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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담론과 아이덴티티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 #39;재일& #39; 담론과 아이덴티티 | 2009 년 | 이한정(동국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588
선정년도 2009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1년 04월 28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1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2000년에 접어들어 재일한국인들의 놀라온 변화 중의 하나는 그들 스스로 ‘재일’을 전유하는 자세로 새로운 아이덴티티 창출에 나섰다는 점이다. 2004년에 간행되어 일본사회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강상중교수가 쓴 <재일>은 표지 전면을 저자 자신의 사진으로 장식했다. 이제까지 재일한국인은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 혹은 ‘재일한국.조선인’이란 호칭으로 통용되었다. ‘재일’은 기존의 호칭에서 ‘조선인’‘한국인’‘한국.조선인’이라는 국적을 표시하는 말을 소거한 호칭이다. '재일'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이다. 1970년에서 90년 사이에 발간된 재일한국인 잡지 <계간 삼천리>와 <계간 청구>를 살펴본 결과 '재일'이란 말의 사용은 일본사회와의 관련, 나아가 조국과의 연대에 관련을 맺고 있었다. 특히 일본사회 전체가 아닌 재일한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차원에서 '재일'이 중시되었다. 일본사회가 국제화와 더불어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한 1980, 90년대에 재일한국인.재일조선인들은 스스로 ‘한국인’과 ‘조선인’이란 국적의 표시를 떼고 ‘재일’로 자신들을 명명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김석범이나 김시종 등과 같은 재일한국인 문학자가 중심에 있었으며, 재일한국인 문학이 1980년대 이양지와 유미리 등의 출현으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 것도 ‘재일’이 유통되기 시작할 무렵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2000년에 들어서서 ‘재일’은 재일한국인들 사이에서 특별한 말이 아닌 일상적인 용어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강상중교수의 <재일>이라는 자서전적 에세이에 ‘재일’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재일한국인 1세가 ‘조국’과 관련을 맺는 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조국’을 기억하며 ‘재일’의 근거를 확고히 하려는 ‘자기주장’과도 같은 측면에서 강상중은 ‘재일’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그동안 ‘재일’에 사용했던 「 」의 강조 부호를 사용하지 않고 보통의 말로 책 제목에 붙였다. 강상중은 ‘재일’을 통해 일본의 ‘국가주의’에 맞서는 복합적인 아이덴티티를 추구했다. 그러나 일본사회 일각에서 ‘혐한류’ 분위기와 맞물리는 선상에서 ‘재일’을 호도하는 시선도 등장했다. ‘재일’을 ‘특권’이라 호도하는 일부 일본인의 시선은 일본의 정치와 국제 정세의 변동과 교차하는 가운데 생성되었다. 재일한국인이 ‘재일’을 선언하는 것과는 다른 흐름으로 재일한국인의 바깥에서는 ‘재일’을 ‘일시적 체제’로 바라보아, 심지어 ‘조국’에 돌아가라는 말도 내뱉는 일본인도 있었다. 이와 같이 ‘재일’을 둘러싼 문제는 재일한국인의 아이덴티티와 더불어 일본사회의 움직임과 관련을 맺으며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재일’이라는 호칭을 재일한국인 스스로 전유했으며 이 말이 이제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그로 인해 현재 재일한국인은 일본에서 ‘재일’이라는 말로도 통용된다. 재일한국인들이 ‘재일한국인’이나 ‘재일조선인’이 아닌 ‘재일’을 강조하므로써 일본사회의 차별과 편견의 부조리를 되묻는 위치에서 스스로의 아이덴티티 구성한다는 점에서도 ‘재일’은 결코 일본사회의 마이너리티나 디아스포라로만 수렴될 수 없는 측면을 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영문
  • Stepping into the new millenium an important and surprising change has happened in the community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That is their new attitude to own their being 'Zainichi' and create a new identity based on the reality. The cover design of the book <Zainichi(A Resident in Japan): Kang Sang Joong>, which was written by the professor Sang Joong Kang and became a sensational issue in Japan, was covered with a full photo of the writer.
    The Koreans who live in Japan have been called in a few different names such as 'North Korean residents in Japan', ''South Korean residents in Japan' or 'North/South Korean residents in Japan'. 'Residents in Japan' is a term, which detached the words 'North Korean', 'South Korean' or 'North/South Korean' which indicate nationalities of the people from the names described above. The term 'Zainichi' appeared late 1970s. Looking into <Samchully> and <Cheonggu> which were quarterly magazines for Korean residents in Japan, 'Zainichi' was used to name themselves who lived in Japan and identify their connectedness to their motherland. Especially, the term was used to call the people who settled down in 'a specific area' where most Korean people lived together rather than the whole Korean people in Japan.
