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가 가진 시각적 특성은 주체(아는 사람)와 대상(알려지는 것)을, 언어와 그것이 사용되는 조건을 분리한다. 쓰기 이후 인쇄술에 의해 가속화된 이와 같은 분리적 특성이 언어의 선형성, 연속성, 논리성 등을 전경화시키고, 문자성이 내면화된 인간의 의식도 선형적 ...
문자가 가진 시각적 특성은 주체(아는 사람)와 대상(알려지는 것)을, 언어와 그것이 사용되는 조건을 분리한다. 쓰기 이후 인쇄술에 의해 가속화된 이와 같은 분리적 특성이 언어의 선형성, 연속성, 논리성 등을 전경화시키고, 문자성이 내면화된 인간의 의식도 선형적, 추상적, 개념적, 논리적으로 구성된다. 이와 같은 문자성은 서사에 있어서는 선형적 플롯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살펴봄으로써 문자성이 근대적인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기초한 시각중심적 인간과 문화가 형성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사를 구체성, 직접성, 생성과 변화의 세계에서 떼어놓은 문자성의 시각편향은 구어성과 청각을 비롯한 공감각에 의해 보완될 필요가 있다. 상호의존적 차이와 생성의 세계로서의 공감각적 서사는 저자/글이라는 이분법이 해체되어 외부로부터 규정력이 행사되지 못하는 공간이다. 의미는 논리적 선형성을 따라 추출되는 것이 아니라, 기표, 담론, 목소리, 사건, 사태들의 우연적인 연결과 충돌에 의해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 생성되고 변화한다. 공감각적 서사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세계와 현실을 포괄하는데 유리한 형식이며, 분리적 시각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고 통합되는 구체적인 감각들인 청각이나 촉각에 의한 인지를 구현하는 공간이다.
공감각적 서사로서의 텍스트의 특성과 이념은 기술적으로는 하이퍼텍스트에서 구현되고 있다. 컴퓨터 기술에 기반한 하이퍼텍스트는 먼저 인쇄의 선형성이 제거된 상호작용과 연결에 의해 구체적인 서사체들로 경험되는 서사 방식이다. 따라서 이것은 다양성, 이질성, 구체성을 그 특성으로 하는 비선형적/다선형적 서사이이다. 웹의 네트워크를 따라 이론적으로 무한한 통로들이 구성될 수 있는 “무한하게 탈중심화하고 재중심화할 수 있는 체계”(Landow 57)인 하이퍼텍스트는 선형적 플롯을 따른 논리적 수렴보다는 상호 연결을 통한 무한한 확산에로 향한다. 텍스트 개념의 기술적 수렴으로 인식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를 살펴봄으로써, 기술적 차원에서의 공감각성 뿐 아니라 의식적 차원에서의 공감각적 특성, 즉 차이, 생성, 내재성의 사유 등을 긍정하는 서사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의식, 문화, 삶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정립하는데 필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공감각성을 회복하고, 또한 지배의 형식에 저할할 수 있는 서사의 또 다른 형태로 우리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배의 형식들은 모든 것을 자신들의 담론 양식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데, 이러한 지배의 형식들에 저항하는 무언가를 우리는 디지털 내러티브라는 양식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저항의 양식이며, 체제의 환원과 제한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디지털 내러티브는 침묵당한 발화들이 목소리를 찾고 그로 인해 다양한 사유의 방식들의 잠재성이 발현되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출판과 유통 등 자본의 제도에 의해 표현을 거부당했던 개인의 이야기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과 어법들이며, 이익과 효율성이라는 자본주의적 거대서사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분쟁들 자체를 긍정하고 증언하는 기호들이다. 이 기호들은 체제를 지지하고 영속화하는 제도와 신념과 행위들을 균열시키는 장소들을 표시한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가리키는 이 이질적 전망들은, 메타서사가 그것으로써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만 불가능한, 또 그것에 동화되지 않는 서사들이다. 이 서사들은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이나 미적 가치의 문제를 떠나, 자신을 보편적인 것으로 조직하고 제시하는 위압적인 설명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새로운 해석과 발화가 가능한 공간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