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희곡연구에서 비국민적 주체들의 존재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것은 이들 존재가 우리 사회의 정체성 형성과정에서 의미있는 집단 구성원으로 세력화되지 못했기 때문이고, 또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민족국가담론이 내부의 동질성을 강화하기 위해 민족의 범 ...
한국 현대희곡연구에서 비국민적 주체들의 존재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것은 이들 존재가 우리 사회의 정체성 형성과정에서 의미있는 집단 구성원으로 세력화되지 못했기 때문이고, 또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민족국가담론이 내부의 동질성을 강화하기 위해 민족의 범주와 경계를 설정하고 타자들을 배제해온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본 연구는 한국 현대 극예술에 나타난 ‘비국민적 주체(non-national subject)’ 의 계보와 표상을 연구하고, 비국민의 극적 형상화 방식, 소수자의 기억과 공식역사의 길항관계 등을 살핌으로써 표상과 지배담론과의 역학관계를 추적하였다.
본 연구는 구체적으로 해방 후 한국 극예술 안에서 ‘비국민적 주체’의 표상이 구성되어 온 과정을 밝히고, 비국민의 이미지가 어떻게 구성되고 변모, 굴절, 전유되었는지를 연구하는데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먼저 해방 이후 현재까지 한국 극예술의 역사에서 비국민적 주체가 형상화된 작품을 수집하고 유형화함으로써 한국 극예술에 나타난 비국민적 주체의 계보를 그려내고자 했다. 이러한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비국민의 표상을 연구하고, 당대의 지배담론 속에서 비국민에 대한 배제와 차별의 메커니즘을 규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주체화의 기획에서 배제된 ‘타자’를 관통하는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장치 및 예외적 존재로서의 비국민적 주체의 위상과 정체성을 새롭게 고찰하는 연구가 될 것이다.
해방 공간에서 1980년대까지의 한국 극예술은 국민국가담론의 자장에서 '국가'와 '민족'이라는 중심축이 경합을 벌이며 그 경합의 애매한 경계에서 ‘비국민적 주체’들을 만들어냈다. 경계와 구분을 공고히 설정하려는 근대민족국가의 국가주의 담론은 역설적이게도 ‘비국민’을 양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건국과 분단, 독재정권 시대를 거치면서 1980년대까지 한국 극예술을 관통하는 역사적, 사회문화적, 사상적 코드는 민족, 국가, 민중 등이었다. 이 시기는 국가가 압도적 구속력을 갖고 있던 시기였다. 국가가 구속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국가의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국민은 주권 혹은 국가에 소속할 권리라는 문제와 마주하게 되고 이 권리는 좌절을 낳기도 했다.
해방과 건국, 근대 국민국가 수립이라는 역사적 경험은 그 사건을 역사화하는 ‘연극적 서사화’와 ‘재현’의 과정을 통해 담론화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 극예술 역시 필연적으로 ‘민족’과 ‘국가’와 ‘민중’을 호출하였다. 해방 이후 (미래의) 국민으로 호명된 청년은 비국민 혹은 반민족에 대한 국민국가 내부의 타자화를 통해 멸사봉공하는 애국자로서 국민정체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국가기획 및 국민정체성 수립을 위해 외부의 적대적 대상 혹은 내부의 특정집단이 타자화되었다. 타자의 실체가 분명해질 때 주체의 정체성이 분명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국난민(국내 난민)’은 자신의 국적국 영토 내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국민과 시민의 변경을 떠도는 유랑자로 존재하는데, 해방기 많은 귀환자가 국제적인 난민됨을 피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내국난민으로 치환되었다고 본다.한국전쟁과 반공 이데올로기, 독재정권 하에서 극예술의 가장 강력한 수렴지대는 국가와 민족 담론이었다. 특히 분단으로 인해 강요된 극심한 경계짓기 때문에 폐쇄적인 국민 정체성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김영수, 함세덕, 이주홍, 박경창, 김동식, 차범석, 이강백, 박조열, 이재현 등의 작품을 통해 ‘비국민적 주체’ 라는 경계인, 귀속되지 못하는 존재에 착목하여 새로운 연구시각으로 분석한다면 역사와 내셔널리즘의 정체성 논리와 맺고 있는 공모관계, 국적과 민족적 혈통에 기반한 극예술적 통념의 폭력성과 해석의 정치성 문제를 밝혀내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