    In 1980s and 1990s as the Japanese society was becoming a global and multi-cultural society, the South Korean residents in Japan and the North Korean residents in Japan began to call themselves 'Zainichi' without 'South Korean' or 'North Korean'. 1980s was the era in which the wrters, Yangji Lee and Miri Yu, the third generation Korean residents in Japan became known to the Japanese literary society. It was around this period that the perception on Korean residents in Japan started changing. With the history and background 'Zainichi' was widely used among the Korean residents in Japan. The highlight mark for the words 'Zainichi' started disappearing since the year 2000. Through 'Zainichi' Sang Joong Kang was trying to establish a comprehensive identity which would enable them to stand against the nationalism in Japan. There existed two contradictory views on 'Zainichi' in Japanese society at that time.
    One was 'hating' it and the other one was 'sympathizing' it. As the Japanese society went through the political and international changes of the time, another view which criticized 'Zainichi' as a privilege appeared. Outside the current of the Korean residents community some Japanese people saw the 'Zainichi' movement as a 'emerging system' and vocalized their dislike mentioning the people to go back to their country. As we have examined above, the issues of 'Zainichi' can be described as a present progressive form in the making until today interacting with the political and social movement in Japan as well as with the identity of 'Zainichi'. However, the most important thing of all is that the term, 'Zainichi' emerged from the community itself and is widely used in the community.
    The Korean residents in Japan questioned the prejudices and discriminations in Japan by highlighting 'Zainichi' without 'North Korean' or 'South Korean' and are endeavoring to re-establish their identity through the struggles and endeavors. In this respect 'Zainichi' can not be undermined as a movement of a minority group or diaspora in Japan, but is to be considered as a term closely related to the claim of the Korean people in Japan to find their identi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1980년대 이후부터 재일한국인이 사용한 ‘재일’이란 말이 2000년대 접어들어 재일한국인들 스스로가 아이덴티티를 재구성하는 담론으로 전유한 상황을 고찰했다. 이와 더불어 ‘재일’이 ‘특권’이라고 주장하며 ‘재일’ 담론에 맞서는 일본사회 일각의 ‘재일’에 관한 표상도 살폈다. ‘재일’은 김석범에 의해 1979년 5월에 발행된 <계간 삼천리>에 「‘재일’이란 무엇인가」의 제목에 처음 등장했다. 여기에서 ‘재일’은 재일한국인의 '주체성'과 '창조성'을 되묻는 말이었다. 그리고 ‘조국’과의 연결고리도 ‘재일’에 근거를 둠으로써 가능하다는 논지였다. 이후 재일한국인들 스스로 ‘재일’이라고 불렀을 때,이 말을 단지 ‘한국인’이나 ‘조선인’이라는 ‘국적’을 상대화하는 의식에서만 사용하지 않았다. 재일한국인 1세대가 자기들이 태어난 ‘조국’에 망향심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강상중과 같은 2세대들은 ‘재일’을 통해 ‘조국’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조선인’이나 ‘한국인’이라는 ‘국민국가’의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국가주의로만 귀속되는 아이덴티티를 벗어나, 보다 복합적인 자기 위치를 설정하려 했다. 그러므로 1980년대에 ‘재일’이라는 호칭은 일본사회, 특히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과 어떻게 유대관계를 갖느냐의 문제와도 관련을 맺고 있었다. 국가체제로 지탱되는 일본사회 전체에 흡수되지 않고 ‘재일을 산다’는 의식에서, 삶의 기반인 ‘지역’에 뿌리 내리는 관점에서 ‘재일’이 논해졌다. 1990년에 들어서는 일본의 국제화와 더불어 논해지는 ‘정주화’에 경계하면서 국제화에 휩쓸리지 않는 ‘재일’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하기 위해 ‘재일조선인’이나 ‘재일한국인’이 아닌 ‘재일’이라는 호칭을 재일한국인들 스스로 사용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2000년에 들어서서 ‘재일’은 재일한국인들 사이에서 특별한 말이 아닌 일상적인 용어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강상중의 <재일>이라는 자서전적 에세이에 ‘재일’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재일한국인 1세가 ‘조국’과 관련을 맺는 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조국’을 기억하며 ‘재일’의 근거를 확고히 하려는 ‘자기주장’과도 같은 측면에서 강상중은 ‘재일’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그동안 ‘재일’에 사용했던 「 」의 강조 부호를 사용하지 않고 일상의 말과 같이 책 제목에 붙였다. 