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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야구--메이지 문인들의 야구 관련 언설을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야구--메이지 문인들의 야구 관련 언설을 중심으로 | 2013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옥희(한국체육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3S1A5A2A01017299
선정년도 2013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4년 10월 3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4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1911년에 도쿄아사히신문에 연재된 야구해독론, 그리고 그에 맞서 대두된 야구옹호론을 분석하여 메이지 말기에 전개된 야구를 둘러싼 논쟁의 배경과 의의를 밝히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야구해독론은 제1고등학교 교장인 니토베 이나조를 중심으로, 야구옹호론은 모험소설가 오시카와 슌로를 중심으로 해서 분석했다. 그 결과, 이 두 주장이 표면적으로는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적으로는 내셔널리즘이라는 공통된 뿌리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컨대, 메이지 말기의 야구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야구에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빚어진 논쟁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내셔널리즘의 실천 방법에 관한 의견차로 인한 논쟁임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니토베 이나조와 같이 ‘야구 해독론’을 주장하며 외래스포츠인 야구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일본 고유의 사무라이정신이나 무사도정신을 중시하는 국수주의적인 입장의 내셔널리스트인 셈이다. 그에 반해서 오시키와 슌로와 같이 ‘야구 옹호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여 팽창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적이자 구화(歐化)주의적인 내셔널리스트였다고 할 수 있다.
  • 영문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efine the background and the meaning of the argument about baseball in the late Meiji Period. The counterforce of baseball is investigated by looking at Nitobe Inazo, the principal of Daiichi High School, and the advocates of baseball are analyzed based on adventure novelist Oshikawa Shunro. As a result, these two contrary positions were eventually rooted from the same ideology, which is nationalism. In other words, although the dispute around baseball in the late Meiji looks like the conflict triggered by the difference of perspectives toward baseball, it actually caused by the difference of the practice of nationalism. To be specific, while the counterforce of baseball such as Nitobe Inazo could be named as an ultranationalist emphasizing 'Samurai spirit', the advocates of baseball including Oshikawa Shunro could be classified as imperialistic and western-friendly nationalist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서론>에서는 일본의 초기 야구사와 더불어 일본 야구의 특징을 검토했다. 메이지 초기에 제1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해서 국가주의와 엘리트의식의 결탁에 의해 일본 야구가 ‘무사도 야구’로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무사도 야구’의 특징을 상세히 살펴본 것이다.
    <본론>의 제1절에서는 1911년에 도쿄아사히신문에 22회에 걸쳐 연재된 ‘야구 해독론’의 내용을 검토했다. 이 연구에서는 특히 니토베 이나조를 ‘야구 해독론’의 대표주자로서 집중 조명했다. 왜냐하면 나토베 이나조는 연재 첫 회의 필자로 선정될 정도로 당시에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야구 옹호론’의 대표주자였던 오시카와 슌로가 집요할 정도로 물고 늘어진 대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니토베가 미국 사회에서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1900년에 영문으로 『무사도』라는 책을 출판하면서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에 발간된 이 책은 니토베의 대표적인 저서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었다. 또한 니토베는 1901년에 대만총독부에서 기사(技師)로 근무했다. 그 실적을 인정받아 교토제국대학에서 식민정책에 대해 강의도 하고 박사학위도 받았다. 1906년 니토베는 러일전쟁 후의 일본의 리더 육성에 적합한 인물로 인정받아 1913년까지 제1고등학교의 교장직을 수행했다. 따라서 ‘야구 해독론’에 관한 글을 쓸 당시, 니토베는 제1고등학교를 대표하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야구 해독론’을 주장하는 필자들이 다양한 이유들을 들며 야구를 비판하고 있으나, 특히 유도, 검도 등의 일본의 전통적인 스포츠와의 비교를 통한 비판이 많았던 이유를 이러한 니토베의 예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제1절에서는 니토베를 중심으로 해서 서구 스포츠의 대명사격인 야구와 무도와의 관계, 그리고 ‘야구 해독론’과 내셔널리즘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결국 ‘야구 해독론’이란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일본 야구가 ‘무사도 야구’에서 오락적이고 상업적인 미국식 야구로 변질되어 가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2절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야구관을 분석했다. 