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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훈춘 만주족 사회의 변화, 1735-1960.
Development of Manchu Society in Hunchun, 1735-1960.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4S1A5A8014678
선정년도 2014 년
연구기간 2 년 (2014년 05월 01일 ~ 2016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윤욱
연구수행기관 부산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기존의 滿洲族이나 駐防에 관한 견해는 주로 북경 등 內地의 滿洲族에 대한 관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청대에 전체 100여개의 駐防 가운데 40개 이상의 駐防은 內地가 아닌 滿洲, 新疆, 內蒙古 등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 변방 지역에 설치된 駐防은 漢族에게 둘러싸인 內地의 駐防과는 생존환경이 매우 달랐으므로 변방의 駐防과 그곳에 살았던 滿洲族 에 대한 연구는 八旗駐防과 滿洲族에 대한 기존의 지식을 수정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청대 琿春지역의 滿洲族에 관해서는 방대한 양의 청대당안인 琿春副都統衙門檔案이 존재하며, 청조가 멸망한 후에는 日帝가 남겨놓은 풍부한 통계자료와 民國시기, 滿洲國시기 만, 한족 엘리트가 편찬한 다양한 지방지 및 吉林省檔案館과 延邊自治州檔案館에 보관된 방대한 양의 당안자료가 존재한다. 현대사자료로는 신문자료와 각종 통계자료, 생존한 滿洲族의 구술자료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지원자는 이들 방대한 자료를 이용하여 건륭연간이후 중공의 초창기인 1960년까지 琿春 滿洲族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이제까지 北京과 내지의 滿洲族을 중심으로 행해졌던 연구가 낳은 근현대 滿洲族의 경험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 즉 청조의 지배민족이었던 滿洲族이 청말 이래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으며 신해혁명이후 중공정권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漢族의 박해와 멸시를 받고 살아야했다는 주장을 수정하고 근현대 각지의 滿洲族이 일률적이 아닌 서로 다른 다양한 역사의 경험을 겪었음을 밝힌다.
  • 기대효과
  • 우선, 변방에 위치한 琿春 滿洲族에 대한 연구는 기존의 북경과 內地 駐防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滿洲族 연구를 보완하고 북경과 내지의 滿洲族에 대한 관찰을 통해 형성된 滿洲族의 역사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하게 될 것이다.
    둘째, 본 연구에서 琿春副都統衙門檔案에 대한 성공적인 활용은 이제까지 활발하게 이용되지 않았던 黑龍江將軍衙門, 阿勒楚喀, 寧古塔副都統衙門 檔案 등 변방의 다른 駐防衙門 檔案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滿洲族 역사의 지역적 다양성을 밝히는 작업을 추동하게 될 것이다.
    셋째, 民國시기에서 중공 초창기에 걸친 훈춘 만주족과 관련된 광범위한 문헌자료 수집 및 滿洲族 생존자의 구술자료의 탐색은 앞으로 滿洲族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소중한 자산을 남겨놓을 것이다.
    이밖에도, 琿春 滿洲族의 조선과의 지리적 근접성과 한반도 북부에서 활동했던 野人들과의 밀접한 관련성으로 말미암아 琿春滿洲族에 대한 연구는 조선시대 조청 양국 간의 犯越, 疆界, 조선인의 間島 이주문제나 嚮化野人의 연구에도 기여할 것이다.
  • 연구요약
  • 淸末民初 琿春 旗人 엘리트의 향촌지배에 관한 지원자의 기존연구를 확대하여 청중기이래 琿春 滿洲族의 정치적, 경제적 삶의 변화를 추적하기 위하여 1차 년도에는 琿春에서 청정부가 설치했던 旗人의 생계보장제도와 旗地의 소유와 운영의 실태를 파악하고, 2차 년도에는 民國시기, 滿洲國시기, 그리고 중공의 성립과 발전 속에서 琿春 滿洲族의 향촌에서의 정치적, 경제적 지위의 변동과정을 추적한다.
    우선, 1차 년도에 琿春旗人의 생계보장제도와 그 성과를 파악하기 위해 戶口冊을 이용하여 琿春사회의 인구압 등 滿洲族의 생계를 악화시킨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被甲, 戰傷者, 閑散, 未亡人 등에게 지급된 양향의 지급 추이를 분석하고, 義倉, 生息銀의 운영 등 琿春 旗人을 경제적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琿春 駐防의 노력을 알아본다.
    旗地의 운영방식이나 소유권의 이동여부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琿春의 旗地에 고용된 노비와 民人의 숫자; 고용 民人에 대한 구타, 살해, 노비의 도주 등의 기록에 나타난 旗地에서 일하던 民人이나 노비의 노동환경; 그리고 旗地의 소유권을 둘러싼 지주 간, 지주-소작인 간의 분쟁을 분석한다.
