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는, 기본적으로는 과거가 이해하고 있던 실재 세계를 보여주는 ‘재현된 시각예술의 한 형태’(이미지)로서, 본질적으로는 특정한 사실과 이야기를 공간적/지리적 상황에서 보여주는 ‘재현된 담화의 한 형태(언어)로서, 역사이해의 ‘거울’이자 ‘텍스트’이다. 고지도에 ...
고지도는, 기본적으로는 과거가 이해하고 있던 실재 세계를 보여주는 ‘재현된 시각예술의 한 형태’(이미지)로서, 본질적으로는 특정한 사실과 이야기를 공간적/지리적 상황에서 보여주는 ‘재현된 담화의 한 형태(언어)로서, 역사이해의 ‘거울’이자 ‘텍스트’이다. 고지도에는 당시의 역사-지리적 지식-정보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및 예술성 등이 도상학적 기호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투영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속에는 한 개인과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과 이념, 권력과 신앙 등의 ‘가치’가 담겨져 있다. 특히 세계지도 ― 고지도의 여러 유형들 가운데서 ― 는 지역 간 공간정보의 교류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세계인식 혹은 세계이해의 공적소통구조를 엿볼 수 있는 ‘해독이 필요한 시각언어’이다.
1402년(태종2년) 조선에서 제작된《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공간적으로 당시까지 알려진 대륙을 모두 포괄한 현존하는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로서, 15세기말~16세기 초 포르투갈의 중국선교사 마테오리치(Matteo Ricci, 1552~1610년)의 서구식 세계지도인《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17세기 조선에 들어오기 전까지 사실상 가장 넓은 세계의 지평을 그려 넣은 지도로서, 중앙에 중국을 가장 크게 배치하고, 동쪽에는 조선을, 남쪽에는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축국(竺國)’-인도, 아프리카대륙, 아라비아반도, 이베리아반도, 유럽대륙 및 지중해를 각각 포함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이 지도가 제작된 15세기 초는 서양사적으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한 ‘발견의 시대’ ― 이 지도는 1492년 신대륙 발견보다 무려 90년이나 앞서 만들어 졌다. ― 가 아직 막을 열기 이전이었으며, 동양사적으로는 명나라 정화(鄭和, 1371~1433년)의 대선단(大船團)이 인도양을 거쳐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아프리카로 대항해(1405~1433년) ― 1405년에 시작된 정화의 항해는 명 ․ 청대 중국인들에게 ‘서양’이라는 말을 각인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 를 떠나기 직전이었으며, 지도학사적으로는 유럽에 아직 고대의 탁월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학이 이슬람을 통해 소개되기 이전이었다. 아울러 조선의 지도제작 및 발달사에서 볼 때에도, 천하(天下)를 ‘이상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하던 이전의 ‘그림지도’ ― 예컨대《천하도》― 와는 현저하게 구분되는 것으로써 ‘과학지도’로 이행하는 과정의 단면을 최초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와 가치가 큰 지도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조선 전기(前期)의 지리학적 지식 ․ 정보를 종합하여(정보력), 뛰어난 과학 ․ 기술 위에 창의력을 덧입혀 편집 ․ 제작하고(창의성과 기술력), 비단에 잉크로 채색(彩色)하여 벽걸이 형태(예술성)로 제작한 세계학계에서도 주목받는 세계지도이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지금까지 논의 되어 온 지도 제작과정에 관한 선행 연구들에 필자의 입장과 논거를 덧입히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 없는《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나타난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의 지리적 ․ 지형적 특성과 지도에 표시된 약 71개(아라비아 24개, 아프리카 47개)의 지명(地名)들과 조선시대가 보여주고자 했던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 즉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을 일반적인 역사적 배경 ― 지도제작의 목적, 과정, 지리적 정보의 유래, 지도제작자 등 ― 에서 살펴보되, 지도에 담긴 담론과 지도콘텐츠 ― 그런 의미에서 지도의 역사는 담화와 이미지의 한 형태로서 해석될 수 있으며, 지도학은 문학비평, 미술사, 지식사회학 등과 이론적으로 관련된다. ― 를 정치권력의 맥락에서 왜 그렇게 표현/묘사했는가 ― 지도는 결코 가치중립적 이미지가 아니며, 지도지식은 하나의 사회적 생산물이다. 따라서 표현/묘사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간과한 어떤 지도제작사 연구도 그 자체로 ‘역사와 관계없는’(ahistorical) 역사로 분류될 뿐이다.― 에 주목하여 탐구함으로써《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