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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지도의 아라비아-아프리카 이해 소고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년)를 중심으로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대학교수해외방문연구지원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0-013-A00004
선정년도 2010 년
연구기간 6 개월 (2010년 08월 01일 ~ 2011년 01월 31일)
연구책임자 최창모
연구수행기관 건국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필요성] 고지도는 과거에 존재하였던 세계와 지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각자료이다. 고지도에는 당시의 지리적 지식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예술성 등이 반영되어 있다. [지리(地理)는 천문(天文)과 더불어 국가를 경영하는 중요한 학문이었다.] 더 나아가 한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과 관념, 종교적 믿음 등도 그 속에 담겨져 있다. 고지도는 과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 속에서 탄생되며 지역 간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고지도는 과거 공간의 모습을 재현해 줄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시공간적 변천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인 것이다. 고지도의 여러 유형들 ― 우리나라의 고지도는 세계지도와 외국지도, 국가와 국토 경영을 위한 전도(全圖)와 도별(道別)지도, 지방행정 구역을 그린 군현(郡縣)지도, 군사 요충지나 군사 시설 등을 그린 관방(關防)지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가운데 세계지도는 지역 간 문화교류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402년에 제작된《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는 당시까지 알려진 대륙을 모두 포괄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로서 조선의 뛰어난 지도 편집제작 능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당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지도라 인정받고 있다.

    [연구목표] 본 연구에서는 15세기 초에 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인《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그려진 아라비아-아프리카 지역의 지리적 ․ 지형적 특성과 더불어 지도에 표시된 약 80여개의 아라비아-아프리카 국도(國都) 혹은 지명(地名)들을 당시의 중세이슬람 세계지도에 나타난 그것들과 비교 검토함으로써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아라비아-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정보와 세계인식의 배경 및 정도를 살펴보고자 함을 그 목표로 삼는다. 이제껏 본 주제는 국내외를 망라하여 한 차례도 연구가 이루어진 바가 없었다.

    [선행연구] 지금까지 국내 연구자들에 의한 선행연구에서는 주로 중국과 한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연구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지도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Mappamundi)가 보여주고 있는 세계는 그보다 훨씬 넓다. 이베리아 반도를 포함한 유럽은 물론, 특히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에 대한 묘사는 그 어떤 세계지도와 견주어 볼 때에도 독특하고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15세기 조선시대가 갖고 있었던 그쪽 세계와의 활발한 교류의 결과이자 자신들의 세계이해가 아라비아-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연구 한계를 넘어서 조선시대가 보여준 보다 확장된 세계이해, 특히 아라비아와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살펴봄으로써 기존의 연구 영역과 방법을 발전 ․ 확장시킴으로써 국내외 학계에 우리 조상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 기대효과
  • [기여도] 본 프로젝트가 원만히 수행하여 위 가설을 입증하여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면, 15세기 초 조선사회의 세계인식, 특히 아라비아와 아프리카에 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며, 나아가 국제학술지에 결과물을 게재함으로써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세계이해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사료된다. 그 동안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조선시대 중동지역과의 활발한 지식정보 교류라는 측면에서 세계화는 지금 이 시대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학제간 연구조건] 아울러 본 프로젝트는 고지도가 사용하고 있는 중세중국어를 읽어낼 수 있는 중국어학자를 비롯하여, 지도학자, 중세이슬람 역사가 및 지도 연구자들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연구로써 명실공이 학제간 연구의 한 사례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 동안 수차례(2001년, 2004년, 2009년 등) 옥스퍼드 대학에 방문하여 여러 연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는 본인으로서는 그간 풍부한 자료들을 이용해 오며 익혀온 옥스퍼드 대학교의 보들레이안 중앙 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칼리지들의 도서관들은 물론, 그 동안 방문하며 맺어 온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학문적인 인맥(중세 중국어 전공자, 중세이슬람 역사 전공자, 지도학자, 한국학자 등)을 바탕으로 본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밝혀두고 싶다.
  • 연구요약
  • [내용]《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지도 하단에 지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제작 동기를 밝힌 발문(跋文)에서 언급하듯이, 중국에서 들여온 이택민(李澤民, 1273~1337년)의《성교광피도(聖敎廣被圖)》와 청준(1328~1392년)의《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 그리고 조선전도와 일본지도 등을 덧붙여 최소한 네 장의 지도를 합쳐 편집한 지도이다. 발문의 내용으로 볼 때 전체적인 윤곽, 당시의 지명, 외역 지방 등은 이택민의 지도에 기초하였고, 역대제왕의 국도(國都)와 주군(州郡)의 연혁은 주로 청준의 지도를 참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불행하게도 두 지도는 현존하지 않는다.)
