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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사면 실시의 특징과 행형 체계의 수립 방향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고려 전기 사면 실시의 특징과 행형 체계의 수립 방향 | 201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윤훈표(연세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5S1A5B5A07042157
선정년도 201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02월 15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논문에서는 먼저 高麗前期에 단행되었던 여러 사면(赦免) 조치들의 내용과 그 성격 등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그것에 근거해서 당시에 수립되었던 刑罰 體系의 구조와 특징을 파악하였다.
    後三國(Later Three Kingdoms)을 통일하는 사업을 마무리한 뒤에, 계속해서 高麗에서는 통치 체제에 대한 개편 작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중에는 行刑 體系에 대한 정비 작업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특별히 이 시기를 맞이하여 국가적인 통합과 민심의 수습을 도모한다는 구실로 자주 罪囚들을 赦免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로 인해 가끔씩 刑罰 體系에 혼선과 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 문제를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고려 정부로서는 赦免 실시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赦免은 이미 太祖(King T’aejo) 때부터 단행되었다. 그를 계승하였던 역대 군주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赦免令을 자주 반포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점들이 발생하였다. 사면 조치의 공평성과 신뢰도가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불평과 불만을 초래하였다. 그것은 모양새를 잘 갖추어 실시했던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행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사면의 실시로 인해 나타났던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형벌 체계와 연계시켜 정비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죄수들을 처벌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이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儒敎政治體制를 전면적으로 수용하였던 成宗(King Seongjong) 때에 이르러 사면 실시의 제반 원칙들, 즉 용어를 필두로 단행 사유, 해당 범위, 復權이나 사회적 恩典 등의 부가 등에 대한 정비 작업이 착수되었다. 하지만 사면 조치의 성격상 모든 것이 철저하게 완비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때 그 때의 정치 상황에 따라 사면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면 실시는 형벌 체계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면 조치의 합당성과 공평성은 반드시 철저하게 유지되어야 했다. 그것이 흔들리면 혼선과 혼란이 또 다시 재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당성과 공평성에 대한 논쟁은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사면 조치는 더욱 더 빈번해지면서 내용도 풍성해졌다.
    이렇게 사면 조치가 갈수록 잦아지게 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中央集權體制의 강화, 사회경제적으로는 농업의 진흥, 그리고 가족제도의 변화 때문이었다.
  • 영문
  • First of all, in this thesis, the content and characteristic of various pardon in the early Goryeo dynasty was looked into. Also, based on such content, the structure and characteristics of sentence system has been studied.
    After finalizing the task of unifying the Later Three Kingdoms, The Goryeo administration continued to revamp the authorizing system overall. Among the tasks was reorganizing the sentence system. However, under the name of national integration and gathering citizen’s voice in such period, pardoning criminals was implemented. Due to such order, confusion and issues risen from the sentence system. In order to solve this issue, The Goryeo administration needed to set a firm principle for implementing pardon.
    Pardon has been implemented since King T’aejo. Other monarchs who worshipped him declared such pardon several times after. However, during such incidents, several issues occurred. As the fairness and liability on the pardon plummeted lots of complaints and rage occurred. It was due to the random implementation rather than implementing in the right order and form. In order to solve the issues that occurred due to the pardon, they needed a revamp linked to the sentence system. It is because punishing criminals and pardoning is directly linked together.
    At last, by the era of King Seongjong who accepted the Confucian politics system, the basic principles of pardon such as the terminology, reason of pardon, scope, reinstatement or social special favor etc has been set up. However, due to the nature of pardon implementation, it was hard to set it up completely. The pardon differed by the political situation as it went along. In such point, pardon was different from sentence system.
    Nevertheless, the reason and fairness of pardon had to be kept thoroughly. If that has any issues, confusion and rage could occur. However, the debate on reason and fairness went on forever as time went by. During such progress, pardons were implemented more frequently and the content became full.
    The reason of such frequent pardon lies in the strengthening of centralization system in terms of politics and in terms of social economic terms, the progress of agriculture and the changes in the family dynamic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고려 전기에 실시되었던 사면의 내용과 특징, 그리고 역사적 의미 등을 해명하고자 한다. 사면은 단순히 행의 집행을 면제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요소들이 얽혀 구조화되어 실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 죄수들이 아닌 특정 범죄를 저지른 자나 중요한 사안의 관련자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특별 사면의 경우에 있어서도 유사하다. 시행 배경이나 단행 이유, 효력의 범위, 복권 등은 대체적으로 포함된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공사 부채의 탕감과 같은 경제적인 요소나 사회 정의 실현에 이바지했던 인물들에 대한 포상 따위가 더해지는 은전의 베풂이 부가될 수 있다.
