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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플랜의 경제적 성과와 의의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마샬플랜의 경제적 성과와 의의 | 2002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양동휴(서울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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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번호 B00061
선정년도 2002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4년 05월 27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4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마샬플랜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대부분 2차대전 후 미국의 대유럽 외교정책, 특히 냉전과 관련된 경제외교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즉 이들은 마샬플랜의 기원 및 배경, 또 NATO, 기타 군사협조체제와의 관계 등을 중시하거나, 미국 정부 내에서 마샬플랜이 관료적, 조직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복잡한 원조계획과 집행과정 자체를 분석한 연구는 드물다. 그리고 마샬원조의 공표된 경제적 목표와 실제성과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축적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마샬플랜을 외교정책의 도구로 인식하는 것이 적절하다 할지라도 마샬원조는 내용상 미국으로부터 서유럽 여러나라로 상당액의 자원이 이전된 '경제적' 실체이며, 일정기간에 특정한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지침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1948년에 의회를 통과하여 마샬플랜의 근거가 된 경제협력법(Economic Cooperation Act)은 궁극목적을 "건전한 경제조건, 안정적 국제경제 관계, 외부원조에 독립적인 유럽경제의 성취"에 두고 다음과 같은 네가지 구체적 목표들을 설정하였다 : 1) 강력한 생산증대, 2) 해외무역의 팽창, 3) 국내 금융안정의 창출과 유지, 4) 경제협력의 개발. ERP기간 중(1948. 4 - 1951. 12) 이러한 목표는 달성되었는가. 1)과 2)의 경우 당초 예상과 목표를 초과하는 성과를 보였다. 1947년에서 1951년까지 서유럽의 통합 GNP는 30퍼센트 이상 증가하였다. 산업생산은 1938년보다 30퍼센트 높은 수준으로 목표치를 정하였으나 실제로는 41퍼센트를 상회하였다. 해외무역의 경우 1948년에 유럽경제협력기구(Organization for European Economic Cooperation, OEEC, 후에 OECD로 확대개편)의 예상은 유럽내 무역량이 1952/53년에 1938년 수준으로 회복하리라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1950년에 이미 1938년보다 24퍼센트 높은 수준으로 팽창하였다. 1948년부터 1951년말까지 유럽내 무역은 70퍼센트, 서유럽의 여타세계와의 수출수입은 각각 66퍼센트, 20퍼센트 증가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농업생산은 목표치에 미달하여 1951년말에도 서유럽은 식품소비의 30퍼센트 정도를 수입에 의존하였다. 또한 서유럽 전체로서 심각한 국제수지적자와 외환부족 상태가 계속되었다. 국내금융안정도 완전히 성공적으로 달성하지는 못하였으며 인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렸다. 유럽의 경제협력도 당초의 의욕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3)과 4)의 목표도 장기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샬플랜에 의해 마련했다는 설명이 전통적이다. 이와같이 마샬원조의 경제적 성과를 평가하고 그 현실적 의의를 살피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특히 논문의 후반에서는 서독의 경험과 유럽통합의 움직임을 더욱 상세히 고찰하고자 한다.
  • 영문
  • The Marshall Plan's economic achievement was interpreted differently by generations of scholars. The 'traditionalist' accounts[e.g. Price 1955] ascribe considerable importance to the US transfer. (1) Because savings rate in every European country was lower during the Marshall Plan years than the subsequent decade, the US aid critically supplemented domestic sources of investible funds. (2) New capital equipments which embodied the latest technology had a dramatic effect on European productivity. Technical assistance clause of the Marshall Plan accelerated the transfer of US technology to western Europe and further economic growth. (3) Foreign exchange constraint was more important. Shortage of coal brought shortage of fertilizer, which in turn restricted food production. Shortage of fuel and of timber for mineshaft hindered steel production, and the textile production was held back by lack of cotton. Raw material imports such as cotton and coal needed gold or dollars and here the Marshall aid has relieved bottlenecks by providing dollar credits. (4) The Marshall Plan is also said to have facilitated infrastructure repair, like railroads, canals, harbors, roads, electricity lines. Its contribution includes provision of food and shelter for laborers, thus improving effort and productivity.
    Unlike 'traditionalists', the 'revisionist' scholars downplayed the importance of the Marshall Plan.[Abelshauser 1975, 1991; Milward 1984] According to revisionists, the recovery commenced before the first Marshall aid arrived. European savings were adequate to support sustained growth, and in any case Marshall aid represented no more than 10 percent of European investment over its lifespan. By 1948, essential transportation and communication links were already repaired.