강상중은 ‘재일’을 통해 일본의 ‘국가주의’에 맞서는 복합적인 아이덴티티를 추구했다. 그러나 일본사회 일각에서 ‘혐한류’ 분위기와 맞물리는 선상에서 ‘재일’을 호도하는 시선도 등장했다. ‘재일’을 ‘특권’이라 호도하는 일부 일본인의 시선은 일본의 정치와 국제 정세의 변동과 교차하는 가운데 생성되었다. 재일한국인이 ‘재일’을 선언하는 것과는 다른 흐름으로 재일한국인의 바깥에서는 ‘재일’을 ‘일시적 체제’로 바라보아, 심지어 국가시스템에 수렴시켜 ‘조국’에 돌아가라는 말도 내뱉는 일본인도 있었다. 이와 같이 ‘재일’을 둘러싼 문제는 재일한국인의 아이덴티티와 더불어 일본사회의 움직임과 관련을 맺으며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재일’이라는 호칭을 재일한국인 스스로 전유했으며 이 말이 이제 어느정도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그로 인해 현재 재일한국인은 일본에서 ‘재일’이라는 말로도 통용된다. 재일한국인들이 ‘재일한국인’이나 ‘재일조선인’이 아닌 ‘재일’을 강조하므로써 일본사회의 차별과 편견의 부조리를 되묻는 위치에서 스스로의 아이덴티티 재구성한다는 점에서도 ‘재일’은 결코 일본사회의 마이너리티나 디아스포라로만 수렴될 수 없는 측면을 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2000년대부터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에 의해 일상적으로 전용되기 시작한 '재일'이라는 호칭을 둘러싼 담론과 재일한국인의 아이덴티티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했다. 그 결과 재일한국인이 스스로를 '재일'로 부르는 것은 '재일'이 뜻하는 일본사회, 특히 거주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단지 일본 정주자의 일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조국'과의 관련에서 파악하기 위한 전략도 있다. 그러나 '조국'은 '한국'이나 '조선'이라는 국가 개념에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재일'은 재일한국인이나 재일조선인에서 '한국인'과 '조선인'의 이미지를 상대화한 호칭이 되는 것이다. '한국인'의 상대화는 '국민국가'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일본을 상대화하는 수순이기도 하다. 따라서 '재일'은 국민국가 단위로 파악할 수 없는, 그러한 국민국가로만 수렴될 수 없는 재일한국인이 지닌 아이덴티티의 복합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재일한국인에 의해 전유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국가에만 매이지 않고 그러한 국가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재일'이 재일한국인에 의해 전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사회 일각에서는 혐한류 분위기와 맞물려 재일한국인의 바깥에서는 오히려 '재일'을 다시 국가체제에 포섭시켜 '재일'에 반감을 표하는 일면도 보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학문적으로는 장르 간 '재일' 연구의 기초자료로 제공될 수 있다.'재일'이라는 호칭이 일본에서 재일한국인 스스로 언제부터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용되었는지 그 담론의 기초자료로 제공된다. 이로써 '재일' 담론은 본고의 분석 대상이 된 문학작품과 논설, 에세이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사진 등 다른 장르에서도 나타나므로, 연구 결과는 이러한 장르 간의 비교 대조의 토대를 마련해 줄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국외로 발신하는 연구 모델을 제시한다. 일본인들은 객관적으로 '재일'담론을 바라보지 못한다. 국내에서 제3의 연구지점을 확보하여 일본 학계에도 파급을 미칠 수 있는 효과가 기대된다. 연구 결과는 일본 내의 '재일' 담론 연구의 기초자료로도 활용될 것이다.
    국민국가 시스템에 의거한 기존의 이분법적 인식은 다문화 시대에는 통용되지 않는다. '재일'과 '일본사회'의 이항대립의 구도가 아니라, '일본사회'의 부조리를 혁신시킬 수 있는 인문학적 사유로서'재일' 담론은 활용된다. 최근 연구되는 디아스포라의 개념을 도입한 '재일' 연구를 발전적으로 수용하여 초국가적 개념이라는 최신 담론을 재일동포 연구에 적용하여 새로운 학문이론을 생산한다.
    사회적으로도 통일시대에 대비해 남북 간의 문화적 혼란을 재일한국인에 의한'재일' 담론을 통해 사례 연구로서 발전시켜 활용한다. 한일관계의 현안 문제에서 한국인의 논리에 집착하거나, 혹은 일본인의 논리에 매몰될 수 있는 것이 재일한국인 문제이다. '재일' 담론은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국민국가 시스템에만 안주시키지 않으려는 발상에서 등장했다. 따라서 '재일'의 아이덴티티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양자 간의 시점이 아닌 제3의 시점을 도출할 수 있다.
    '재일' 담론은 역사적으로 성립되어 지속되어 온 것이 아니라, 일본사회의 변동 속에서 각기 달리 독해되었다. 현재 일본의 '재일' 담론은 국제화의 동향 속에서 역동하는 아이덴티티의 유동을 시사한다. '재일' 담론은 재일한국인만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사회에서도 생산되며 이는 아이덴티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관점을 제시하여, 자민족중심주의에 치우치지 않는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재일' 담론을 들여다봄으로써 일본사회가 자기가 아닌 타자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도 파악할 수 있고, 이를 시정할 수 있는 사회적 데이터 베이스로도 구축할 수 있다.
  • 색인어
  • '재일', <계간 삼천리>, <계간 청구>, 김석범, 강상중, 복합적 아이덴티티, 국민국가, 일본사회, 지역, 국제화, 혐한류,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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