    2차 년도에는 청조의 붕괴 이래 반세기 동안 琿春 滿洲族의 정치적 지위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지방지, 연감, 당안자료에 수록된 각종 職官表, 履歷書를 이용해 민국, 滿洲國, 중공정권 하에서 琿春의 정부, 당, 경찰, 군대, 학교, 기타 관변기구 및 自警團, 商會, 敎育會 등 민간단체 간부 중에서 滿洲族의 분포를 검토한다.
    한편, 1911년 이래 1960년까지 滿洲族의 경제적 지위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琿春의 滿洲族 인구와 경작지 면적의 추이를 추적하고, 당안자료, 琿春의 滿洲族이나 일본인 開拓民들의 회고록, 신문자료를 통해 민국시기 滿洲族의 경제상황, 일제의 토지침탈, 중공의 토지개혁과 민족정책이 滿洲族의 경제생활에 끼친 영향을 알아본다.
    지원자의 연구는 문헌자료의 수집과 분석을 근간으로 하지만 연구기간 중 琿春에서 자료수집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滿洲族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구술조사를 실시해 문헌자료를 보충하려고 모색할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청나라를 건설한 만주족은 청나라가 몰락해가는 청말 이후 지배민족으로서의 특권을 박탈당했다. 특히 신해혁명이후에는 중공정권의 성립 전까지 만주족은 한족의 박해와 멸시를 받으면서 생활한 것으로 믿어져왔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는 주로 북경 등 관내 만주족에 대한 관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사실 전체 1백여 개의 주방 가운데 40%는 만주, 신강, 내몽고 등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 이러한 지역에 위치한 주방의 만주족에 대한 연구는 만주족의 운명에 관한 기존의 지식을 수정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본 연구는 한반도와 인접한 국경에 설치된 훈춘주방과 관련된 방대한 양의 자료를 이용하여 청 중기 이후 중공정권 초기까지 이곳 만주족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이제까지 북경과 내지의 만주족을 중심으로 행해졌던 연구가 낳은 근현대 만주족의 경험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을 재고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필자는 2년간 총3회에 걸쳐 훈춘, 옌지, 창춘 등지를 총 55일간 방문하여 이곳의 각종 당안관, 도서관을 방문하여 당안을 필사하고 지방문헌을 수집했다. 또한 1회에 걸쳐 8일간 교토, 도쿄 소재 도서관에서 만주국 시기 자료를 수집했다. 그 결과 수집한 자료를 선별, 번역한 분량만 206쪽에 달한다. 또한 필자는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길림성 훈춘시와 흑룡강성 푸위현의 만주족자치향을 방문하여 13명의 만주족 또는 만주족 관련 노인들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녹취했다. 중문으로 녹취한 분량 및 동시통역을 거쳐 한글로 기록한 분량은 30페이지에 이른다. 이와 별도로 청대의 만주족의 경제상황을 조사하기 위하여 『훈춘부도통아문당』(총238권) 가운데 필요한 만주어 및 한문당안을 선별해 번역했다. 238권(매권 약 400페이지) 가운데 필요한 내용을 담은 150여권에서 추려내어 정리, 번역한 자료는 A4용지 224페이지에 달한다.
    이상의 자료의 분석을 통하여 본 연구자는 북경 등 관내에 거주했던 만주족과 달리 훈춘의 만주족은 청대는 물론 만주사변 이전까지도 향촌의 교육계, 향촌자치조직, 농회, 상회 등 각종 사회단체를 장악하고 있었음을 밝혀내었다. 뿐만 아니라 만주지역의 만주족이 청말에는 이미 이주해온 한인들에 의해 토지소유권을 빼앗기게 되었다는 기존의 연구결과와 달리, 훈춘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그다지 심각하게 진행되지 않았으며 만주족은 만주사변 이전까지 조상 대대로 장악하고 있었던 토지를 대부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아냈다.
    하지만 일제의 만주침략, 특히 만주사변 이후 만주족의 운명에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만주사변 이후 이곳을 지배하게 된 일제는 중국인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전에 이곳에서 사회적 차별을 당하고 살던 조선인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중국인은 민국정부 하에서 자국민으로서 독점하고 있었던 기득권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 때 이 지역의 향촌사회를 장악하고 있던 만주족도 정치적, 사회적 지위의 하락을 경험하게 된다. 한편, 20년대부터 진행된 조선인을 통한 일제의 토지매수, 31년이후 진행된 일제의 자작농창정계획, 일본인의 이주계획으로 말미암아 중국인들의 소작농화가 진행되면서 만주족 역시 토지를 상실하고 경제적 지위도 하락하게 된다.
