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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 언론의 한국 ‘형상화’와 제국주의적 여론 형성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 언론의 한국 ‘형상화’와 제국주의적 여론 형성 | 201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소영(고려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5S1A5B5A07041375
선정년도 201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02월 24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 언론매체의 한국(조선, 대한제국)에 대한 보도 기사 내용을 분석하여 영국 언론이 한국을 어떻게 ‘형상화’했는지를 살펴보았다. 동시기 제국주의국가들이 군사력, 경제력만이 아니라 문화적 요소, 그 가운데 언론매체를 적극으로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한국에 대한 “문화제국주의 영향”이라는 시각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 가운데 영국 언론의 ‘한국’ 관련 기사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영국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국가였으며, 영국 언론 역시 세계 여론을 주도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 관한 영국 언론의 보도 기사는 영국 대중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많은 신문, 잡지들이 발간되었고, 그 가운데 한국에 관해 보도했던 언론 매체를 선별하여, 시기별, 주제별로 기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영국 언론이 19세기 말부터 한국에 대해 어떠한 ‘이미지’를 형성해 갔는지, 또 그러한 ‘이미지’가 영국 대중들의 여론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갔으며, 영국 정부가 대한정책을 수립하는데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과 영국은 19세기 말부터 근대적 조약을 체결하고 외교관계를 맺었다. 이후 영국 언론이 만들어 간 한국의 ‘이미지’는 ‘개항’ 이전의 ‘미지’와 ‘은둔’의 나라에서 이후 ‘미개’, ‘낙후’, ‘무능력’, ‘분쟁의 대상’ 등의 부정적인 것이 주를 이루었다. 영국 언론은 ‘문명’을 내세우며 침탈을 정당화했던 전형적인 제국주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국에 대해 보도하며 여론을 조성해 갔으며, 이를 통해 영국 정부의 대한정책(對韓政策)을 지원하거나 또는 압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영국 언론의 제국주의적 특성은 1905년과 1910년,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즉 영국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현상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결국 새로운 제국주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던 일본에 의해 ‘보호’, 식민지가 되는 것을 당연한 귀결이라는 논조로 보도했다.
  • 영문
  • his study examines how British press media represented Korea by analyzing the press articles from the end of 19th to the early 20th century. And this study has been conducte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influence of cultural imperialism" on Korea, focusing on the imperialist powers at the time used actively not only military and economic power but also cultural element, especially mass media. Britain at the time was the most powerful imperialist in the aspect of economic and military and british media got a powerful influence leading global public opinion as well. Therefore, the articles of British press could affect the various countries' public as well as British.
    Many newspapers and magazines were published in Britain in 19th century. Some of them dealing on Korea were selected and their articles were analyzed by period and subjects in this study. As a result, it was found out that what image of Korea British press made, which direction the image of Korea led british public opinion to and what influenced British government's policy of Korea.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Korea and Britain started by conclusion of treaty in the late 19th century. Since then, Korean images made by British media had changed from 'the unknown' and 'hermit nation' before the opening of port to the 'barbarism', 'backwardness', 'impotentness' and 'object of dispute', which were all negative. They formed public opinion by reporting on Korea based on typical imperialism which justified act of aggression on the pretext of 'civilization'. With this formation of public opinion they supported or put pressure on government's policy on Korea.
    The imperialist characteristic of British press exposed clearly in the process of Japanese protectorate over Korea in 1905 and annexation of it in 1910. They reported that it was very reasonable that Korea became a protectorate and colony by Japan which were emerging as new imperialist power in the end, even though they were keeping on the change of situation of Korea in the aspect of British interest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1876년 ‘개항’과 1883년 조영조약 체결을 계기로 선교사 외에도 영국으로부터 외교관 파견, 학교교사, 기자, 상인 등이 한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이들을 통해 한국에 대한 많은 정보가 본국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영국 언론 역시 ‘개항’ 이전에 비해 한국에 관한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를 확보하게 되고 조선과 영국이 조약을 체결, 수교하게 되면서 한국에 관해 빈번하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한국이 근대국가 수립을 위해 여러 가지 개혁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사회변혁을 겪게 된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농민전쟁, 갑오개혁, 을미사변, 대한제국 수립, 러일전쟁, 일본에 의한 ‘보호국화’, 식민지화 등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국내의 정치상황에서 비롯된 것일 뿐 아니라 한국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과의 관계 역시 영향을 미쳤다. 영국 언론은 이러한 한국의 정치상황과 국제관계를 상세히 보도했다.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영국언론의 보도 기사는 팩트에 근거하여 한국의 상황을 단순히 전달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을 규정하고 여론을 조성하려 했다. 본 연구는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기사 내용을 분석했다. 또 정치적 사건 외에 한국에 대한 보도, 즉 한국의 역사, 풍습, 언어, 종교 등에 관한 기사를 통해 영국 대중들에게 한국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특정한 ‘이미지’를 형성해 갔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보도와 여론 조성,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실제 제국주의국가들의 한국정책과 어떻게 연동했는지를 본 연구에서 살펴보았다. 영국 언론의 한국에 대한 기사는 일본, 미국 언론과 취재원(取材源)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내용면에서 크게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 특파원을 두지 않은 대부분의 영국 언론은 일본 언론의 기사를 재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 언론은 다양한 취재원을 통해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 소식 등을 가장 상세히 보도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The Times의 경우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일본의 니치니치신문[日日新聞],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 등의 기사를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의 보도를 인용하는 경우라도 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를 선별하고 자신들의 시각에서 사건을 분석하여 보도했다. 하지만 독자적인 취재원이 아닌 일본 언론을 인용하면서 영국 언론의 한국에 대한 인식 및 사건에 대한 논조 역시 일본 언론과 유사해져 갔다. 즉 청과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일본의 대한정책을 긍정하는 인식을 일본 언론과 공유했다.