    They did not adequately deal with the technical assistance component of the plan. For the arguments of the foreign exchange constraint and resulting bottleneck of raw material import, there seems to warrant a further investigation. Except for the case of synthetic substitutes, the amount of output forgone that the hypothetical absence of the imported input would have resulted may be great. For example Italian Marshall aid coal import of 72 million dollar could make repercussion into iron and steel, petroleum, and transport in the amount of 3.2 percent of annual GNP.[Delong and Eichengreen 1993] This line of reasoning obtained higher magnitude of external constraint results for France and Norway.[Milward 1984]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마샬플랜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대부분 2차대전 후 미국의 대유럽 외교정책, 특히 냉전과 관련된 경제외교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즉 이들은 마샬플랜의 기원 및 배경, 또 NATO, 기타 군사협조체제와의 관계 등을 중시하거나, 미국 정부 내에서 마샬플랜이 관료적, 조직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복잡한 원조계획과 집행과정 자체를 분석한 연구는 드물다. 그리고 마샬원조의 공표된 경제적 목표와 실제성과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축적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마샬플랜을 외교정책의 도구로 인식하는 것이 적절하다 할지라도 마샬원조는 내용상 미국으로부터 서유럽 여러나라로 상당액의 자원이 이전된 '경제적' 실체이며, 일정기간에 특정한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지침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1948년에 의회를 통과하여 마샬플랜의 근거가 된 경제협력법(Economic Cooperation Act)은 궁극목적을 "건전한 경제조건, 안정적 국제경제 관계, 외부원조에 독립적인 유럽경제의 성취"에 두고 다음과 같은 네가지 구체적 목표들을 설정하였다 : 1) 강력한 생산증대, 2) 해외무역의 팽창, 3) 국내 금융안정의 창출과 유지, 4) 경제협력의 개발. ERP기간 중(1948. 4 - 1951. 12) 이러한 목표는 달성되었는가. 1)과 2)의 경우 당초 예상과 목표를 초과하는 성과를 보였다. 1947년에서 1951년까지 서유럽의 통합 GNP는 30퍼센트 이상 증가하였다. 산업생산은 1938년보다 30퍼센트 높은 수준으로 목표치를 정하였으나 실제로는 41퍼센트를 상회하였다. 해외무역의 경우 1948년에 유럽경제협력기구(Organization for European Economic Cooperation, OEEC, 후에 OECD로 확대개편)의 예상은 유럽내 무역량이 1952/53년에 1938년 수준으로 회복하리라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1950년에 이미 1938년보다 24퍼센트 높은 수준으로 팽창하였다. 1948년부터 1951년말까지 유럽내 무역은 70퍼센트, 서유럽의 여타세계와의 수출수입은 각각 66퍼센트, 20퍼센트 증가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농업생산은 목표치에 미달하여 1951년말에도 서유럽은 식품소비의 30퍼센트 정도를 수입에 의존하였다. 또한 서유럽 전체로서 심각한 국제수지적자와 외환부족 상태가 계속되었다. 국내금융안정도 완전히 성공적으로 달성하지는 못하였으며 인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렸다. 유럽의 경제협력도 당초의 의욕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3)과 4)의 목표도 장기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샬플랜에 의해 마련했다는 설명이 전통적이다. 이와같이 마샬원조의 경제적 성과를 평가하고 그 현실적 의의를 살피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특히 논문의 후반에서는 서독의 경험과 유럽통합의 움직임을 더욱 상세히 고찰하고자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마샬플랜에 관해 출간된 연구는 엄청나게 많다. 아마도 출간된 저서, 논문이 1천 편에 달할 것이다. 이들은 마샬플랜을 주로 미국 대외정책의 일부로 파악하고 미국정부의 입장에서 서술한 부류와 원조수혜국의 입장에서 단일국가에 대한 성과분석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로 대별할 수 있다. 최근에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을 뿐 아니라 연구자들이 시각을 넓힘으로써 다양한 마샬플랜 참여국들에 관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Burk 2001] 필자는 독일의 사례를 중시함과 동시에 위와 같은 최근 연구결과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마샬플랜의 성격을 재조명하고 특히 그 경제적 성과를 평가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것은 1950-1973년의 '자본주의 황금기'의 원인과 성격을 파악하는 연구에 간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Crafts and Toniolo 1996, Marglin and Schor 1990, 양동휴 2002] 더 중요하게는 유럽통합의 기원과 성격을 밝히는 연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마샬원조의 공여조건은 OEEC와 EPU 설립의 계기를 마련했다.[Griffiths 1997, Eichengreen 1993]
    마샬플랜의 경제적 성과를 밝힘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구소련 및 동구의 거시적 경제상황이나 미시적 제도 미비에 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파이를 키워 분배갈등을 완화한다는 측면에서는 동구 및 구소련의 경우 사태가 훨씬 심각하므로 약간의 원조로는 접근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식 경영방법과 생산성의 철학을 이전하는 면은 자금제공의 조건 설정이나 기술지원 프로그램 등의 경험을 원용할 수 있다. 요즈음 미국 및 서유럽으로부터 동구 및 구소련은 물론 남미, 동남아시아 등으로 상당 액수의 자본이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민간에 의한 일대일 계약의 대부형태로 이루어져 사전에 조정된 마샬원조보다 비효율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IMF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긴축과 충격요법을 권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람직한 지는 의문이다. 집단적(다국적) 원조 패키지도 논의되어야 한다. 재정안정, 민영화, 규제완화, 개방, 행정효율과 같은 개혁조치의 조건을 붙이지도 않고 각국이 따로따로 민간여신을 특정인 또는 집단에 제공하는 것은 수혜자들의 부패 및 자금남용 여지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Reichlin 1995, Esposito 1995] 북한을 돕는 경우에도 교통, 통신, 정보흐름의 측면, 군사적 대치의 정도, 소득 및 부의 수준 차이 등 여러 가지로 여건이 달랐던 통독의 예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마샬플랜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것이 없지 않으리라. 아프가니스탄이나 후세인을 실각시킬 경우의 이라크 같은 곳도 비근한 상황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협력 및 통합노력의 유산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북아메리카 자유무역 협정(NAFTA)과 1995년초 맥시코의 달러 위기해결 등은 좋은 예이며 NAFTA를 남미로 확장시키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협력 방안의 수립에도 몇 가지 시사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샬플랜에 관한 국내연구는 '미국외교사'의 일부로 다루고 있는 정도이다.[김정배 2001] 경제적 성과 및 그 현실적 의미에 관한 저술은 경제학, 정치학, 역사학의 교육현장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조금이나마 보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색인어
  • 마샬플랜, ERP, ECA, OEEC, EPU, GARI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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