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유신 당시의 니치렌슈를 포함하여 근대일본의 니치렌슈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네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가 국가주의적인 니치렌신앙, 두 번째가 니치렌에게서 국가와 속세를 초월한 성스러운 세계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마음의 강력한 의지처를 ...
쇼와유신 당시의 니치렌슈를 포함하여 근대일본의 니치렌슈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네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가 국가주의적인 니치렌신앙, 두 번째가 니치렌에게서 국가와 속세를 초월한 성스러운 세계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마음의 강력한 의지처를 발견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니치렌계의 신종교운동이다.
국가주의적 니치렌신앙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국주회(国柱会)를 연 다나카 지가쿠(田中智学), 현본법화종(顕本法華宗)의 승려로서 천정회(天晴会)와 통일각(統一閣)을 연 혼다 닛쇼(本多日生)를 들 수 있다.
이 계통에 속하는 인물로는 혈맹단사건과 5・15사건의 배후인 이노우에 닛쇼(井上日召), 2・26사건의 배후 혹은 입안자인 기타 잇키(北一輝), 우익 혁명가와는 다르지만 그와 유사한 인물로서 만주사변의 장본인이며, 세계최종전쟁을 주장한 이시하라 간지(石原莞爾)를 들 수 있다.
니치렌으로부터 성스러운 세계와 마음의 의지처를 발견한 인물로는 다카야마 초규(高山樗牛)를 들 수 있다. 그는 30세에 결핵에 걸린 후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보편적인 個의 세계를 찾았다. 즉 俗의 세계가 아닌 성스러운 종교의 세계를 찾았다. 그 때에 접한 것이 다나카 지가쿠의 『종문의 유신(宗門の維新)』이었다. 이후 니치렌슈 신자가 되었다. 이 책은 국가주의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었지만, 다카야마 초규는 국가초월적인 방향에서 이를 이해했다.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또한 법화경에서 무한한 우주의 실상, 유구한 영원의 생명을 발견하여 니치렌 혹은 법화경 신자가 되었다. 그 또한 다나카 지가쿠의 국주회에 가입했지만, 내성적인 방향으로 변모해 간다. 즉 무궁의 우주, 유구한 생명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어 죽음을 초월한 우주 실상 혹은 우주 생명의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조르게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에 처해진 오자키 호쓰미(尾崎秀実) 또한 옥중에서 『法華経講義』를 읽고 무한한 우주의 실상을 보았고, 유구한 우주의 생명을 느끼면서 죽음을 각오했다고 한다. 한편 세노오 요시로(妹尾義郎)는 대일본니치렌주의청년단(大日本日蓮主義青年団)을 조직하는 등 혁신적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한 니치렌주의자다.
세 번째 유형인 니치렌계의 신종교운동 조직으로는 막말의 불립강(仏立講), 연문교(蓮門教), 영우회(霊友会) 및 영우회로부터 파생한 여러 교파, 그리고 창가학회(創価学会)를 들 수가 있다.
네 번째로 니치렌슈와 이슬람교를 동시에 응시하는 인물이 있다. 예를들면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는 「대표적 일본인(代表的日本人)」에서 일본의 국민적 성격과 관련된 5명의 주요한 인물중 한명으로 니치렌(日蓮)을 거론했다. 우치무라는 니치렌을 “획기적인 인간”이라고 평가했는데, 그 이유로는 (1)하나의 経과 하나의 法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정도로 용감했고,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적 박해를 일본에서 최초로 받았다는 점, (2)니치렌의 독창과 독립으로 불교를 일본의 종교로 만들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우치무라는 니치렌을 강렬함과 열광,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에 대한 성실성, 진실된 연민과 유화의 풍부함이라는 점에서, 마호메트가 코란을 신뢰한 이상으로 니치렌은 경전을 신뢰한 점에서 위대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대의 세계에서 이슬람교가 그 신자들에게(물론 다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강력한 행동의 에너지 및 목표를 제공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우치무라가 이슬람교와 니치렌을 연결시킨 점은, 비록 우치무라가 의도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이슬람교의 강한 행동성과 1930년대의 일본의 니치렌슈를 병렬적으로 고려하게 한다.
이처럼 근대 일본의 니치렌슈는 그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일원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다채로운 측면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