    특히 러일전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1910년 일본에 의한 강제병합까지 영국 언론의 보도 내용과 한국의 식민지화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러일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전쟁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러시아를 “공공의 적”으로 여기고 있던 영국 언론은 일본에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또 강화조약이 체결되며 전쟁이 마무리되고 그 결과로 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전쟁의 당연한 귀결”이라는 제국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일본의 ‘보호국’이 된 이후 한국에 대한 영국 언론의 보도 내용, 그리고 1910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고자 했을 때 언론의 보도 내용과 입장은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일본의 대한정책에 우호적이었는지 또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며 새로운 여론을 조성하려 했는지 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영국 언론은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식민지화에 대해 역사적 귀결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다만 한국이 일본에 의해 완전한 식민지가 될 경우 영국의 경제적, 외교적 이익에 어떠한 해가 없을지 경계하며 이러한 문제를 영국 정부와 대중에 환기시키고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첫째, 제국주의 국가의 언론 활동을 분석하여 문화제국주의의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20세기 초 한국의 근대국민국가 수립이 좌절된 하나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 근대사는 국민국가를 수립하려는 노력과 그 좌절로 요약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사를 갖게 된 원인, 배경은 내부에서도 찾을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주된 요인은 외적 요인, 즉 제국주의 팽창과 침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제국주의의 팽창 방식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전면에 내세워 추진되었지만 이러한 물리적인 요소 외에 문화적 요소 역시 유용한 팽창 도구로 이용되었다. 제국주의 팽창에 이용되었던 문화적 요소 가운데 언론매체의 역할에 주목하고 그것이 한국이 근대 시기 국민국가 수립에 실패했던 한 원인이었다는 것을 고찰함으로써 근대 제국주의 특성, 문화제국주의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본 연구 결과는 연구논문으로 완성하여 학술잡지에 기고, 게재하고자 한다.

    둘째, 일국내는 물론 국제관계에서, 그리고 근대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언론 매체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를 더욱 확장 · 발전시키기 위해 학제간 연구를 기획하고, 그에 기여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서구제국주의 언론 가운데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당시 세계 여론을 주도했던 영국 언론매체의 기사를 분석하여 한국의 식민지화에 끼친 영향력, 역할을 고찰함으로써 언론의 힘, 영향력이 일국내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제국주의 시대뿐만 아니라 그 이후 시기부터 현재까지도 그러한 영향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전히 강력한 것임을 시사해 줄 것이다. 일국사, 한국사를 넘어서 국제관계, 그리고 근대를 넘어 그 이후 시기까지 살피기 위해서는 한국사 연구자뿐만 아니라 한국과 비슷하게 식민지배의 경험을 가진 국가들, 또 제국주의 경험을 가진 국가들의 연구자들과 역사, 언론, 정치외교 등의 학제간 공동연구가 필요하며, 본 연구는 이러한 공동연구를 위한 기초연구로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본 연구를 바탕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국 언론매체의 한국에 대한 보도 기사와 당시에 형성된 한국의 ‘이미지’가 지난 100여년의 시간 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또는 연속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후속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현재 영국 및 기타 국가들에서 통용되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국가 ‘이미지’를 형성해 갈 것인지를 모색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 색인어
  • 영국 언론, 한국이미지, 보호국, 식민지. 문화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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