    지도제작에 주요한 근거가 되었던《성교광피도》는 중국 원(元)나라의 이택민이 만든 지도로서 중세에 제작된 동아시아의 세계지도 가운데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까지 포괄하고 있는 지도는 서양 선교사들에 의한 한역의 서구식 세계지도가 제작되기 이전의 것으로는 유일하다. 이는 거대한 영토를 차지한 원(元)제국 시대에 행해졌던 동서간의 문화교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이슬람 세계의 접촉은 원대(元代) 이전에도 해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대(唐代)의 중국에 아랍 공식사절단이 39회나 파견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슐레이만 알 타지르(Sulaiman Al-Tajir), 아부 자이드(Abu Zayid) 같은 아랍인의 중국 여행기에 의하면 당말송초(唐末宋初)인 900년경에 중국 남동부에만도 아랍인을 포함하여 페르시아인, 유대인, 기독교인의 숫자가 12만을 상회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슬람문화와의 접촉은 칭기즈칸에 의한 몽고제국이 건설된 13세기부터 이루어졌다. 몽고제국은 중국을 정점으로 동서아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고려에서부터 멀리 동유럽에 걸친 사상 초유의 대제국을 형성하였다. 이로 인해 동서교역로는 크리미아 반도에서 한반도까지 문명세계의 끝에서 끝을 하나로 연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그리스-로마의 문명을 계승하여 중세문화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이슬람의 각종 문화는 중국을 비롯하여 대륙의 동단에 위치한 한반도까지 전파될 수 있었다. 당시 색목인(色目人)이라 불렸던 무슬림들은 천문학, 지리학, 대수학, 물리학, 의학 등의 선진 이슬람 학문을 중국에 이식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이슬람의 지도학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으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성교광피도》를 참조해서 만든《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이슬람 지도학의 영향을 받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랍어 지명이 보이고, 바다는 녹색으로, 하천은 청색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아라비아 지구의의 채색법과 동일하다. 이슬람 지리학자들의 지도에서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특징인 세련된 선 처리와 지극히 추상화된 지형들뿐만 아니라, 지도상에 표기된 지명이 이슬람 지역에 밀집되어 있고 특히 이슬람과 접촉이 많았던 이베리아, 발칸 반도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이슬람 지도의 영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아프리카는 서쪽 방향으로 확장되어 있고, 나일 강 유역의 지형에서 구육만(久六灣, 카스피 해)으로 북방에서 유입하는 모습은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와 유사하다.
    그러나 아라비아 계통의 지도가 이슬람의 종교의식에서는 필수요소가 되는 시간관과 지리학 및 기하학을 바탕으로 “땅은 둥글다”는 지구구체설에 기초하여 원형의 세계지도로 제작된 것과는 달리《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문화권의 대표적인 천지관 (天地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늘은 둥근데 비해 땅은 네모난 평평한 대지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지도가 사각형으로 그려진 것은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슬람 세계지도에서는 남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였으며 15세기 중반까지도 아프리카 남단을 항상 동쪽을 향하도록 묘사하였으나,《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나《대명혼일도(大明混一圖)》에서는 이러한 점이 수정되어 있다. 결국 우리의《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아마도 아라비아 지역까지 영토를 확보하였던 원나라 시대에 아라비아 계통의 지도가 중국으로 들어왔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2~3차 수정을 거쳐 제작된 중국의 세계지도《성교광피도》를 참고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학설과 주장을 바탕으로 하여 이 지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제작되었는가를 재차 살피되, 구체적으로 아라비아 계통의 여러 지도들 가운데서 어떤 지도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받았는가를 논증해 나가고자 한다. 참고했다는 중국의 지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라비아 지도를 토대로 하여 만든 중국지도를 참고하였다"는 가정만으로는 학문적 논증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한글키워드
  • 조선시대,세계지도,아라비아,지도학,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아프리카,동서교류,중세이슬람,고지도
  • 영문키워드
  • Old Map,Honil Kangni Yoktae Kukto Chi To,Mediaeval Islam,Arabia,Africa,Choson Dynasty,Cartography,World Map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고지도는, 기본적으로는 과거가 이해하고 있던 실재 세계를 보여주는 ‘재현된 시각예술의 한 형태’(이미지)로서, 본질적으로는 특정한 사실과 이야기를 공간적/지리적 상황에서 보여주는 ‘재현된 담화의 한 형태(언어)로서, 역사이해의 ‘거울’이자 ‘텍스트’이다. 고지도에는 당시의 역사-지리적 지식-정보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및 예술성 등이 도상학적 기호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투영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속에는 한 개인과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과 이념, 권력과 신앙 등의 ‘가치’가 담겨져 있다. 특히 세계지도 ― 고지도의 여러 유형들 가운데서 ― 는 지역 간 공간정보의 교류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세계인식 혹은 세계이해의 공적소통구조를 엿볼 수 있는 ‘해독이 필요한 시각언어’이다.