  • 영문
  • The Manchus lost their privileges as the ruling minority of the Qing dynasty from the late Qing period. It is told that since the 1911 Revolution, the Manchus lived under the discrimination of the Han people. However, this opinion is based on the observation of the Manchus who lived in Beijing and other areas in China Proper. In fact, about forty out of around one hundred banner cities in the late Qing were located in the frontiers including Manchuria, Xinjiang, and Inner Mongolia. It is very possible that researches on the banner cities in those areas change our prejudice about the fate of the Manchus in the Modern period. This research makes use of a huge amount of materials about the banner city of Hunchun in order to reconsider the prejudice based on the previous researches on the Manchus in China Proper.
    Doing this research, I visited China three times and stayed 55 days, collecting local publications and copying archival sources in various archives and libraries in Hunchun, Yanji, Changchun and other cities in China. In addition, I visited Japan once and stayed 8 days, collecting related research materials in libraries in Kyoto and Tokyo. These collected materials were assorted and translated in Korean in the length of 206 pages. While I was staying in China, I also visited the Fuyu County in Heilongjiang and the Hunchun City in Jilin and interviewed 11 senior Manchus and 2 Han Chinese who had had close ties with Manchus. I recorded the conversation with them in the length of 30 pages. In addition, on the purpose of investigating the economic situations of the Hunchun Manchus in the Qing period, I selected and translated related materials from the Archives of the Office of Hunchun Brigade General (Hunchun Fudutong Yamendang). Those selected materials which came from 150 volumes out of the total 238 volumes were translated in Korean with 224 pages.
    After analyzing the above collected and processed materials, I found that unlike the Manchus in China Proper, in Hunchun the Manchus controlled the world of education, local governmental organizations and various self-governing bodies such as agricultural associations and commercial associations until the Mukden Incident of 1931. In addition, unlike the previous researches arguing that the land of the Manchus in Manchuria had been already taken by the Han people by the late Qing, the Hunchun Manchus managed to maintain their land by the Mukden Incident of 1931.
    However, the fate of the Hunchun Manchus faced drastic changes since the Mukden Incident of 1931. In order to curb the Chinese people’s influence, the Japanese decided to give preferential treatment to Koreans who had nursed a grudge against the Chinese while they had suffered the suppression of the Chinese government and people. As a result, the Manchus who had controlled the local society of Hunchun so far experienced the debacle of their political and social status. Meanwhile, the Hunchun Manchus also suffered the decline of their economic status as they continued to lose their land and became tenants because the Japanese purchased a large amount of Manchus’ land under the name of Koreans in the 1920s and conducted the Plan to Create Independent Farmers and populated thousands of Japanese immigrants in Hunchun in 1930s and 1940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기존의 滿洲族이나 駐防에 관한 견해는 주로 北京 등 內地의 滿洲族에 대한 관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淸代에 전체 100여개의 駐防 가운데 40%에 달하는 駐防이 滿洲, 新疆, 內蒙古 등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 변방 지역에 설치된 駐防은 漢族에게 둘러싸인 內地의 駐防과는 생존환경이 매우 달랐으므로 변방의 駐防과 그곳에 살았던 滿洲族 에 대한 연구는 八旗駐防과 滿洲族에 대한 기존의 지식을 수정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본 연구자는 한반도와 인접한 국경에 설치된 琿春駐防과 관련된 방대한 양의 자료를 이용하여 乾隆年間이후 中共의 초창기까지 琿春 滿洲族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이제까지 北京 등 關內 駐防의 滿洲族을 중심으로 행해졌던 연구가 낳은 근현대 滿洲族의 경험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 즉 청조의 지배민족이었던 滿洲族이 청말 이래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으며 辛亥革命이후 중공정권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漢族의 박해와 멸시를 받고 살아야했다는 주장을 수정하고 근현대 각지의 滿洲族이 일률적이 아닌 서로 다른 다양한 역사의 경험을 겪었음을 밝히고자 했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자는 2년의 연구기간에 걸쳐 총3회에 걸쳐 琿春, 延吉, 長春을 방문하여 琿春市檔案館, 延邊州檔案館, 吉林省檔案館, 延邊州圖書館, 吉林省圖書館, 延邊大圖書館 등지를 방문하고 檔案을 필사하고 지방문헌을 수집했다. 또한 1회에 걸쳐 東京, 京都를 방문하여 日本國會圖書館, 京都大學 人文科學硏究所 등지를 방문하고 民國과 滿洲國時期 자료를 수집했다. 수집한 문헌자료와 필사한 檔案資料 가운데 선별, 번역해서 컴퓨터에 입력한 자료의 분량만 206 페이지에 달한다. 또한, 琿春의 三家子滿洲族自治鄕, 楊泡滿洲族自治鄕, 哈達門鄕의 만주족 집단거주지를 방문하여 13명의 滿族 또는 滿族과 관련된 노인들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녹취했다. 중문으로 녹취한 분량 및 동시통역을 거쳐 한글로 기록한 분량이 30페이지에 이른다.
