
    2. 1930년대 일본의 쇼와유신인 2・26사건에는 황도파의 이소베 아사이치와 같은 천황에 강한 적대심을 갖게 된 인물이 존재했다. 이러한 적대감이 결국 어떻게 군국주의로 수렴되어 가는지 그 과정에 대한 분석은 무척 흥미롭다.
    3. 불교사상을 통한 전전 일본의 군국주의의 분석은 정치학에서의 불교의 위상을 재고하도록 자극할 것이다. 즉 일본의 국체사상을 천황 및 신도에 한정하는 편향성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 색인어
  • 하마구치 오사치(濱口雄幸), 우가키 가즈시케(宇垣一成), 오오카와 슈메이(大川周明), 이노우에 닛쇼(井上日召),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顕), 이노우에 준노스케(井上準之助), 단 다쿠마(団琢磨), 혈맹단(血盟団) 사건,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 5・15사건, 청년장교, 2・26사건, 이노우에 닛쇼(井上日召), 혼다 닛쇼(本田日生), 기타 잇키(北一輝), 니시다 미쓰기(西田税), 이소베 아사이치(磯部浅一), 이시하라 간지(石原莞爾), 니치렌日蓮), 국주회(国柱会), 다나카 치가쿠(田中智学), 국가주의적 니치렌슈, 종교로서의 니치렌슈, 신종교와 니치렌슈, 이슬람교적인 니치렌슈, 교착과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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