    1402년(태종2년) 조선에서 제작된《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공간적으로 당시까지 알려진 대륙을 모두 포괄한 현존하는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로서, 15세기말~16세기 초 포르투갈의 중국선교사 마테오리치(Matteo Ricci, 1552~1610년)의 서구식 세계지도인《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17세기 조선에 들어오기 전까지 사실상 가장 넓은 세계의 지평을 그려 넣은 지도로서, 중앙에 중국을 가장 크게 배치하고, 동쪽에는 조선을, 남쪽에는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축국(竺國)’-인도, 아프리카대륙, 아라비아반도, 이베리아반도, 유럽대륙 및 지중해를 각각 포함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이 지도가 제작된 15세기 초는 서양사적으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한 ‘발견의 시대’ ― 이 지도는 1492년 신대륙 발견보다 무려 90년이나 앞서 만들어 졌다. ― 가 아직 막을 열기 이전이었으며, 동양사적으로는 명나라 정화(鄭和, 1371~1433년)의 대선단(大船團)이 인도양을 거쳐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아프리카로 대항해(1405~1433년) ― 1405년에 시작된 정화의 항해는 명 ․ 청대 중국인들에게 ‘서양’이라는 말을 각인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 를 떠나기 직전이었으며, 지도학사적으로는 유럽에 아직 고대의 탁월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학이 이슬람을 통해 소개되기 이전이었다. 아울러 조선의 지도제작 및 발달사에서 볼 때에도, 천하(天下)를 ‘이상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하던 이전의 ‘그림지도’ ― 예컨대《천하도》― 와는 현저하게 구분되는 것으로써 ‘과학지도’로 이행하는 과정의 단면을 최초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와 가치가 큰 지도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조선 전기(前期)의 지리학적 지식 ․ 정보를 종합하여(정보력), 뛰어난 과학 ․ 기술 위에 창의력을 덧입혀 편집 ․ 제작하고(창의성과 기술력), 비단에 잉크로 채색(彩色)하여 벽걸이 형태(예술성)로 제작한 세계학계에서도 주목받는 세계지도이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지금까지 논의 되어 온 지도 제작과정에 관한 선행 연구들에 필자의 입장과 논거를 덧입히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 없는《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나타난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의 지리적 ․ 지형적 특성과 지도에 표시된 약 71개(아라비아 24개, 아프리카 47개)의 지명(地名)들과 조선시대가 보여주고자 했던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 즉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을 일반적인 역사적 배경 ― 지도제작의 목적, 과정, 지리적 정보의 유래, 지도제작자 등 ― 에서 살펴보되, 지도에 담긴 담론과 지도콘텐츠 ― 그런 의미에서 지도의 역사는 담화와 이미지의 한 형태로서 해석될 수 있으며, 지도학은 문학비평, 미술사, 지식사회학 등과 이론적으로 관련된다. ― 를 정치권력의 맥락에서 왜 그렇게 표현/묘사했는가 ― 지도는 결코 가치중립적 이미지가 아니며, 지도지식은 하나의 사회적 생산물이다. 따라서 표현/묘사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간과한 어떤 지도제작사 연구도 그 자체로 ‘역사와 관계없는’(ahistorical) 역사로 분류될 뿐이다.― 에 주목하여 탐구함으로써《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고자 한다.
