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7세기 중국과 조선의 소빙기 기후변동의 구체적인 양상을 비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지하듯이 명청교체가 이루어진 17세기는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근, 역병, 폭동, 반란, 전쟁, 정권교체 등의 격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17세기에 발 ...
본 연구는 17세기 중국과 조선의 소빙기 기후변동의 구체적인 양상을 비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지하듯이 명청교체가 이루어진 17세기는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근, 역병, 폭동, 반란, 전쟁, 정권교체 등의 격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17세기에 발생한 전 세계적인 인구의 감소, 경기의 침체, 혁명과 반란 현상은 "17세기 위기론(Seventeenth Century Crisis)"이라는 말로 일찍부터 역사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기간에 중국은 명말의 극심한 기근과 농민반란으로 명청교체가 이루어졌다. 조선은 임진왜란(1592)을 시작으로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7)이 발생했으며, 17세기 후반에는 현종과 숙종대의 경신대기근(1670~1671)과 을병대기근(1695~1699)으로 대표되는 극심한 기근으로 인구가 격감했다. 일본도 17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전국시대가 종식되고 에도막부가 들어섰지만, 칸에이 대기근(1641~1643)을 시작으로 엔보이대기근(1674~1677)과 겐로쿠대기근(1699~1704)이 발생하는 등 17세기의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에 기근, 역병, 전쟁과 같은 대재난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많은 역사학자들은 "소빙기(Little Ice Age)"라는 전 지구적인 기후현상에 주목했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17세기의 세계적인 위기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오직 기후변화뿐이라고 했다. 17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전 지구적으로 한랭하고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되어 각종 재해와 기근이 빈발했고, 그 결과 세계 곳곳에 사회적 격변이 초래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17세기 위기론"을 설명하는 유일한 단서인 소빙기는 역사에서 기후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무엇보다도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역사의 "동시성"을 제기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소빙기 기후변동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Glogal History"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본 연구는 "Glogal History"의 한 장으로서 소빙기 기후변동이 17세기 동아시아 역사전개에 미친 영향과 그 세계사적인 의미를 추적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중구과 조선의 소빙기 기후변동의 구체적인 양상과 영향을 비교할 것이다. 먼저 중국과 조선의 기후기록을 통해 소빙기 기후변동의 주기성에 대해서 검토하고, 세계적 기후변동과의 관련성에 대해서 살펴본다. 다음으로 소빙기 기후변동으로 인한 재해와 기근의 동시성을 비교하고, 끝으로 이러한 재해와 기근에 대해서 중국과 조선은 어떻게 대응했으며, 그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지 조망할 것이다.
최근 전 지구적인 기후온난화(Global Warming)가 인류의 생존에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면서 기후변동이 역사전개에 미친 영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의 몇몇 역사학자들이 소빙기의 기후변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실증적인 연구는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공간적으로 인접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조선의 소빙기를 비교한 연구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한국사의 경우 소빙기를 직접적으로 분석한 연구자가 있지만, 소빙기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는 서로 일치되지 않고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야를 넓혀 "그렇다면 조선의 소빙기는 중국의 그것과는 같은가 혹은 다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소빙기가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고 할 때, 이웃한 중국과 조선의 소빙기 기후변동은 약간의 지역적인 차이는 있을지라도, 전체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동시성"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본 연구는 소빙기의 동시성이라는 관점에서 17세기 동아시아 격변을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