소세키의 야구와의 인연을 비롯하여 야구광이었던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와의 친분관계, 그리고 그의 야구관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소설작품『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야구에 관한 단편적인 기술이 나와 있는 『그 후』, 일기나 잡문 등의 기술을 토대로 야구관을 종합했다. 소세키는 야구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스모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으며 열렬한 스모팬이었다. 당시에 야구를 비판하고 스모를 장려하는 것은 메이지 정부의 정책이었으며,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이기도 했다. 그런 시류를 간파했기에 도쿄아사히신문이 야구해독캠페인을 벌인 셈이다. 또한 제1절에서 검토한 니토베의 야구관과 소세키의 야구관의 사상적 토대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야구를 배척하며 스모를 즐겼던 소세키, 그리고 그의 <자기본위(自己本位)> 사상, 일본적인 무도를 권장하고 개인주의를 침해한다며 야구를 배척했던 니토베의 사상, 이 둘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3절에서는 요미우리신문을 중심으로 추진된 ‘야구 옹호론’의 전개 과정을 살펴봤다. 그 전개 과정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후, 주로 오시카와 슌로에 초점을 맞춰 ‘야구 옹호론’의 근거와 배경 등을 면밀히 분석했다. 『야구와 학생』을 비롯하여, 야구를 옹호하는 글들을 분석하여 그의 주장과 논점을 파악했다. 그 결과 오시카와에게 있어서 야구는 그가 쓴 『해저군함』과 같은 모험소설이 그랬듯이, 제압과 정복을 위한 무협으로서의 스포츠였으며, 그것은 곧 제국주의의 건설과 직결되는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더불어서 침략적 팽창주의를 표현한 그의 모험소설들도 함께 분석했다. 모험소설의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오시카와 슌로의 제국주의자적인 면모를 그의 야구에 대한 집착과 연관시켰다.
    제4절에서는 이상의 검토 내용을 토대로 두 주장에 대한 면밀한 비교 검토를 시도했다. 그 결과. 이 두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적으로는 내셔널리즘이라는 공통된 뿌리를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요컨대, 이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야구를 둘러싼 논쟁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내셔널리즘의 실천 방법에 관한 의견차로 인한 논쟁이다. 즉 니토베와 같이 외래스포츠 야구를 배척하기 위해 ‘야구 해독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본 고유의 무사도정신을 중시하는 국수주의적인 입장의 내셔널리스트다. 한편 오시키와와 같은 야구 옹호론자들은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여 팽창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적이자 구화(歐化)주의적인 내셔널리스트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에서 주로 다루는 1910년 무렵의 일본의 정치적, 사상적 상황은 우리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시기는 우리가 일본의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국권을 박탈당한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조선에 적극적으로 스포츠를 보급시켰다. 즉 일본은 스포츠를 통해 내선일체를 이루고자 하였으며, 스포츠를 통해 조선인들의 일본에 대한 반감을 해소하고 불만을 잠재우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의 방법론을 동시대의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여 한국의 근대문학과 스포츠에 대한 연구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당시의 한국의 문학자들이 일본의 그런 야욕을 감지하고 스포츠를 받아들였는지,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그저 오락으로서 스포츠를 받아들였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어,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연구를 확대시킬 계획이다.
    또한 이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를 토대로 하여 일본의 야구와 한국의 야구가 각기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으며,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야구에 관심을 가졌던 한국의 문인은 누구이며, 한국의 문학작품 속에서 야구는 어떤 식으로 묘사되었는지, 그리고 일본의 경우 ‘무사도 야구’라는 특징이 있었다면, 당시 한국의 야구에는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 그것이 내셔널리즘과는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를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과 연관시켜 검토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색인어
  • 야구, 야구해독론, 야구옹호론, 내셔널리즘, 니토베 이나조, 무사도야구, 나쓰메 소세키, 오시카와 슌로, 모험소설, 제국주의, 메이지시대, 일본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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