  • 영문
  •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or the Unified Map of Territories and Capitals of the States, which was produced in 1402 in the second year of King T’aejong’s reign in the Chosŏn dynasty, was the earliest known map of the world from the East Asia cartographic tradition. Before the Portuguese Jesuit missionary Matteo Ricci’s western style world map Kunyu Wanguo Quantu or Map of the Ten Thousand Countries of the Earth was introduced to Korea in the seventeenth century,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was the oldest surviving map in East Asia, which covered the largest areas in the world. According to this map, China is placed in the middle; Japan and South East Asia in the South; the Central Asia in the West; India, the African Continent, the Arabian peninsula, the Iberian peninsula, the European continent and the Mediterranean Sea in the Far West.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was produced even before Spain and Portugal initiated maritime expansion or the so-called the ‘Age of Great Discoveries’ was emerged in the early fifteenth century. And also it was about ninety years earlier than the discovery of New Continent by Christopher Columbus in 1492. In the history of East Asia, the Chinese junks of the Zheng He expedition in Ming dynasty sailed through the Indian Ocean and Persia, and even all the way to Arabian Peninsula, and Africa. The Zheng He’s expedition left indelibly imprinted the idea of the West on the mid of Chinese in the Ming and Qing period. It was even before ancient remarkable technology of Ptolemy’s cartology was introduced to European countries viaIslam. From the perspective of a history of map-making and its development in the Chosŏn dynasty,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or the Unified Map of Territories and Capitals of the States has brought about significance and value of the development of cartology at the face of transition to "scientific map" though the world or all under heaven (Korean: ch’ŏnha; Chinese: Tianxia) was perceived only as a ideologized and abstracted idea with the Sinocentricbias, which was represented in the ch’ŏnhadoor the Map of all under heaven. In fact,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was painted on silk fabric with colour inks in a form of artistic wall-hanging on the basis of inherited from the earlier period of edited and produced cartographical knowledge and information adding science, and technology coloured with creativity because the uniqueness of it draws attention from world scholarship.
    In this paper, I aim to explore possibilities of a new interpretation in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hereafter referred to as the Kangnido) by focusing on discourses of map and map contents. For this I will provide a general historical background knowledge of maps, such as intentions of map-making, the process of map-making, geographical information reflected on map, and map-makers etc, in the context of how political power has shaped those elements of map-makings. And also I attempt to grasp the perception of the ‘external world’, which is in particular Arabia–Africa region by focusing on Arabia-Africa geographical and topographical characters and place-names, identified with about seventy-one names consisted of twenty-four names of places in Arabia and forty-seven names of places in Africa. A history of map can be interpreted as a historical discourse or a form of representation. Cartography is theoretically related to literary criticism, history of art, the sociology of knowledge. Map is never value-free, rather value-laden. Map knowledge is a social product. Any history of cartography which demeans the politico-social significance of its expression and description in the map would be an ‘ahistorical’ histor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고지도는, 기본적으로는 과거가 이해하고 있던 실재 세계를 보여주는 ‘재현된 시각예술의 한 형태’(이미지)로서, 본질적으로는 특정한 사실과 이야기를 공간적/지리적 상황에서 보여주는 ‘재현된 담화의 한 형태(언어)로서, 역사이해의 ‘거울’이자 ‘텍스트’이다. 고지도에는 당시의 역사-지리적 지식-정보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및 예술성 등이 도상학적 기호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투영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속에는 한 개인과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과 이념, 권력과 신앙 등의 ‘가치’가 담겨져 있다. 특히 세계지도 ― 고지도의 여러 유형들 가운데서 ― 는 지역 간 공간정보의 교류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세계인식 혹은 세계이해의 공적소통구조를 엿볼 수 있는 ‘해독이 필요한 시각언어’이다.