    부가적인 요소와 더불어 사면 실시의 본령에 해당되는 것들의 결합에 따른 실제 양상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의 해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반드시 시대의 변화를 기저로 해서 전체적인 구조를 고찰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당대 행형 체계의 성격 파악으로 귀결된다. 집행과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해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 전기에서는 후삼국 통일 이후 대대적인 통치 체제의 정비 작업이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사면의 실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체제 정비와 궤를 같이 하면서 점차 복잡해지고 구조화되었으며 그것은 곧 당시 행형 체계의 수립과 긴밀히 연계되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두 단계로 구분해서 전개 과정을 실증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고려 왕조가 개창된 뒤, 특히 후삼국 통일의 과업이 완수되자 통치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던 것을 해명하였다. 우선 성종 때 이르러 제도 문물에 대한 정비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던 것을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행해진 사면 조치의 내용과 목적, 그리고 그것이 행형 체계의 정비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는 일련의 매듭지음에 앞서 그렇게 진전되었던 과정을 단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구체적으로 태조는 즉위하자 곧 바로 전국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여기에 3년 동안의 조(租)와 역(役)의 면제를 부가했다. 한편 후삼국 통일을 달성한 이후에도 그와 비슷한 조치를 단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뒤를 계승했던 임금들도 역시 비슷한 유형의 사면을 실시했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아직까지 제도 문물이 완비되지 못했기 때문에, 특히 행형 체계의 정비가 미진했던 탓으로 말미암아 전체적으로 들쑥날쑥하여 고루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정비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치 체제가 확고하게 갖춰지고 행형 체계가 본래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전까지의 어수선한 상황이 고스란히 사면 실시에도 반영되었다. 우선 그런 양상을 상세하게 분석해서 체계화되는 과정과 그 간의 특징 등을 밝혀 보았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른바 전기의 통치 체제가 오롯이 자리 잡았다고 평가되는 현종대부터 정치적 격변기인 무신정권기에 이르기까지의 실시 상황을 다루었다. 이를 통해 고려적인 특징이 충만했던 시기의 사면 조치의 내용과 그 의미 등을 정리하였다.
    현종대부터 사면 실시의 내용이 전에 비해 다방면에 걸쳐 풍성해진다. 다른 시기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용어상으로 여러 유형이 출현하였다. 과연 무엇이 사면 실시의 내용을 그토록 풍성하게 만들었지, 그로 인해 기능과 역할의 측면에서는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더불어 특기할 점은 당률에서 체계화되었던 공죄와 사죄가 사면의 실시에도 수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명종대를 끝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이나 그 역시 의미와 관련하여 정리를 위한 세밀한 천착이 필요하다. 그런데 고종 8년(1221)에 사면을 반포하면서 보기 드물게 의장의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무신정권기에 들어와서 사면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양태가 부분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마구 실시되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이 시기에 고려의 전형적인 사면이 실시되었을 것으로 가정해서 그것이 행형 체계의 운영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였다.
    결론적으로 고려 전기에 실시되었던 사면 조치의 여러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두 단계로 나누어서 해명하되, 이를 통해 당시의 행형 체계의 수립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고려전기에 실시되었던 사면 조치에 관한 검토는 단순히 역사학 분야에 국한된 연구가 아니다. 그 자체가 이미 다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왕조 성립 초창기에 실시했을 때에는 과거 통일 신라의 것을 계승하는 한편 부분적으로는 중국 당송 제도의 영향도 받았다. 나아가 통치 체제의 정비에 따른 행형 체계의 운영에 있어서도 상당한 작용을 가하였다. 그러므로 비단 역사학뿐만 아니라 법사학, 정치학 분야에서도 참조할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중원 왕조를 포함한 동아시아 법질서의 비교에서도 나름 중요한 요소로서 검토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본 연구가 인문 사회 분야의 비교 또는 학제 간 탐구에 있어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면 실시에 관한 연구는 그 위상과 비중에 비해 고려 전시기에 걸쳐 상당히 저조한 편이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침체된 상태에 머물고 있다. 새로운 시각과 방법에 의해 그 활로를 찾는 일이 현재로서는 시급하다. 먼저 종래 고립화해서 개별적으로 접근하던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리고 보기 드물게 장기 지속된 왕조를 대상으로 통시대적으로 고찰하는 것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태적인 분석에 머무는 것에서 벗어나 전체를 구조화시켜 이해하되 시기별 기능 변모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사회 변동과 관련된 사면 실시의 특징을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본 연구가 지닌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
    사면권의 행사와 관련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이슈가 되었던 것은 정당성을 확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공을 초월해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통되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늘 문제로 거론되었다. 비록 고려전기라는 전근대시대에서 행해진 것이라도 오늘날 충분히 이슈화해서 논의해 볼만한 것이 있다. 이로써 지나간, 그리고박제된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과제로 거듭날 수 있다.
  • 색인어
  • 사면, 감형, 복권, 은전, 조세 감면, 법치주의, 법치국가, 형법, 예기, 월령(月令), 왕통(王通), 고려사(高麗史), 형법지(刑法志),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공죄(公罪), 사죄(私罪), 사(赦), 대사(大赦), 유(宥), 율령(律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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