    이와 별도로 청대의 滿洲族의 경제상황을 조사하기 위하여 『琿春副都統衙門檔』 가운데 필요한 滿漢文檔案을 선별해 번역했다. 238권(매권 약 400페이지) 가운데 필요한 내용을 담은 150여권에서 추려내어 정리, 번역한 자료는 A4용지 224페이지에 달한다.
    이상의 자료의 분석을 통하여 본 연구자는 淸 中期 이래 (특히, 淸末에 초점을 맞추어) 滿洲族의 토지소유와 운영, 滿洲國 시기 滿洲族의 경제적 지위의 몰락, 民國時期 滿洲族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 滿洲國時期 滿洲族의 엘리트 지위의 상실을 밝혀내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차년도의 연구결과: ① 淸末 滿洲族의 토지소유와 운영 – 淸 末期 滿洲에서 滿洲族의 토지가 民人에게 소유권이 이동된다는 기존의 주장과 달리 琿春에서 滿洲族은 淸末까지도 소유권을 상실하지 않았다. 漢族과 조선인의 토지의 획득이 확인되지만 이것은 만주족의 토지 소유권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새로 개간한 荒地에서 획득한 것이었다.
    ② 民國時期 滿洲族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 – 民國時期 中國 등 關內에서 滿洲族은 漢族의 경멸 대상이 되고 사회적 지위가 하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琿春에서는 滿洲族은 漢族과의 원활한 관계에 힘입어 사회적 지위를 보전하는데 성공했다. 1931년 滿洲事變이 발생하기 전까지 琿春의 滿洲族은 교육계를 장악하고 고등교육의 수혜를 독점했으며 縣公署 및 鄕村 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와 사회교육기관을 장악하고 있었다.

    2차년도의 연구결과: ① 滿洲國時期 滿洲族의 경제적 지위의 몰락 - 滿洲事變의 발생을 전후하여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앞세워 토지의 침탈을 강화했다. 일본은 東洋拓殖會社 등을 통해 조선인에게 융자를 제공하여 토지를 구입하게 했다. 이 와중에 滿洲族은 이제까지 차지하고 있던 토지를 상실했다. 滿洲國時期 진행된 自作農創定과 일본인이주계획은 중국인들의 小作農化를 더욱 촉진시키게 된다.
    ② 滿洲國時期 滿洲族과 조선인의 사회적 지위의 역전 - 滿洲事變 이후 일본인들은 中華民國 치하에서 중국정부와 중국인들에게 차별대우를 받고 있던 조선인을 통치의 조력자로 활용하여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을 탄압하는 정책을 취했다. 결국 만주국시기 조선인들의 취학율, 중고등학교 진학률이 상승하고, 縣政府와 하급관청, 경찰조직에서 조선인의 비율이 증가하고, 특히 각종특무기구에서 조선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조선인들은 農會, 商會, 사회개량사업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이로 인해 滿洲事變 전에 교육분야, 지방행정, 각종자치단체를 장악하고 있던 琿春 滿洲族은 조선인에게 밀려나 향촌 지배력을 상실했다.

    활용방안: ① 연구를 토대로 淸代 중기부터 1949년 토지개혁에 이르기까지 滿洲族의 토지의 소유와 이용에 관한 논문을 집필할 예정이다.
    ② 본 연구는 淸末 이후 滿洲族이 특권을 상실하고 민족차별의 대상이 되었다는 선입견을 재고하게 함으로써 淸末 이후 滿洲族의 운명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본 연구방법과 결과를 변경에 설치된 다른 주방의 연구에도 이용할 수 있다.
    ③ 기존에 알려진 바와 달리 滿洲國 시기 조선인의 사회적 지위가 제고되었음을 밝혔는데, 이는 앞으로 이 분야의 논의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데 이바지 할 것이다.
    ④ 연구과정에서 축적한 滿洲族 고령의 노인들의 인터뷰 기록은 앞으로 滿洲族 문화 연구를 위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 색인어
  • 청말, 훈춘, 민족, 만주족, 조선인, 한족, 旗人, 旗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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