    1402년(태종2년) 조선에서 제작된《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공간적으로 당시까지 알려진 대륙을 모두 포괄한 현존하는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로서, 15세기말~16세기 초 포르투갈의 중국선교사 마테오리치(Matteo Ricci, 1552~1610년)의 서구식 세계지도인《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17세기 조선에 들어오기 전까지 사실상 가장 넓은 세계의 지평을 그려 넣은 지도로서, 중앙에 중국을 가장 크게 배치하고, 동쪽에는 조선을, 남쪽에는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축국(竺國)’-인도, 아프리카대륙, 아라비아반도, 이베리아반도, 유럽대륙 및 지중해를 각각 포함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이 지도가 제작된 15세기 초는 서양사적으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한 ‘발견의 시대’ ― 이 지도는 1492년 신대륙 발견보다 무려 90년이나 앞서 만들어 졌다. ― 가 아직 막을 열기 이전이었으며, 동양사적으로는 명나라 정화(鄭和, 1371~1433년)의 대선단(大船團)이 인도양을 거쳐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아프리카로 대항해(1405~1433년) ― 1405년에 시작된 정화의 항해는 명 ․ 청대 중국인들에게 ‘서양’이라는 말을 각인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 를 떠나기 직전이었으며, 지도학사적으로는 유럽에 아직 고대의 탁월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학이 이슬람을 통해 소개되기 이전이었다. 아울러 조선의 지도제작 및 발달사에서 볼 때에도, 천하(天下)를 ‘이상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하던 이전의 ‘그림지도’ ― 예컨대《천하도》― 와는 현저하게 구분되는 것으로써 ‘과학지도’로 이행하는 과정의 단면을 최초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와 가치가 큰 지도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조선 전기(前期)의 지리학적 지식 ․ 정보를 종합하여(정보력), 뛰어난 과학 ․ 기술 위에 창의력을 덧입혀 편집 ․ 제작하고(창의성과 기술력), 비단에 잉크로 채색(彩色)하여 벽걸이 형태(예술성)로 제작한 세계학계에서도 주목받는 세계지도이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지금까지 논의 되어 온 지도 제작과정에 관한 선행 연구들에 필자의 입장과 논거를 덧입히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 없는《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나타난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의 지리적 ․ 지형적 특성과 지도에 표시된 약 71개(아라비아 24개, 아프리카 47개)의 지명(地名)들과 조선시대가 보여주고자 했던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 즉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을 일반적인 역사적 배경 ― 지도제작의 목적, 과정, 지리적 정보의 유래, 지도제작자 등 ― 에서 살펴보되, 지도에 담긴 담론과 지도콘텐츠 ― 그런 의미에서 지도의 역사는 담화와 이미지의 한 형태로서 해석될 수 있으며, 지도학은 문학비평, 미술사, 지식사회학 등과 이론적으로 관련된다. ― 를 정치권력의 맥락에서 왜 그렇게 표현/묘사했는가 ― 지도는 결코 가치중립적 이미지가 아니며, 지도지식은 하나의 사회적 생산물이다. 따라서 표현/묘사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간과한 어떤 지도제작사 연구도 그 자체로 ‘역사와 관계없는’(ahistorical) 역사로 분류될 뿐이다.― 에 주목하여 탐구함으로써《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고자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가져다준 지도학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현존하는 ‘동양 최고(最古)의 세계지도’라는 점에서, 17세기 마테오리치의《곤여만국전도》가 처음 소개될 때까지 세계에 대한 정보와 인식은 적어도 동북아 삼국에서는 ‘가장 넓은 지리적 시야와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조선인의 중국을 넘어 선 세계이해와 ‘외부세계’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에 대한 묘사는 ― 적어도 유럽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한 독립적인 생각이 르네상스시대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독특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까지 국내외의 여러 연구자들은 이 지도의 제작 배경과 그 과정에 관한 역사적 연원(淵源)과 유래(由來)를 밝히는 데 많은 노력을 경주한 나머지 이 지도제작이 갖는 정치-사회적 맥락을 간과해 온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것이 아무리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과학적인 지도라 하더라도 ‘상징으로서의 지도’와 ‘지도에 담긴 담론’은 필연적으로 정치-사회적 맥락 ― 그런 의미에서 지도란 결코 가치중립적인 생산물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사회적 생산물이며, 드러내든지 숨기든지 간에 지도에 담긴 수많은 상징과 이야기들 역시 정치-사회적 의도와 의미를 가진다. ― 을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 지도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 요소, 즉 지도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제작자[publisher]=수집가[observer/surveyor]+편집자[designer/editor/printer]),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사용자[librarian/user])하는 물음과 마찬가지로 지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해석자[interpreter]) ― 해석은 일차적으로 지도제작과정에서 이미 반영된다. 따라서 지도해석은 일종의 메타과학(meta-science)이 된다. ― 에 관한 통합적(interdisciplinary)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지도해석은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색인어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조선시대 고지도, 중동-아프리카, 이슬람 고지도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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